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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제아무리 작을지라도 결점이 있고 한계가 있다.

이것은 모든 문명의 인류의 역사가 증명한 사실이다.

물론 이런 결점들과 한계를 일반인들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어 결점들을 최대한 줄이고 한계는 최대한 높이는 자들도 극히 드물지만 존재한다.
필자가 알기론 이런 자들을 한국어로는 “초인”이라고 하는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다스리는 정치라는 부분에서 초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분명 객관적으로도 훌륭한 지도자들이라고 불릴만 할것이다.

가난의 구렁텅이에서 굶주린 국민들을 경제적으로 구원한 지도자일수도 있다.
외적의 침략을 이겨내고 나라의 주권을 지킨 지도자일수도 있다.

심지어는 식민지배했던 침략국을 몰아내고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고 나라를 새로 건국한 일명 국부라고 불리우는 지도자일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인간이다.

그들도 인간이기에 너무나도 훌륭하고 그들을 공적인 대상으로만 접하는 국민들에겐 완벽해보이는 그들도 결점과 한계가 결국에는 있다.
이 결점과 한계는 단지 정치적인 면에 그치지 않고 사생활적인 측면에서 나타날수도 있고 평소의 습관과 태도에서도 나타날수도 있다.

또한 장점인 부분들이 다른 면에서보면 단점이 될수도 있다.
인간의 몸을 예로 들자면 보통 큰 키는 선망의 대상이다.
그러나 몸을 숙여서 어디를 지나가야 할 순간에는 불편한 조건이다.

그렇기에 다시 한번 인간은 그 누구도 완벽할수가 없는 존재다.
초인의 경지에 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결국엔 초인적 지도자도 인간이기에 완벽할수가 없는데 지도자가 단지 정치적인면에서 대략적으로 초인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지도자에 대한 그 어떤 비판도 금기시하면 그건 더 이상 지도자를 대하는 국민의 태도가 아니요 인간이 같은 인간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 

이것은 우상숭배요 종교를 맹신하는것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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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우상화의 대표적인 예시인 스탈린)

가정에서도 제 아무리 좋은 아버지와 어머니여도 자식들과 다투고 자식들을 혼내는 날들이 반드시 있다. 인간이기에.

그리고 제 아무리 훌륭한 아버지 어머니여도 적어도 한번쯤은 자식에게는 서운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인간이기에.

설사 자식이 철이 없어서, 객관적으로 자식이 잘못한 경우여도 자식한테는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인간이기에.

자식이 잘못한 경우에는 부모가 이상적인 부모라면 자식이 왜 그렇게 느끼는지 파악할려고 할것이고 왜 잘못했는지 설명을 조리있게 해줄것이고 그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위해 그 잘못에 받는 벌을 합당하게 줄것이다. 
그리고 그 벌로 인한 속상한 마음을 달랠 기회를 줄 것이다.

혹시 부모가 정말로 잘못한 경우에는 제 아무리 사소한 잘못이라고 해도 자식에게 솔직히 사과하는 것이 이상적인 결론이다.

그러나 현실은 부모도 인간이기에 때로는 이렇게 대응할수가 없을때가 있다. 이건 너무나도 당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것은 훌륭한 부모는 그래도 이런 대응을 최대한 할려고 한다는것이다.

그리고 이런 대응은 부모가 자식의 얘기를 듣고 그것을 생각하며 자식에게 자신의 얘기를 설득력이 가게 하는것이 필수적이다.

만약 부모가 자식의 얘기를 어떠한 경우라도 듣지않고 항상 무시하며 단지 매질만하고 일방적으로 자신이 할 얘기만 하면 그 부모는 더 이상 훌륭한 부모라 부르기 힘들것이다.
자식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부모를 훌륭한 부모라고 할수 있을까?

지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니 지도자는 더더욱 그렇다.
지도자는 몇십만, 몇백만, 몇천만, 몇억의 사람들을 이끄는 위치다.

어떤 지도자라도 자신이 이끄는 국민들하고 소통은 반드시 해야한다. 심지어 독재자들도 마찬가지다.  
독재자들이 현지지도를 왜 가고 현지시찰을 왜 하겠는가.

그리고 풍자와 희화화로 대표되는 국민들의 비판은 이런 소통의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의회를 비롯한 또 다른 권력자들의 비판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무서운 권력앞에서 나오는 국민들의 비판이야 말로 권력을 가진 지도자가 자신이 이끄는 국민들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알게하고 자신도 돌아보며 부족한 점을 발견하게 해주는 가장 확실한 소통수단이다.

훌륭한 지도자라면 비판을 들으면서 자신의 문제점을 찾을것이다. 
만약 객관적으로 봐도 자신의 문제점이 아니라 국민이 부족해서 나오는 비판이라면 우선 국민들을 설득시키면서 비판이 잦아들도록 해야한다.

아까 필자가 큰 키가 단점이 될수도 있는 사례를 언급했는데 그 반대의 경우, 즉 단점이 장점이 되는 경우도 이 세상에는 많이 존재한다.

지도자들중에서 더더욱 고단수들은 비판을 역이용해 자신이 구상하는 대의를 실현하기도 한다.
(필자가 보기엔 젊었을적 푸틴이 이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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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의 비판을 무시히고 대의를 추진하기 위한 피보기는 훌륭한 지도자라면 마지막에나 선택해야 하는 옵션이다.

만약 피보기를 일상화하면 그 지도자는 분명 후대의 심판을 받는다.
국민들을 위해 일한다는 지도자가 비판한다는 이유만으로 국민들을 죽여댔으니 당연한 이치다.

설사 그 대의가 좋았고 잘 이뤄졌어도 그 지도자는 유능했다고 평가받을진 몰라도 전체적으로 훌륭한 지도자라고 평가받긴 힘들다.
혹은 주홍글씨가 새겨진다. “독재자, 학살자”

비판을 공개적으로 못하게 한다는 것은 지도자가 위에 언급한 나라를 이끌때 비판이 주는 모든 이점들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국민들의 권리를 탄압하는것 뿐만이 아니다.
그것도 ”듣기싫다“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사유로 말이다.

비판을 공개적으로 못하는 세상이 되면 지도자는 듣기 좋은 말들만 듣게되고 그것은 결국 자만심과 실패로 귀결된다.
”고인 물이 썩는다“ 라는 말은 괜히 있는게 아니다.

지도자가 앞장서서 자신의 대한 공개비판을 거세시켜버린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북괴의 김씨일가다. 
그것도 인류역사상 손에 꼽히는 잔혹하고 기괴한 방법으로.

뼛속까지 세뇌당한 일부 북한 주민이나 정신병자가 아닌이상 그 누가 현재 북한 주민이 살아가는 현실을 보고 김씨일가를 훌륭한 지도자라고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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