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2023년인 지금, 한국의 20대 여성 3명 중 1명이 창녀 경험이 있다고 한다.

30살 여자 3명이 모인 자리에서 그 중 1명은 20대때 창녀 경험을 했을 확률이 높다는 소리다. 혹은 현재 진행형일 수도.

한국의 내수 경제의 한 축이 매춘 경제라는 걸 이해 못하는 나이도 아니다. 나도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으니깐.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이 지천에 깔려있다. 스스로의 절제력이 없으면 순식간에 탕진을 하게 된다.

특히나 여자는 어릴 적에 절제하는 훈련을 들이지 않으면 십중팔구 창녀가 된다.

남자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여자는 욕구에 대한 절제력이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한반도가 과거 노예제 사회였던 것은, 죽음보다도 단 하루의 연명을 원하는 개체들이 많았기 때문인데,

이들은 지고한 정신보다도 단지 하루의 쾌락이 더 중요하다.

번식을 마치면 바로 죽어버리는 연어나 곤충 일부 종류처럼, 생물학적 프로그래밍에 따르는 유전자 캐리어였던 셈이다.

이러한 동물적 단계에 머물러 있는 인간에게 있어 인생은 그저 젊을 때 화끈하게 놀다 가는 것이다.

창녀질로 인한 불임이라던지 그런 리스크를 계산할 필요가 없다. 연어처럼 그냥 싸고 죽는 존재니깐.

20대때 명품 들어보고, 스포츠카 타고 싶은 마음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야.

여자는 10~20대가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하고 초조하겠지.

물론 한국 창녀중에서 사치하려고 창녀질 하는 여자는 별로 없다. 단지 생활비를 벌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

정리하자면 조선인의 노예적 특성과 자유가 결합했을 때, 어떤 모습인 지 지금의 한국 사회가 보여주고 있다는 것.

나는 창녀를 욕하지 않는다. 이들의 부모까지도 어쩔 수 없는 노예였다는 걸 아니깐.

그저 씨를 뿌리고 죽어가는 연어처럼 어쩔 수 없었구나 하는, 연민과 비탄을 느낄 뿐이다.

(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