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트는 의회주의, 토론에 의한 통치에의 신념은 자유주의 사상에 속하는 것이지 민주주의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동일한 것은 동일하게’ 하고 그 불가피한 귀결로서 ‘동일하지 아니한 것은 동일하지 않게’ 하는 것에 기반한다고 보았다.
즉 민주주의는 첫째 동질성이 필요하며, 둘째로-필요하다면-이질적인 것의 배제 또는 섬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요컨대 “민주주의의 정치적 힘은 이질적 이고 불평등한 것, 동질성을 위협하는 것을 배제하고 멀리하는 것”으로 부터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이질적 개인에 근거한 사회계약은 자유주의의 산물일 뿐이며 통치자-피치자의 동질성에 근거한 민주주의와는 필연이 아닌 우연적 관계일 뿐이었다.
따라서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사적 개인 의견의 합계로서의 전체의지가 아니라 공적 영역에 속하는 ‘국민’의 일반의지가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예외상태 개념과 결단주의에 의해 독재로 연결되는 것이었다. 예외상태 하에서 결단을 내리는 주권자는 결코 규범적 존재가 될 수 없다. 그렇기에 ‘예외상태의 규범적 무는 독재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독재는 유일하게 ‘정치적인 것’의 본질에 상응하는 것인데, 그것은 반자유주의적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반민주주의적이지는 않은 것이다.
의회주의의 위기는 “도덕적인 파토스에 의해서 담당된 자유주의적인 개인주의와 본질적으로는 정치적인 이상에 의해서 지배된 민주주의적인 국가감정과의 대립”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에 의회주의의 위기가 곧 민주주의의 위기는 아닌 것이다. (의회주의 위기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대립으로부터 기원)
유신헌법 제정에 핵심적 역할을 한 갈봉근은 슈미트 논리를 원용해
정치적 정통성의 핵심으로서의 국민주권을 개체의 주권의 합산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국민의 단일한 주권으로 파악했다.
즉 “개별적 이익의 합산보다는 전체적인 일반이익이 우월하다는 전제 아래 정립된 국민주권의 원리”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일반이익을 누가 대표하느냐가 중요 한 문제로 떠오르는데 기존의 국회, 대통령의 이중 대표론을 비판하면서 대통령의 단일한 대표성을 강조했다.
통일주체국민회의는 대통령이 ‘불가분적’인 국민의사에 의해서 선출될 수 있도록 하는 주권적 수임기관이 된다는 논리였다.
그는 이 과정이 ‘추상화된 국민 개념을 가시적인 차원으로 환원하여 인격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간접선거는 ‘국민이 개별적으로 처해 있는 환경․집단 등의 굴절작용’을 받게 되는 직선과 달리 “개별이익이 완전히 배제된 ‘불가분의 상태’로 ‘여과’된 국민주권의 대표자”로 상정된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더 우월한 국민주권의 행사방식이 되는 것이었다.
갈봉근은 집단의사가 구성분자들의 산술적 합산이 아니라 “집단 특유의 자율적인 의사”라는 집단이론(group theory)까지 동원하여 초국가주의를 방불케 하는 논법을 구사하였다. 요컨대 통일주체국민회의는 “개별의사를 배제하고 국민의사만을 정수화한 불가분적인 국민주권의 엣센스”라는 것이었다.
(황병주, '박정희체제의 대중인식과 동원담론')
(퍼온 글)
너는 파시스트야
이게 바로 진정한 민주정이다.
자유와 민주가 일치하지 않는다는건 올바른 주장이지만 막상 그 경우 시민의 자유를 어떻게 보장할 지가 딜레마지. 리얼폴리띠끄에서 시민의 자유를 국가 권력 내에서 가장 잘 보존한 7080의 미국조차 90년대를 기점으로 자본권력에 의한 리버럴리즘으로 귀결되었음을 생각하면 어려운 문제임
그건 리버럴리즘의 고민이다. 그리고 7080의 미국을 시민의 자유가 잘 보존됐다는 시각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그 때 미국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 줄 아냐?
'책을 안읽는 사람'보다 '책을 한권만 읽은 사람'이 더 무섭다라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좋은 글이군요.
책 한권 읽은 게 찌라시 하나 읽고 뭐 원로회니 어쩌고 하면서 장황하게 늘어놓는 검머외보다는 낫지 않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