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살인’ 여부 수사 중이라는데···‘K-치안’에도 끊이지 않는 살인교사 범죄

윤기은 기자2023. 4. 2.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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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유명 음식점 대표 피살사건 피의자 박모씨가 지난해 12월28일 오후 제주동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3600만원 상당의 채무를 대신 갚아주기로 했다.”
경찰은 서울 강남구 주택가 납치 살인 사건의 피의자 A씨가 자신의 범행 동기를 이같이 진술했다고 지난 1일 밝혔다. 다른 피의자가 범행의 대가로 자신의 빚을 대신 갚아준다고 하자 납치·살인에 가담했다는 것이다. 다만 A씨의 진술 외에 청부 살인을 입증할 증거는 아직 확보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2일 “(해당 사건의) 청부 사건 여부는 확인 중”이라며 “사건의 성격을 단정할 수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대가를 받기로 하고 살인을 저질렀을 ‘청부살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세간의 이목은 더욱 집중되고 있다. 흔히 청부살인으로 불리는 범죄를 부탁한 사람에게는 ‘살인교사죄’가 적용된다. 치안 수준이 높은 국내에서도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고 있다.

살인교사 범죄는 주로 금전 관계, 원한, 치정 등을 이유로 발생하지만 최근 10년 사이 잘 알려진 사건은 대부분 피해자 사망시 얻게 될 금전적 이익을 노리고 범행을 저지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12월16일에는 제주 서귀포에서 유명한 갈치 전문식당을 운영하던 50대 여성 B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B씨가 운영하던 식당의 관리이사로 근무했던 박모씨(56)가 B씨 살해를 교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씨는 식당 운영권을 장악하고 피해자에게 진 빚 8억4500만원을 갚지 않으려고 살해를 청부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씨는 지인 김모씨 부부를 범행에 끌어들였다. 김씨 부부는 살인의 대가로 박씨로부터 3200만원 보수와 채무 2억3000만원 변제를 제안 받았다. 이들은 앞서 6차례 살해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7번째 시도 끝에 피해자 자택 도어락 비밀번호를 알아내고 집 안에서 피해자를 가격해 숨지게 했다. 김씨는 범행 후 집 안에서 현금 491만원과 1800만원 상당의 명품가방 3점을 훔쳐 자신의 거주지인 경남 양산으로 달아났다. 제주지검은 지난 1월16일 김씨 부부를 강도살인 등 혐의로, 박씨를 살인교사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돈을 노린 청부 살인은 2017년에도 있었다. 미술감독 고모씨는 2017년 8월 서울 서초구의 한 법무법인 회의실에서 피를 흘린 채 발견됐다. 고씨를 죽음에 이르도록 사주한 이는 그의 외사촌 동생 C씨였다. C씨는 자신의 친할아버지 재산 상속 유언장을 조작하려다 들켰고, 외손주인 고씨는 외할아버지의 법적 대응을 도왔다. C씨는 20억원을 주겠다며 흥신소에 고씨 살해를 청부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법원은 C씨의 살인교사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경찰관이 옛 직장 동료의 사망보험금을 노리고 살인을 청부한 사건도 있었다. 장모씨는 2010년 경찰을 퇴직하고 개인사업을 시작한 D씨에게 2억원을 빌려준 데 이어 추가로 “돈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장씨는 돈을 빌려주는 대신 D씨에게 사망보험에 가입하고, 수령인을 자신으로 지정했다. 장씨는 2014년 수사 중 알게 된 E씨에게 “시키는대로 하면 2900만원 채무를 탕감하고 사망보험금 일부를 주겠다”며 살인을 교사했고, D씨는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장씨는 2015년 대법원에서 징역 30년형이 확정됐다.
2014년 김형식 전 서울시의원도 “접대 내역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해온 서울 강서구의 재력가를 살해하라고 교사한 혐의로 검거됐다. 김 전 의원은 자신의 친구에게 “성공 시 빌린 돈 7000만원을 탕감해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김 전 의원은 2015년 대법원에서 살인교사 혐의로 무기징역 판결을 받았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국내 사건은 지인에게 살인을 교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최근에는 경제적 조건을 걸고 모르는 이에게 살인을 교사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경제적 가치만을 최우선으로 두고 의사 결정을 하는 한 범죄인들은 체포될 것을 알면서도 대가를 받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다”며 “디지털 기술이 상용화되고, 폐쇄회로(CC)TV 설치량이 늘어나면서 대부분 짧은 시간 안에 용의자를 체포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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