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삼성전자는 과연 기업문화를 바꿀 수 있을까?
기자명 ESG경제
입력 2024.10.12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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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우 일본 글로벌시너지어소시에이츠 대표 제언
조직 관료화 타파 관건, 주말근무·비용절감은 미봉책
리스크 회피 말고, 적재적소 인재 배치 쇄신책 내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0월 7일 필리핀 마닐라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필리핀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가 총체적 난국에 직면하면서 조직을 쇄신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조직문화의 문제점은 관료주의의 심화, 위기관리 리더십 부재, 상의하달의 중앙집권적 통제, 대내외 소통능력 저하 등으로 요약된다. 이에 대해 전현직 삼성 임직원들 상당수가 공감을 표시한다.
따지고 보면 새로울 것도 없다. 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업의 반열에 오르며 성공신화를 썼던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지금의 삼성전자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소멸해 갔다. 물론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새로운 혁신 기업으로 거듭난 사례도 적지않다. 삼성전자는 과연 어떤 길을 갈 것인가.
나는 미국 MIT를 졸업한 뒤 1979년 미 인텔 분사에 입사했고, 인텔 일본 현지법인의 임원을 지냈다. 일본 반도체업체인 NEC의 사외이사를 역임했고, 히다치와 삼성전자 등 많은 글로벌 반도체업체들의 전략을 자문했다. 글로벌 반도체산업의 인사이더로 40여년을 보냈다.
초창기 인텔의 기업문화
인텔은 내가 입사했을 때 실리콘밸리에서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나는 그런 혁신을 샘솟게 하는 조직문화를 체험했고, 연수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교육받기도 했다. 신입사원 연수의 첫 번째가 '명심해야 할 회사의 가치관'이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1) 건설적인 대립을 존중
인텔에는 모든 사안에 건설적인 비판이 나올 경우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문화가 있었다. 그리고 토론을 할 때 감정적으로 흐르지 않았다. 이슈를 놓고는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지만, 토론하는 상대방을 인신 공격하지는 않았다. 이는 일견 당연해 보이지만 미국에서도 꽤 어려운 일이다. 이런 문화를 통해 당시 젊은 직원들로부터 좋은 아이디어가 얼마나 많이 나왔는지 모른다.
2) 오픈 마인드의 개방적인 조직
대외적으로도 매우 오픈된 자세를 취했다. 거래업체와 협력업체들의 의견을 존중했고, 이를 토대로 상호 신뢰하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갔다. 그 덕분에 나는 외부 협력업체나 권위 없던 사람들의 의견이 의외로 본질을 꿰뚫고 있는 경우를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인텔의 오픈 마인드는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빛을 발했다. 안되는 사업에서 철수할 때 과거에 집착하거나 창피해하지 않고 빠르게 결단했다. 인텔이 D램 사업을 접을 때도 바로 그랬다.
3) 리스크 긍정형의 조직
당시 인텔의 CEO였던 앤디 그로브가 임직원들에게 기회만 닿으면 반복적으로 했던 얘기가 있다. “어느 정도 승산이 있는 리스크라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다”는 것이었다. 리스크는 관리하면 되는 것이지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 그의 경영 신조였다. 그로브의 이런 리더십 덕분에 임직원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뭔가를 끊임없이 도모할 수 있었다.
4) 사내 정치를 최소화
사람이나 조직이나 이기적인 것은 인지상정이다. 어디에서나 세 사람이 모이면 정치가 시작된다는 말이 있듯이, 인텔에도 정치적인 언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로브 CEO는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말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로브는 어떤 개인이 자기 자신의 손익, 나아가 자기 부서의 손익을 회사의 손익보다 우선하는 행위를 아주 싫어했다. 인사관리, 조직관리의 최우선 과제를 사내 정치 및 파벌의 타파에 두었다.
5) 사람과 윤리를 소중히
그로브 CEO는 자신이 헝가리 출신의 난민이었기 때문인지, 사람과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1970년대 부터 현장에서 일하는 사원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스톡옵션을 주었다. 나도 젊은 나이에 처음 스톡옵션을 받았을 때 이게 어떤 시스템인지 오히려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로브는 좋은 인재가 회사를 그만두려고 할 때는 직접 만나 그 이유를 묻고, 조직 전체가 나서 그를 설득하도록 했다. 실제로 나도 인텔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그로브가 직접 나를 불러 설득했던 경험이 있다.
또 하나 윤리경영을 강조했다. 인텔이 CPU에서 합법적인 독점 체제를 구축한 후에도 그로브는 임직원들에게 교만하지 말라고 계속 얘기했다. 대리점이나 협력업체들을 소중히 여기도록 교육을 시켰다. 회계기준도 가능한 한 보수적으로 투명하게 운영했다.
이런 종합적인 노력과 정책으로 당시의 인텔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직장(great place to work)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의 인텔은 누가 봐도 위대하지 않다.
삼성 반도체인의 신조
삼성전자에도 위대한 기업문화가 있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의 초기인 1983년 임직원의 자발적 참여를 기초로 10개 항목의 ‘반도체인의 신조’를 만들었는데, 이게 조직문화로 뿌리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안된다는 생각을 버려라. 2)큰 목표를 가져라. 3)일에 착수하면 물고 늘어져라. 4)지나칠 정도로 정성을 다하라. 5)이유를 찾기 전에 자신 속의 원인을 찾아라. 6)겸손하고 친절하게 행동하라. 7)서적을 읽고 자료를 뒤지고 기록을 남겨라. 8)무엇이든 숫자로 파악하라. 9)철저하게 습득하고 지시하고 확인하라. 10)항상 생각하고 확인해서 신념을 가져라.
삼성전자는 이 신조를 실천한 결과 대단한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성공 이후 이런 조직문화는 하나 둘 금이 갔고, 오늘의 위기를 자초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삼성과 인텔의 위기는 어디서 왔나
공교롭게도 인텔이 먼저 위기를 맞았고, 삼성전자가 뒤를 잇는 모습이다. 두 기업의 성장을 지켜봤던 사람으로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위기의 원인은 위에서 언급한 조직문화와 관계가 있다고 본다.
오래된 신조이지만 여전히 유효한 것들을 더 이상 실행하지 않는 케이스를 생각할 수 있다. 예컨대 삼성의 경우 겸손하고 친절하게 행동하라는 항목(신조6)이 있는데, 내가 외부에서 삼성을 접한 경험과 거래·협력업체들의 말을 종합하면 지금 삼성전자의 자세는 겸손하다고 얘기하기 어렵다.
인텔도 상당 기간 합법적인 독점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오만해졌다. 그로브 CEO는 재임 중 임직원들에게 “오만하지 말고 겸손하라”고 누차 경고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만의 성(城)에 갖혀 경쟁적인 환경에서의 미묘한 변화를 알아챌 수 없기 때문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러나 그가 떠난 뒤 이런 경고는 더 이상 없었고, 조직은 점차 무너져내렸다.
인텔의 그로브와 삼성전자의 이건희 회장은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갖고 있었다. 그들의 능력과 열의는 부하들에 비해 훨씬 탁월했고 따라서 대단한 권위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자석처럼 사람을 끄는 힘이 있었다. 그들의 권위는 지위나 권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로브와 이건희 회장이 뭐라 말하면 대부분 조직원들은 따랐다.
비판할 생각은 없지만, 현재 인텔의 CEO인 팻 겔싱어나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에게서 그런 카리스마는 찾아보기 힘들다.
사람이나 조직이나 생로병사가 있게 마련이다. 나이를 먹어 몸집이 커지면 무거워지고 없던 병도 생긴다. 다만 사람의 수명이 100년이라면, 기업은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면 죽지 않고 수명을 계속 연장할 수 있다. 내가 인텔에서 일하고, 사업 파트너로 삼성전자를 접했을 때 두 회사의 규모는 지금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몸이 커지면 옷을 바꿔입어야 하듯 조직문화도 새롭게 해야하는데, 두 회사는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리스크 관리와 리스크 회피
몇 년 전 삼성전자의 기획담당 책임자를 만나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그때 세계 톱50(포춘 50) 기업의 변화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톱50 에서 탈락한 기업 대부분은, 리스크에 관한 경계심으로 도전을 꺼려 경쟁 상대에게 전략적인 기회를 줘버렸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진단이 정확하다고 맞장구쳤고, 이런 사람이 있으니 삼성의 미래가 밝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얼마 가지 않아 회사를 떠났고, 재무와 인사 라인의 리스크 회피 전문가들이 삼성전자의 요직에 앉는 것을 목격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성공 체험의 몰두 때문이다. 기업은 크게 성공하면 경영 방법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탄탄대로에 접어들었는데, 다른 길을 선택해 실패하기 싫은 탓이다. 물론 이런 선택이 옳은 경우도 있다. 다른 산업의 이야기이지만 코카콜라가 맛을 바꿔서 뉴코크라는 신제품을 판매했는데 대실패였다. 코카콜라의 고정 팬이 경쟁 상대인 펩시로 옮겨갔기 때문이었다. 규모가 작으면 새로운 시도를 실패해도 손실이 한정적지만 10배 이상으로 규모가 커지면 신중하게 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이 고민을 해결하는 힌트의 하나는 “리스크를 피하는 것과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 것이다. 후자의 방법으로는 단계별로 실행을 한다든지, 최악의 시나리오를 설정해 대안을 준비하는 것 등이 있다. 설사 실패할 위험이 따르더라도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전을 멈춰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관료적인 조직문화 타파
회사 규모가 커지면 조직이 관료화하는 것은 어느 나라 기업에서나 마찬가지이다. 의사 결정의 속도가 늦어지고 현장의 권한은 작아진다. 그리고 조직의 개방성은 떨어지고 폐쇄적으로 흐른다.
의사결정의 스피드를 말하면, 과거 내가 실리콘밸리에서 본 삼성전자의 움직임은 빨랐다. 새로운 기술을 빨리 도입하려는 절박한 움직임과 헝그리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회사가 커진 뒤 현지 법인과 본국 사업부 사이의 주도권 쟁탈이 외부에까지도 노출되며 의사결정에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요즘 삼성의 의사결정 속도는 중국이나 대만 기업보다 늦다는 소리를 듣는다.
현장의 권한에 대해 얘기하면. 과거 인텔에서는 “우선 행동하고 나중에 허가를 받는다”라는 불문율이 있었다. 그 후 차차 조직 상사나 복수의 관련 부서의 결재를 받은 뒤 행동하게 되었다. 최근 인텔을 그만 둔 사람들에게서 들으면 그런 관료적인 경향이 더 심해졌다고 한다. 지금 인텔의 CEO는 이런 내부의 벽과 싸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거 인텔에서 많이 거론됐던 얘기인데, 상사의 입장에서 “권한위양과 권한포기는 분명 다르다”는 것이다. 현장에서의 실수가 두려워서 또는 비용 절감 등 재무적 판단에서 현장의 권한을 줄이거나 박탈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 대신 현장에 권한을 위양하되, 성과 보고의 빈도와 밀도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궤도 수정이 가능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오픈된 조직 만들기에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최근 어떤 계기로 한국의 일류 대학과 삼성이 산학협력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는데, 삼성의 프라이드는 보통이 아니었다. 포용성과 겸손함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또한 최근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어떤 벤처 인큐베이터 모임을 참가했는데, SK하이닉스와 TSMC는 볼 수 있었지만 삼성은 가입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삼성도 인텔도 이러한 조직의 변형을 바로잡아야 혁신역량과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인텔에 비해 오너가 있는 삼성이 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재용 회장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조직문화의 변화와 인적 쇄신을 단행하기를 기대한다. 삼성의 현재 문제는 주말 근무나 비용 절감 같은 미봉책으론 타개할 수 없다. 과거 이병철, 이건희 선대 회장이 보여줬던 개혁 드라이브와 적재적소 인재 배치 만이 살 길이다.
[강동우 글로벌시너지어소시에이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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