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 표현에 대한 의문....
천국의 계단(61.248)
2005-03-12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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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지났건만, 본인이 학교 다닐 적에 국어 선생이 하던 말이 생각나오.
"한국인은 색깔에 대한 개념이 없다."
"한국인의 조상들은 한자문화가 전래된 이후에야 비로소 색이 뭔지를 알았다." 였소.
중국인들은 고대로부터 靑이나 綠 등에 대한 개념이 있었으나,
"한국인은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풀도 푸르고, 산도 푸르다" 라고 했소.
"그런데 중국은 靑, 綠 이라 따로 표현했기 때문에 그 차이를 알고 있었다." 라고 했소.
그에 대한 증거로 염색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걸 들었는데....
그 땐 '그런가 보다.' 라고 생각했었소.
지금 생각해 보니.... 솔직히 어이없는 발상 같소.
색맹이 아닌 이상... 색깔의 차이는 충분히 알 수있는 것 같은데........
한국말이 지닌 장점이자 단점이 감각어가 발달해 있다는 것인데.....
그 중 색체어의 경우를 보면, 노랗다, 누렇다. 노르스름하다, 노릇노릇하다, 누리끼리하다.
푸르다. 파랗다. 푸르스름하다. 검푸르다. 검다. 까맣다. 까무잡잡하다.
등등 대체적으로 비슷한 말 같지만, 어감의 차이에 의해 약간의 의미 차이가 발생하는데...
단지 한자와 같은 과학적 체계적 문자로 표기하지 못했다고 해서
색에 대한 확연한 차이 까지 분간 못했을까? 라는 생각이 드오.
굳이 색깔 명칭이 발달하지 못했다고 해도
우리식 조어법으로 하늘의 색은 '하늘색', 풀의 색은 '풀색', 피부색을 '살색'으로 표현한다든지...
얼마든지 말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인데 말이오.
한자가 전래된 시대는 고조선 시대로 추정되는데...... 고대 한국인의 조상들이 한자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한자어에 대응되는 개념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은 도저히 동의할 수 없소.
한자 전래 이후에 우리말의 기록을 위해 우수한 문자체계인 한자를 선택했는데,
그나마 존재하는 한자, 가장 의미가 비슷한 한자를 선택했다고 보오.
그렇게 되니... 의미가 단순화 되지 않았나 싶소이다.
靑山, 靑天, 靑海 등등으로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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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고람햏의 고견은?
짤방 소개.... 중국 모 공항의 한글 안내말...
그 국어 선생이 찌질이인건 분명하군요.산이 푸르다 와 바다가 푸르다 할때의 색깔의 차이는 한국인이라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인데...무엇으로 봐도 중공쪽보다 우리 나라가 색 개념이 없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데..
누가 썼을꼬..
의수하물 파손 방지 및 안전한 운반을 위해 유료포장서비스를 실시하오니 많은 이용 바랍니다.... 라는 건가?
소햏은 그 선생님의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하오. 색을 구분하는 것도 결국은 세계를 분절하는 인식체계에 따르는 것인데, 색깔을 구분하고 인지하는 방식 또한 언어권마다 차이가 있소. 가령 무지개만 해도, 서양에서는 일곱개라 하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세개로 보는 경우까지 있소. 綠이란 개념은 중국에서 온 것이 확실하며, 이러한 것은 일본어도 공통되는 점이오. 그러나 색깔을 분절하는 방식이 복잡할 수록 그 언어가 더 과학적이다라고 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오.
언어 자체는 과학적이지도 비과학적이지도 않으며, 그 자체로 완정한 것일 따름이오.
그러하므로 토머스 쿤은 이렇게 말했소. '다른 언어는 다른 세계에 대한 해석체계를 낳는다'.
고람선생은 대단히 오해를 하시는 듯 한데.... 내가 언제 언어 표현의 다양성이 문화의 우위를 논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소이까? 다만, 우리말 뜻의 한자표기만으로 사물 인식의 한계를 논할 수 없다는 게 본햏의 생각이오. 그리고 綠은 당연히 중국어이오. 하지만, 한자 도입이전에 하늘의 색도 구분 못하였다고 생각하시오? 무지개의 경우는 연속적으로 한없이 가까워지는 색상의 배열을 각국의 언어적 시각으로 분절했을 뿐인데. 확연히 구분되는 풀이나, 하늘의 색도 구분못했다고 보시오? 풀색이나 하늘색은 말이 안되는 것이오? 붉다, 검다, 파랗다, 푸르다, 희다... 이런 건 전부 한자 전래 이후에 생성된 개념? 말과 문자를 혼동하는 듯 보이오. 色의 개념을 마치 컴퓨터 등의 외래어와 혼동하는 듯....
색에 대한 개념이라 할 때의 개념과 외래어의 개념이라 할 때의 개념에는 차이가 있소? 결국은 그것이 언어의 개념이라는 데에는 차이가 없소. 고유어에서 綠과 靑을 모두 '푸르다'라고 한 것은 최소한 오늘날 두 개로 나누어 보는 색깔을 고대인들은 한 계통으로 인식한 데에 요인이 있지 않겠소?
언어적으로 그것을 구분하지 않았다면, 기본적으로 그 언어를 사용하는 화자들의 인식 또한 기본적으로 구분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소이다. 만약 구분했다면 벌써 다른 말을 사용했을 것이오.
오늘날 우리의 색채감각을 고대인의 색채감각에 밀어넣을 수는 없지 않소.
우리가 분절적으로 이해하여 보는 것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고대인들도 같이 생각했다고 부회한다면, 수없이 많은 모순을 일으킬 뿐이오.
뭔가 대단한 오해를 본글의 요지는 綠이나 靑의 구분이라 할 수 없소. 다만, 색상 차이를 인식할 수 있느냐 못하느냐에 대한 것이오. 고람햏이 말씀하셨듯이 아프리카의 부족이 무지개색을 3개로 분절하였더라도 그들에게 특정 색과의 비교를 하게 한다면 그러한 색을 구분하지 못하겠소? 그리고 綠과 靑이 구분됨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똑같이 푸르다라고 해석하는 이유는 무엇이오? 현대인의 색에 대한 개념이 이토록 발전해 있는데도 말이오. 그리고 우리말의 특성 자체가 색채 감각어가 발달했다는 것인데..... 한국인의 조상이 쓰던 말은 지금의 한국말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단 말이오?
색채어가 발달했다는 것은 기본적인 색깔을 활용하여 '누리끼리하다' '누르스름하다' '푸르스름하다'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지, 기본 색상에 대한 분절적 의식이 다양하다는 말은 아니오. 물론 그와 같이 인위적으로 구별시키게 하면 구분을 할 수는 있을 것이오. 그렇기 때문에 綠의 차용도 가능했던 것이지 않겠소.(아예 물리적으로 구분할 수 없었다면 綠의 차용조차 불가능했을 것이오) 하지만 그것은 마치 한국인 화자에게 f와 p를 구분시키는 것과 같아서, 계속적으로 '다르다'라는 것을 의식화 시켜야 한다고 보오. 물리적인 차이와 인간의 인식적인 차이는 구별할 필요가 있소.
하지만 그렇게 비교하고 '다르다'라고 인지하게 하는 것 부터가 벌써 다른 언어의 분절적 인식을 한 언어에 주입하는 것 아니겠소? 그 언어 자체로 생각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오.
일전에 고람거사께 '한문빠'라고 지칭한 적이 있는데... 전혀 틀린 말은 아니라고 보오. 그간 역겔과 언겔에서 귀햏을 보며... 느끼는건데 헛다리를 좀 자주 짚으시 것 같소. 사실상 윗 게재글을 보면, 본인이 문제삼은 것은 綠과 靑의 구분에 관한 것이 아니라, 국어선생의 주장에 대한 예로 든 것일 뿐인데.. 이상하게도 녹과 청을 구분했었나 못했었나가 논의의 핵심이 되었소. 게다가 고람햏의 고질적인 편견은 본인이 마치 언어 표현의 세분화로 문화 우위를 논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 듯 여기게 하오. 귀하는 나를 대륙빠나 한글전용론자 로 보는 것이오? 일전에 중국어 한자에 대한 질문했을 때도 단순히 예시로 든 것에 초점을 맞추어 전혀 본질을 못 찾는 듯 보였소.
소햏은 처음부터 綠과 靑의 논의에만 집중했소. 다른 데에는 관심도 없었소.
아무튼 각설하고.... 우리말에서 하늘이 푸르다. 바다가 푸르다... 라고 해서 전자와 후자의 푸르다가 같은 개념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오.
소햏은 소햏이 대답할 수 있고, 관심이 있는 곳에만 답할 따름이지, 설사 그것이 이 글의 주제라 할지라도 소햏의 관심분야가 아니거나 모르면 말하지 않소.
발음상 표기상 같다고 해서 똑같은 의미가 아닌 단어는 여럿 있을 것이오. 즉석에서 생각하기는 어려우나, 높임말에서 '말씀'같은 경우.. 낮춤말로도 쓰이오. 똑같이 말씀이라 하지만, 화자와 청자의 위치에 따로 그 쓰임의 분화가 있소.
소햏이 전공하고 가장 잘 아는 분야가 한어학이니, 한어학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소? 그리고 소햏이 언제부터 천국의 계단햏을 대륙빠나 한글 전용론자로 봤다고 생각하시오? 소햏이 햏을 보게 된 것은 요 며칠사이의 일이오.
쓰임-->> 의미
아.... 천국의 계단은 과거 노빠천국이오..... 정사겔에서 노빠라는 단어가 금지어가 되어 개명하였소.... 미안하오.. 일전에 본인이 중국어에 대해 질문 한 것 기억 안나오?
소햏은 아직 천국의 계단햏에 대하여 편견이 생길 정도의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였소. 그리고 위에서 말한 '말씀'의 예는 내포의미를 다루는 것이기에, 위에서 말한 '청' '녹'의 개념(이 때는 의미의 외연을 말하오)과는 구분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오.
소햏은 그다지 기억하지 못하오.
고람햏이 중국어 도사라고 하길래 평소 궁금한 걸 좀 물어 봤더니... 엉뚱한 소리나 하고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소이다. 그렇지만, 질문자의 입장에서 뭐라 말하기도 그렇고.... 그냥 넘어가 버렸소... 그리고 본인이 프랑스를 불란서로 발음하면서 대단히 유식한 체 하는 이들이 우스워 보인다라고 말했을 때.. 고람햏은 뜬금없이 불란서는 중국식이 아니라, 일본식 한자입니다. 중국에서는 법국이라고 했지요. 라며 내가 불란서를 중국한자조어라고 했다식으로 말했다오... 그것은 왜 그랬던 것이오?
'그 다음 청이 미국을 米利國이라고 하지 않고 孤藍居士 햏 말씀대로 亞美里加로 표기했소. 최대한 아메리카에 가깝다고 하는 한자음으로 조합해서 만들었소. 이때의 한자기원이 오늘날 미국/영구/불란서 등의 기원이 되오.' 이라고 하는 선비햏의 글에 답한 것이오.
그 때는 천국의 계단햏이 전혀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었소.
천국의 계단햏이 그 당시 뭘 물었는지, 소햏이 뭐라 답했는지 지금 보니 글이 지워져서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오.
△'노빠천국'이란 닉을 쓰실때의 질문을 두고 한 말이오.
그건 그렇고 말씀은 즉석에서 생각한 것이라 적절치 못했다고 본인도 생각하는 바이오. 아무튼 결론을 내리겠소만, 색채어의 발달이란 노랗다. 노르스름하다. 붉다. 붉으스름하다. 등의 경우 약간의 어감차이를 말하는 것인데.... 이렇게 미묘한 차이도 구분 짓는 마당에 앞서 말한 국어 선생의 색깔개념이 없다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다라는 것이고, 현대의 한국말에서 자연스레 형성되는 하늘색, 풀색, 살색이라는 표현처럼 고대의 한국인 조상들도 문자표기가 아닌 말로는 이런식으로 표현하며 인식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 그리고 청녹에 대한 개념구분은 단지 국어선생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단편적인 예일 뿐이기에.......
청녹 구분 못했기 때문에 예의 국어선생 말이 맞다라는 건... 고람햏의 성급한 결론으로 생각되오.
지웠졌소이까? 다음에 다시 물어봐도 되겠소? 정말 궁금해서 그러오......
아. '한국인의 조상들은 한자문화가 전래된 이후에야 비로소 색이 뭔지를 알았다'에는 동의 하지 않소.
청녹의 예는 분절적인 인식이 달랐다는 것을 나타낼 뿐, 색채감각이 전혀 없었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오.
초록색 신호등을 파란불이라고 합니다. 한자말로는 청(靑)신호입니다.
무지개가 몇 가지 색깔이오?? 7색?? 그건 외국의 '색개념'이 그대로 들어왔기때문이오....5가지 색깔이라고 하는 나라도 있고 9가지,10가지가 넘는다고 하는 나라도 있소...어차피 스펙트럼이라 7개로도 볼수 있고 수십가지 색깔로도 볼수 있소.....그건 그 민족의 언어와도 상당히 관련이 깊소...그 숫자가 적건 많건 그건 그 언어가 '발달된언어' , '미개한 언어'와는 전혀 상관이 없소...
靑, 碧, 藍, 綠의 색깔이 각각 다르긴 한 거요? 靑天과 靑草가 다 성립하는 걸로 보아 중국인들도 하늘색과 풀빛을 구별 안하긴 매한가지 아니오? 唐詩 속에서 저 여러 글자들이 같은 소리를 피하기 위해 쓰였을 뿐 지칭하는 색깔은 다 같아 보이던데....
왜이리 복잡하노 그냥 시각적으로는 구별하되 붙여진 색 이름이 같으면 같은 계열로 묶어 취급했겠지
내가 예전에 파란 양말을 신고갔는데 친구가 자꾸 보라색양말이라고 우겨 다른 애들한테 물어봤더니 보라색이란 애도 있었고 파란색이란 애도 있었소 시각적 분석이 먼저지 색 이름은 나중 일이라고 봅니다
써놓고보니 좀..걍 제 생각이지 저 언어학 근처도 안가봤거든요 피곤해서 그런지 어투가 심드렁하네효..토론계속들 하세효
靑, 東方色也. / 碧, 石之靑美者. / 藍, 染靑草也. / 綠, 帛靑黃色也.(이상 모두 <설문>) 유연관계가 있는 색깔이긴 해도 차별성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소.
시경 <淇奧> '綠竹猗猗'이란 구절을 보아, 이미 선진시대부터 綠이 풀과 같은 식물의 색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소. 물론 풀의 색으로 靑을 쓸 수는 있소만, 그것은 綠이 靑의 부분집합이기 때문이오. 따라서 靑은 綠을 포함할 수 있지만, 모든 靑이 綠으로 치환될 수는 없는 관계에 있소. 가령, 靑天이란 표현은 있어도, 綠天이란 표현은 존재하지 않소.
초란색 초랑.. 아무리 생각해봐도 푸르다가 더 어감이 좋아요;
소햏이 보기에는 계단햏이 국어선생의 말 뜻을 잘 못 이해한 것 같소. 색맹처럼 녹색과 청색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게 아니라, 그것을 한가지 개념으로 뭉뚱그려 받아들였다는 뜻이오. 말하자면 우리가 노랗다, 누렇다, 노르스름하다 하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들은 결국 [노란색]이라는 큰 개념속의 구분이란 말이오. 녹색과 청색을 구분하지 못한 게 아니라, [파란색]이라는 큰 개념속에서 좀 진하거나 연한 느낌이라는 식으로 받아들였다는 얘기오.
그리고 확실히 인간의 감각은 언어체계에 지배당하는 게 맞소. 비슷한 예를 들자면 맵다, 뜨겁다와 hot이 있겠소. 우리가 느끼기에는 매운 것과 뜨거운 것에는 확실히 차이가 있는데 미국놈들은 똑같이 핫핫 거리오. 그렇다고 해서 미국놈들이 뜨거운 것과 매운 것의 미묘한 감각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소. 그러나 그것을 뭉뚱그려 hot이라고 표현하기 때문에 관념적으로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오.
다시 색으로 돌아와 말하자면 이런 것이오. 만약 청색과 녹색의 두 옷감을 그 시대의 사람에게 보여준다면 분명 색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할 것이오. 그러나 관념적으로는 똑같은 푸른색인 것이오. 마치 아주 새빨간 빨간색과, 약간 희끄무리한 빨간색이 있는데 그것이 둘 다 빨간색이라고 해서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오. 그러나 우리들의 관념적으로는 결국 빨간색일 뿐인 것이오. 아마 그 시대의 사람들은 녹색과 청색의 차이를 그렇게 느꼈을 것이오.
국어선생은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닌가 싶소.
그냥 한마디로 하늘이 파랗다=靑,풀이 파랗다=綠 고대 우리 선조들도 이런식으로 인식했을겁니다...
논의가 이상한 방향으로 계속 흘러가며 본인이 '국어선생' 말의 진의를 착각했다라는 소리까지 나오니.. 대략 어안이 벙벙하오. 여기서 청녹의 구분은 단지 국어선생이 자기주장의 예시로 든 유일한 근거일 뿐이오. 본인은 이것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식으로 접근하여 말과 문자를 따로 놓고 보았소. 국어선생의 주장을 다시 한번 간략히 서술하자면.... 한국인은 색감각이 뒤떨어졌다. 그러나 중국인은 색에 대한 구분력이 대단히 강했다. 한국인은 지금도 색을 제대로 구분못한다. 그 근거는 靑과 綠의 구분을 보면 알수 있다... <<-- 이거요.
한자어로 靑海, 靑山, 靑天, 등으로 표기하고 푸른 바다, 푸른 산, 푸른 하늘 등으로 해석한다고 해서 바다의 색, 산의 색, 하늘의 색이 모두 같다고 인지하지는 않는다는 말이오. 그 '국어선생'의 논리대로라면 중국에서도 저러한 한자 표현을 썼다고 한다면 그들은 바다색과 하늘색이 같다고 여겼다는 말이 되오만? 한자로 역사를 기록하고, 풍습을 기록하며, 문학활동을 했다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문자생활일 뿐이지.... 언어생활 전체를 포괄하는 것은 아니라는게 본인의 생각이오.
그리고 본인이 느끼기에 대략 그 '국어선생'이 저러한 말을 하게 된 동기 역시 염색기술과 관련되는데... 그 이유로 한자의 靑綠 구분의 여부를 들은 것에 불과하오. 그것을 본인은 마치 형성이나 회의로 된 한자를 파자해서 적당히 자기 유익에 맞춰 끼워 맞추기식 해석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본 것이오.
파랗다와 푸르다는 이미 다른 의미요. 똑같은 대상을 두 가지로 표현할 리는 없으니.(이음동의어는 꿈도 꾸지 마시앞!) 인식론적 관점과 도구론적 관점은 따로 이야기할 부분인 듯 하오. 이 논의와는 상관없어 보이오. 언어의 발생이라기 보다는 그 쓰임에 관련된 사항이니.
고람햏>한자어는 '청' 그거 하나로 푸르다와 파랗다 의미를 다 가지고 있소?
본 햏 섣불리 어느 햏자의 의견이 맞다, 틀리다를 단정할 수는 없고, 그럴 자격과 능력도 없소만 이번 논의의 관점으로만 보자면 천국의 계단 햏의 논지가 비교적 타당하다고 보여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