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어의 역사 음운론을 크게 달구고 있는 대논쟁 중 하나가 바로 '고대 한국어 모음추이'의 유무이오. 본래 모음추이(Vowel shift)란, 주로 인구어계통(프랑스어, 독일어, 영어)에서 일어났던 역사적인 모음 대변화 현상을 일컫는 것이었소. 가장 유명한 것은 14세기부터 시작하여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영어의 모음 대추이(Great Vowel Shift)이오. 이 대변화로 인하여 고대 영어 장모음의 조음점이 대대적으로 상승하는 대변화가 일어났소.(오늘날 영어의 철자와 발음에 일관성이 없는 것은 이 때문이오) 이 영어 대 모음추이의 원인으로는 고모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견인설과, 저모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추진설이 있으나, 결론은 나지 않은 상태이오.(심하게는 80년대에 모음추이는 없었으며, 개별적인 음운변화의 모임에 불과하다는 주장하는 학자도 나왔소) 이러한 모음추이가 고대 한국어의 모음 변화에 도입되게 된 계기는 해방 이후, 한국 한자음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였소. 초기(60~70년대)에 한국 한자음을 연구하였던 고노 로쿠로(河野六郞), 박병채(朴炳采), 이돈주(李敦柱) 등의 학자들은 7세기경에 성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 한자음과, 비슷한 시기의 중고 중국어(7세기경의 중국어)의 모음을 비교하고는 현대의 한국어 음가로는 불가해한 현상을 발견해 내었소. 한국 한자음 중의 ㅓ가 중고 중국어의 전설중저모음~중고모음인 [e], [ε], [æ]에 대응하고, ㅡ가 중설모음인 [ə]에 대응하며, ㅗ가 [u]에 대응하는 등, 오늘날의 음가와 판이하게 다른 경향을 보였던 것이오. 여기에 대하여 이기문, 김완진 등의 학자는 영어의 '모음추이'에 착안, 한국어에도 모음이 대규모로 전환되는 '모음추이'가 있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오. 이기문은 중고 중국어와의 비교는 물론, 한국어와 같은 계통에 있다고 생각되는 알타이-퉁구스 제어와의 비교를 통해 알타이-퉁구스 제어의 모음조화는 구개적인데, 한국어의 모음조화는 개구적임을 발견해내어 모음추이의 방증으로 삼았소. 그리고 고려 때 중세 몽골어 로부터 차용된 단어와의 모음 대응을 통하여, 모음추이 이전 한국어의 모음 음가가 ㅓ[e], ㅗ[u], ㅜ[y], ㅡ[ə], ㆍ[open o]에 상당한다고 결론내렸소.(가령 중세 몽골어 śülen, 혹은 śüla으로부터 차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슈라의 경우, ㅜ가 중세 몽골어 모음의 [y]에 해당하고 있소) 이기문은 정확한 연대는 모르나, 모음추이가 12~13세기경 사이에 이루어졌다고 보고 있소. 반면, 김완진의 논의는 좀 다르오. 음가에 대하여는 이기문과 대차가 없으나(다만 음운구조의 해석에 차이가 있을 뿐이오), 모음추이의 시기를 17세기로 보오. 이유는, 16세기의 문헌인 <첩해신어(捷解新語)>에서 중설적인 일본어의 모음 u를 ㅜ에 대응시키고 있기 때문이오(가령 マンヅ 만주, スナハチ 순나하지). 이 설에 따르면 16세기까지만 해도 모음 ㅜ는 모음추이 이전의 상태인 [y], 혹은 [ï] 계열에 해당되었을 것이므로, 모음추이는 일어나지 않은 것이 되오. 그러나 70년부터 이러한 모음추의의 논의는 큰 비판을 받게 되오. 이기문에 대한 최초의 반론자는 일본의 언어학자 핫토리 시로(服部四郞)였소. 그는 이기문의 중세 몽골어 재구에 큰 의구심을 품으면서, 이기문이 [u], [y]로 재구한 중세 몽골어의 모음은 잘못되었으며, 실제로는 [o], [u]에 해당되었으므로, 한국어의 ㅗ, ㅜ에 이들이 대응되면 ㅗ와 ㅜ의 모음추이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였소. 또한 그는 중고 중국어의 이중모음 [au]와 [əu]가 한국 한자음에서 각각 ㅗ와 ㅜ에 해당됨을 보고, 이러한 대응은 모음추이로 설명이 될 수 없으며, 한국 한자음이 형성된 7세기 이래 모음추이는 없었다고 보오.(실제로 최치원의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를 보면 아도(我道)란 인물이 阿度로도 적히고 있음을 볼 때, 道(중고 중국어 재구음 dau)=度(중고 중국어 재구음 duo)의 동음관계가 오래전부터 인정되므로, 핫토리의 주장에는 신빙성이 있어 보이오. 河野六郞 <朝鮮漢字音の硏究> p.17를 참조) 현재로서는 이기문-김완진 설이 학계를 양분하는 가운데, 그 중간에서 모음추이의 존재에 회의적인 학자들이 존재하는 형국이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 한자음의 성질, 그리고 같은 시기의 주변 언어 자료는 물론이요, 방언에 대한 세심한 검토가 요청된다 할 수 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