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 짤방은 방송에서 네가 참 좋아 -> 니가 참 좋아 라고 하는 노래하는 가수들이라오.
그 다음 짤방은 비교적 ㅔ, ㅐ 발음을 잘 구분하는 방송국 앵커들이라오.
본 햏 아직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방언특색을 다 끝마치지 못하고 아직 진행 과정에 있어서 여러 모음발음과
음성교육, 표준어, 공용어에 관한 최종적인 입장표명을 미루고 있었소.
왜냐면 이러한 입장표명전에 알아보고 전제되어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라오.
섣불리 결론만 말하면 설득력이 떨어지고 또다른 논쟁에 말려들 수 있기 때문이었소.
요즘 언어갤에서 ㅔ, ㅐ 발음의 논쟁이 다시 점화되어 본햏의 의견을 제시하고자 하오.
우선 본햏 초기에 글에서 썼던 글번호 82 <사라져 가는 어휘 - 복모음> 에서의 내, 네 표현을 한번더
심층적으로 논해 보겠소.
본 햏의 경험적인 내용이 주가 되어서 학문적으로 크게 가치가 없을 수도 있소.
그러나 우리말의 한 변천사를 알 수 있는 내용은 된다고 보오.
본 햏의 이주경로를 다시 한번 밝히자면
서울-철원-서울-용인-구리-미금-대전-마산-순천-대구-진주-순천-서울 이라오.
본햏 집안의 언어근간은 포천을 중심으로 하는 경기북부 지역이라오.
본 햏이 중부지방에 있다가 남부지방에 내려가서 느낀 점은 나, 너 에 관한 호칭표현의 상이점이었다오.
표준어로는
나/너, 내가/네가, 나를/너를, 나는/너는, 나의/너의, 나에겐/너에겐, 나에게로/너에게로
내게로/네게로, 내겐/네겐, 나한테/너한테
로 표현할 수 있소.
물론 언어갤에서 논의되었듯 내가/네가 란 부분이 나/너 + ㅣ 또는 의 + 가 붙는 형태로
기존의 조사 결합형태하고는 성격이 묘하게 다르다고 지적한 글도 나왔소.
고려되어야 할 점이라고 생각이 드오.
또한 중부지방에서도 나 대신 니 , 네가 대신 너가 라는 표현이 다소 비격식적인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었소.
그런데 주로 남부지방(전라도, 경상도)에서 살아본 경험에 의하면 주로 호칭표현에서
전라도권은
내가 -> 나가, 네가 -> 니가 , 너 -> 니 란 표현을 주로 쓴다오.
경상도권은
나는 -> 네는(발음기준임 표기는 주로 내는, 내사) 네가 -> 니가, 너-> 니 라고 많이 쓴다오.
공통점으로 주격조사의 혼동(이는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방언의 한 특징임)이 주로 나타나고
네가 란 표현이 전무한 특징이 있소.
본 햏이 남부지방에서 살때와 지금도 이 지역에 가보면 네가 라는 말은 거의 사용하지 않소.
또 이 지역 역시 여러차례 언급했지만 ㅔ 발음이 기존의 서울, 경기 지방보다 강하다오.
본햏이 임의적으로 음가 있는 에 란 표현을 쓸 정도로 어감에서 차이가 나오.
서울, 경기 지방의 ㅔ 발음은 다소 단음으로 발음되고, ㅐ 발음은 장음으로 발음되는 경향이 있소.
그렇지만 서울, 경기 지방의 ㅔ 발음은 남부지방에 비해서는 장음이라오.
거기에다 ㅡ 발음은 전라도권이 대단히 강하오. 중부지방의 ㅡ 발음보다 훨씬 억세고 단음으로 발음되어지오.
경상도권의 ㅡ 발음은 억세고 강하면서 ㅓ 발음과 중간정도 되오.
역시 짧게 발음되어지오.
그런데 같은 경상도라도 경상북도권은 ㅐ 발음을 발음할때 처음에도 약하게 ㅐ 발음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강한 억양으로 ㅔ 발음을 한다오.
즉 애기 라는 발음을 할때 애에기 라고 애는 낮게 에 는 높게 억양의 차이를 두고서 발음하오.
경상남도권은 대부분 ㅕ, ㅔ, ㅐ, ㅢ 발음을 통틀어 ㅔ 발음으로 한다오.
예를 들어 경제를 발음할때 갱제라고 발음한다고 알려졌는데 실제는 겡제라고 발음하오.
우리말 표기에서 갱은 비교적 잘 볼수 있는데 겡 은 쓸 일이 없어 표기상은 갱제로 많이 알려졌소.
남부지방의 화자들은 기본적으로 여러번 언급했듯이 ㅐ,ㅔ 구분을 못 하오.
이런한 특징을 가진 이 지역 출신들이 서울로 대거 이주해와 두세대가 지났소.
1세대가 정착해서 2세대가 출현한 80년대에 이미 서울,경기 지방에서 ㅐ,ㅔ 발음의 구분이 현저히
줄어들었고, ㅓ, ㅣ 의 장단음, 강약의 구분도 미약해졌다오.
이들 남부지방의 다음세대는 집안에서 ㅐ, ㅔ 발음을 들어볼 기회가 없었소.
다른 말들은 서울말을 많이 닮아 부드러운 말투와 장음처리는 아직 남아 있게 되었지만 서울말의 다른
특징들이 많이 상실되게 되었소.
거기에다가 군대의 영향과 사회, 정치적인 여파로 경음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오.
이렇게 됨으로써 서울말에서도조차 실제로 ㅔ, ㅐ 와 ㅚ, ㅙ, ㅞ 발음구분은 무너지게 되었소
그런데 우리글인 한글에서는 ㅔ, ㅐ 가 많이 있기 때문에 서울권 화자들은 의미상과 문맥상, 억양상으로는
아직도 ㅔ와 ㅐ 를 구분할수 있소.
또 같은 어 발음도 다르게 사용되어지오.
예를 들어
철수 : 내가 좋아? 철수 : 네가 좋아!
영희 : 어 영희 : 어
를 보자면 실음가는 일부만 구분하고 사용하고 대다수는 거의 구분을 못하더라도 억양과 느낌상 알수가 있소.
즉 내가 , 네가 란 표현이 있음을 알기에 각각의 상황을 순간적으로 대입해 그 차이를 알 수가 있는 것이오.
일종의 반복에 의한 습관이라오.
그런데 남부지방의 언어권을 가진 햏자들은 윗 경우에 네가 라는 표현을 경험한 적이 없어 두번째인
네가 좋아 란 말의 의미를 순간적으로 생각해 낼 수가 없소.
당연히 많이 접해 보지 못 했기 때문이오.
다른 걸 다 제껴두고 경험의 차이로 발생하는 문제인 것이라오.
지난 과거를 음미해보자면
80년대 음성 표준교육이 시행되었으면 ㅔ, ㅐ 발음은 지금도 여전히 구분하면서 사용되고 있었을 것이오.
우리는 시기적으로 한번의 기회를 놓쳤소.
자연스러운 언어현상과 과정을 두고 가치판단을 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고 억지일수도 있소.
그러나 문자와 실음가상의 괴리가 심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있었소.
지금도 이러한 목적으로 음성교육과 표준어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소.
표준문자방식과 음성등 정음법 교육은 획일화가 그 목적이 분명히 아니오.
언어생활의 다양성과 효율성을 위해서 필요한 한 방법이라오.
어쨌든 이러한 변화로 지금은 내, 네의 구분모호로 네가 란 표현을 니가 라고 하자는 의견이 등장하게
되었고, 실제 표기가 되고 있는 실정이라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주장으로 너 만 표준어가 아니라 니 도 표준어이고 많이 쓰여지고 있었다는
주장이 간간히 들리오.
실제 언어갤에서 이런 논지를 가지고 네가 -> 니가 가 맞다고 글이 올라오기도 했소.
그럼 이 경우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자주 쓰는 단어의 의미를 구분하기 위해 ㅔ, ㅐ 를 ㅣ 로 대용하기 시작하면
예를 네가->니가, 개,게->기 같이 다르게 발음해도 어차피 우리말의 동음이의어의 대량양산을 피할 수
없게되오.
우리말은 ㅔ, ㅐ 차이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말들이 엄청 많소.
그럼 음성언어에 따라 문자언어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에 의하면 이러한 단어들이 다 형태를 달리
바뀌어야하오.
아마 차이의 실현을 위해 일본어처럼 말들이 길어질것이오.
거기에다가 특정지역이긴 하지만 지난번 언어갤의 글에서 처럼 아버지/어버지 의 차이가 없다는 등의
아/어 의 구분조차 모호해질수가 있소.
실제 남부지방에서는 ㅓ 발음의 장단음 구분의 파괴로 일부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오.
입을 작게 벌리면 ㅓ 발음이 약한 ㅏ 발음과 비슷해지기도 하오.
그리고 ㅡ, ㅓ 발음의 통합으로 결국은 ㅓ 발음은 강한 ㅡ 발음과 선명한 ㅏ 발음으로 양분 될 수 있소.
그럼 역시 문자언어는 음성언어의 선례를 따라야 하므로 ㅓ 표기조차 ㅡ, ㅏ 로 바뀔것이오.
우리말도 일본어처럼 될 것이오.
본 햏 당연히 반대하오. 언어는 기본적으로 풍성하게 사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본 햏 견해이라오.
이처럼 많은 문제점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음성언어가 문자언어를 선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햏들은
많은 경우 상반되는 경우인, 기존의 문자언어에서 표기하지 못하는 음가의 첨가에는 대다수 햏자들이
난색을 표하오.
주로 내세우는 논리가 언어생활에 불편을 초래한다거나, 표음문자의 숙명상 실제 문자와 음가는 다를수
밖에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오.
이는 얼마나 모순된 주장이오.
음성언어에 문자언어가 뒷따라야 한다면 당연히 음가의 소멸만 고려하지 말고 탄생이나 사용도
고려해야지 않소.
그런데 이경우 대다수가 반대하오.
결국은 이미 형성된 자신의 언어습관상 발생하는 불편함에 의한 현상을 교묘히 지식과 논리를 들어
음성교육의 실시를 반대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소.
그리고 이런 주장을 하는 햏들은 또 규칙이나 규범이 필요없다는 거의 무정부주의적인 내용이 많소.
한마디로 불편하다는 내용이오.
우리는 조금만 정음음성 교육을 하면 아직도 차이를 손쉽게 구분하고 발음을 실현 시킬수 있다오.
일부 자신의 언어습관에 안 맞거나, 자신이 사용하는 방언이나 사투리 습관에 안맞고 불편하다고 표준어를
무시하는 처사는 지난
본햏의 글 (361) <언어 원리주의자의 등장과 출현 배경의 분석> 에서 밝혔듯이 이기적인 처사라오.
같은 언어습관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만이 우리나라에 존재하면 근본적으로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당연히
없다오.
여러 상이한 집단이 공존하고 의사소통의 효율성을 높이자면 표준어, 공용어가 필요한 것이오.
이렇듯 표준어 교육의 필요성을 부정하거나 무의미하다고 치부하는 햏자들은 주로
표준어, 공용어, 서울말, 서울사투리 의미를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오.
또 다른 근본적인 표준어 기준과 국가적인 언어정책을 무시하고 단순히 지역패권주의에 기반을 두고
표준어를 강요하는 경우가 많소.
즉 표준어는 힘만 쎄면, 권력을 가지면 아무렇게나 바꿀수 있다고 생각하오.
기존의 표준어를 무시하고 우리지역말이 표준어가 될수가 있다고 생각하오.
그러니 표준어의 존재와 교육을 부정하고 불편하게 생각을 하는 것이라오,
비롯 표준어로 인해 개인이나 집단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국가적인 국어의 관점에서는 적어도 공적인
영역에서는 표준어와 표준발음을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오.
그리고 상대적으로 표준어로 인해 자신의 언어습관을 더욱 자세히 알수 있어 오히려 더 정확한 방언이나
사투리를 구사할 수 가 있게 된다오.
비교대상이 명확하고 기준이 뚜렸하면 이중적인 언어생활이 빛을 발휘하게 된다오.
그러면 지금처럼 자신의 말이 표준어라고 착각?을 하지 않아 표준어가 잘 못된 방향?을 가게 되더라도
올바른 수정이나 변경이 용이하게 된다오.
그리고 방언이나 사투리 역시 소중하다오.
본 햏의 글 (101) <표준 사투리의 허와 실> 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말은 행정단위의 사투리나 방언으로
잘못 알려져 실제의 사투리나 방언하고는 거리가 멀다오.
당연히 지역에 따라서 다양한 방언이나 사투리가 있다오.
오히려 이런 지역향토어의 보존과 사용을 위해서도 표준어가 더욱 필요하다오.
어설픈 표준어 흉내 수준의 사용으로 인한 그 본래의 방언이나 사투리의 훼손이나 변질을 막기 위해서라도
올바른 방언교육, 향토어 교육과 함께 문자교육이상으로 정음음성교육이 필요하다오.
본 햏의 글이 길어졌소.
물론 본 햏의 내용이 절대진리는 아니라오.
당연히 반대되는 주장과 의견도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고, 더 정확할 수 가 있다오.
그러나 본 햏 역시 경험이긴 하지만 여러 현상과 사실을 고려하고 의견을 피력하는 바이니 참조해주시기
바라오.
그리고 본 햏의 이동내역을 밝힌 이유는 일부이긴 하나 자신의 처한 상황이나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생긴 선입관이나 편견을 은폐하면서 주의, 주장을 펴는 햏자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오.
본 햏 역시 모든 경우, 모든 세대, 모든 지역을 다 경험하지 못 했기 때문에 본 햏의 주장이나 의견 역시
부족하거나, 또다른 편견이나 선입관에 빠질지 모르기 때문이라오.
햏들께서는 이런 점을 고려하면 비교적 정확한 판단을 내릴수 있으리라 보여지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표준어 보급 교육은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다오.
그리고 표준어는 문자적인 표준어법뿐만이 아니라 발음표기나 정음교육도 똑같이 중요하다오.
또 표준어 못지 않게 자신의 향토어인 사투리나 방언의 교육과 보존도 역시 중요하다오.
사투리나 방언 역시 엄청나게 다양하고 지역에 따라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이오.
우리는 두가지 큰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보오.
표준어는 불편하고 서울말이기 때문에 필요없고, 구태여 따라 할 가치가 없다라는 편견과
사투리나 방언은 주로 행정단위인 도를 기준으로 똑같다라는 편견을 말한다오.
교육으로 발음의 추이를 막아보겠다는 것은 내리는 비를 거꾸로 하늘로 돌려보내겠다는 것과 같은 발상이라고 보오. 문자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문자와 음성언어의 갭을 메우고자 발음을 표준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항상 있어왔으나, 승자는 언제나 음성언어였소. 추이가 이리 된 이상,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 없으며, 설령 교육을 강화한들 거기에 수반되는 hyper urban으로 인해 발음의 왜곡만 더 심해지리라고 보는 바이오.
지금은 아니라 해도, 결국은 철자가 발음을 따라갈 수 밖에 없다고 보오. 아니면 오늘날의 영어철자와 같은 길을 걸을 것이고.
그리고 경상도어에서도 ㅢ가 ㅔ로 발음되는 경우란 소유격조사일 때 뿐이오.
孤藍居士햏의 말씀 일리는 있으나 언어에 있어 교육의 효과를 무조건 부정할 수만은 없소이다. 좀 사례는 다르지만 대표적으로 이스라엘의 히브리어 부활을 들 수 있겠소. 긴 세월 종교언어로만 사용하다가 이차대전후 교육을 통해 이제 완전히 입말로 정착됐잖소. 소햏 규범문법주의자는 아니나 어느 정도 규범에 따라 조율할 필요는 있다고 보며 그게 더 효과적일 수도 있소.
아예 거의 쓰이지 않은 언어를 부활시키는 것과, 지금 살아있는 언어를 규범화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보오.
그리고 비록 언어의 원리상 글말보다 입말이 우선임은 당연하지만 글자의 발명 후 여러 면에서 입말이 글말의 영향을 받기도 했고 지금도 그렇다오. 문자 시대에 입말과 글말은 무슨 특정 기관이 강요하지 않더라도 서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오.
히브리어의 사례가 딱히 알맞지 않음은 알고 있으나 언어교육이 어떠한 구실을 할 수 있는가 한 가지 보기는 될 수 있다고 여기오.
물론 세세한 면에서는 문자가 음운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긴 하오.(가령 ㅁㅂㅍㅃ 뒤에서 일어난 원순모음화가 외래어의 등장으로 예외가 많아졌다든지) 하지만 음운의 체계가 구조적으로 변화할 때, 문자규범으로서는 결국 막아낼 수 없었던 것 같소. 심하게는 이전에 구분되었던 두 발음이 무슨 차이였는지조차 모르게 되니 말이오.
그리고 소햏은 변하는 것을 구태여 막을 필요가 있는가 하고 생각하오.
변화와 변이에도 여러 가지 양상이 있소. 대표적으로 경음화를 보기로 들자면 소햏도 말할 때는 딲다, 쎄다, 쫌 같은 형태를 주로 쓰지만 이건 입말로서만 존재함을 인지하고 글로 쓸 때는 차이를 두오. 물론 극단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것이 대세이니 철자에도 반영해야 된다는 주장도 나오겠지만 규범과 실제 쓰임 가운데 하나를 죽일 필요도 없고 둘이 충분히 공존할 수가 있으며 ㅐ와 ㅔ의 문제도 비록 실제 발음이 사실상 유사해졌다고는 하나 규범에서까지 이를 제외할 필요도 없으며 실제와 조금 차이 나는 규범을 그대로 둔다고 딱히 더 번거로울 일도 없소이다. 규범은 그 자체로서의 의미도 지니고 있소.
현재의 규범 문자언어는 결국 과거 음성언어의 반영에 불과하오. 문자언어란 그 자체로 음성언어를 옮기기 위한 도구이기 때문이오. 자! 각 언어별로 차이는 있지만 우열은 없다는 것이 현대 언어학의 정설이요, 이는 각 시대별 언어에도 적용되오. 왜 우리가 100년도 더 전의 조상들의 언어에 특별한 위치를 부여하여 따라해야 하오? 그 이유가 뭔지 한번 들어봅시다. 규범은 규범이니까 따라야 한다는 말같지도 않은 대답은 그만두시오.규범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고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오. 도덕법칙조차 그러한 측면이 있는데 하물며 편의의 약속에 불과한 규범문법에 무슨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여 절대 고치지 못하겠다는 것이오?
소햏 보수적인 사람이고 현실언어의 변화를 표준어가 100%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않소. 만일 ㅔ,ㅐ구별의 소멸이 한국인의 반 정도만이 받아들였다면 나는 규범으로서 그 구별이 의미가 있고 웬만하면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이오. 그러나 ㅔ,ㅐ발음은 유사해진 것이 아니라 완전히 동일하오. 한국인 100명 중 99명은 구별해서 발음하지 못하고 청음하지도 못하오. 이렇게 압도적인 다수의 언어를 표준어가 반영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절대주의자, 엘리트주의자의 고집이라고 생각될 뿐이오.최만리의 행위와 무엇이 다르단 말이오?
ㅔ,ㅐ구별 소멸은 음운학적인 이유도 충분하오. 중부방언의 7모음 체계는 저모음 ㅏ를 가장 저점으로 하고 평순 후설 모음인 ㅓ,ㅡ가 입벌린 정도가 작아짐에 따라 변별되오. 원순 후설 모음인 ㅗ,ㅜ도 마찬가지. 그리고 평순 전설인 ㅔ(ㅐ),ㅣ가 입벌린 정도에 따라 변별되오. 개구도(입벌린정도)에 의해 3단계의 모음이 변별되는 것이오. 만일 여기 ㅔ,ㅐ의 구별이 있다면 체계의 균형이 무너지고 화자들은 전설모음의 발음에 혼란을 느끼게 되오. 아마도 그것이 ㅓ,ㅡ의 혼동이 경상방언에만 한정된 이유라고 생각하오.가설 수준에 불과한 것이지만 ㅔ,ㅐ의 음가를 어떤 체계로 처리하든 그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것은 피할 수 없소.
생각해 보면 e ε의 혼란은 비단 한국어만의 문제도 아니오. 이탈리아어도 마찬가지로 표준적으로는 구분하나, 실제적으로는 구분이 잘 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오.(특히 남부 이탈리아)
순수하게 언어적으로만 본다면 언어에 우열은 없지만 기능적으로 보면 각 언어마다 일장일단이 있소. 가령 전문용어 확립이 덜 되어 한국어처럼 영어, 일본어, 한자어가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어 일상 언어와 전문 언어의 간극이 크다면 적어도 이런 점에서는 영어나 독일어 같은 서양 언어보다는 지식 전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정리가 필요하오. 언어란 그냥 흘러가는 부분도 있지만 정리가 필요한 부분도 있소. 문법이나 어법도 마찬가지요. 규범이 언어 현실을 반영해야 함은 물론이고 소햏도 여러 면에서 규범의 편협성을 인식하고는 있으나 때로는 규범에 맞출 필요도 있는 것이오.
그리고 독어, 불어, 이태리어 등에서의 차이는 철자에서도 문자소가 동일하고 한국어만큼 동음이의어를 양산해 내어 언어경제적인 면에서 별다른 타격을 주지는 않으므로 그리 큰 문제는 안 되오.
그러하면 산마로햏께 묻고 싶소. ㅐ와 ㅔ의 소리가 이미 똑같아졌다면 철자로도 가려 쓸 필요 없이 하나를 버려야 한다는 뜻이오?
낱말 수준과 음운 수준의 문제는 전혀 다른 것이오. 전문용어 확립이야 각계의 전문가들이 하면 되는 것이고 일상언어와는 무관한 일일 뿐이오. 규범에 맞출 필요 또한 그것이 현실적으로 의미있는 규범일 경우에만 있소. 지금처럼 현실언어에서 전혀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규범은 규범 쪽이 변해야 하오. ㅔ,ㅐ의 구별 소멸은 언어경제적으로 타격이 크지 않소.그 증거는 한국인들이 입말로 서로 잘 말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요.
통일 이후 고려해 봐야 한다고 생각하오. 내 생각으론 현재도 별 쓸모없는 구별이오.
두 가지 선택이 있을 수 있소. 1) 발음은 구분하지 않더라도 철자상으로라도 발음을 구분하기 위해 그대루 두는 안. 2) 분별이 없어졌으므로 과감히 둘 중 하나를 제거하는 안. 영미는 전자를 선택하였으므로 오늘날 와서 읽기가 상당히 괴롭고, 한국어는 역사적으로 표기에서 후자를 선택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므로, 어음일치는 상대적으로 되어 있으나, 옛 기록과 연결이 안 되는 것이 흠. 둘 중 하나밖에 고를 수 없을 것이오.
철자상으로라도 발음을 -> 철자상으로도 의미를
이 토론에선 딱히 결말이 안 나겠구려. 소햏은 규범을 선택적으로 적용하면 더 낫다는 생각인데 선마로햏은 상당히 과격한 반규범주의로 판단되오.
소햏은 다층적 말글살이가 언어를 풍성하게 한다고 보오. 입말, 글말, 표준말, 속어, 지방어, 사투리 등이 상황에 맞게 함께 어우러져야 더 좋다고 보는 바이니 규범에 얽매인 사람으로 오해는 하지 말기 바라오.
잘 읽었습니다... 그러나 질서의 시대는 돌아오지 않겠죠. 그리고 뭐가 질서인지는 모르는 거죠. 그리고 입말과 글말이 일치하는 언어가 존재한 적이 있을지도 의문이네요. 애와 에, 의와 에의 문자적 구분은 아주 편리하다고 봅니다... 현재로서는.
관점에 따라 지금 홀소리체계가 흔들리는 이유가, 산마로햏 말처럼 3계열 3서열 혹은 2계열 2서열 체계로 확립되는 과정 중에 생겨나는 것이라 하는 사람도 있소. 그렇게 본다면, 오히려 '완벽한' 질서로 가는 과정일지도 모르오.(내 말은 아니고)
한글이 만들어 진 후 너무 오랫동안 주도적인 문자생활을 영위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문자생활은 단지 발음을 제대로 표기하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이 가지는 의미를 완성시키는 단계라 할 수 있으니 말이오. 맥락없이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 존재, 자기지시성을 가진 존재, 그러 인해 패러독스가 발생하는 존재가 바로 문자 아니겠소?
그러 -> 그로
쓰고 나니, 성경의 창세기 부분이 생각나는 구려.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요약하라 요약하라 하라 요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요약하라 약하라
경상도에서 '나는 -> 네는'이라고 쓰지는 않는다. '나는->내는'이다! 어디서 알아본기고?
표준어는 굳이 강요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뭐 강요한다 해도 지킬수 있는 사람도 별로 없고,게다가 그런식이면 이미 변형/조작/왜곡된 문자를 무슨 명분으로 "표준"이라 규정하겠습니까?어차피 국어학자들도 꾸준히 음성언어에 맞춰서 표준어를 바꾸고 있으니 뭐..근데 우리말 나들이 같은 프로그램은 왜하는지...
147.46.203.127 햏께서는 본 햏의 글을 다시 한번 읽어주시기 바라오. 본 햏의 글 내용 ----- 나는 -> 네는(발음기준임 표기는 주로 내는, 내사) ------- 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음미해 보시면 좋겠소.
난 대구 살아서 그런가 '네가' 라는 표현 자체가 엄청 징그럽더만. 차라리 '니가' 가 낫고.. 그보다 더 웃긴건 서울것들 몇몇은 항상 '네가' 도 ' 니가' 도 아닌 '너가' 를 쓰더만.. 가장 때려주고 싶은 표현-_- '너가'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교사들도 실제 "ㅔ"와 "ㅐ" 발음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더이다.
'내가'와'네가'라는 말을 한다오. 근데....문제는 이 말들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다는말이오....사실 소햏 경우에는 그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어서, 차라리 '네가'보다는 이름을 부른다. 라고 생각하고 실천하고 있소. '니가'라는 표현은 안쓰오. '니가'라는 표현이 언제나 들어도 늘 어색하더구만. 소햏이 이상한건가.
'네가'라는 표현이 징그러워도 표준말이오. '너가'라는 말 쓰는 건 서울사람 몇몇이 아니라 지방에서 서울 올라온 사람들 몇몇이겠지. 방송 보면 알텐데? 다 '니가'라고 하지 누가 '너가'라고 하나. 괜히 대구사람 욕먹이는 말 하지 마시오.
ㅇㅋㅇ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