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이북에서는 일본조어와 동계인 지명이 아예 발견되지 않고,
(부여 혹은 고구려-일본어족 설 논파)
그 이남에서부터 발견된다는 것으로 보아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어떤 지명이 나오는지에 대한 팩트체크가 필요함.)
대동강을 기점으로
그 이북은 한국조어 화자들이, 그 이남은 일본조어 화자들이 살고 있었던 듯...
낙랑은, '아잔(阿殘)'이라는 한국어 어휘에서 보듯, 한국조어 화자집단에 가까웠을 테고,
진번은, 고고학적으로 보나, 정치, 역사문헌적으로 보나, 일본조어 화자집단에 가까웠을 것 같음.
낙랑지역의 아잔(阿殘)과
대동강 이남의 한화(漢化)된 토착 왜인들과...
그리고 진한(辰韓)의 토착 왜인들 사이엔 모종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을 수도...
P.S. 한사군의 각 영역에 대한, 또 다른 시각임.
저 중에서 진번과 더불어 임둔은 한사군 이전부터 존재했던 세력의 명칭임.
변형, 퇴화된 형태의 팽이형토기 문화는 한강유역까지 진출. 파주시 적성면 (칠중현) 지역과도 겹침. 세형동검과 공반X. 세형동검문화 2기의 확장연대인 기원전 2세기 전후에 사라지기 시작. 기원전 2세기 무렵, 진번국(眞番國)이 위만조선에 의해 멸망당했다는 기록과 일치함.
팽이형토기와 공반되는 유단석부... 유단석부는 중국 화남(華南)·동남아시아·태평양지역에 널리 분포한 남방계(南方系) 석기라고 생각되며, 중국의 신석기시대 앙소문화기(仰韶文化期, 서기전 4000∼서기전 2000년) 이래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농경의 전파통로를 따라 한반도에 전파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즉, 한국 팽이형토기 분포지역에서 발굴되는 자귀날도끼는 쌀과 함께 도작농경문화가 중국에서 유입되면서 전파되었을 개연성이 높은 것이다.
팽이형토기가 출토되는 집자리 유적은 거의 장방형(長方形)으로서 특징적이다. 기둥구멍(柱孔)이 집터 안쪽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있으므로 일정한 벽체가 있는 반움집 맞배나 우진각 가옥을 이루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무덤유적으로 돌널무덤(石棺墓)과 고인돌(支石墓) 유적이 있다.
팽이형토기 유적에서 현재까지 알려진 청동기는 금탄리 유적의 동끌(銅鑿)과 신흥동 유적의 동포(銅泡) 뿐이다. 이로 보아 팽이형토기문화는 그 이른 단계의 청동기문화와 큰 관련이 없어 보이며, 후기에 이르러서도 청동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는 증거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 하지만, 한반도는 청동 생산에 적합한 지역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 점도 고려해야 함 → 최근까지 한반도에서는 고인돌에서 출토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왔는데, 전남지방 보성강유역과 여수반도의 남방식(南方式) 고인돌에서 수 점의 비파형동검이 출토되었다.
옛지명을 집대성한 자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러겡...;;;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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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탕 댓삭
음...그래봤자 고대 한반도의 언어 자료가 너무 적어서 결국 추측으로 맥을 짚을 수 밖에 안타깝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