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밤이오. 오래 전에 생각하다 잊어먹고 지내던 것이 바로 훈민정음이요. 이 글, 위에 밝힌 바 그저 생각나는 데로 적소. 훈민정음. 위대한 글자요. 문자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오. 소리나는 모든 걸 적고자 하다니. 그리고 어찌보면 완전한 성리학적 결과물이기도 하오. 창제 전후 기록들, 훈민정음 제자 원리, 소리값, 이우성(1987)의 논의들을 아울러 봅시다. 성리학의 중요한 경전이자 연구방법론은 바로 대학-소학이오.(성리학이 당시에 실사구시 학문인 것은 다들 알 것이오. '억불'이란 말에 다 담겨 있소.) 대학은 세상의 조화의 법칙을 연구하고, 소학은 그것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를 논하고 있소. 근데 여기서 왜 성리학을 언급하느냐. 그것은 공자의 '정명론'에 있소. '이름이 바로 서야, 세상이 바로 선다.' 그렇기에 당시 중국이나, 조선이나, 다 '문'과 '자'를 연구했소.(이 둘의 차이는 생략하겠소. 누구 답글 달아 주시오) 세종. 뛰어난 성리학자요. 중국의 반절법, 등운학이 가진 한계(문과 자의 소리)를 극복하는 삼분법이란 믿을 수 없는 결과물을 생산하오. 거기다 음양오행사상까지... (제자원리를 참조하기 바라오. 뭐가 어디에서 나오고, 뭐가 어쩌고 하는 거 말이오) 최만리의 반대는 세종의 '좆도 모르는게'의 한마디로 일축되오. 왜냐, 최만리의 성리학은 경전 속에만 있었기 때문이오. 실사구시의 성리학적 기반 아래, 당연히 훈민정음은 우리의 말도 기록할 수 있게 하오. 백성이 바로 그 '실사'요. 한자와 우리말의 모든 소리를 기록한다. 그런데 이 말 속에는 또 다른 정치적 의도도 담겨 있소. 그것이 바로 '훈민정책'이오. 백성을 왜 가르치냐? 그거 해서 뭐 할라고? 조선이나 고려나, 호족들과 왕족의 나라요. 조그만 땅덩어리에 중앙집권적 봉건제가 들어서기에 극복해야할 조건들이 산적해 있소. 국민 계몽의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이오. 어엿비 너길 대상에, 수탈체제의 기생물들은 아마 빠지지 않을까 싶소. 뭐 세종 이후, 갑오경장 이전까지 우리의 '정음'(정명과 비교해 보시오)의 연구는 바로 이러한 성리학적 담론 속에 '폭' 파묻혀 있소. 이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소. 바로 '민족' 개념과 '과학주의'(동도서기든 근대화든... 그런데 근대화란 말 참 오묘하오. 서구는 '근대'가 되었고, 그 외 지역은 '근대화(모방)'이 되다.) 의 출현이오. 그리고 그것은 '훈민정음'의 본질도 바꿀만한 힘을 가졌소. 그게 우리가 과거를 보는 시선이요. 그들의 시선. 뭐 그리 나빠보이진 않소. ... 아무래도 다음에 계속해야 할 것 같소. 기약할 순 없지만. 이상한 글 남겨서 미안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