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 왕제>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소.
東方曰夷, 被髮文身, 有不火食者矣. 南方曰蠻, 雕題交趾, 有不火食者矣. 西方曰戎, 被髮衣皮,有不粒食者矣. 北方曰狄, 衣羽毛穴居, 有不粒食者矣.
동방은 이(夷)라 한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문신을 하며, 불로 음식을 지어먹지 않는 자가 있다. 남방은 만(蠻)이라 한다. 이마에 문신을 새기고 다리를 엇갈리게 하고 다니며, 불로 음식을 지어먹지 않는 자가 있다. 서방은 융(戎)이라 한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가죽으로 옷을 지으며, 쌀밥을 먹지 않는 자가 있다. 북방은 적(狄)이라 한다. 짐승의 깃과 털로 옷을 짓고 동굴에서 실며, 쌀밥을 먹지 않는 자가 있다.
이 기록은 소위 중원지역을 문명의 중심으로 보고, 그 주변의 이종족인 이, 만, 융, 적을 문명의 밖에 있는 타자로 인식하게 되는 본격적인 기록으로서 유명하오. 이와 같이 주변의 이종족을 열거한 기록으로는 <주례 하관>의 다음 문장도 있소.
職方氏掌天下之圖, 以掌天下之地.辨其邦國, 都, 鄙, 四夷, 八蠻, 七閩, 九貉, 五戎, 六狄之人民.
직방씨는 천하의 판도를 관장하며, 천하의 땅을 관장하고, 제후국, 도읍, 변방, 사이(四夷), 팔만(八蠻), 칠민(七閩), 구맥(九貉), 오융(五戎), 육적(六狄)의 인민들을 구분해 관리한다.
이 기록에서는 위에서 나왔던 이, 만, 융, 적의 외에도 민, 맥과 같은 종족명이 더 등장하오. 이러한 종족명들은 어디에서 기원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종족명이 폄칭으로 사용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소이다. 물론, 중화사상이 어느 정도 확립된 위 문헌들의 성립시기(아마도 춘추시대에서 전국 말기까지를 이우르는)에는 폄칭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오.
소햏이 일찍이 그러한 대표적인 예로 들었던 것이 夷의 이전 형태인 人, 尸, 仁 등인데, 東夷의 夷를 쓰는 데 사용된 이들 글자들은 모두 가차자로, 의미를 갖고 사용된 것으로는 도무지 생각되지 않소. 아마도 저 글자들은 오늘날의 전세문헌에서 夷라고 서사하고 있는 어떤 종족의 자칭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오. 그러한 심증을 더해주는 것이 만(蠻)의 기원이오.
蠻은 선진시대에 본래 虫가 없는 형태인 [糸言糸](란)으로 서사되었으며, 주로는 장강 주변의 선주종족(楚를 포함한)을 일컫는 단어였소.(그러므로 荊蠻이란 표현이 존재하오. 荊은 초 지역을 일컫는 말) 설문에 의하면 [糸言糸]의 본의는 ‘어지럽다’ 혹은 ‘다스려지다’, 혹은 ‘끊어지지 아니하다’란 것으로, 역시나 가차자. [糸言糸]의 고대 형태는 이것을 발음부분으로 하는 글자들과의 비교를 통해 *mlan으로 재구되며, 蠻은 *mran으로 재구되므로 발음상 상당히 가까운 관계에 있소. 그런데,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중국의 남서부 지역에 사는 야오족(瑤族)의 자칭이 mjen 혹은 mun(뜻은 사람)으로, 이것의 고대 형태는 *ml(w)an으로 생각되는데, 이렇게 되면 [糸言糸]과 蠻의 상고 중국어 발음과 매우 유사해지오. 더불어 야오족과 같은 언어 계통으로 분류되는 먀오족(苗族)의 자칭인 mhu, mung- 등의 형식과도 유사성을 갖고 있소.(성조에서도 정확히 대응하오) 그러므로 蠻은 바로 선진시대 장강유역에 살던 주민들이었던 오늘날의 먀오-야오족이 스스로를 일컬었던 명칭을 가차하여 한자로 적은 것으로 추정되오.
이로 미루어 볼 때, 蠻이란, 본래 이러한 장강 유역에 살고 있었던 먀오-야오 계열의 선주민들의 자칭을 가차하여 [糸言糸]으로 적었다가, 훗날 중화주의가 강화되면서 폄하하는 뜻의 의미부분인 虫을 넣어 만들어낸 글자라 볼수 있지 않나 하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蠻만이 아니라 다른 종족명들에도 소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오.
참고문헌
馬學良 편 <漢藏語槪論> 한어편(漢語篇) p. 76, 먀오야오어편(苗瑤語篇) p. 509
李恕豪 저 <揚雄<方言>與方言地理學硏究> p. 4
孤藍居士 햏의 뛰어난 식견을 존중하오.
孤藍居士 햏의 요점은 혹시 이런 내용이 아니오.
중국의 중화사상인 주변 민족명칭 이른바 동이, 서융, 남만, 북적 은 선진시대 이후에는 주변 민족비하의 의미를 일정부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선진시대부터 원래 그러한 비하나 멸시 의미는 없었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글자의 풀이나 여러 정황상 그런 의미가 아니라 단지 설명의 의미가 강했다.
孤藍居士 햏께서의 주요 관심사가 중국 선진사라고 얼핏 글에서 보았기에 이 글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겠소. 그런데 왜 중국은 선진시대에는 이렇게 주변 민족을 비하하거나 폄하하지 않았다고 여겨지는데 어느시기에 갑자기 중화사상이 등장했다고 생각하오? 또 선진시대와 그 이후 중국의 왕조와 지금의 중국은 역사적으로 연관성과 전통계승, 문화전승이 이루어졌다고 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