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2011년에 발견된 예군 묘지를 보면 백제는 일본으로 언급됨
'남은 일본 백성이 부상에 의존하여'
여기서 학계는 일본을 백제로, 왜국을 부상으로 해석함
당평백제비에서는 백제가 부상으로 언급되니 부상이 백제라고 할수도 있겠으나
왜군이 2만7천명 이상 상륙해서 백제를 지원하고 백제 유민을 구출했던 백강전투의 정황상
일본 백성이 왜군을 가르키는건 이상하다 할수있음
하지만 또 이상한건
중국 구당서에서는
'일본국은 왜국의 별종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는거임
만약 예군 묘지에서 백제를 일본으로 지칭하지 않았다면
말그대로 일본국은 야마토를 가르키는걸로 받아들이면 됐지만
예군 묘지의 발견으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이 생김
말그대로 백제가 왜국의 별종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거임
만약 그렇게 해석한다면 부여-백제 일본어족설이 다시 살아나게 되는거고
애초에 백제 목간과 고구려어와 만주 소수민족어들간의 차용관계도
지배층이 피지배층과 다른언어(일본어)를 썼다면 부여-백제가 한국어족 국가였다는 주장은 반박가능하므로
진실은 다시 미궁속으로 빠짐
왜와 백제의 관계는 많은 부분에서 백제가 왜의 하국으로 묘사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 의문을 자아내는것
칠지도와 같은 경우도 한국학계에선 하사로 보지만 일본학계는 헌상으로 보는 이유가
칠지도가 일본의 이소노카미 신사에서 발견됐기 때문
이소노카미 신사는 당시 왜가 정복한 타국의 기보를 보관하거나
왜국이 받은 조공품을 보관하던곳으로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기보를 정화하는 의미가 있었음
게다가 백제는 왜국에 인질을 보냈는데
기록이 띄엄띄엄 있어서 얼마나 인질을 보냈는지는 알수없으나
백제가 왕태자를 왜국에 인질로 보냈다고 언급된 삼국사기 외에도
그전에는 백제가 공주를 인질로 보냈다가 공주가 바람을 펴서 왜왕이 공주를 쳐죽이고 왕태자를 받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고
그전에도 일일히 기록하지는 않았으나 공주를 계속 인질로 보내왔다는 기록도 있음
게다가 백제의 마지막왕 부여풍도 백제가 멸망직전에 이르고 백제왕이 죽자
일본 천황이 그 소식을 듣고 백제의 요청을 받아 일본에서 즉위해서 복귀하라는 명령을 하는데
당시 부여풍은 왜국에서 무려 30년간 인질 생활을 하던 중이였음
즉, 인질 기록은 띄엄띄엄 있으나 기록이 없는 기간에도 백제에서는 인질을 계속 보냈을 가능성이 높다는것임
게다가 백제는 왕이 급사해서 왕좌가 비어있는 상황에서 굳이 왜에 인질로 있던 후계를 기다림
고대시절엔 바닷길을 건너기 힘들어서 인질이 백제로 돌아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러다보니 중간에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백제 왕족과 귀족들은 끝까지 후계를 기다려서 왕위에 앉힘
이를 볼때, 우리가 생각하는것 이상으로 왜가 백제왕의 정통성을 보증했다는걸 알수있음
광개토태왕릉비만봐도 고구려는 백제를 백잔이라고 기록했고 백제보다 왜를 주요한 적으로 묘사함
그리고 기원후 400년경 기록에는 왜가 바다를 건너 백제와 신라를 속민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음
이부분에 대해 한국 학계는 탁본을 뜨는 과정에서 일본이 조작했다느니(재일 한국인 사학자가 최초 주장)
고구려가 자존심을 세우느라 백제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느니 하지만(나무위키)
근거가 빈약하고 그런식으로 해석한다면 한자의 해석이 이상해짐
게다가 후에 광개토비는 발견한 중국인이 생계를 위해 무분별하게 탁본을 뜨면서 훼손된걸로 밝혀져서 일본이 조작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닌게 드러남
결국 이러니 저러니해도 고구려는 백제를 왜의 속국으로 봤고
그래서 백잔(백제의 잔당)으로 기록했을수도 있는거임
또 하나 이상한점은 수서 왜국전에 나오는 왜 5왕임. 이건 중국 기록이라 편견이 들어갔다고 보기 힘듬
근데 여기서 왜왕은 여러차례 백제를 왜의 관할로 인정해달라고 청원함
한번을 제외하곤 중국에서 인정하진 않았고 백제에게 더 높은 책봉을 하긴 했으나
중국은 조공국이 워낙 많아 한반도 내부 사정에 그다지 밝지 않았고 교류가 그나마 많아서 이전부터 책봉을 했던 백제를 우대했을 가능성이 있음
그마저도 나중엔 왜왕에게 더 높은 책봉을 하기도 함
즉, 왜왕이 왜 백제를 속국으로 인식했냐가 더 중요하다는것임. 게다가 백제는 왜와 같이 그런 유사한 요청을 한적이 없음
재밌는건 일본서기에는 이 왜 5왕이 누구인지 유추할수있는 부분이 있는데
문제는 당시 왜 5왕중 일부 왕이 백제왕과 행적이 굉장히 흡사하다는거임
근데 중국 기록엔 분명 왜 5왕은 스스로를 왜왕이라고 칭함
만약 왜5왕중 백제왕이 있었다면 왜 스스로를 왜왕이라고 칭하고 백제를 속국으로 인정해달라고 했을까?
그외도 의문점이 많음
백제가 정복했었다는 전라도에서는 백제왕 무덤보다도 큰 한반도 최대의 왜인무덤이 계속 발견되고 있고(이를 두고 백제는 중앙집권화가 진행돼서 큰 무덤이 필요없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타국이였던 왜국이 백제 권역에 그런 무덤을 짓는건 자국에 짓는것과는 명백히 의미가 다름)
다른 자료를 더 찾아봐도 백제가 왜의 하국급 지위였다는 기록이 너무 많음
예를 들어, 백제 멸망후 백제왕후귀족들은 일본에서 그다지 높은 지위를 받지 못함
백제 귀족들은 주로 동쪽 에미쉬를 토벌하는 정이대장군의 아래 하급 귀족으로 근무를 했고
백제 왕자조차도 일본의 종5품에 해당하는 끽해야 중급 귀족에 해당하는 관직을 받음
게다가 일본 천황이 무령왕의 후손인 백제여인과 혼인을 하던것도 일본 귀족들이 반대해서 첩으로 받아들였고 나중에야 정실이 죽고 지위가 올라감
근데 그럼에도 해당 백제 외척가문의 지위는 올라가지 못함
아무리봐도 내 추측으론 기존 일부 언어학계의 주장처럼
부여-백제가 일본어족이 아니였을까 싶고 백제는 왜국의 동계 하국이였던거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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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백제는 이중언어고 지배층은 일본어를 쓰지 않았나 싶음
백제지배층과 왜국은 단순 동맹 이상의 너무 밀접한 관계가 있음
망상이라기엔 너~무 이상한점이 많음.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는 족족 이상함
고고학적으로 한반도 중남부에 선재한게 일본인 집단인게 증명되고있고 만주지역 고구려 지명어에서 일본어계 어휘가 거의 확인되지 않고 부여어와 고구려어의 영향을 받은 거란어, 여진어, 만주어 등에서 일본어족으로 분류할만한 어휘가 전혀 확인되지 않음. 그리고 일본어와 유사한 고구려어 어휘는 한반도 중남부에서 집중적으로 분포함.
부여어와 백제 지배층 언어를 일본어족으로 보는 견해는 애당초 성립이 불가능한 주장임.
온조는 고구려인이다(백제는 이중언어였던것)
게다가 유전적으로도 이상함 백제가 이중언어 국가고 반도일본어족 학설을 받아들여서 피지배층이 일본어를 썼다면 결국 백성중에는 일본어족이 많았다는말이잖아
그럼 백제 지역이였던 서울, 충청 지역에서는(전라도는 마한이니 제외한다고 해도) 일본인의 유전자 부계하플로인 o2b1 47z가 다른 한반도 지역보다 많이 나와야함
근데 47z는 경상도와 함경도에서 가장 많이 나온다
일본열도에서 30%정도가 나오고 경상도에서 10%정도, 함경도에서 4~7퍼정도 나옴
백제가 만약 이중언어를 썼고 그중하나가 일본어라면 수가 적었던 지배층이 일본어를 썼다는게 유전적으로는 더 맞다는거임
물론 유전과 어족이 일치하지 않는경우도 많긴 하나 다른 기록과 비교해서 생각하면 이상하다는거임
자료마다 다르긴 함
ㅇㅇ 그러니 백제 지배층이 오히려 일본어족이였을거라고 보는거 정확히 말하면 부여계겠지
백제가 양층언어였고 지배층도 koreanic, 백성도 koreanic이 많았다면 애초에 양층언어라고 할 이유도 없었겠지
백제는 한성백제에서 비류백제가 될때 부여의 풍습이 생기면서 정체성이 달라지고 마한을 정벌하면서 국가가 급격히 커지는데 난 그 원인이 일본어족이 왕위를 차지해서라고 봄
일본어족이 왕위를 차지하니 왜와 교류를 하기 시작하고 한반도 남부에서 세력이 강한 왜인 세력의 지원을 받아 마한을 정벌한거지
급격한 국가, 사회의 변화 뒤에는 상당수가 왕조교체가 있었음. 백제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음
백제는 건국 시기가 명확하지 않고 부여의 풍습은 초기 백제에서는 나타나지 않음 백제 멸망후 상당수가 중국으로 끌려갔으며 백제 유물의 80% 이상이 출처를 알수없는 중국계 유물이였음
고구려 일대는 맞으나 비류계부터는 그 일대의 소국이였던 비류국 송양왕의 후예가 백제를 차지했다고 봄 송양왕은 스스로를 진인이라고 칭했는데 진인은 당시 위만조선의 왕호임. 고구려와 정체성이 달랐을거임
백제가 스스로를 남부여라고 한것도 그런 이유고
부여어는 가설만 있을뿐 어떤 언어였는지 알수가 없음 단지 고구려가 부여의 별종이고, 고구려어의 어휘가 만주 소수민족들의 언어에 차용된 흔적을 들어 부여어가 koreanic이라고 하는건데 난 부여와 고구려는 정체성이 달랐고 백제는 비류백제부터 그런 부여의 정체성을 이었다고 보는거임
부여어는 koreanic보다는 japonic이 아니였을까 싶은거고 어차피 부여어가 koreanic인지 japonic인지 알수있는 증거는 없거든
이건 내가 본문에도 쓴 대목이잖아
부정한적 없음
조선의 고대사는 할거 몬된다. 졸려 - dc App
ㅋㅋㅋㅋ - dc App
칠지도는 일본에서도 일단 헌상까지로 올려치기는 못하던디 ㅋㅋㅋ
윗분은 고구려어를 한국어족과 일본어족의 혼성 언어이고 부여어를 일본어족이라 주장하는데 이는 부여어와 고구려어가 거의 동일하다는 중국측 기록 때문에 성립이 불가능한 주장임. 그리고 부여는 고고학적으로 고대 일본보다는 선비족같은 몽골계 민족과 유사함.
그냥 글쓴 니가 공부가 부족한거임 + 웅진 천도 이후 백제가 맛이 가서 열도와의 관계에도 변화가 있었던거지
부여멸망 - 부여집단 남하 - 근초고왕 무렵 백제 영역 확대 - 대성동 집단 등장 - 야마토 왜5왕 중 백제 왕족과 유사한 행적 백제-중국 서신과 매우 유사한 왜-중국 서신 등장 이게 시간적으로 아다리가 딱딱 맞아서 나도 그럴듯하다 생각 하는데 맞다고 해도 부여어=한국어족과 전혀 배치되지 않음
일본까지 가서 지배층이 되었다고 해도 니가 말한 것처럼 이미 열도는 인간이 버글거리는 상태라 언어교체를 상정하기 어려움
가야도 니가 생각하는 것처럼 전체가 일본어족 단순한 구성이었을 가능성이 제로임 인명 지명 관직명만 봐도 초기 후기 다르고 집단마다 다르고 지배-피지배 다르고 그랬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
확실한거는 가야 지역 적어도 일부에 삼국시대까지 일본어족 언어 사용자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정도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