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리야마 철검은 6세기 전후에 조성된 일본의 사키타마 고분군 (사이타마 현 교다 시)을 구성하는 고분들 중 하나인 이나리야마 고분에서 1968년 출토된 철검이다. 1978년 X선 촬영에 의해 금 상감으로 새겨넣어진 글자가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어 이후 일본 국보로 지정되었다. 현재 사키타마 고분군이 있는 곳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박물관이 세워져 상설 전시를 통해 금빛의 명문이 선명하게 복원된 이나리야마 철검을 직접 볼 수 있다.
115자의 명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Murayama & Miller 1979, 일부 수정).
辛亥年七月中記 신해년 7월에 적는다.
乎獲居臣 신하(ömî) wowakë,
上祖名意富比垝 시조의 이름은 öpöpîkô,
其児多加利足尼 그 아들은 takarisukune,
其児名弖已加利獲居 그 아들의 이름은 teyökariwakë,
其児名多加披次獲居 그 아들의 이름은 takapasiwakë,
其児名多沙鬼獲居 그 아들의 이름은 tasakïwakë,
其児名半弖比 그 아들의 이름은 paⁿdepî,
其児名加差披余 그 아들의 이름은 kasapaya,
其児名乎獲居臣 그 아들의 이름이 신하(ömî) wowakë이다.
世々爲杖刀人首 대대로 칼을 든 사람의 우두머리를 맡아
奉事來至今 지금까지 봉사해 왔다.
獲加多支鹵大王寺在斯鬼宮時 와카타케루(wakatakêru) 대왕께서 시키의 궁궐에 계실 적에
吾左治天下 나는 대왕께서 나라를 다스리시는 일을 도우며
令作此百練利刀 백 번을 벼린 이 날카로운 칼을 만들도록 명을 받았으며
記吾奉事根原也 이에 내 봉사의 근원을 밝혀 적는다.
이 명문에는 9개의 고대 일본어 인명과 1개의 지명으로 총 10개의 고유 명사가 등장하는데, 그 표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kë의 발음을 적는 '거(居)'와 pa의 발음을 적는 '피(披)'이다. 전기 중세 중국어에서 居와 披의 발음은 Baxter (1992)의 표기로 각각 kjo, phje이며, 이 표기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부연하자면 현대 한국어의 한자음 '거', '피'와 큰 차이가 없는 발음이다. 그런데 '전기 중세 중국어(Early Middle Chinese)'라는 것은 서기 600년경의 언어를 말하는 것으로, 서기 471년 또는 531년으로 추정되는 이나리야마 철검의 '신해년'과 그다지 멀지 않은 시기이다. 그럼에도 kjo, phje라는 한자의 발음과 이들이 나타내는 고대 일본어 kë, pa의 발음 사이에는 괴리가 크다. 다시 말해 이나리야마 철검이 만들어진 당시 일본에서 쓰인 한자음은 중국 본토의 발음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한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Miyake (2003)에서는 이러한 한자음이 백제를 통해 전래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이와 같은 (즉, 고대 중국어 *-a에서 유래하는 전기 중세 중국어 -jo/-ju를 가진 한자를 [e]처럼 읽고, 고대 중국어 *-e에서 유래하는 전기 중세 중국어 -je를 가진 한자를 [a]처럼 읽는) 한자음을 찾을 수 있을까? 있다.
먼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충청남도 부여군의 옛 지명인 '소부리군(所夫里郡)'이다. 다른 이름으로 사비성(泗沘城)이라고도 하는데, '사(泗)'와 '비(沘)'는 중국어의 역사에서 (당나라 때까지는) 줄곧 [i] 비슷한 모음을 유지했기 때문에 '사비'는 안정적으로 sipi로 해독할 수 있다. 그런데 딱 봐도 '소부리(所夫里)'는 이것과는 완전히 다른 발음이다. 이 수수께끼는 '소(所)'와 '부(夫)'가 이나리야마 철검의 '거(居)'와 같은 모음을 가진 한자라는 사실을 알면 간단하게 풀린다. '소(所)'는 se를, '부(夫)'는 pe의 발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소부리(所夫里)'의 '부리(夫里)'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등장하는 마한의 소국 이름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접미사 '비리(卑離)'와 같은 단어로 취급되곤 하는데, '비(卑)'는 고대 중국어 *pe에서 전기 중세 중국어 pje로 변화하였기 때문에, '삼국지'의 한반도와 일본 열도 관련 기록에 적용된 고대 중국어식 한자음에서는 pe의 발음을 반영할 것이라는 사실 역시 '부(夫)'를 pe로 읽는 근거가 된다. '소부리(所夫里 se pe lɨ)'에서 '사비(泗沘 si pi)'로의 변화는 신라에 있어 '사로국(斯盧國)'의 '사(斯 se)'가 '신라'의 '신(新 sin)'으로 대체된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어 내부의 모음 변화를 반영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백제에서는 대체 왜 이런 한자음을 사용한 것일까? 이에 대한 단서는 역시 '삼국지'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킨 뒤 고조선이 차지하고 있었던 한반도 북부에서 만주에 걸친 지역에 4개의 군을 만들었는데, 그 직후에 북쪽 지역에서 고구려가 세워져서 중국으로부터 그 영토를 다시 되찾았기 때문에 중국은 남쪽 평안도 (당시의 중국 낙랑군)와 황해도 (중국 대방군) 지역만을 계속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나라 말기, 중국 삼국 시대의 혼란으로 군벌들이 들끓는 상황에서 이 머나먼 영토 역시 공손씨 군벌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가, 서기 239년쯤에 위나라 황제 조예 (조조의 손자)가 공손씨를 멸망시킨 다음 낙랑군과 대방군에 다시 지방관을 파견했고, 이 과정에서 신임 지방관들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마한을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에 대해 삼국지는 마한의 군장들이 대방군의 '기리영(崎離營)'을 공격했다고 기록한다.
고대 일본어로 한반도 남부를 kara라고 부르는데, 이는 '가야'의 국명(의 당시 발음)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지만 원래는 삼한 전체를 가리키는 명칭이었다고 생각된다. 삼한의 '한(韓)'이라는 이름 자체가 고대 중국어로 *gˁar이어서, 일본어 kara와 마찬가지로 한반도 남부의 원래 이름을 기록한 명칭인 것이다. 그런데 마한의 군장들이 공격했다는 대방군의 '기리영(崎離營)'은 마한과의 국경에 있는 군영이었을 것이므로 '기리(崎離)' 역시 삼한의 원래 이름을 반영한다고 간주할 수 있다. 이때 '기리(崎離)'는 ka la의 표기가 되며, '기(崎)'와 '리(離)'는 고대 중국어 *-aj > *-e에서 유래하는 전기 중세 중국어 -je 발음의 한자이므로, 이들이 ka la의 표기에 사용되었다는 것은 이나리야마 철검의 '피(披)'와 마찬가지이다.
이후의 역사에서는 고구려의 미천왕이 4세기 초 낙랑군과 대방군을 정복하여 한반도 북부의 400년에 걸친 중국 지배에 종지부를 찍는다. 이로 인해 고구려와 백제의 국경이 맞닿게 되어 두 나라가 피로 피를 씻는 복수의 전쟁을 벌이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데, 아무튼 중요한 것은 대방군의 영토는 고구려가 차지했지만 대방군의 유민 상당수는 바로 남쪽의 백제로 유입되었다는 사실이다. 중국과 인접한 고구려와는 달리 한반도 중부에 있었던 백제로서는 이렇게 대방군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한자와 중국 문화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값진 정보원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정황은 우리가 이나리야마 철검 명문에 나타나는 특이한 한자음의 역사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서기 3세기 중반에 위나라에서 한반도 북부로, 서기 4세기 초에 백제로, 이후 백제에서 일본으로 전해진 것이다. 이나리야마 철검의 한자음이 3세기의 위나라에 뿌리를 둔 것이라면, 왜 언어학자들이 복원한 한나라 시대 발음 (후기 고대 중국어)이나 수나라 시대 발음 (전기 중세 중국어)과 완전히 다른 것인지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그 중간에 위치한 과도기적 발음이기 때문이다.
고대 한국어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는 이와 같이 역사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이웃 언어들인 중국어와 일본어의 발음 변천을 이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고대의 중국어나 일본어에 대한 연구가 크게 발전하지 않아 여태까지 중국어나 일본어에 대한 해외의 최신 연구가 고대 한국어 연구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부분은 앞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Hœðr가 백날찾던 사비가 이거였노
안물어봤어 좆병신찐따년아
이걸 지 찾은거라생각하는 사회적 능지가 대단하노
아무리 많아도 사시사철 언갤에 좆병신글 싸지르는 우리 회드르게이만 하겠노 ㅠㅠ 회드르게이만큼 지랄하려면 523년은 멀었노
지 불만은 아무도안궁금한거 백날천날 언갤에 싸질러놓곤 남한텐 불만쟁이 딜박으려 노력하는거 보면 지도 지모습 정박아같은건 아는모양이노 ㅠ
아 노잼 그냥 간다
손가락 와들와들떨면서 정신슨리 입갤 w
중고음은 아무래도 백스터 걸 쓰면 아예 무효 급인디 - dc App
kjo, phje에 대해 한국 한자음 '거', '피'와 거의 같은 발음이라고 한 거 안보이냐
「전기 중세 중국어에서 居와 披의 발음은 Baxter (1992)의 표기로 각각 kjo, phje이며」는 뭔데. - dc App
애초에 Baxter (1992) 표기는 말 그대로 '표기법'이고 특정한 발음을 나타내는 목적이 아닌데 그걸 뭐라고 하는 븅신새끼들은 일단 Baxter를 [baxter] '바흐테르'라고 읽어야겠지?
그걸 인용한 것 자체가 황당이었을 따름 - dc App
븅신
차라리 히라야마를 인용하는게 나을 느낌. - dc App
자기가 Baxter를 '백스터'라고 읽는 건 괜찮고 다른 사람이 kjo를 [kɨə]라고 읽는건 죽을 죄임? 반대로 kjo가 반드시 [kjo]를 나타내는 표기면 Baxter는 왜 [baxter]를 나타내는 표기가 아닌거냐? 정서법적(orthographic) 표기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 못함?
「현대 한국어의 한자음 '거', '피'와 큰 차이가 없는 발음」사에, 조금 걸리지 않나. 특히 披는 딱 봐두 중뉴삼등. - dc App
정서법을 고른댄들 하필이면 중고음인데 너무 간략표기를 한 백스터는 뜬금없긴 함. 차라리 리팡구이(1971)가 나은 느낌. 以上. - dc App
LOC로 보나 EMC로 보나 居는 -e 발음이 아니고 披는 -a 발음이 아니다 이걸 설명하려는 의도인게 이해가 안감?
걍 저표기라 IPA로 대략 뭔발음인지 적어나놓지 언붕이 대상으로 글적어놓곤 언붕이들이 벡스터글 다찾아읽었을거란 가정은 왜하는거노
좋은글 감사감사
이거 보다가 궁금해서 그러는데 '서라벌'이랑 '소부리'가 동계어라고 보기에는 좀 속단하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