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cybernk.net/search/SearchDetail.aspx?litSelType=0&litword=%ed%83%84&ID=SYSTEM


북한지역정보넷 이라고 북한 지명 DB가 꽤 충실한 사이트가 있다


심심하면 여기서 지명어 검색을 해보곤 하는데 


잘 알겠지만 반도일본어의 흔적으로 논해지곤 하는 것이 呑 = 谷 의 대응관계이다. 근데 '탄'으로 지명 검색을 해보면 남한 지명도 그렇고 위 사이트의 북한 지명도 그렇고 여울 탄 灘 만 잔뜩 나온다.  대부분이 /..여울/ 이나 /..울/ 이라는 지명을 한역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는데, '고미탄' 등의 예에 비추어 개중 일부는 예전부터 /..탄/('valley') 이라고 불리던 지명에서 탄 자를 여울 탄으로 바꿔 표기한게 유래가 된 지명인 듯도 하다.  문제는 이게 비율이 얼마나 될지 전혀 감이 안옴.


역시 잘 알겠지만 조선관역어를 보면 呑 = 村 의 대응관계가 보이는데, 이는 적어도 15세기까지 시골 '마을' = /..탄/ 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적어도 중부지방에 살았다는걸 뜻한다.  이중 일부는 /..땅/ 등으로 나중에 바뀐 것 같기도. 


참고로 보빈의 경우 원래는 백제 양층언어 부정론 입장이었다가 나중에는 백제에서 반도일본어족 언어(피지배층)와 한국어족 언어(지배층)가 함께 쓰인 것으로 견해를 변경한것 같다.  기본적으로 나도 그럴 것 같고 이는 목간의 수사 표기로도 확인이 되므로 확실한 듯 하나, 보빈 시나리오보다는 조금 더 복잡하였을 것 같은게 지배층에서도 왜와 백제 사이에 인적 교류가 많았던 것이 사서를 통해 확인되기 때문인데 삼근왕 三斤王 의 壬乞王 (임나=미마나) 이표기도 그렇고 어릴때 일본에서 자란 백제 왕들도 있었던걸 보면 일본어도 지배층에서 일부 섞여 쓰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고고학적으로는 팽이형토기 집단 영역인 평남-황해 지역이 오랜 기간 변화 없이 매우 보수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연과의 전쟁으로 고조선이 평남 인근까지 이동하면서 고고학적으로 완전히 뒤집어지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고조선의 이동 전 청천강 근처까지는 일본어족 언어가 쓰이고 있었을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리고 남쪽에서는 충남쪽으로 점토대토기-세형동검이 들어가면서 주변에 한국어족이 퍼지고.


근데 또 문제가 되는 것은 양웅 선생의 방언이다.  조선 지역 방언이라고 써놓은걸 보면 조선이 북연 지역과 묶여서 비슷한 언어권이 확실한 듯 한데 씌여져 있는 단어들 중에 한국어처럼 보이는 것은 10개 정도 뿐이다.  점점 머리가 복잡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