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지도 명문의 해석은 매우 논쟁적인 주제입니다. 이 글에서는 역사언어학적인 관점에서 칠지도에 대해 접근해 보기로 합니다.
칠지도 명문에는 흔히 '백제왕세자기생성음고위왜왕지조(百濟王世子奇生聖音故爲倭王旨造)'로 판독되는 부분이 있고, 이 중 '기생(奇生)'을 백제 왕세자의 이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존의 학설에서는 이 '기생(奇生)'을 백제 제14대 근구수왕의 이름 '구수(仇首)'와 발음이 비슷한 것으로 보기도 했고, 또 혹자는 '기생(奇生)'이 아닌 '기(奇)' 한 글자만을 이름으로 보고 유송 대명 2년 (458)에 백제 개로왕이 유송에 사신을 보내어 관직을 내려달라고 한 인물들 중 '여기(餘紀)'와 일치시키도 했습니다.
저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기생(奇生)'을 *kase [가세]의 발음으로 읽고 개로왕의 이름과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1) 개로왕의 이름
저는 개로왕의 이름의 당시 고대 한국어 발음을 *kasero [가세로]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예전 글 (https://gall.dcinside.com/language/131065)에서도 언급한 바 있으므로, 예전 글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이 부분은 건너뛰셔도 됩니다.
먼저 개로왕의 이름 표기를 살펴보면, 먼저 명백하게 그의 생전에 사용된 표기인 '경사(慶司)'가 있고, '일본서기'에 실린 표기인 '가수리(加須利)'가 있고, 또 가장 흔하게 알려진 '개로(蓋鹵)'가 있습니다. 한편, 일반적으로 그의 이름은 '삼국사기'의 왕계에서 백제 제4대 국왕으로 기록된 개루왕의 이름과 같은 단어로 여겨지므로, '개루(蓋婁)' 또한 개로왕의 이름 이표기의 하나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이표기가 있는 이름을 볼 때는 이들을 단순히 일치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표기가 생겨난 경위를 생각해야 합니다. 제4대 개루왕과는 달리 개로왕의 이름에서 '개루(蓋婁)'의 '루(婁)'가 '로(鹵)'로 대체된 것은, '루(婁)'라는 한자가 후기 고대 중국어에서 *rˤo [로]의 발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루(婁)'의 모음이 *o [ㅗ]에서 *u [ㅜ]에 가깝게 변화해 갔기 때문에, 고대 한국어 *ro [로]의 발음을 정확히 나타내기 위해 이 한자를 버리고 대신 '로(鹵)'를 채택한 것입니다. '로(鹵)'는 후기 고대 중국어에서는 *rˤaʔ [라]였지만, 이 시기에는 luX = /loˀ/ [로]의 발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개루(蓋婁)'의 '루(婁)'가 후기 고대 중국어를 바탕으로 한 표기라는 것은, 나머지 한 글자인 '개(蓋)' 또한 그렇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후기 고대 중국어에서 '개(蓋)'의 발음은 *kˤajs [가이ㅅ]이며, 이는 *-s [ㅅ] 발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고대 한국어 표기에서 *kasV [가ㅅ]의 2음절을 표기하는 데 사용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개(蓋)'에 사실 ㅅ이 숨어 있다는 것은 '경사(慶司)'나 '가수리(加須利)'에서 보이는 ㅅ 발음을 설명해 줍니다. '경사(慶司)'의 '경(慶)'은 당시 중국어에서 khjaengH [걍]으로 읽혔는데, 고대 한국어에는 *ŋ (ㅇ 받침과 같은 발음)이라든가 *kja [갸]와 같은 발음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고대 한국어에 존재하는 다른 발음과 혼동의 여지가 없는 범위 안에서 *ka [가]와 발음이 비슷한 뜻이 좋은 글자를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수리(加須利)'의 '리(利)'는 다른 표기와 맞춰 보면 '루(婁)', '로(鹵)'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만, 모음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루(婁)'나 '로(鹵)'는 앞서 언급했듯 고대 한국어의 *ro [로]의 발음을 나타내는 것이지만, '리(利)'는 고대 일본어에서 ri [리]로 읽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표기는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이름이 '일본서기'에서 '이리가수미(伊梨柯須彌)'로 나타나는 것과 동일한 현상으로 보입니다. 원래는 고대 한국어 *mo [모]의 발음을 옮겨적기 위해 '문(文)'을 사용했겠지만, 고대 한국어에서 어말 모음이 탈락하면서 *m [ㅁ]만 남은 것이 고대 일본어의 발음 체계 안에서는 음절말음 (받침에 해당하는 발음)이 허용되지 않기에 mî [미]로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ro [로] 또한 *r [ㄹ]만 남은 것이 ri [리]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렇게 보면 '가수리(加須利)'라는 표기는 시대적으로 나중에 성립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상의 논의로부터 개로왕의 이름은 *kasVro [가ㅅ로]로 읽힐 것이 유력하지만, 제2음절의 *s [ㅅ] 뒤에 어떤 모음이 오는지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전 글들을 통해 여러 차례 언급한 바와 같이 저는 전기 고대 한국어에 [ㅡ], [ㅓ]와 같은 중설 모음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그러한 모음에 해당하는 한자음은 사실 고대 한국어 *e [ㅔ] 발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는 고대 한국어의 일부 *e [ㅔ] 발음이 서기 500년경 이후에는 *o [ㅗ]로 변화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경사(慶司)'의 '사(司)'는 중국어 발음이 si = /sɨ/ [스]이므로 고대 한국어 *se [세]에 해당하는 것으로 읽고, 자연스럽게 '일본서기'의 '가수리(加須利)'는 이 *se [세]가 *so [소]로 변화한 이후의 발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취급하게 됩니다. 이러한 발음 변화는 백제의 성대혜현(省大兮縣)이 신라 경덕왕에 의해 소태현(蘇泰縣)으로 개칭된 것 ('삼국사기' 권36)이나, 성지매(省知買)가 술천군(述川郡)의 다른 이름인 것 ('삼국사기' 권37)과 같이 지명 자료를 통해서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기생(奇生)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광운'에는 '생(生)'의 발음이 sraeng [상]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이것은 더 이른 시기의 srjaeng [샹]에서 변화한 것이므로 (Baxter & Sagart 2014: 236), 성조를 제외하면 '성(省)'과 동일한 발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성(省)'을 고대 한국어 *se [세]의 표기로 볼 수 있듯이, '생(生)' 또한 *se [세]의 표기로 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기(奇)'는 서기 600년 전후의 일본 스이코(推古) 시기에 고대 일본어 ka [가] 발음의 표기에 사용되었습니다. 7세기 전반까지의 고대 일본어의 한자 표기는 고대 한국어의 영향을 받았다고 여겨지는데, 중국어 중앙 방언의 발음 변천만을 고려한다면 '기(奇)'가 ka [가]로 읽힐 이유를 찾기 어려우므로, 이러한 표기 전통은 대방군에서 백제를 거쳐 일본으로 전달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예를 들어 기리영 전투로 잘 알려진 대방군의 '기리영(崎離營)'이라는 지명에서 '기리(崎離)'는 '한(韓)'을 뜻하는 *kara [가라]로 읽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대 중국어에서 '기(崎)'와 '리(離)'는 모두 '기(奇)'와 같은 B형 *-aj [ㅏ이] 모음이기 때문에, 대방군의 방언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즉 고대 한국어 *a [ㅏ] 모음에 대응하는 발음으로) 변화했을 개연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더욱 명확한 근거는 '일본서기'에 인용된 백제 사서를 통해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일본서기' 권9에 인용된 '백제기(百濟記)'에는 '직마나나가비궤(職麻那那加比跪)'와 '사지비궤(沙至比跪)', 그리고 '일본서기' 권19에 인용된 '백제본기(百濟本記)'에는 츠모리노 무라지(津守連) '기마노궤(己麻奴跪)'와 같이 고대 일본어 인명에서 kô [고]의 발음을 '궤(跪)'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대 일본어 kô [고]가 8세기와 마찬가지로 *ko [고]의 발음이었다면 굳이 '궤(跪)'라는 복잡한 한자를 쓸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고대 일본어 kô [고]는 더 이른 시대에는 *kua [과]의 발음이었다고 여겨지는데, 그렇다면 백제인들이 들은 일본어 발음은 *kua [과]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궤(跪)'의 당시 중국어 중앙 방언 발음과는 괴리가 있는데, '궤(跪)'와 '기(奇)'의 고대 중국어 발음을 놓고 보면 반모음 *w [ㅜ]의 유무에 의한 차이입니다. 따라서 만약 어떤 방언에서 '기(奇)'가 *ka [가]에 해당하는 발음이라면, '궤(跪)'는 *kwa [과]에 해당하는 발음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kua [과] 발음이 '궤(跪)'라는 한자로 표기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백제에서 '궤(跪)'를 *kwa [과]로 읽는 한자음이 쓰였다는 사실은, '기(奇)'를 *ka [가]로 읽는 한자음 역시 백제에 존재했다는 데에 대한 간접적인 증거가 됩니다.
이를 종합하면 '기생(奇生)'은 *kase [가세]로 읽을 수 있으며, 백제의 역대 국왕 가운데 이와 가장 유사한 이름은 물론 개로왕의 이름입니다.
(3) 칠지도는 언제 만들어졌는가
칠지도의 명문에 따르면, 칠지도가 만들어진 날은 5월, 11월, 또는 12월 16일 병오일입니다 (달이 적힌 부분의 판독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개로왕의 아버지인 비유왕의 재위 기간 중 이 간지가 들어맞는 것은 음력 439년 11월 16일 (율리우스력 440년 1월 6일)과 455년 5월 16일 (율리우스력 455년 6월 16일) 두 차례가 있습니다.
이 두 가능성은 모두 고려할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예를 들어 455년은 비유왕이 승하한 해인데, '삼국사기'에 따르면 비유왕의 재위 말년에는 흉년과 흑룡(黑龍)의 출현 등 불길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므로, 백제에 내부 혼란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왕세자였던 개로왕의 이름으로 칠지도가 만들어진 것은, 비유왕이 병중인 등의 이유로 왕세자가 실권을 잡고 있었거나, 아니면 반대로 내분 속에서 왕세자가 정통성을 확고히 하기 위한 행동의 일환이었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더 흥미롭게 여겨지는 것은 439년설입니다. 바로 1년 전인 438년 6월 8일 (원가 15년 4월 30일)에 왜왕 진(珍)으로 기록된 일본의 지배자가 유송에 사신을 보내 '사지절(使持節) 도독(都督) 왜(倭)·백제(百濟)·신라(新羅)·임나(任那)·진한(秦韓)·모한(慕韓) 육국 제군사(六國諸軍事) 안동대장군(安東大將軍) 왜국왕(倭國王)'을 자칭하고 안동장군(安東將軍)으로 봉해진 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칠지도의 제작은 백제의 영향권을 벗어나려고 시도하는 일본에 대한 회유책이거나, 또는 백제가 일본을 '칠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담고 있었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농담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일본서기'에 따르면 칠지도를 백제로부터 받은 것은 기장족희존(氣長足姬尊, 신공 황후) 섭정 52년으로, 섭정 49년에 비자본(比自㶱)·남가라(南加羅)·녹국(㖨國)·안라(安羅)·다라(多羅)·탁순(卓淳)·가라(加羅)의 일곱 나라를 평정했다는 기록으로부터 3년 뒤입니다. 아마도 일본에서 대내적으로 지배자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을 일곱 나라 평정의 기록은 왜왕 진의 육국 제군사 자칭을 떠오르게 할 뿐만 아니라, 만약 이 사건을 기장족희존 섭정 49년이 아닌 예전 천황(譽田天皇, 응신 천황이며 '일본서기'에 따른 재위 기간은 41년) 즉위로부터 49년째에 둔다면 연도도 438년으로 정확히 일치하게 됩니다 (예전 천황의 즉위가 '일본서기' 연대상 270년이며 이를 120년 끌어내리면 390년이므로).
이것은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지만, 기장족희존 섭정 13년 이후 46년 이전까지의 기간에 '일본서기'에는 '삼국지'를 인용한 것 이외에 아무런 기사도 실려 있지 않으므로, 46년 이후의 기사에 대해 그것이 실제로 기장족희존 섭정 시대의 사건인지에 대한 의심을 할 수 있습니다. '일본서기'의 편찬자들은 다양한 전승을 종합하여 하나의 연대를 수립했는데, 그 중 어떤 전승에는 예전 천황의 재위 기간이 41년을 넘었을 수도 있고, 그 전승에서 칠지도가 예전 천황 52년 (441)에 일본에 들어왔다는 것이 '일본서기'의 통합된 연대에서는 기장족희존 섭정 52년 (372)의 기록으로 잘못 들어갔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조금 덧붙여 보면, 예전 천황이 정월에 즉위했다는 기록이 윤색이고 사실 기장족희존 섭정 69년이 예전 천황 원년일 수도 있는데, 이 경우 일곱 나라 평정은 437년, 칠지도가 들어온 것은 440년이 됩니다. 대내적으로 일곱 나라 평정을 발표한 이후 유송에 육국 제군사를 자칭하는 사신을 보내는 흐름이 더 자연스러우므로 이러한 연대 설정이 바람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저는 칠지도가 438년 일본이 유송에 사신을 보낸 사건에 대한 백제의 반응으로서 439년에 만들어져서 441년 (440년?)에 일본에 도착했다고 보고자 합니다. 만약 칠지도의 명문 첫 부분의 연도가 '4년'이 맞다면, 아마도 신라와의 화친을 기념하여 436년에 백제에서 개원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ㅈㄴ 복잡해서 뭔 말인지는 이해가 잘 안 되는데 재미는 있음
응용력 ㅅㅌㅊ
좋은글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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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 두 번째 글자의 판독이 뚜렷하지 않은데다가 어차피 泰라서 일단 太랑 다른 글자임
泰/太가 연호에 얼마나 흔하게 쓰이는지를 생각하면 그걸 가지고 뭔가를 말하기는 어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