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권2에서는 기림(基臨) 이사금의 이름을 '기립(基立)'이라고도 한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림(臨)'과 '립(立)' 두 한자의 발음은 비슷하므로 동일한 발음의 음차 이표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함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음은 언어마다 경계선이 다르므로 표기에 혼란이 있을 수 있지만, m [ㅁ]과 p [ㅂ]이라는 자음은 수많은 언어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그 경계선 또한 명확합니다. 따라서 m [ㅁ]과 p [ㅂ]이 서로 섞여 쓰인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기림(基臨)'과 '기립(基立)'의 두 표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삼국사기' 지리지의 고대 지명 자료를 면밀하게 검토하면 '림(臨)'이라는 한자가 동사 '보다'의 동명사형 '볼'에 대응하는 표기로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있습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임◯군(臨◯郡)' 또는 '임◯현(臨◯縣)' 꼴의 군현 이름이 9개 나타나는데, 이는 '◯벌'에 해당하는 지명을 어순을 뒤집어 표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뚜렷한 예시는 아래의 4개입니다.
1. 임고군(臨臯郡) ← 절야화군(切也火郡)
2. 임천현(臨川縣) ← 골화소국(骨火小國)
3. 임관군(臨關郡) ← 모화(毛火)
4. 임도현(臨道縣) ← 도림현(道臨縣), 조을포(助乙浦)
위의 3개에서는 임(臨)이 화(火)와 대응하는데, '화(火)'는 물론 '불'이라는 단어에 대응하는 글자로서, 신라 지역에서 '◯벌'의 지명을 표기하는 데 흔하게 쓰였습니다. 한편으로 마지막 '임도현'은 '조(助)'를 '돕다'라는 동사로, '을(乙)'을 동사 어미로 읽으면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돕-을' (현대 한국어 '도울')에 해당하는 *topor [도볼]이라는 발음을 '조을(助乙)'이라고 적기도 하고, 또 *to [도]와 *por [볼]로 나누어 각각 '도(道)'와 '림(臨)'으로 적기도 하다가, '도림(道臨)'의 순서를 뒤집어 한문풍의 '임도(臨道)'로 만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보면 위의 3개 지명에서 첫머리의 '임(臨)'이 끝의 '화(火)'와 대응하는 순서의 역전이 어떻게 성립했는지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기림(基臨)'이라는 인명 또한 유사한 구성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ker[e]-per(e) > ?*kVr(V)-por이라는 고대 한국어를 '기리벌'이라고 나타낸다면, '기리벌'에서 앞부분 '기'의 발음을 따서 '기(基)'라는 한자로 적고, '벌'을 '림(臨)'으로 적은 것이 '기림(基臨)'이 됩니다. 그리고 '기'와 '벌'을 따는 대신 '기'와 '리ㅂ' 부분을 따게 되면 '기립(基立)'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기림(基臨)'을 지명 유래의 인명으로 보게 됩니다. 저는 예전 글에서 '부(夫)'로 끝나는 신라 인명이 사실 '벌'에 해당하는 단어로 끝나는 지명 유래 인명임을 주장한 바 있는데, '기림(基臨)' 역시 그러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기리벌'이라는 지명은 '골벌국(骨伐國)'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기(基)'의 한자음을 *ke로 보고, 전기 고대 한국어의 *e 모음이 후기 고대 한국어에서 *o로 변화하기도 했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제 고대 한국어 재구 체계에서 두 이름은 대응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조분 이사금이 재위 7년 (236)에 골벌국을 복속시켰다고 하므로, 조분 이사금이 이 사건을 기념하여 자신의 아들에게 골벌국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어줬다가, 다시 그 아들이 대를 이어 물려주어 조분 이사금의 손자 또는 증손자로 기록된 기림 이사금에게까지 갔을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마침 기림 이사금의 아버지로 기록된 인물의 이름은 '걸숙(乞淑)'이고, '걸(乞)'은 기림 이사금의 이름 앞부분과 공통되는 *ker의 발음으로 읽을 수 있는 점이 주목을 끕니다.
여담
고대 한국어 표기를 만든 사람들은 단어를 최대한 한자 2글자 이내로 적는 것을 선호했던 것 같습니다. 중국어는 음절 구조가 복잡하므로 2음절로도 다양한 의미를 표현할 수 있지만, 중국어만큼 발음이 다양하지 않은 고대 한국어에서는 단어가 훨씬 긴 경우도 많았을 것인데, 이 경우 표기자들은 음절을 생략하거나, 관례적으로 2음절을 한자 1글자로 나타낼 수 있는 특수한 한자를 사용해서 표기의 길이를 2글자로 줄였습니다. 예컨대 '비류(沸流)'와 '보술(普述)' (고구려 건국 이야기에 등장하는 강의 이름), '대로(對盧)'와 '토졸(吐捽)' (고구려 관직명)을 보면, 원형은 아마도 *posero (> *posor(o)), *tosVra와 같이 3음절이었을 것이지만, '비류', '대로'라는 표기에서는 *posV, *tosV의 2음절을 나타낼 수 있는 한자 '비(沸)', '대(對)'를 사용해 3음절을 한자 2글자로 나타내고, '보술', '토졸'에서는 반대로 -t 말음이 있는 한자 '술(述)', '졸(捽)'을 이용해 제2음절과 제3음절을 합쳐 적었습니다. 어쩌면 '보술', '토졸'의 표기가 성립한 시기에는 제3음절이 실제로 탈락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림 이사금의 이름 원형인 '기리벌'은, '벌'을 '비리(卑離)'라든가 '부리(夫里)'와 같은 표기에서 보듯이 원래 2음절이었다고 추정한다면 *ker[e]-pere로 총 4음절이 됩니다. 따라서 2글자로 표기하고자 한다면 2글자 각각이 2음절씩을 나타낼 수 있도록 표기하지 않는 이상 표기에서 생략되는 음절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결과가 '기림(基臨)'과 '기립(基立)'의 표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좋은 견해임. 3음절어가 당대에 이미 sVrV > sVr 이나 srV 로 인해 2음절화되엇을 수도 있디 않겠어? 다만 '부(夫)'로 끝나는 신라 인명이 사실 '벌'에 해당하는 단어로 끝나는 지명 유래 인명임을 주장>통설이 더 그럴듯함 니 견해 받아들여지려면 증거와 논거가 더 필요. 그리고
통설이 뭔데 더 그럴듯함?
그리고 조분 이사금이 재위 7년 (236)에 골벌국을 복속시켰다고 하므로, 조분 이사금이 이 사건을 기념하여 자신의 아들에게 골벌국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어줬다가, 다시 그 아들이 대를 이어 물려주어 조분 이사금의 손자 또는 증손자로 기록된 기림 이사금에게까지 갔을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 존나 안그럴듯함 비슷한 사례가 하나라도 있나?
보통 인명이 지명 유래인 경우는 출신지이거나 가문의 출자이거나 그 사람이 활약한 지역이거나 하겠지만 왕족은 당연히 수도 출신일 테니 저 경우들에 해당할 수 없음. 그렇다면 뭔가 다른 유래가 있어야겠지.
상식적이지도 않음
석걸숙과 그 아들 기림 이사금, 그리고 혈통은 다르지만 '삼국사기'의 왕계상 그 다음으로 즉위한 흘해 이사금까지 3명의 이름이 모두 *ker (*ə의 존재를 긍정하는 통설을 기준으로 하면 *kər) 발음으로 시작하는 걸 우연으로 치부하기도 애매한데, 뭔가의 이유가 있지 않겠음?
망한 나라 이름을 따서 이름을 붙인다는게 이상한데 역사적으로 그런 케이스가 있나 - dc App
어차피 그 시대 소국은 따로 거창한 국명이라기보다는 그냥 지명이니까.
예를 들어 '삼국사기' 권32를 보면 신라에서 큰 국가적 제사를 지낸 3산의 명칭으로도 골화가 멀쩡하게 등장함. 신라에 편입되고 나서도 골화라는 지명이 그대로 쓰였다는 거지.
하지만 이 케이스는 지명 이름이 아니라 사람 이름인걸 - dc App
사물국이 망하고도 사물현으로 사용됐고 대가야가 망하고도 대가야현이 됐지만 사람 이름에 가야나 사물 등이 들어가진 않잖어 - dc App
우선 논점을 2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필요가 있는데, '지명을 인명으로 쓸 수 있는가'와 '자국이 멸망시킨 망국의 지명을 인명으로 쓸 수 있는가'임
전자는 은근히 예가 많은데, '거칠부' 같은 부(夫) 계열 인명은 전부 지명 유래임. 이건 '일본서기'에서 해당 이름들의 마지막 부분에 '촌읍'의 고대 한국어에 대한 일본서기 훈본의 훈과 마찬가지로 pure의 발음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비교적 명확함. 다만 6세기쯤으로 가면 인명에 대해서는 같은 pure라는 단어라도 표기를 벌(伐) 따위가 아닌 부(夫)로 했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임.
더 이른 시기로 가면 삼척성주 실직 같은 예도 있고 ('삼척'의 이표기가 '실직'), 그 외에도 일본서기에 기록된 인명을 보면 해(奚)로 끝나는 고대 한국어 고유명사가 많이 있는데 인명/지명에 모두 분포하고 있음. 구체적으로는 '신이해(辛已奚)'라는 이름을 보면 발음상 가야 사이기국(斯二岐國)에 대응하는 등 실제로 해(奚) 계열로 표기된 인명과 대응하는 지명을 찾을 수 있음.
후자의 논점을 본다면 골벌국은 경주 바로 옆동네라 딱히 이질적이라는 인식이 없었을 것이고, 지명으로 인명을 삼는 문화가 있었다면 (예컨대) 골벌국을 복속시킨 왕이 그 후 얻은 자식에게 골벌국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짓는 정도는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라고 생각함. 딱히 연고가 없더라도 고대 일본의 소가 일족을 보면 자식 이름에 고구려니 가야니 하는 한반도 국명을 따서 지은 경우도 있는데, 하물며 본인의 치적을 기념하는 이름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음
소가씨의 가라코 등은 엄마 혈통을 의미하는 거 아님? 논문에서도 그렇게 본드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