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부(喙部)', '사훼부(沙喙部)'와 같이 금석문에 기록된 신라 6부 명칭에 나타나는 '훼(喙)'라는 글자가 있습니다. 이 글자는 '삼국사기' 등에서는 '량(梁)'으로 대체되는데, '량(梁)'은 뜻으로 읽을 때 '돌'과 같은 발음이라는 점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훼(喙)'의 발음은 '돌'과 비슷하지 않으므로, 기존 연구에서는 이 글자를 주로 '탁(啄)'과 같은 것으로 보아 '탁부(啄部)', '사탁부(沙啄部)'로 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탁(啄)' 역시 '돌'과는 명백하게 다른 발음입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서 '압독국(押督國)'과 '압량소국(押梁小國)'이 동일한 지명임이 명시적으로 제시되기는 하지만, '독(督)'이 '량(梁)'과 통한다고 해서 '탁(啄)'이 '량(梁)'과 통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비록 '독(督)'과 '탁(啄)'의 당시 중국어 발음이 유사하기는 하지만, '압량(押梁)'이라는 표기에서 '압(押)'과 '량(梁)'이 모두 뜻으로 쓰였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독(督)'이 음차 표기자가 아닐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이런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신라가 초창기에 합병한 다른 소국의 이름은 '골벌(骨伐)'이나 '음즙벌(音汁伐)'과 같이 '벌(伐)'로 끝나는 경우가 많으므로, 압량소국의 이름 역시 원래 '압량벌(押梁伐)'에 해당하는 이름이었다면, 뒷부분의 '량(梁)' [돌]과 '벌(伐)' [볼]이 '돌보다'의 동명사형 '돌볼'과 발음이 같아져서 "살피다"의 뜻을 가진 한자 '독(督)'으로 표기되기에 이르렀을 수 있습니다. 소국의 이름에서 끝의 '벌(伐)'이 생략될 수 있다는 점은 음즙벌국의 이름이 '삼국유사'에 '음질국(音質國)'으로 실려 있다는 사실로부터 짐작할 수 있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질(質)'이 '즙벌(汁伐)'과 일치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으므로 '벌(伐)'이 생략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담이지만 이 대응을 통해 '즙(汁)'이 사실 삼수변에 '칠(七)'을 쓰는 글자 '칠(⿰氵七)'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칠(柒)'의 신라식 약자였다고 생각됩니다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에 나타나는 거칠부의 이름 표기에 이와 유사한 ⿰木七의 약자가 사용된 점이 참고가 됩니다).
아무튼 그렇다면 신라 사람들이 '훼(喙)'를 표기에 사용한 의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답은 광개토왕릉비에 있습니다. 광개토왕릉비문의 영락 6년 기사에는 광개토왕이 백제를 공격했을 때 함락시킨 성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는데, 그 중 '전성(瑑城)'이 있는 것입니다. '돌'의 고대 한국어 표기자로 유명한 '진(珍)'이 있는데, '진(珍)' trin [딘]과 '전(瑑)' drjwenX [뒌]의 당시 한자음을 비교할 때 오히려 '진(珍)'보다 '전(瑑)'이 '돌'의 발음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간에 -w- 개음이 들어가는 것 때문에 굉장히 괴상한 발음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4세기 고대 한국어 표기법에 있어서 의외로 흔한 특징이었는데, 예컨대 광개토왕릉비문에서 언급되는 '미구루압로(味仇婁鴨盧)'의 '미(味)'나 백제 제17대 아신왕의 이름에 쓰인 '휘(暉)'라는 글자가 각각 당시에 [뭬], [훼]에 가까운 발음이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고대 한국어에는 [ㅞ]와 같은 발음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이것은 당시 중국어에서 모음 [ㅔ]의 발음이 [ㅖ]로 변화하고 있었던 데 반해 고대 한국어의 [ㅔ] 모음은 [ㅖ]가 아닌 [ㅔ]의 발음임을 과장하여 [ㅞ]의 표기로 나타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개음 -w-의 존재가 경구개음화에 저항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황을 고려하면 '전성(瑑城)'의 '전(瑑)'은 고대 한국어 *ter [델]의 발음을 나타내기 위해 선택된 음차 표기자라고 저는 판단하며, 이후 고대 한국어의 *e [ㅔ] 모음이 *o [ㅗ]로 변화함에 따라 *tor [돌]에 합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전(瑑)'이 신라식으로 변형된 것이 바로 '훼(喙)'가 됩니다. 위에서 언급한 '칠(⿰氵七)'과 '칠(⿰木七)'의 사례에서 보듯이, 음차 표기자에서 성부가 명확하다면 부수는 바꾸어 쓰이기도 했고, '훼(喙)'의 '구(口)' 부분은 음차자라는 사실을 나타내기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라식 표기 '훼(喙)'의 기원이 고구려식 표기 '전(瑑)'에 있다는 주장은 매우 과격하고 파괴적이지만, 몇 가지 뚜렷한 장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삼국사기'에 나타나는 고구려 오부 중 '연나부(椽那部)'의 표기 양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삼국사기'에는 연나부에 대해 '연나(椽那)' (2회, 椽氏를 합치면 4회), '연나(掾那)' (2회), '제나(提那)' (1회) 등의 표기가 나타나는데, 만약 '연(椽)'이 '연(掾)'과 같은 발음이라고 생각한다면 단순히 '제(提)'를 '연(掾)'의 오자로 보면 될 것 같지만,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연(椽)'의 원래 중국어 발음은 '연(掾)'과는 달라서, 실제로는 '전(瑑)'과 성조를 제외하면 같은 drjwen [뒌]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연(掾)'을 *ter [델] 발음을 반영하는 '전(椽/瑑)'의 오자로 보고, *te [데]의 발음을 나타낼 수 있는 음차자 '제(提)'를 오자가 아닌 실제의 이표기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둘째는 중국어 발음이 trin [딘]이었던 '진(珍)'이 어떻게 고대 한국어에서 '돌' 발음의 표기자로 쓰이게 되었는가의 문제입니다. 이 또한 많은 연구자들을 고생시켜 온 난제이지만, '전(瑑)'의 자형이 지나치게 복잡하므로 백제에서 이것을 축약해 '진(珍)'으로 썼다고 한다면 해결됩니다 (광개토왕릉비에 이미 보이고 있으므로 축약 자체의 연원도 오래된 것 같습니다). '진(珍)'이라는 글자가 선택된 이유로는 본음이 '전'인 '진(殄)'의 영향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만, 그냥 특별한 이유 없이 구슬옥변을 공유하는 흔한 글자로 대체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요약
1. 신라 금석문에 나타나는 '돌'로 읽는 '훼(喙)'의 정체는 광개토왕릉비에 쓰인 음차 표기자 '전(瑑)'의 변형이 아닐까?
2. 만약 '전(瑑)'이 '돌' 발음의 음차 표기자로 쓰였다면, 같은 발음의 더 유명한 '진(珍)'도 '전(瑑)'의 변형이지 않을까?
3. 여담으로 '음즙벌국(音汁伐國)'의 '즙(汁)'은 '질(質)'과 통하므로 사실 '칠(⿰氵七)'이어야 한다.
재구된 어휘 고대국어가 많냐 pie가 많냐
압도적으로 후자 아니겠냐
어떻게 몇천년 차이가 나노 샹 ㅋㅋ 고려시대 한국어는 사정이 좀 나음?
계림유사도 있고 고려사도, 이두 표기된 글도 있으니까 사정이 좀 낫지. 근데 애초에 원시인구어랑 비비기는 민망한 수준 아닌가
고려시대도 별거 없지 않냐 거기도 향가 몇개하고 계림유사 말고는 구결 조사들밖에 없을텐데
고대 한국어보다야 훨 낫지
거기서 거기 아니냐 양도 둘이 엇비슷해 보이던데 고대 한국어도 일본서기 있고 향가 있고 고려시대도 계림유사 있고 향가 있고
향악구급방이나 다른 문헌, 가요 포함하면 고려가 더 많지 않음?
흠... 디시 생각해 보니까 큰 차이는 없을 거 같네
자료 문제겠냐 고대 한국어는 인구어족 같은 비교재구 자체가 불가능한데
개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