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국립중앙박물관은 금관총에서 출토된 환두대도에서 '이사지왕(尒斯智王)'의 명문이 새롭게 발견되었음을 발표합니다. 5세기경, 소위 '마립간 시대'의 신라 고분으로서는 드물게 피장자의 이름이 확인된 사례입니다. 그러나 '이사지왕'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설명이 제시되지 못했습니다.


역사언어학은 잘 활용한다면 매우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이 글에서는 '이사지왕'의 정체를 뚜렷하고 의심의 여지 없는 논리적 방법으로 밝혀내고자 합니다. 이 글의 핵심 내용은 고대 한국어 표기 체계의 시대적 층위화(stratification)와 고대 일본어 표기와의 연결점을 주제로 하는 작성 중 논문 초고로부터 요약되었으며, '이사지왕'의 사례에 대해서는 YouTube 채널 '향문천 – 글과 울림의 샘'을 운영하시는 향문천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1) 지명에서 찾는 마립간의 이름


5세기경의 신라 국왕이라고 하면 '삼국사기' 권3에 그 재위 기간의 기록이 실려있는 5명으로 후보를 추려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삼국유사'에 '마립간' 칭호를 사용한 것으로 기록된 5명이기도 합니다.


제17대 내물(奈勿) 또는 나밀(那密)

제18대 실성(實聖), 실주(實主), 또는 보금(寶金)

제19대 눌지(訥祇) 또는 내지(內只)

제20대 자비(慈悲)

제21대 소지(炤知) 또는 비처(毗處)


이들 이름 중 '이사지(尒斯智)', 또는 신라 인명에 흔히 나타나는 접미사 '지(智)'를 제외한 '이사(尒斯)'와 일치하는 발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명 자료를 참고해 살펴보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慈仁縣 本奴斯火縣 景德王改名 今因之

"자인현(慈仁縣)은 원래 노사화현(奴斯火縣)인데, 경덕왕이 [자인현으로] 이름을 고쳤다. 지금 [고려 시대]도 그 이름을 사용한다." ('삼국사기' 권34 獐山郡)


'노사(奴斯)'의 전기 중세 중국어(Early Middle Chinese) 한자음은 nu sje [노셰]인데, 이것을 단순히 고대 한국어 한자음으로 옮기면 *nose [노세] 정도가 될 것입니다. 한편, '이사(尒斯)'의 '이(尒)'는 전기 중세 중국어 시대까지는 역시 고대 한국어 *n [ㄴ]에 대응하는 ny-로 시작하는 발음이었으며, '이사(尒斯)'는 nyeX sje [녜셰], 고대 한국어 한자음으로는 *nese [네세]로 적어볼 수 있습니다.


노사화현(奴斯火縣)이 "자비롭다"라는 뜻을 가진 '자인(慈仁)'이라는 이름으로 개칭되었다는 사실에서 '노사(奴斯)'의 발음, 즉 고대 한국어 *nose [노세]가 "자비롭다"라는 의미를 가졌음을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사료에 기록되지 않은 자비 마립간의 고대 한국어 이름이 바로 이 단어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제1음절의 모음 *e [ㅔ]와 *o [ㅗ]의 차이가 무시될 수 있다면, 자비 마립간의 이름은 '이사지왕'의 '이사(尒斯)'와 같은 것이 됩니다.


이제 문제는 *e [ㅔ]와 *o [ㅗ]의 차이를 무시해도 되는지로 옮겨집니다.


(2) 고대 한국어의 모음 이동과 그 증거


언어는 변화합니다. 흔히 '고대 한국어'라고 말하는 시대 구분은 삼국 시대 전체, 그리고 많은 학자들에게 있어서는 통일 신라 시대의 언어까지를 광범위하게 포괄하는 것입니다. 그 긴 기간 중에 언어 변화가 없었을 리는 없습니다. 예컨대 '삼국지'에 기록된 삼한 소국명과 고대 한국어 지명 연구의 기준이 되는 경덕왕의 지명 개칭 사이에는 약 500년의 간극이 존재하는데, 현대 한국어와 500년 전의 한국어를 비교하면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의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고대 한국어 시기에, 구체적으로는 서기 5세기를 전후하여 *e [ㅔ] 모음이 다수 *o [ㅗ] 또는 *i [ㅣ]로 합류하는 음운 변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증거는 '물[水]', '벌[原]'에 해당하는 고대 한국어 단어로부터 쉽게 확인됩니다.


[예시 1] '물'에 해당하는 단어의 흔한 초기 표기자는 '매(買)'이며, 이 글자의 한자음은 고대 중국어 *mˤrajʔ > 후기 고대 중국어 *mˤrɛʔ > 전기 중세 중국어 meaX [메]와 같이 변화해 왔으므로, 그 모음이 대체로 *e [ㅔ]에 가장 가깝습니다. 따라서 '매(買)'로 표기된 전기 고대 한국어 단어의 발음은 *mer [멜]로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러나 후기의 표기자로는 '물(勿)'이 나타나고, 이 한자의 전기 중세 중국어 발음은 mjut인데, 같은 모음을 공유하는 다른 한자인 '문(文)'의 경우 '뫼[山]'에 해당하는 단어를 표기하는 데 사용되었고, 후기 중세 한국어 (15세기)에서 '뫼'의 모음이 /o/ [ㅗ]일뿐더러 고대 일본어에서도 '뫼'에 해당하는 고대 한국어 단어를 /o/ [ㅗ]의 모음으로 받아들인 흔적이 나타나므로, '물' 역시 후기 고대 한국어에서는 *mor [몰]로 발음되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e [ㅔ]에서 *o [ㅗ]로의 모음 변화에 의한 결과입니다.


[예시 2] '벌'에 해당하는 단어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마한 소국명에 '비리(卑離)'로 나타나는데, 이들은 고대 중국어 *pe raj > 후기 고대 중국어 *pe re > 전기 중세 중국어 pjie lje [볘례]와 같이 변화해 왔으므로 두 음절의 모음이 모두 *e [ㅔ]에 가장 가깝습니다. 따라서 '비리(卑離)'라는 표기가 쓰여진 3세기 당시의 전기 고대 한국어 발음은 *pere [베레]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일본서기' 권17 남대적 천황 8년 (514) 3월 기사에 묘사되는 대가야의 신라 침략의 '박략촌읍(剝掠村邑)'이라는 구절에서 '촌읍(村邑)'의 발음이 フレ pure로 훈주되어 있으며, 이것이 한반도 관련 기사에 나타난 특수한 발음이라는 점에 착안해 고대 한국어에서 '비리(卑離)', '부리(夫里)', '벌(伐)'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된 단어를 기록한 것으로 보고, 그 당시 발음이 *pore [보레] 또는 *pure [부레]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8세기의 고대 일본어 /u/ [ㅜ]는 그 이전의 *o [ㅗ] 또는 *u [ㅜ]에서 유래하므로). 그렇다면 이 역시 *pere [베레]에서 *pore [보레]로 변화한 발음을 반영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사실 이러한 예시는 끝도 없이 들 수 있습니다만 가장 알기 쉬운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예시 3] 백제 멸망 이후 웅진도독부는 구 백제의 지명을 중국식의 2글자 표기로 바꾸는데, 그 기록이 '삼국사기' 권37에 실려 있습니다. 여기서 '지마마지(只馬馬知)'를 노산주(魯山州)에 속하게 하여 '지모현(支牟縣)'으로 개칭하였다고 되어 있는데, 이는 현재의 전라북도 익산시에 속하는 지역이며 '관세음 응험기'에는 '지모밀지(枳慕蜜地)'라는 표기로도 나타납니다. 이 표기들을 비교하면 '지마마지(只馬馬知)'에 두 차례 쓰인 '마(馬)'라는 글자가 '지모밀지(枳慕蜜地)'에서는 '모(慕)'와 '밀(蜜)'의 완전히 다른 발음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만약 '마(馬)'의 고대 한국어 한자음이 *ma [마]였다면 이것이 '밀(蜜)'과 같은 *mi [미]의 모음까지 변화했다고 보는 데는 무리가 있으므로, 백제의 영향을 받았다고 여겨지고 있는 고대 일본어의 소위 '오음(呉音)' 층에서 '마(馬)'를 më [메]로 읽는 점을 참고하여 고대 한국어에서도 '마(馬)'가 *me [메]였다고 생각한다면 '지마마지(只馬馬知)'와 '지모밀지(枳慕蜜地)'의 대응 관계는 바로 *e [ㅔ]에서 *o [ㅗ] 또는 *i [ㅣ]의 모음 변화에 따른 결과가 됩니다. '지마마지(只馬馬知)'의 뒷부분 '마지(馬知)'는 '삼국사기' 지리지에 5차례 나타나는 지명 접미사 '미지(彌知)'와 대응한다는 점에서도 '마(馬)'의 발음이 *me [메]였다는 사실은 명확합니다.


한편, 위에 제시된 단어들은 모두 *e [ㅔ]가 *m [ㅁ] 또는 *p [ㅂ]의 자음에 뒤따를 때의 예시이므로, '이사지왕'의 경우와 같은 *n [ㄴ] 뒤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문 역시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시 4] '삼국사기' 권34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尒同兮縣 今未詳

"이동혜현(尒同兮縣)은 지금은 알 수 없다."


軍威縣 本奴同覔縣 一云如豆覔 景德王改名 今因之

"군위현(軍威縣)은 원래 노동멱현(奴同覔縣) 또는 여두멱현(如豆覔縣)인데, 경덕왕이 [군위현으로] 이름을 고쳤다. 지금 [고려 시대]도 그 이름을 사용한다." ('삼국사기' 권34 嵩善郡)


'삼국사기'의 편찬자는 이동혜현이 어디인지 몰랐지만,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동혜현은 그 바로 뒤에 나오는 노동멱현의 다른 표기입니다. 이들 표기가 반영하는 원래의 전기 고대 한국어 발음은 *netome-ke [네도메게]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의 원래 표기가 이동혜(尒同兮) 또는 여두멱(如豆覔)이고, *e [ㅔ] 모음이 *o [ㅗ]로 변화한 이후의 표기가 노동멱(奴同覔)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尒)'와 '노(奴)'의 두 가지 글자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발음 변화를 반영하여 같은 이름의 표기에 사용된다는 것이 실증됩니다. '이사지왕'의 '이사(尒斯)'와 '노사화현'의 '노사(奴斯)'에서 보는 바로 그 글자들입니다.


이동혜현과 노동멱현이 같다는 사실은 '삼국사기' 권9 경덕왕 16년 (757) 12월 기사에 상주에 10군 30현이 있다고 기록하는 점에서도 시사됩니다. 실제로 '삼국사기' 권34에서 상주의 속현을 세어보면 모두 31개가 있는데, 이렇게 개수가 다른 것은 '삼국사기'의 편찬자가 이동혜현이 군위현의 옛 이름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함을 모르고 별개로 기재했기 때문입니다.


(3) 결론


고대 한국어에는 *e [ㅔ]에서 *o [ㅗ] 또는 *i [ㅣ]로의 모음 변화 현상이 존재했고, 이에 따라 *ne [네]라는 발음이 *no [노]로 변화한 경우, 변화 전의 *ne [네] 발음은 당시 중국어에서 njeX [녜]였던 '이(尒)', 변화 후의 *no [노] 발음은 당시 중국어에서 nu [노]였던 '노(奴)'로 쓰일 수 있었습니다. 이 모음 변화는 고대 한국어의 다양한 단어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며, 그 중에서도 '이(尒)'와 '노(奴)'의 이표기 현상은 상주의 31번째 속현으로 잘못 기록된 이동혜현(尒同兮縣)의 경우를 통해 실제로 확인됩니다.


노사화현(奴斯火縣)이 자인현(慈仁縣)으로 개칭된 데서 "자비롭다"라는 뜻을 가진 후기 고대 한국어 *nose [노세]의 존재를 알 수 있습니다. 이사지왕(尒斯智王)의 '이사(尒斯)'는 '노사(奴斯)'로 기록된 *nose [노세]의 전기 고대 한국어 형태인 *nese [네세]를 반영하는 것으로, 사료에 기록되지 않은 자비 마립간의 고대 한국어 이름입니다. 따라서 금관총의 피장자인 이사지왕은 바로 자비 마립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이 *nese [네세]라는 발음은 '이사금(尼師今)'의 앞부분 '이사(尼師)'와도 일치하는데, 이것이 "자비롭다"라는 뜻을 가진다면 '삼국사기' 권1의 유리 이사금 즉위 기사에 등장하는 전설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원래 '이사금'이라는 말은 "자비로운 지배자"라는 뜻이었지만, "자비롭다"를 뜻하는 단어에서 앞서 언급한 모음 변화가 일어난 것 때문에 8세기의 인물인 김대문은 '이사금'이라는 단어의 앞부분이 "자비롭다"와 같은 단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 대신 발음이 같은 단어인 '이빨'을 통해 '이사금'의 의미를 설명하고자 한 것입니다.


고대 한국어는 흔히 미지의 영역으로 취급되지만, 남아있는 자료를 체계적으로 검토하면 이와 같이 사료에 명시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다양한 사실들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언어학적 연구가 앞으로도 고대 한국사나 일본사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사지왕'의 표기를 제 고대 한국어 재구 체계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을 제안해 주신 향문천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