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군이 존재하던 시절에 대방군의 조율 하에 일본이 삼한 땅을 거쳐서 입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입장에서야 최대한 여러 이민족이 조공을 바치는 게 자기네 세계관에서 좋으니까 그런 조율을 했겠지만
한반도 국가는 일본이 중국과 교류하는 걸 도와줌으로써 자기네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으면 도와줄 이유가 없으니
일본으로서는 한반도를 통해 중국과 교역해야 하는 입장에서 한반도 국가에 자신들의 가치를 입증할 필요가 생김
기술적으로 특출난 우위가 없는 입장에서 뭘 할 수 있는가 하면 결국 용병 수출이겠지
한국이 베트남 전쟁 때 그랬던 것처럼
일본의 입장에서는 신라는 일단 마음에 안 들어
이건 기본적인 원교근공의 이유도 있겠지만
진한 시절부터 사로국을 중심으로 단결되어 있던 체제라서 외부 세력이 끼어들기가 어려우니까
일본이 좋아하는 건 일본인 용병을 필요로 하는 가야 소국들이 존재하는 상황
그리고 지방 귀족을 견제하기 위해 외부 세력을 끌어들이고 싶은 백제 왕가와 중앙 귀족이겠지
가야 소국들은 백제와 신라 사이에 끼어서 자력 국방이 불가능하지만
교역에 유리한 해안가에 자리잡고 있었으니 거점 제공의 대가로 용병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 거고
일본으로서는 인구는 받쳐주니까 병력을 투사하면 가야 소국 한두 개는 점령할 수 있더라도
그런 짓을 했다가 그 이후 백제나 신라에서 견제당할 걸 생각하면 점령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고
용병을 보내주고 교역에 필요한 거점을 얻는 걸로 당시에는 만족했겠지만
자존심을 위해 나중에는 점령한 것처럼 허세를 부리고 싶겠지
백제는 새로 획득한 남쪽 지방을 재지 세력이 다스리게 하는 대신 일본인 용병 장군을 앉혀놓으면
기존 재지 세력을 약화시킬 수 있어서 왕권 강화에 수월하고
나중에 무슨 일이 생겨도 어차피 외부 세력이니 쫓아낼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있었겠지
아무튼 용병이란 전쟁이 있어야 수요가 생기기 때문에
일본은 가야나 백제의 멸망을 원하지 않았고
실제로도 백제 부흥을 위해 상당히 노력을 하지만 실패한데다가
때마침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도 중국과 왕래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에
그냥 통일신라와 담을 쌓아버린게 8세기 이후
일본 입장에서는 한반도 국가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났으니 아무튼 잘 기다려서 성공한 셈인데
오히려 가야가 존속할 때 성급하게 군사적 진출을 시도했다면
역으로 한반도 국가들의 큐슈 진출 시도를 유발해서
진짜로 미래에 중국과 직접 교역할 수 있는 교역로가 막히는 사태를 초래하는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야 소국을 점령할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아무래도 현명했다고 생각됨
고대 특성상 바다 건너서 영토 점령 한다고 해도 현지 지휘관이 따로 살림 차려버려서 본국이랑 별개의 국가가 되어버림 그리고 당시 일본 내 정치체가 한둘이 아니라 뭉뚱그려서 일본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기엔 부적절한 게 일례로 신라 초에 금성까지 쳐들어간 일본 정치체는 혼슈 남쪽의 기비국이 주도했고 이것이 그대로 칸사이의 야마토로 이어졌지만 반대로 큐슈의 츠쿠시국, 히국, 도요국은 신라랑 사이가 좋았음 즉, 당시 일본도 칸사이vs큐슈 구도였다는 거 이게 통일 신라까지 이어져서 신라구가 큐슈 호족이랑 작당하고 세토 내해 돌면서 약탈했던 거고
일본버전의 읍성국가들의 정보는 어디서 보냐
ㄴ 한꺼번에 정리한 자료는 모르겠고 국내나 일본 논문에서 띄엄띄엄 나온 거 하나씩 찾음
근데 8세기 이후에도 교류는 했고 너무 많은 일이 생략되었는데
예를 들어 신라인이 일본에 가서 귀족이 된다든가 일본인이 신라에서 관료가 된다든가 하는 인적 교환이 없잖아
단순한 교역관계만 가지고는 (역사언어학을 하는 입장에서는) 별로 재미가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