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느슨하게 연결되는 여러 주제들을 잡다하게 다룹니다. 먼저 '토함산(吐含山)'이라는 지명의 어원, 그리고 흔히 '반도 일본어'의 흔적으로 여겨지는 지명 접미사 '모라(牟羅)'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1) 토함산의 비밀
토함산의 '함(含)'이라는 글자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먼저 '삼국사기' 권34에 있는 아래의 기록을 살펴봅시다. 이 기록은 토함산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만, 신라에서 사용된 고대 한국어 표기법에서 '함(含)'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알아내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됩니다.
天嶺郡 本速含郡 景徳王改名 今咸陽郡 領縣二
"천령군(天嶺郡)은 원래 속함군(速含郡)인데, 경덕왕이 [천령군으로] 이름을 고쳤다. 지금 [고려 시대]은 함양군(咸陽郡)이다. 속현은 2개이다."
雲峯縣 本母山縣 或云阿英城 或云阿莫城 景徳王改名 今因之
"운봉현(雲峯縣)은 원래 모산현(母山縣)인데, 아영성(阿英城) 또는 아막성(阿莫城)이라고도 한다. 경덕왕이 [운봉현으로] 이름을 고쳤다. 지금 [고려 시대]도 그 이름을 사용한다."
利安縣 本馬利縣 景徳王改名 今因之
"이안현(利安縣)은 원래 마리현(馬利縣)인데, 경덕왕이 [이안현으로] 이름을 고쳤다. 지금 [고려 시대]도 그 이름을 사용한다."
이들 이름 가운데 가장 그 해석이 용이한 것은 '모산현'입니다. 다른 이름으로 제시된 '아영(阿英)'과 '아막(阿莫)'에서 '영(英)'과 '막(莫)'은 모양이 비슷한 반면 발음이나 의미에는 연관이 없으므로, '영(英)'을 '막(莫)'의 오기로 보고, 후기 중세 한국어 (15세기)에서 암컷을 뜻하는 amh의 고대 한국어 형태로서 *amakV [아마ㄱ]를 상정할 수 있습니다.
모산현의 개명 후 이름인 '운봉(雲峯)' ("구름 봉우리")과 속함군의 개명 후 이름인 '천령(天嶺)' ("하늘 고개")이 하나의 쌍을 이룬다는 점에서 이들이 원래 이름 또한 암수 한 쌍으로 여겨진 두 개의 산을 지칭하는 이름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운봉현의 원래 이름이 "암컷"의 고대 한국어라면, 천령군의 원래 이름은 "수컷"의 고대 한국어였을 것인데, 실제로 '속함(速含)'이라는 이름의 앞부분은 딱 보기만 해도 "수컷"의 후기 중세 한국어 swuh와 대응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 단어의 고대 한국어 형태는 *sokV [소ㄱ]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는 모든 것이 아주 깔끔합니다. '아막(阿莫)'과 '속(速)'이 각각 amh < *amakV "암"과 swuh < *sokV "수"에 대응하고, 경덕왕 때 지명을 중국식으로 고치면서 산에 성별을 부여하는 토속적 관념을 후진적으로 여겨 '천령'이니 '운봉'이니 하는 이름으로 바꾼 것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문제는 '함(含)'이 남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함(含)'을 앞부분의 마지막 음절 *...ke [게]와 뒷부분 *more [모레]가 결합한 생략 표기로 보는 것입니다. 즉, "수컷"에 해당하는 고대 한국어를 *soke [소게]로 보고, 이 뒤에 "산"을 뜻하는 *more [모레]가 이어져 실제의 지명이 *soke-more [소게모레]였다고 하면, 여기서 표기상의 편의를 위해 *sokem [소겜]의 발음만을 딴 형태가 '속함(速含)'이 됩니다. 이러한 생략 표기는 실제로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삼한 소국명 표기에서도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신라에서도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토함산(吐含山)은 '삼국사기'에 따르면 탈해 이사금과 관련해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 장소이기도 하고, '삼국유사'에는 탈해 이사금이 문무왕의 꿈에 나타나 자신의 뼈를 토함산에 안치하라고 했다는 전설이 실려 있습니다. 위의 생략 표기법을 똑같이 적용한다면 '토함산(吐含山)'은 탈해 이사금의 이름인 '토해(吐解)'의 이름 뒤에 "산"을 뜻하는 *more [모레]가 이어진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토함산(吐含山)'이라는 이름 자체가 "탈해 산"이라는 뜻인 것입니다.
(2) 삼한 국명의 생략 표기법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삼한 소국명에 자주 등장하는 지명 접미사로 '비리(卑離)'와 '모로(牟盧)'가 있습니다. 사실 삼한 소국명만을 보면 '비리(卑離)'가 6차례 접미사로 쓰이는 반면에 '모로(牟盧)'는 단 1차례밖에 나타나지 않지만, '모로(牟盧)'와 발음상 유사한 '모로(模盧)'와 '모루(牟婁)'가 광개토왕릉비에 나타나며, 또한 이후 '일본서기'에 발음으로 표기된 한반도 지명에도 '모라(牟羅)'가 7차례 나타난다는 점에서 이 지명 접미사의 존재는 확고하게 설정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삼한 소국명 표기를 잘 살펴보면, 2글자로 표기된 소국명이 자음으로 끝나는 경우 반드시 *-n, *-ŋ, *-m, *-p 중 하나로 끝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n, *-ŋ은 고대 한국어에서 빈도가 높은 자음 *n, *r 등과 대응할 수 있지만, *m과 *p는 후대의 지명 표기에서는 이 위치에서 특별히 빈도가 높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k와 비교할 때). 그런데 *-m, *-p로 끝나는 이름을 보면 '노람국(怒藍國)', '고랍국(古臘國)', '지침국(支侵國)', '여담국(如湛國)'인데, '람(藍)', '랍(臘)'은 삼한 소국명에 매우 흔한 '로(盧)'의 후기 고대 중국어 발음 *rˤa [라]에 *-m, *-p가 덧붙은 발음입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람(藍)', '랍(臘)'은 각각 '로(盧)' + '모로(牟盧)'와 '로(盧)' + '비리(卑離)'의 생략 표기임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토함산'에 사용된 '함(含)'의 생략 표기는 바로 '람(藍)', '담(湛)' 등에 사용된 표기법의 후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탈해 이사금은 대방군의 전성기에 해당하는 3세기 중반에 신라를 다스렸던 조분 이사금, 첨해 이사금 (모두 석씨)의 선조이며, '조분'과 '첨해'라는 이름 자체도 대방군식 표기를 따르고 있으므로, 탈해 이사금과 관련이 깊은 산인 토함산의 명칭에 삼한 소국명과 같은 대방군식 표기가 사용되었다는 설명은 다소 만족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면 석(昔)이라는 성씨 자체도 '삼국지'에 묘사되는 변진의 지배자 명칭 '험측(險側)', '읍차(邑借)'의 '측(側)', '차(借)'와 그 발음이 유사하며, 탈해 이사금에 대해서는 다파나국(多婆那國)에서 태어나 금관국(金官國)을 거쳐 진한으로 들어왔다는 설화가 '삼국사기'에 전해지는데, '다파나(多婆那)'라는 이름은 대방군을 떠오르게 합니다. 어쩌면 석씨 세력 자체가 낙랑군 남부 (훗날의 대방군이 되는)에서 변진을 거쳐 신라로 들어온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3) 모라(牟羅)라는 접미사
여기서는 편의상 '모로(牟盧)', '모로(模盧)', '모루(牟婁)', '모라(牟羅)' 등의 통칭을 '모라(牟羅)'로 삼겠습니다.
기존 연구에서 '모라(牟羅)'는 흔히 고대 일본어 mura "마을" (< 일본·류큐 조어 *mura)과 비교되어 왔습니다. 한국어사에 별로 관심이 없는 어떤 역사학자들은 이 단어를 한국어의 '마을'과 비교하기도 했지만, 후기 중세 한국어에서 '마을'은 ㅿ z를 가진다는 점을 보면 (후기 중세 한국어 mozolh) 그러한 비교는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굳이 한국어에 관련이 있는 단어가 있다고 본다면 "집단"을 뜻하는 '무리'일 것입니다). 따라서 기존 연구에서 주로 이 단어를 고대 일본어와 연결하여 이해해 온 것은 매우 상식적인 선택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저는 이 단어가 사실 "마을"이 아니라 "산"을 의미하는 고대 한국어 *more [모레]의 발음을 적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일본서기' 권17 남대적 24년 (530) 9월 기사에 등장하는 '구례모라성(久禮牟羅城)'에 대응하는 '구례산(久禮山)'이라는 명칭이 '일본서기' 권19에 나타나는 점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삼한 소국명에서 이 단어가 '비리(卑離)'와 함께 접미사적 용법으로 쓰인다는 점에서 '비리(卑離)'가 "벌"에 해당한다면 '모라(牟羅)' 역시 지형을 나타내는 "산"에 해당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먼저 모음 대응입니다. 그러나 '삼국사기' 권32에 기록된 '토산량문(吐山良門)'이라는 성문 명칭에서는 '산(山)'을 흔히 *ra [라]로 읽는 '량(良)'으로 받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는 *more [모레]에 대해 *mora [모라]처럼 보이는 표기도 존재했을 수 있지 않은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고대 한국어의 모음 *e [ㅔ]의 표기에 있어 어느 정도의 혼란이 줄곧 있어 왔던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동일한 지명 요소 *nare [나레]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마한 소국명 '여래비리국(如來卑離國)'과 '여담국(如湛國)'의 이름에서는 고대 한국어 *e [ㅔ]가 후기 고대 중국어 *-ˤə [ㅓ] 모음으로서 기록된 반면 '노람국(怒藍國)'에서는 *-ˤa [ㅏ]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다른 문제는 신라에서 성을 '건모라(健牟羅)'라고 한다는 '양서' 권54의 기록입니다 (같은 기록이 '남사' 권79에도 실려 있습니다). 전통적인 학설은 '건모라(健牟羅)'를 "큰 마을"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만, 이 기록에서는 신라 6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6개의 '탁평(啄評)'이 모두 '건모라(健牟羅)' 안에 위치한다고 서술하고 있는 점에서, 6부의 총합을 과연 "큰 마을"이라고 불렀을지에 대한 의문이 있습니다. 앞으로 다양한 가능성이 검토되어야 할 문제입니다만, 어쩌면 신라 금석문에서 나타나는 '대중(大衆)'에 해당하는 고유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신라 6부의 귀족들을 일컫는 '대중(大衆)'이 "큰 무리"를 뜻하는 고대 한국어였다면 '건모라(健牟羅)'로 적힐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경우 '성(城)'이라는 뜻풀이는 잘못된 것이 됩니다만, 같은 책 백제전에서 웅진의 이름인 '고마(固麻)'를 마치 중국 군현제의 '군(郡)'에 해당하는 일반 명사처럼 소개하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치명적인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문모라(汶慕羅)'라는 한반도 지명에서 '문(汶)'이 보통 *more [모레] "산"의 표기에 해당하므로 '모라(慕羅)'를 역시 "산"으로 본다면 동어 반복이 되는 문제가 남습니다. 그러나 이 지명에서만 '모(慕)'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다른 지명과 별개로 생각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반도 일본어를 전반적으로 정리해서 글 쓸 생각 있음? 항문천 영상 있었는데 댓글에서 하도 난리 쳐 가지고 내려갔잖아. 약간 언갤에도 그런 글 하나 있으면 좋을 듯. 바쁘면 말고
습니다 말고 “-이다”로 끝내셈
나는 일반인 독자 대상으로 쓰는 글은 무조건 존댓말로 씀
아 물론 디씨에서는 반말을 쓰지만 이 글들은 네이버 카페랑 동시게재하는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