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이는 대체 어디사 나온 표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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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수일이 조선 관리들에 대해 긴 이야기를 했다. 그가 말하기를 과거 오랜 세월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강건한 남자들을 제거하는 것이 이 왕조 정부의 관례였다고 했다. 그들이 정부에 대항해 힘을 쓸까봐 두려워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남자들은 공포와 침묵 속에 살아간다고 했다. 만약 아무리 사소한 사유라도 그들에게 불리한 혐의가 제기디면 참수형을 당한다고 했다.
'통영의 영웅'은 나라를 위해 수많은 일본인을 죽인 후, 결국 자신의 힘을 보여준 행위로 목숨을 잃을 것을 알고, 일본 함대가 빤히 볼 수 있는 자신의 뱃머리에 서서 일본인의 총에 맞았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범죄자처럼 처형당하는것을 피했다!
따라서 일본이나 중국과의 전쟁 때에는 강한 선량한 사람들이 패배하든 승산이 있든 간에 죽음이 그 결과라는 것을 알면서도 정부에 봉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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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의 전쟁 당시, 청나라 황제 한이가 두명의 장군(조선인들)과 엄청난 군대와 함께 송파에 주둔하고 왕은 광주에 피신해있을때 전라도 옥과 지역에는 옥과 김이라는
두명의 유명한 남자가 있었다.
옥이 김에게 말했다.
"어젯밤 태양을 봤네. 왕이 큰 고난에 처했네. 그를 도우러 가세"
김이 말했다.
"아니! 나는 가지 않겠네." 옥은 분한 마음에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조선 사람이고 왕이 위험에 빠졌네. 왜 가지 않겠다는 것인가?" 김이 대답했다.
"우리가 간다면 어떻게 해서든 우리에겐 죽음뿐이네. 조정은 우리 같은 백성들의 도움을 원하지 않는다네" 옥은 김과 다퉜다.
그러고 최소한의 짐만 꾸려서 송파로 갔다. 그곳에서 중국(청) 군대를 보고 소리쳤다.
"한이!"
목청이 너무 커서 군대 전체가 흔들렸고 중국 황제는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는 명령을 내렸다.
청군에 소속된 두 명의 조선 출신 장군은 옥의 목소리를 알았지만 그들도 왕과 군대도 옥과 지역의 남자들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옥은 평야에 둥그렇게 진을 치고 있는 군대의 한 가운데로 달려갔다. 그리고 맹렬한 눈길로 주위를 둘러본 후 광주로 뛰어들어갔다.
이곳에서 궁지에 몰린 왕은 관리들과 회의 중이었다. 옥은 절을 올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하고 50 내지 100명의 병사를 주면 성 밖의 군대를 물리치겠다고 말했다.
이는 약속됐지만 관리들은 옥이 성공할 경우 맡게 될 벼슬을 두려워하여 약속만 하고 병사는 주지 않았다. 그러나 옥은 대문간에 놓인 바위에 머리를 부딪혀 자결했다.
김은 옥과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내가 그럴 거라고 말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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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와의 전쟁시에 중국 군대는 의주로 들어올 수 가 없었다.
그래서 이곳을 돌아 두만강을 건너서 남쪽으로 함경도를 통과했다. 세명의 왕좌와 왕비가 강화도에서 잡히자
왕은 화평을 청했다. 그리고 청 군대는 왕자들과 함께 의주를 거쳐 돌아갔다. 의주에서 그곳의 관리인 임은 대단한 남자였는데, 굴복하지 않고 전의를 나타냈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조선 왕의 편지를 보여 주자 굴욕을 당하고 무너져 내렸다. 나중에 이 남자는 중국으로 가서 중국과 다른 나라와의 전쟁에서 중국 황제에게 엄청난 공을 세웠다.
중국 황제는 많은 선물을 줬지만 그는 거절했다. 그리고 무엇을 원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세 왕좌의 함께 조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 요청은 승낙되었고 왕자는 돌아 갈 수 있었다. 이후에 임도 뒤를 따랐다. 그 사이에 그의 엄청난 업적은 널리 알려 졌고 즉시 김 대신이 이끄는 조선의 관리들은
자신들보다 그가 왕 가까이에 자리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들은 왕의 명령이라면서 그를 의주에서 체포했다. 그리고 차꼬를 채우고 칼을 씌워 서울로 데려와서
서울 종로의 종각 옆에 있는 옥에 넣었다. -이 모든 일은 왕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낮은 계급의 간수가 임에게 그는 전혀 왕의 명령으로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임은 족쇄를 부수고 감옥을 떠나 곧바로 궁궐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왕을 만나 어느 정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이썼다.
왕은 관리들을 불렀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설명하지 못하자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들은 다시 임을 공격하기 위한 계획을 짰다. 그리고 임이 왕과 헤어져 궁궐 문을 나설 때 많은 무리의 무뢰배가 기습하게 만들어 그를 때려 죽였다.
그는 해골이 부서져 죽었다. 지금처럼 그때도 백성들은 임을 동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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