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제가 서로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고 짤막한 내용이라 한 글에 합쳐서 올립니다.


(1) 박제상(朴堤上)


박제상(朴堤上)의 이름은 '삼국사기'에는 '모말(毛末)', '일본서기'에는 '모마리(毛麻利)'의 표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상(上)'이라는 한자를 "머리"의 의미로 읽어 '말(末)' 또는 '마리(麻利)'의 표기와 대응시키고자 했으나 이것은 명백한 오류입니다. "머리"는 고려 시대까지도 麻帝 *mati [마디]였기 때문에 ('계림유사'), 그 이전인 삼국 시대에는 더더욱 ㄹ이 아닌 ㄷ 발음을 가졌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저는 '제상(堤上)'이 '모말(毛末)' 또는 '모마리(毛麻利)'와 이표기 관계에 있지 않다는 접근을 취하기로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이들 표기를 연결시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삼국사기' 지리지의 지명에서 '제(堤)'는 "둑"을 뜻하며 음차 표기 '토(吐)'에 대응합니다. '상(上)'은 음차 표기와 대응시킬 수 있는 용례가 한정되어 있으나, "수레"를 뜻하는 '차(車)'와 교체되는 경우가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기존 연구에서는 '상(上)'이 '봉(峯)', '잠(岑)' 등과 동일하게 음차 표기 '술(述)'에 해당하는 것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래야만 '상(上)'과 '차(車)'의 교체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료에서 나타나는 표기 양상을 우선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생각하면 '제상(堤上)'이라는 이름의 발음은 음차 표기로 옮겨적었을 때 '토술(吐述)'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렇다면 이 '토술(吐述)'은 무엇일까요?


흥미롭게도 '토술(吐述)'은 고구려의 최고 관직명으로 기록된 '토졸(吐捽)'과 일치하는 발음입니다. 박제상은 인질 복호를 귀환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고구려에 파견되어 장수왕을 알현한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때 고구려 사람들이 그를 신라의 재상이라는 의미에서 자국의 관직명인 '토졸(吐捽)'로 불렀고, 이것이 신라에 돌아온 뒤에도 그의 별명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제상(堤上)'이라는 이름 표기의 존재 자체가 어떠한 시사점을 가지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 시기 신라의 인명은 완전히 뜻으로 표기되는 경우가 드물 뿐더러, '삼국사기' 지리지의 기록에서 '제(堤)' 또는 '제(隄)'로 개칭되는 지명은 의안군 칠제현의 유일한 예외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옛 고구려 지역에 속합니다. '제(堤/隄)'가 개칭 후의 지명이므로 통일 신라식 표기가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奈吐郡 一云大提의 기록을 보면 아마도 고구려 시대에 이미 그러한 표기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시사되고 있습니다. 또한 위에서 언급된 '상(上)'이 '차(車)'와 교체되는 사례 역시 고구려 지명입니다.


이와 같이 '제상(堤上)'이라는 표기 자체가 4세기 신라의 인명으로서는 위화감이 있으며 오히려 고구려 지명에서 나타나는 고구려식 표기 경향과 연결되는 용자법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 이름이 그의 고구려 사신 경력과 모종의 연관이 있는 별명일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말(毛末)' 또는 '모마리(毛麻利)'가 그의 본명일 것입니다.


(2) 삼년산군(三年山郡)


삼년산군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먼저 '삼(三)'이 들어가는 다른 지명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고대 한국어의 수사와 관련해, 삼척군(三陟郡)과 실직국(悉直國)의 대응으로부터 많은 연구자들은 '삼(三)'과 '실(悉)'의 대응을 찾아 왔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삼(三)'은 사실 '실직(悉直)' 두 글자와 대응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셋'의 후기 중세 한국어 (15세기) 형태는 '세ㅎ' seyh이고, 관형사적으로 쓰일 때도 ㅎ의 원형인 ㄱ을 보존하는 것으로 보이는 '석' sek이라는 형태가 있을뿐더러, '서른'의 후기 중세 한국어 형태인 '셜흔' syelhun을 보더라도 ㅎ이 있기 때문에 ('사흘'의 ㅇ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관찰을 할 수 있습니다), 이 ㅎ을 포함하는 부분까지가 '셋'이라는 단어의 어근이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후기 중세 한국어의 소위 'ㅎ 종성 체언'은 고대 한국어에서 자음 *k [ㄱ]로 끝났다고 여겨지므로, '셋'의 어근 역시 고대 한국어에서 *k [ㄱ]로 끝났다고 생각해야만 하고, 그렇다면 '삼(三)'은 '실직(悉直)'과 대응하며 '삼척(三陟)'의 '척(陟)'은 단어의 뒷부분 발음을 받쳐 적은 ('말음 첨기') 표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직(悉直)'의 전기 중세 중국어 발음은 sit drik으로, '직(直)'이 원래 ㄷ 계열이고 '실(悉)'의 ㄹ 받침 역시 원래 발음은 -t [ㄷ]이므로 이것은 다음 음절의 첫 자음을 받쳐 적은 사례입니다. 다시 말해 '실직(悉直)'이라는 것은 고대 한국어로 *sitek [시덱]과 같은 발음을 표기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구체적인 모음의 설정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아무튼 *sVtVk [ㅅㄷㄱ]이라는 자음의 틀은 확고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3"이라는 수사의 고대 한국어 발음이 *sitek [시덱]이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삼년(三年)'이라는 것도 "3"을 뜻하는 *sitek [시덱]에 "해[年]"를 뜻하는 단어가 덧붙은 형태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삼년산군은 고려 시대에 '보령군(保齡郡)'으로 개칭됩니다. '령(齡)'이 '년(年)'과 통하는 의미이기 때문에, 고려 시대의 이러한 지명 개칭이 완전히 새로운 지명을 창작했다는 것보다는 기존의 지명에 대해 새로운 표기를 도입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삼년(三年)'과 '보(保)'는 어떻게 연관될 수 있을까요?


'보(保)'의 뜻은 "지키다"이며, '지키다'라는 단어는 후기 중세 한국어 자료에서는 보통 '딕희다'로 표기됩니다. 즉, "3"이라는 수사의 뒷부분이 '지키다'의 앞부분과 같은 발음으로 대응될 수 있습니다. 뒷부분의 '희'는 '해'와 비슷한 발음입니다 ('해'는 후기 중세 한국어에서 ㆎ oy를 가졌고, 고대 한국어에는 모음 조화가 없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고대 한국어 이후의 어느 시기에 분명히 모음 조화의 성립을 위해 ㆍ o와 ㅡ u가 서로 바뀔 수 있었어야 합니다). 따라서 '삼년(三年)'의 고대 한국어 발음이 변형되어 고려 시대에는 "지키다"에 해당하는 단어의 발음으로 인식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후기 중세 한국어 '딕희다'는 흔히 '직(直)'이라는 한자어에서 유래했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만, 이와 같이 지명 자료로부터 볼 때 고려 초부터 "보호하다"의 의미로 쓰였을뿐더러, 한자 '직(直)'과의 의미상 연관 또한 불분명하므로, 어쩌면 이 단어가 고유어이고 '직(直)'과의 연관은 옛날부터 존재했던 민간 어원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