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지명 연구와 잘못된 지명 연구를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기준 가운데 하나는 각각의 표기가 나타내고 있는 원어 형태가 일관적인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발음을 나타낸 표기는 발음의 유사성에 따라 이표기가 일어나고, 뜻을 나타낸 표기는 뜻의 유사성에 따라 이표기가 일어나야 합니다. 만약 발음을 나타낸 표기에 뜻의 유사성에 따른 이표기가 일어나거나, 또는 반대로 뜻을 나타낸 표기에 발음의 유사성에 따른 이표기가 일어났다고 주장한다면, 그 해석 안에서 일관적인 원어 형태가 존재할 수 없으므로, 제대로 된 연구일 수 없습니다.


통일 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에는 그 표기의 원래 목적과는 무관하게 한자를 임의로 교체한 것으로 보이는 사례들도 발견되지만, 이것은 고대 한국어 지명 대신 중국식의 (소위 '한화'된) 지명의 쓰임이 확산되면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국 시대에 있어서는 한 지명의 모든 이표기가 동일한 고대 한국어 원형을 나타낸다는 원칙이 절대적으로 중요시되어야 합니다. 언어가 있고 나서 그에 대한 표기가 만들어진 것이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표기가 창작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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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의 사례는 아니지만 최근에 저는 이러한 의견을 접했습니다.


"이[한상] 교수가 또 하나 주목하는 것은 '이사지왕'의 '이(尒)'자이다. '이(尒)'자가 사전의 의미대로 '그(其)', 혹은 '이(此)'의 의미라면? 그렇다면 '이사지왕'은 '그 분이나 혹은 이 분'인 '사지왕'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 경우 '사지왕'은 혹시 '소지왕'과 동일인물은 아닐까."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2375009)


위 기사에 따르면 이한상 교수는 금관총 환두대도에 새겨진 '이사지왕(尒斯智王)' 명문에서 '이(尒)'를 제외한 '사지왕(斯智王)'만을 왕명으로 보고 이를 소지 마립간의 이름 '소지(炤知)'와 대응시킬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소지(炤知)'는 "비추다"라는 뜻으로 음차 표기 '비처(毗處)'의 의미를 "빛나다"를 의미하는 한자 '소(炤)'로 적은 표기라는 사실이 오래 전부터 정설로 받아들여져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한상 교수의 위와 같은 견해는 완전히 잘못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음차 표기는 발음의 유사성에 따라 교체될 수 있지만, 뜻에 따른 표기는 발음의 유사성에 따라 교체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음차자로 쓰이는 글자인 '이(尒)'를 자의적으로 배제한다는 것 또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사한 사례로 한 논문에서는 '이(尒)'를 '너'로 훈독하여 '너사지왕'으로 읽어야 한다고 단정하고 있는데 (김창호, 2014. "신라 금관총의 尒斯智王과 적석목곽묘의 편년". 신라사학보 32: 433–450), 이 또한 '이(尒)'가 일반적으로 음차자로 쓰인다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한 잘못된 연구입니다. '잘못된 연구'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강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해당 논문의 저자는 '이(尒)'의 전기 중세 중국어 발음이 nyeX [녜]이고 고대 한국어 표기에서 일반적으로 ㄴ 발음 (제 재구에서는 *ne, 기존설에서는 *ni)의 음차자로 쓰인다는 점에 대해 무지했음이 명백합니다. 그런 사실을 알았다면 무리하게 '이(尒)'가 음차자임을 부정하지 않고도 동일한 논지를 전개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尒)'와 같은 일모(日母) 글자의 음차자로서의 용법에 대해서는 국어학계의 연구를 통해 이르게는 20세기 중반부터 잘 알려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연구의 성과를 계승하여 발전시키는 대신 아무런 문헌 조사도 하지 않고 "尒자를 훈독하여 너사지왕으로 읽는다"라는 해괴하게까지 느껴지는 주장을 펼쳤다는 것은 '잘못된 연구'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학계의 연구자라고 하면 취미가에 비해 신뢰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는 모양입니다만 실제로는 이와 같이 표기의 기본적인 원칙이나 한자음에 대한 상식적인 고려, 학술 연구에 있어 필수적인 문헌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의견들을 마구잡이로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 한국 학계의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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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이야기가 옆으로 흘렀습니다만, 이 글의 주제는 백제의 탄현입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 20년 기사에서 신라군이 넘어오지 못하게 지켜야 할 핵심 요충지의 이름으로 지목되고 있는 '탄현(炭峴)'에 대해, 많은 기존 연구에서는 '탄(炭)'이 "숯"을 뜻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숯고개' 또는 이와 유사한 발음의 전래 지명을 가지는 곳을 탄현으로 비정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 역시 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백제의 탄현은 '숯고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삼국사기'의 해당 기사에서는 '탄현'의 이표기로 '침현(沈峴)'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고대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일본서기' 권9에 등장하는 '침미다례(忱彌多禮)'라는 이름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침미다례의 '침(忱)'이라는 글자는 '일본서기' 전체에서 이것이 유일한 용례이며, 비슷한 글자인 '침(枕)'까지 확대하더라도 백제 침류왕(枕流王)과 백제 부흥군의 거점 침복기성(枕服岐城)의 이름에만 나타나고 있어, 이러한 음차 용법이 일본식 표기가 아니라 백제의 표기를 문자 그대로 인용한 것임은 명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석일본기'에서는 '침미다례'가 '도무다레(トムタレ *tômutare)', 그리고 침류왕의 이름이 '도무루(トムル *tômuru)'로 훈주되어 있을뿐더러, 한국 사료를 보더라도 '침미다례'로 추정되는 지역의 백제 지명이 '삼국사기' 지리지에 '도무군(道武郡)'으로 기록되어 있는 점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침(沈/枕)'이라는 글자는 백제에서 '도무(道武)'에 해당하는 발음의 표기에 사용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침(忱 dzyim/枕 tsyimX)'을 성부가 동일한 글자 '탐(耽 tom)'처럼 읽었다고 할 수 있는데 (편의상 아래에서는 '침' 계열 음차자를 '탐'으로 바꾸어 나타내겠습니다), 비슷한 현상으로 백제에서는 '진(真 tsyin)'을 '진(鎮 trinH)'처럼 읽었다는 점도 주목됩니다.


이러한 결론은 물론 '탄현'의 이표기 '침현(沈峴)'의 '침(沈)'으로도 확대될 수 있습니다. 이제 '침현(沈峴)'을 '탐현(耽峴)'으로 바꿔본다면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탄현'과 '탐현'으로 바꾸어 생각하면 이들 지명 표기가 뜻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발음을 나타내고 있음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애당초 '탄현'의 '탄(炭)'은 고대 한국어의 소리를 받아적은 음차 표기일 뿐 "숯"이라는 뜻을 가진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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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탄(炭)'은 ㄴ 받침이고 '탐(耽)'은 ㅁ 받침이라는 점에서 이 두 글자가 과연 음차자로서 통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실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일본서기' 권19에는 '진모귀문(真牟貴文)', '진모선문(真慕宣文)'이라는 백제 인명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표기에서는 '진(真)'의 ㄴ이 '모(牟/慕)'의 ㅁ을 받치고 있다고 간주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말하자면) '짐'과 같은 발음의 한자를 찾기 어려우므로, ㅁ을 받쳐 표기하는 데 있어 '진(真)'이라는 글자를 대신 사용한 것입니다. 중국어는 역사적으로 순음 운미가 적다는 분포의 비대칭성을 가지고 있어서, -m 운미 (ㅁ 받침)를 가지는 글자가 -n 운미 (ㄴ 받침)에 비해 적으므로, 이러한 대용 표기의 발생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찰은 또한 백제의 요충지 탄현의 실제 위치를 찾는 데 이용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진(真)'이라는 글자가 고대 한국어 *tem 발음을 나타내는 데 사용될 수 있었다면, 백제 진현현(真峴縣)의 이름이 탄현과 일치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진현현은 고려 시대에 진잠현(鎭岑縣)으로 개칭되어 현재의 대전광역시 유성구 진잠동 지역인데, 그렇다면 탄현은 진잠동에 매우 가까운 충청남도 계룡시의 양정고개로 보아야 합니다.


굳이 복잡하게 백제의 음차 표기 체계를 검토하지 않더라도, 탄현은 백제에 있어 수도 방어에 중요한 요충지였다는 점에서 '삼국사기' 지리지를 통해 전해지는 백제 지명들 중 '현(峴)'이 들어가는 것을 중심으로 찾아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훗날 신라 9주 체계에서 웅천주로 편입되는 지역 가운데 '현(峴)'이 들어가는 것은 진현현이 유일하며, (신라 병합 후의 군현 관계를 소급한다면) 이 진현현이 바로 '황산원(黃山之原)'이 있는 장소인 황등야산군(黃等也山郡)의 속현이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도 시사점이 있습니다. 현대에 진잠은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속해 있지만, 삼국 시대에는 유성구 북부 (노사지현)이 계족산성 (우술군)의 관할인 것과 다르게 유성구 남부의 진잠 (백제 진현현)은 논산 관할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관찰은 탄현과 일치될 수 있는 진현현의 이름이 곧 논산과 진잠의 사이에 위치한 양정고개의 고대 지명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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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현을 양정고개로 보는 추정이 과연 정확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탄현'이라는 이름이 음차 표기이며 '숯고개'의 의미를 나타낸 것이 아니라는 점은 '삼국사기'에 직접적으로 제시된 이표기에 대해 '침미다례' 등 유사 표기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해석을 적용하여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것이므로 비교적 확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탄현의 위치를 '숯고개'에서 찾고자 한 기존 연구는 다시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