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
중국어의 역사 연구에서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불학(佛學)'관련 자료이오. 한역 불경의 산스크리트어 가차표기는 당대(當代) 중국어의 음운과 그 연변을 추적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며, 각종 불경 음의서들은 일실된 고서에 대한 집일자료로서의 가치를 가질 뿐더러, 그 반절 주음자료는 역시 음운론적인 자료로서 활용되게 되오. 그 뿐만이 아니오. 한역 불경은 대중 포교를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문어보다는 구어적인 성분을 많이 담고 있소. 이러한 면은 불경을 비롯한 불교관련 문헌이 고대 백화 자료의 남상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되오. 따라서 이들 불경에 대한 연구는 중국 언어사를 탐구하는 데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소이다.(베이징대 총장을 지낸 지셴린(季羨林)이 불학 연구자이자 동시에 역사 중국어 연구자임은 이를 대단히 잘 보여주고 있소)
지나(支那)란 표기는 이러한 불학 자료에 포함되는 것으로서, 산스크리트어 발음을 취하여 적은 취음자이오. 다음 부터는 지나(支那)가 어떤 기원을 가진 단어인지에 대하여 논하고, 이것이 가차자이며 한자의 뜻을 논할 수 없음을 증명할 것이오.
2. 본
팔만대장경에 수록되어 있는 80권의 <대방광불화엄경(大方光佛華嚴經)>(4세기 경에 중앙아시아에서 성립)의 45권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소.
震旦國有一住處, 名那羅延窟.
진단국에 한 머무를 만한 곳이 있으니, 이름을 나라연굴이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진단국(震旦國)이란 대관절 무엇이겠소? 여기에 대하여 당대의 승려 혜림(慧林)은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에서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소.
震旦國: 或曰支那. 亦云眞丹. 此飜爲思惟, 以其國人多所思慮, 多所計詐. 故卽今此漢國, 是也.
진단국: 혹은 지나라 일컬으며, 또는 진단(眞丹)이라 한다. (범어의) 이 단어를 의역하면 사유1)인데, 그 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가 많고 꾀하여 속이는 바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곧 오늘날의 이 한의 나라(漢國)가 이것이다.
이로써 진단이란, 바로 오늘날의 중국을 일컫는 단어라는 것을 알 수 있소이다. 그렇다면, 진단, 혹은 지나라는 이름은 어떻게 하여 생긴 것이겠소이까? 이야기는 기원전 3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가오.
서력 기원전 220년, 진(秦)의 군주였던 정은 동방의 여섯 개 나라를 병합하여 중원 최초로 중앙집권적인 제국을 세우는 데 이르오. 진나라는 여섯 개 나라를 병합한 뒤에도 계속적으로 외부로 세력을 뻗어나갔는데, 이로 인하여 그 국명이 티베트 건너의 인도,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리스와 로마에까지 알려졌소. 진의 국명(상고음으로는 *dzjin으로 읽었소)을 접수한 인도에서는 산스크리트어로 그곳을 진의 거처, 즉 찌나 스타나(Cina Sthana)라 부르게 되었소. 이를 줄여서 찌나(Cina)라 하였소이다.
물론 중국에서는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인도와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기에, 자신들이 그렇게 불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소. 그러다가 2세기 말, 인도에서 불교가 전래되고, 구마라습 등에 의하여 산스크리트어로 된 불경의 번역이 이루어지자, 그제서야 자신들이 산스크리트어로 찌나 스따나, 혹은 찌나로 불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소이다. 수 많은 불경 번역자들은 보통 산스크리트어 고유명사를 가능한한 산스크리트어 원음에 가까운 발음을 가진 한자로써 옮겨보려 노력하였는데(이는 발음 하나라도 틀리면 극락에 들지 못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오), 이러한 경향에 따라 찌나 스타나, 찌나라고 하는 고유명사도 의역되지 않은 채 그대로 가차의 원리에 따라 전사되게 되오.
가차(rebus)의 원리란, 서사하려고 하는 단어를, 의미와는 상관 없이 발음의 유사성만을 따라 표기하는 것을 말하오. 가령, Huna라는 종족명을 匈奴로 적은 것과 같소. Huna라는 종족명과 匈자, 奴자가 가진 의미에는 전혀 필연성이 없소이다. 따라서 발음만 비슷하면 얼마든지 다른 식으로 쓰는 것도 가능하였소. 같은 종족명이 시대에 따라 훈육(葷鬻), 험윤(獫狁)으로 불린 것도 이 때문이오.
불경에 나타난 찌나 스타나 등의 산스크리트어 고유명사도 번역될 때, 이 가차의 원리에 의하여 전사되었는데, 따라서 그 전사된 방식이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오. 찌나 스타나는 한역 불경에서 震旦, 眞旦, 振旦, 振丹, 旃丹, 指難, 脂難 등으로 쓰였으며, 그 약어인 찌나는 支那, 至那, 致那, 指那, 止那, 脂那, 振那 등으로 쓰였소. 이 수많은 번역어들 사이에 의미상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겠소이까? 아니오.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발음상의 유사점'일 뿐이오. 여기에 사용된 한자들에서 의미를 찾아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무의미한 일에 지나지 않소.
3. 결
소햏은 본 글에서 支那가 산스크리트어 Cina Sthana의 약어인 Cina의 차음자임을 밝히고, 支那가 유일한 번역용어가 아니라, 그 외에도 수많은 용어들이 같은 단어를 취음하기 위해 사용되었음을 증명하여 그 쓰인 글자의 의미와 대상이 발음상의 관계 이외에는 자의적임을 밝혔소이다. 많은 이들이 한자는 단순히 표의문자라는 생각에 붙들려, 얼마든지 발음만을 빌리는 일종의 '음성적 기호'로도 사용될 수 있음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支那와 같은 음차된 단어들을 다룰 때 대단히 위험한 태도이오. 소햏은 본 글로써 이러한 점을 지적하고, 支那는 그 뜻을 풀이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재천명하는 바이오.
1) 思惟: 산스크리트어로 사유는 찐따(cinta)라 하는데, 이 단어가 중국을 뜻하는 찌나(cina)와 발음이 유사한 고로, 혜림이 혼동한 것이오.
참고문헌
<고려대장경> 중 <신역대방화엄경>(80권본), <혜림 일체경음의>
諸橋轍次 <大漢和辭典>(大修館書店)
北京圖書館出版社 편 <佛光大辭典>(1989, 北京圖書館出版社)
은-주대는 다종족 연합체이지, 통일왕조가 아니오. 그런 시대를 수백~천여년이나 지난 시대의 시각인 중화사상으로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불합리한 것이오.
또 증거를 대라,추상적으로 말하는 그 말에서는 도저히 못 믿겠다.그러면 아니담겨있다는 설명부터 좀 해보시구려.어떤 식으로 아니 담겨있는지를 설명하면 간단하잖소?
라는 것이야 세계사를 수박 겉핥기로 읽어도 아는 것이 잖소.은주대의 다 종족이라는 그 다종족에는 그들이 오랑케라부른 그 민족도 포함 되는 것이오?
은대에는 주(周)족조차 귀방이나 인방과 같은 취급을 당하였소. 춘추시대의 제후국으로 알려지는 초와 월, 오는 제하가 아니였으며, 하북에는 백적의 선우씨가 중산국을 세우기도 했소. 이렇게 민족의 이동과 분합이 활발했던 시기에, 무슨 '중화사상'이 있어 '우리는 한 민족이다!'란 자각을 한단 말이오?
은과 주에게 있어 자신들과 연합한 종족이라면 그것으로 자기 편인 것이고, 자신들과 연합되지 않으면 적이 되는 것이오. 이런 때에 어떻게 중화사상이 생기오?
고람 햏 부탁하나 하겠소 햏의 실증적인 사료제시도 중요하지만 그냥 편히 중화사상이 있다라고 생각하면 안 된오?
고람 햏의 햏력은 항상 뛰어나다고 존중하오 그런데 여기는 학술발표회나 세미나 장소도 아니고 우리 역시 전문 학자가 아니지 않소
편히 그렇게 생각해야 할 이유는 무엇이오.
설령 논쟁에 고람 햏의 말이 맞더라도 때로는 유연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오. 물론 학문하는 사람이 얼럴뚱땅 넘어가면 안 돼지만 어차피 인문학은 답이 없다고 생각하오.
사실과 다르다면 지적을 아니할 수 없고, 그럼에도 소햏이 틀렸다면 소햏이 잘못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오. 없었던 것을 있다고 인정하면 그것으로 파생되는 불합리는 또 얼마나 크겠소.
무슨소리를 하고있는지 모르겠소.소햏이 읽은 중국사로는 신채식의 [동양사개론] 정도만 하더라도 하-은(상)-서주로 이어지는 계보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이 문제에 국한한 얘기는 아니오만 본 햏은 지금까지 고람햏의 답변 자료는 매우 타당하고 뛰어나다고 생각하오. 여기는 남을 반박하는 점에 주안점을 두는게 아니라 이런 저런 견해도 있구나 하느 정도로 봐 주셨으면 하오. 너무 얹짢하게 생각하지 말기 바라오.
주는 본래 국가명이 아니라 종족명이며, 은을 멸망시키고 난 뒤에야 비로소 국가명이 되오. 은의 국가명인 상 또한 본래 부족명이오.
국가라고 해봐야 都市國家 혹은 邑制國家 정도이니 현대에서 말하는 국가 개념도 아니고 ,영토국가는 물론 아니 잖소.그렇다고해서 그 부족이 타 부족을 신주단지모시듯했다는 이야기는 되지 않잖소.그런 부족이라고해서 그들 고유의식이 없는 되는대로 막살다간 종족이란 말이오?
하더라도 은이 아닌 이민족을 夷方,邑方,土方 이라고 방이라 했는데 이 방이 雅化된 명칭이라 생각할 수 있소?
은대에는 주(周)도 방이었소. 方이 단순한 이민족 집단으로만 해석될 수 없는 이유이오.
도무지 고람햏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소.고문해석에서는 뛰어난 것 같지만 그것에서 한치만 벗어나면 이상한 행태를 보인다는 것을 좀 알았으면하오.
고람햏은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떻소.씨족 -->부족-->고대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그 방들이 같은 국가안에 포섭되어 가면서 그 방이 부족이외 집단개념에서 점점 영토적개념을 가진 타민족을 지칭하는 것으로 변해 갔다.그러니 그들이 최소한 그 부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면서 방이라는 관념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중화라는 관념의 맹아는 그런 것에서 발견된다.이런 정도로 이야기 할 수는 없는 것이오?
갑골문의 용례를 보신 바 있소? 심지어 동일 종족에 있어서도 복속되면 方이라 하지 않다가, 반항하면 다시 方으로 붙이는 예가 드러나오. 方은 그렇게 간단하게 '이민족'으로 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오.
말이오 동일 종족에서도 복속되지 않는 골통을 방이라고 부르는 그 관념에서 그 중화의 맹아가 없냐 이거 잖소?허어 참.
최소한 은주시대에는 세상을 화-이로 나누고 이적들을 교화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중화사상'은 나타나지 않았단 말이오. 아예 의미만으로 붙인 종족명이라면 모를까, 음차한 고유명사는 기원적으로 경멸의 뜻을 담아 불렀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소. 또한 실제의 사용례도 이를 반증하오.
적과 아군의 구별은 인류 보편적인 것이오. 그것을 가지고 중화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면, 화백회의도 의회제도와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오.
따라서 중국사에서 아무 때나 '중화사상'을 적용하는 것은 몰이해라 할 수 있소.
언제나 소햏이 논하는 것은 오늘날 생각하는 통일된 중국상이 형성되어가는 시기인 진(秦)대 이후가 아니라, 그 시기와는 성격을 판이하게 다르게 하는 '선진시대'이오. 그 시대들 간의 차이는 매우 크오.
그럼 민족이동식 집단들이 정주하여 생활한 영토국가시대도 아닌 그 때에 수많은 전쟁을하고 방이라는 말을 썼다고 하면서도 또 교화의 어떤 그런 관념은 없었다라고 말하는(그 말 속에는 지금의 눈으로 과거를 보는 듯한 태도가 들어 있는 같소만) 것은 학자다운 조심성이라고해야하나 신중함이 있어 좋소만,그 수많은 정복 전쟁은 최소한 인정 할 것 아니오.타부족과 사이 좋게 꿍따리사바라하고 살지는 않았을 거 아니오?
누가 정복전쟁을 부인한다고 했소? 왜 말을 바꾸시는 것이오?
중화 이전에 중원의 개념이 있었고 그 이전에 중앙의 개념이 있었소. 자신들을 중앙에 놓고 주변의 족속들을 야만집단으로 취급하여 비하하는 명칭을 취한 것으로 아오. 중원은 시대에 따라 개념이 바뀌지만 역대 중원 또는 중앙을 차지하기 위해 패권을 다룬 것 아니겠소. 주가 변방 이었던 것은 그러니 은의 입장에서 당연한 것이오. 이후 주가 중앙의 위치에 섰을 때는 마찬가지로 주변을 비하하는 입장이 된 것이고. 소햏은 그렇게 생각하오.
그 시대간의 차이를 감안해서 중화라고딱 부른 용어를 쓸 수는 없지만 방이라고 부른 그 의식 하나만으로도 그런 것 쯤 능히 맹아라고 할 수 있잖소.
의식에는 상대를 자기 부족만큼 존중하려는 의식은 없는 것 아니오.(그런데 무슨 말을 바꾼다는 건지)그런 의식이 바로 방으로 나타난다라고도 할 수 있잖소.
존중하려는 의식이 없다는 것을 부정한 적은 없소. 하지만 존중하지 않는다고해서 가차자에 폄하, 무시의 의미를 넣는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고, 실제로도 그러하오. 위에서 든 예도 그러하거니와, 선진의 다양한 통가 현상을 이해할 때, 발음 이외의 요소를 감안하는 것은 되려 해석을 곡해할 소지가 너무 크오.
가령 Hindika를 적기 위해서 天竺, 天毒, 身毒, 身督과 같은 여러 가지 한자를 이용했는데, 여기에서 의미적 연관성을 찾아낼 수 있소? 가차는 기본적으로 발음을 빌리는 것이지, 의미를 빌리는 것이 아니오. 여기서 뜻을 찾아내려는 것은 그것 자체로 '무의미'하오.
고람다운 자세라 할 수밖에 없소.오히려 발음만 고집하면 실증주의 사학이 가지는 좁은 포커스의 폐해속에 허우적 거리는 꼴 밖에 되지 않소.허긴 발음만 고증하기에도 벅차니...
가령 Hindika를 적기 위해서 天竺, 天毒, 身毒, 身督과 같은 여러 가지 한자를 이용했는데..라는 말에서 또 원점으로 돌아 가잖소.발음을 빌린 거라는 것을 인정하고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그런데,조금 더 생각해보면 과연 가차를 할때 무작위 였겟냐?심층심리학을 빌리리지 않더라도 그 가차를 하는 데도 단어 선택에서 어딘지 모르게 중화의 냄새가 난다 이런 정도 잖소.실제로 또 그러하고.
만약 의미를 생각하고 썼다면, 왜 저런 의미상 연관성이 없는 표현들이 공존하여야 하오?
天竺, 天毒, 身毒, 身督 이란 말이 같은 시대 같은 문헌에 나타난단 말이오? 그리고 그 말사이의 의미상 연관이 아니라,그 말이 비록 가차의 형태를 띈 무작위 단어 선택 같이 보이지만,그 선택하는 방식이나 의식마저 무작위이지는 않았다는 것이 잖소.
선진시대의 통가/가차는 고유명사에만 일어난 현상이 아니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에도 통가와 가차가 얼마든지 보이오. 臍, 夷, 齋, 劑 등의 한자는 선진시대에 齊 하나만으로도 나타낼 수 있었소. 이들이 모두 의미로 연관되었다고 설명하시지는 않으시리이다.
의미로 연관 되어있다는 주장이 아니 잖소.臍, 夷, 齋, 劑 이 같은 장소 같은 시대에 동시에 나타나오?그 말들이 무슨 의미가 잇다는 것이 아니라,무의식중에 가차/통가한 그 것을 바라보면 어딘지 모르게 자기중심주의 적인 방식이 보인다는 것이 잖소?논점을 이해하고 말하는 것이오?
위에 말한 齊는 좌전에 나오는 예이오. 또한 위의 네 예는 같은 책에서 나오지는 아니하였으나, 동일시대의 것으로 볼 수 있는 다른 문헌들에서 등장하는 것이오. 심층의식에 그런 것이 있느냐 없느냐를 밝히는 것은 역사 음운론의 방침도 아니요, 또한 연구의 핀트에서도 어긋나오. 햏과 같이 발음요소의 뜻까지 연구하면 한자나 문헌의 분석에 있어 왕왕 오류를 일으켜 왔거니와(가령 왕성미가 형성자의 발음부분까지 뜻으로 연결시킨 '우문설'이 그러하오), 비과학적인 태도라고 비판되어왔소.
문자란 기본적으로 언어를 담는 그릇이지, 문화나 사상을 담으라고 생겨난 것이 아니오. 그것들은 부차적인 것이며, 그러한 역할을 연구하는 것은 문자연구의 본령도 아니오. 이것이 현대 중국 문자학의 기본적 태도이거니와, 소햏도 이에 적극 동의하는 바이오. 더우기 그러한 문화적 현상을 선진 이후의 것에 비추어 보는 것은 더더욱 말할 나위도 없소.
같은 발음을 흉노로 적기 시작한 것은 한대 이후의 일이오.
"문자란 기본적으로 언어를 담는 그릇이지, 문화나 사상을 담으라고 생겨난 것이 아니오"라는 이말은 고람 자신도 무슨말인지 이해 할 수 있소?
그 단어의 기원이 선진의 鬼方에 있음은 벌써 말했소.
이해하오. 문자는 언어를 적는 수단이며, '문화적 사상적 개념'을 직접적으로 적는 수단이 아니라는 말이오.
-->과학적(그 문장에서 말하는 문자는 무엇이며.언어는 무엇이오?또 문화와 사상은 언어와 관계가 없다는 것이오? 그리고 한대 이후라 인정해도 위에서 논한 것처럼 방이니 뭐니 하는 것들도 있었잖소.)
전국시대 이후에 통합의 기운이 강해지고, 중원 중심의 사상이 생겨난 것은 소햏도 모르는 바 아니고, 대일통을 주장하는 <좌전>의 성립과도 일치하오. 그러나, 그 이전의 현상을 '중화사상'이란 잣대로 재단하려 한다면, 이는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오.
방이 가차이오?
그리고 방이 단순히 '이민족'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했소. 소햏은 '문자'를 말하는 것이지, '언어'가 문화나 사상과 관련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소. 가령 Huna를 匈奴로 표기했다고 해서, 그것이 당장 중화사상을 전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란 말이외다.
하나씩 정립해봅시다.고람의 말에서 보면 문자는 언어의 부분집합인 듯이 말하는데 맞소?
문자 연구에 있어 제 1차 대상은 그 해당 문자가 표현하려고 하는 '언어'에 있소. 이러한 언어적 문제를 다루는 데 언어 본신의 성격 문제와는 동떨어진 '문화, 사상'의 문제를 혼합하여 다룬다면, 이것이 비전문적이며 비과학적인 태도이오.
문자는 1차적으로 언어를 적기 위한 도구이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오.
칩시다.그 해당문자가 표현하려고하는 언어에 있다라고.그럼 그 언어라는 게 무엇이오?
원초적으로는 인간이 음성적으로 전달하는 기호체계이오.
라는게 단지 음성만이 아니라는 것은 문자라고 말한 고람의 말이 의미하는 바이고.음성적으로 뭘 전달 한다는 거요?
기호체계를 전달한다라고 하면 우습게 되잖소.기호체계=언어인데 언어(기호)는 언어(기호체계)를 전달한다는 꼴이 되니 말이오.
기호체계⊃음성언어 인 거지, 어째서 기호체계=언어란 말이오?
기호체계⊃음성언어 이오? 그렇다 칩시다.설마 기호체게를 전달 하는 것은 아닐 테고.음성언어가 음성적으로 전달 한다도 아닐 테고.뭘 전달하는 거요?
'사람의' 의사이오.
의사라,우선 전달한다를 주고 받는다라고 고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생각하는데 어떻소?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도구라는 도구이론쪽에서 접근하는 것 같은데 맞소?
응답이 없소?그럼 이것으로 끝내려오?많은 것이 남아 있는데.비전문,비과학.기호체계 부터...논점의 주제인 저 가차까지 하룻밤 세워도 안될 것 같은데?
220.70.180.126햏의 유도심문에 걸리기도 싫고, 소햏도 지쳤기로, 여기서 소햏의 입장을 일단 정리하오. 1) 고대의 가차기록에서 중시되어야 할 것은 그 '음가'이지, 의미이거나 사상/문화가 아니다. 2) 문자의 표기에서 '문화/사상'이 반영된 부분을 연구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문자 연구의 본령이 아니므로, 언어를 연구하는 문자 연구와는 분리될 필요가 있다. 3) 선진시대의 현상을 연구하는 데 '중화사상'이란 필터를 가지고 바라볼 수는 없다. 이오.
소햏도 지쳤소.1)고대 가차기록에서 중시되어야 할 것은 고람햏이 주장하는 그대로 인정한다.더 나아가서 바라보면 그 가차의 습성이랄까 무의식적 경향이 눈에 띄는데 그건은 중화주의의 요소를 내포한 것 같다.2)중시 되어야 할 것은 음가이다라는 주장은 옳다.그러나 그 음가가 음가로만 연구되어서는 A=A이다라는 뫼비우스띄속의 논리인 동어반복 밖에 안된다.반드시 언어가 전달하고자하는 뜻이나 문화 등과 결부되어야한다.3)선진문화 연구를 중화사상으로 바라본다는 말은 고람의 억지 주장이다.단지 편린적으로 그런 파편이 보인다라는 이야기 뿐이다.(더 나아가서 고람의 전문이나 과학은 너무 몰이해성이 많다.언어자체에대한 기본적인 견해조차 정립되어 있지 않다.)이오.좋은밤 지내기 바라오.^^
(더 나아가서 220.70.180.126햏의 태도는 중국어 역사 연구에 대한 몰이해성이 많다. 기초적인 지식도 없이 피상적인 논의를 하며 논점을 일탈시키고 있다) 좋은 밤 지내시길.
고람거사/ 다른건 몰라도 이거 하나는...중화사상이 선진시대에는 없었다? 이건 좀 아닌듯 하오..학계에서 선진시대의 중화사상(중화사상의 근간쯤 되려나..)에 대해 꽤나 많은 연구가 있었고 대부분 반론의 여지가 없는 정설로 받아들여지오..물론 그 중화사상이 약간은 정통론적인(세계관의 차이에 기인한) 의미가 높다고 하겠지만 분명히 그 추형은 존재한다고 볼 수 있소.
다시 보충하자면..한족과 비한족의(당연 이땐 한족의 개념조차 없는게 맞소) 구분이라기 보다는 주나라(제후국포함)의 영역권과 비 영역권 혹은 그 문화권과 비 문화권의 구분이 뚜렷이 존재했고, 적지않은 제자문에서 그런 흔적을 찾을 수 있지 않소?..당장 논어만 보더라도(시대는 차치하고) 공자의 화/이에 대한 구분이 매우 명확함을 볼 수 있으며, 묵자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나오는 것으로 기억되오
하지만 고람거사가 마지막에 선진사상을 바라보는데(문화포함) 중화사상이라 틀에 대입해서 보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약 90% 수긍하는 바이오~
소햏이 말한 시대는 주로 은주대이오. 춘추전국시대에 생성되었다는 면에 있어서는 부정하지 않소.
그랬던거구려./ 은주시대는 보통 관례로 상고사(물론 주대도 상고에 포함되긴 하오만)로 특별히 많이 말하지 않소? 님의 주장이 다 틀렸다고 보이진 않소만, 하은시대와 주나라는 분명 약간 이질적인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듯 하오만, 은주를 그냥 하나로(언어적으로는 가능하나) 묶기엔좀 무리가 있지 않나 싶소..실제로 봉건제도가 강력히 시행된 주대부터 이 중화사상의 씨앗이 잉태되었다고 보는게 현 하계의 공통된 조류인듯 하오만..
언어학에서 선진이라고 하면 하상주 삼대+춘추 전국을 모조리 포함하오. 실제 역사서에도 그냥 선진이라고 하면 삼대도 다 넣더구료. 물론 소햏이 선진이란 단어를 씀으로서 오해를 피할 수 없었던 점은 재고해야겠소.
맨날 그놈의 중화 민족주의와 중화사상으로 중국사를 보는 데 하도 피곤하다보니, '이거 중화사상 아니오?'라 하면 역정부터 내게 되오...
고람거사/ 물론 고명사의라고 선진이라 하면 말그대로 진나라 이전이죠..하지만 문화적으니 특징으로 하은상은 좀 띄워놓는게 맞지 않겠소(틀리단 말은 아니오) 그리고 문자학에서 당근 진의 소전체가 큰 획을 긋고 있으므로 선진이란 말이 무방하다고 하겠소, 하지만 이도 범위를 넓혀 언어학적으로 보면 좀 애매한 면이 없지 않은듯(소햏 언어쪽은 잘 몰라서), 저도 님과 같은 생각이오만, 사실이 너무 그런 기류에의해 중국 역사가 씌워져 있는게 사실아닌 사실인지라..어쩔 수 없는 운명같소..
중국 언어학에서는 전진대는 물론이요, 전후한대까지 합하여 '상고 중국어'로 분류하오.
전진->선진
한가지 보충/ 제가 봐왔던 역사책은 '선진'이라 하면 따로 주를 달아서 어디까지를 소급할 것인지 언급하던지 혹은 서문에서 그 범위를 밝히는게 대부분이었소만..(비꼬는게 아니니), 그리고 문화나 사상쪽으로 보면 선진의 의미는 "사실상" 춘추전국 혹은 서주시대를 넘기기 힘들지 않소? 그 이상은 뭐 자료가 워낙 미비하다보니 한두가지 증거를 대고는 대충 넘어가는게 관계지요..전 이런 맥락에서 지적드린 것입니다.
문화나 사상적으로 선진이라 하면 확실히 서주 이상 넘어가기 힘드오. 다만 언어학에서는 정말로 뭉뚱그리니.
소햏이 읽었던 책은 '선진'이라 해 놓고 은주대부터 다루기 시작하였기에...(가령 '선진사'라든지)
ㅎㅎ/ 물론 옳은 말씀이오. 고람거사햏 언어학전공이시오? 아님 중국문자성운 전공이시오?/ 그 뒤는 뭐 당송/ 그리고 원명청 뭐 대충 이렇게 갈리지요..이게 초점은 아닌듯 하오만..
중국 언어학 전공이고, 문자와 역사 음운론은 당연히 그 하위분야이오.
암튼 고람거사님 님이 지적해주신 언어학의 요모조모 참 새롭게 아는것도 많고요, 이전에 개념이 잘 안잡히던걸 리플놀이로 정리해보는 계기도 되었네용~/ 하지만 한가지 선진시대에도 정도나 범위의 차이가 있을뿐 중화사상(혹은 그 모태가 될만한) 그런 의식은 분명 존재했다는 점을(그것도 꽤 강력히) 다시 한번 주장하는 바이오~^^
아 그렇소?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일반언어학과에서 중국언어학 전공하시는 겁니까?
아니외다. 중어중문학과에서 중국언어학을 하오.
아~그렇구료..제 예상이 맞았구료~^^/ 근데 한국에서 중어중문학과에서 언어학전공이라는 말을 씁니까?(궁금해서ㅡㅡ;;) 제가 알기로는 성운학이나 문자학전공이라고 하고, 이는 중국이나 대만에서도 같은 명칭으로 보통 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소햏의 학교 교수님은 '언어학'적인 면을 매우 강조하시오. 그래서 소햏도 그런 표현을 쓰오이다.
참고로 대륙에서는 문자학 대신 '한자학'이란 표현을 확대해 가는 추세이고, 역시 성운학 보다는 음운학/음운론이란 단어를 더 많이 쓰오.
잘 알았습니다. 좋은 지도 받고 갑니다..ㅎㅎ 앞으로도 자주 뵙길~
보통 어문학과는 어학과 문학으로 크게 나뉘는데, 그 중 소햏은 어학(즉 언어학) 분과에서 역사음운론을 한다고 보시면 되오.
소햏도 개념을 재정립하였소. 감사하오.
마지막 한가지만더..말씀하신 한자학과 음운론은 각각 문자학과 성운학의 하위범주라 보는게 맞는 것 같소, 이 건 얼마전 제가 세미나에서 들은 대륙학자의 말이었는데, 이렇게 전개되는게 좀 이유가 있었더구랴, 아직은 문자학, 성운학이 정확한 표현인듯 싶소..글구 언어학이라 쓰는것도 생각해보니 유니버셜하니..괜찮은듯 싶소..
소햏말은 대륙에서 요즘 그렇게 쓰는게 그렇단 말씀이옹 ㅡㅡ;;
중국 문자학이라 하면 중국에 있는 모든 문자들을 지칭하게 되므로 문제... 그래서 한자학이란 용어가 많이 사용되오. 성운학의 경우는 이상하게 '음운'이란 단어에 대하여 중국 학자들이 거부감을 느낀다 하더이다. 다만 소햏은 대륙학자도 아니고, 일반 언어학과 보조를 맞추려니 그냥 음운론으로 쓰오. 소햏의 계열은 중국 보다는 오히려 미국 학파에 가까워서...
오히려 소햏은 한자학을 더 많이 쓰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들었소. 최영애씨의 <한자학 강의>에도 그리 나오오. 최근의 서적들은 문자학 보다도 한자학이란 용어를 더 많이 쓰더이다.
사실 문자 연구와 고대 음운 연구가 지금까지 완전히 현대 언어학적으로 다루어지기 보단, 전통적인 문자학과 성운학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보니, 그런 현상이 벌어지나 보오.
혹시 그 세미나에 나오셨던 대륙학자, 사학자이오?
그렇소..제가 보기에도 미국계열에 가까운듯 하오(잘은 모르지만..^^) 사실 성운학이 아직 완전히 독립적인 언어학의 한 범주로 들어가진 않은 듯하오, 이점은 소햏도 매우 고민했던 부분중의 하나, 분명 얼렁뚱땅 넘어가는게 많은데도 자꾸 그게 맞다고 하니 속이 터지던 생각이 모락모락~문자학과 한자학 이야기는 조금더 제가 찾아보도록 하겠소..제가 들은 바로는 한자학이라는 말이 워낙 나온지가 10여년 밖에 안돼고, 기존의 학자들이 반감을 많이 가지는 말이라서..암튼 감사하옹~ㅎㅎ
아니오 문자학관련이었소/ 근데 대륙은 많은 학교에서 문자학을 사학과에서도 전공을 하고 있는관계로..정확한건 좀 그렇소만 그 분은 중문과 출신이셨드랬소~
그렇구료. 혹시 그 분의 성함을 알 수 있소?
지금 제가 책을 몇권 쭉 꺼내놓고 비교를 해보니..아무래도 대륙에서는 한자학이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널리 쓰려는 움직임이 확실히 있는듯..근데 이건 넓게 봐서(디테일한건 생략하고) 자신들의 문자를 좀더 범용화된 모듈에 맞추어 보겠다는 의도지 뭐 큰 차이는 없다고 보오..기실, 이전의 문자학도 한자외에 다루는걸 본적이 거의 없었소..기껏해야 소수민족 문자들 억지로 가져다 맞춘건밖에..
그때 자료가 없어서리..진모모였는데..미안하오..요즘 워낙 넋을 빼놓고 살아서리..복단대인가? 있던 분으로 사료되오/ 글구..아무리 생각해도 소햏은 문자학이라는 말이 두뇌구조에 적합한듯^^; 한자학이라 하면, 상고시대에 아직 100%규명되지 않은 문자들은 어떻게 다룰지...음..그것도 좀 걸리고..(제말만 맞다는게 아니니..태클은 패수)
소햏 학교 교수님은 대만에서 배우셨는데도, 학풍은 미국식이오. 그래서 문자 연구와 음운 연구를 철저한 언어 연구의 분과로 보며, 중국처럼 이것저것 분야를 섞는 데 매우 거부감을 갖고 계시오. 소햏에게도 그러한 영향이 매우 크오.
뭐, 무슨 용어가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사실 사람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소.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