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가 잘못 꿰어져도 한참 잘못 꿰어져 있는 듯함.
원래 일본 고고학계에서는 전후 반성의 의미로다가 에가미 나미오의 기마민족 남하설이 유행하면서
일본의 모든 게 북방민족으로부터 기원했다고 우기던 게 유행이었는데
당연히 한국 역시 그 북방민족 남하의 경유지로서 설정되어버림.
한국의 고고자료에서는 그런 식의 종족 교체나 갑작스러운 기마민족의 남하에 대한 증거를 전혀 확인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일본 애들끼리는 한동안 한국에서도 갑자기 북방민족이 어느 시점에 남하했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애들이 많아지고
환빠 계열 애들도 일본 애들이 씨부리는 걸 그대로 가져다가 기마민족 남하설을 은연중에 빨아대는 애들이 많은 상황이었음.
특히 고구려, 대륙뽕 가진 애들이 많아서 말이지.
정작 한국 고고학 논문에서는 관련 논의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데 인터넷이나 미디어 혹은 비전공자 사이에서 은연중에 기마민족 타령 하는 애들이 가끔 나오는 것도 이런 영향.
이런 일본 학계의 경향이 반영 된 게 일본어-부여어 동계어설이고
일본어족은 기마민족계통으로서 한반도를 경유하여 일본으로 갔다
부여어족과 한국어족은 서로 계통이 다르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되다가
차츰 고구려어에서 한국어의 흔적이 많이 나와서 이게 별로 지지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다보니까
그 다음에 나온 게 반도 일본어설인데
이건 원래 부여어-일본어 동계어 가설에서 이주민이 일본어족, 선주민이 한국어족이었다고 하던 게
그냥 방향만 바꿔서 남하한 기마민족이 한국어족이고 원래 있었던 선주민이 일본어족이라고 한 것에 불과함.
이제 일본 고고학계에서도 기마민족 남하설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언어학계에서만 이런 기마민족 남하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하게 박혀 있다보니까
이 틀에서 계속 언어 교체를 해석하는 이야기가 많은 것 같은데
안승모 선생같은 언어 문제에 대해서 나름 관심을 가지는 고고학자들조차도
이런 언어학계에서 나오는 이야기 듣다보니 뭔 개소린가 싶기도 하고
그렇지만 자기 전공 아니니까 함부로 말하기도 어려워서 굳이 개입 안 해서 자기들끼리 떠드는대로 내버려두고 있는 상황인데
사실 정확히 말하면 고고학적인 관점에서는
원래 이쪽 동네에서 이런 이야기들 나온 계기 자체가 아무 근거 없는 독트린에 근거하고 있다보니 어디서부터 이걸 반박해야할지 답답한 상황인 거지.
역사언어학계에서 패러다임 자체가 확 뒤집어지기 전까지는 이런 쪽 논의는 상당히 지지부진 할 수밖에 없겠다 싶음.
물론 모든 언어학자들이 트랜스유라시아어족 가설이나 반도 일본어설을 지지하는 것도 아닌 것 같긴 하다만
일단 현재로서는 아무리 언어학 쪽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잘 짜맞추고 갖다 붙인다고 해도
현재 고고학, 인류학적 통설을 이들 언어학적 가설과 종합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잘 안 보임.
북방민족 기원설이 왜 전후 반성의 결과임? 만주국 세우고 화북지역 공략하면서 나온 만한동조론 이런 느낌인데
실제로 이후에는 극우들이 변형된 임나일본부설(일본인의 조상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썰)이나 삼국시대 지배층이 일본인이었고 몽고전쟁 즈음에 일본열도로 밀려났다는 뻘소리 쓰는 용도로 악용되긴 했지만 그 때 초창기에는 일본인의 지배층이 한반도에서 왔다라는 이야기는 그 당시 일본 열도에서 한반도 방향으로 일방적으로 영향을 끼치기만 했다고 믿던 고전적인 일선동조론과는 약간 다른 방향에 있었기 때문임. 물론 에가미 나미오 그 스스로도 바로 위에 설명한 변형된 임나일본부를 가정했다던가 사실상 현재 일본 극우들이 하는 뻘소리들 상당수의 기원을 만들기는 했는데, 여튼 초창기에 기마민족정복설이 일본 사회에서 유행했던 것 자체는 특히 한반도에 대한 반성의 의미가 강했음.
일본·류큐 조어의 일본 열도 진입은 야요이 이주와 연관된 현상이지 기마민족 운운과는 전혀 상관이 없음
보빈이 자기가 반도 일본어설의 입론 근거로 제시하는 게 주로 A.D 3-7세기까지 남았다고 보빈이 주장하는 고대 진한어고, 이 언어가 어휘 분석한 결과 일본어족 흔적이 많다고 하는 게 그 주된 내용인데, 고대 진한어를 위시한 '반도 일본어 계열' 언어가 역사시대까지 한반도에 남아있다가 사라진 계기를 일관되게 기마민족 남하 때문이라고 지목하고 있는데 정말 아무 상관없는 거 맞음? 기마민족 남하설이 아니면 보빈이 '언어 교체 이전'에 있었다는 반도 일본어족은 어떻게 약사시대에 남아있어서 보빈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있었음을 논증하지?
Vovin의 구체적인 논증이 엉망인 건 Vovin이 고대 한국어를 전문으로 하는 연구자가 아니기 때문이고, Vovin 글을 읽지 말고 내 글을 읽으면 문제가 해결됨
그래서 반도 일본어족은 언제 없어짐?
고대 중국어/고대 한국어/일본·류큐 조어 화자가 모두 존재했던 한반도 남부의 일부 교역 거점들에서는 늦게까지 잔존했을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한반도의 일본·류큐 조어는 역사 기록 이전에 소멸함.
역사 기록 이전에 소멸했지만 아무튼 반도 일본어족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이야기인가?
지난글 보니 한국 사학계가 언어학을 다루는 수준이 낮다고 얘기하는데 내가 보기엔 역사언어학이 고고학을 다루는 수준이 그보다 훨씬 더 수준 떨어지는 것 같은데
참고로 역사시대 이전에 없어졌다고 할지라도, 애당초 청동기시대 이래에 대규모 인구통계학적 변화를 감지할만한 물질문화 자료는 나타나지 않음.
지난 글 보니 그냥 휘트먼이 고고학적인 증거를 종합해서 반도 일본어설을 입증했다고 하는 거 보니 더 읽을 필요는 없겠다 싶다 ㅋㅋㅋㅋㅋㅋ
참고로 휘트먼 논문의 근거가 된 안승모 선생은 애당초 신석기시대 연구자고, 한국 고고학계에서의 점토대토기-세형동검 관련 논쟁에는 참여한 적도 없음.
일단 근본적으로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역사언어학은 고고학을 다룰 이유가 별로 없음. 우연으로 설명될 수 없는 규칙적인 유사성이 있으면 그건 고고학적 증거가 있든 없든 간에 과거에 언어 접촉이 있었던 거고 고고학적 증거가 없으면 그건 고고학 잘못이지 역사언어학의 잘못이 아님. 말하자면 DNA를 통한 생물종의 계통 분류와 화석 증거의 관계와 비슷한데, DNA가 두 생물종의 공통 조상이 수천만 년 전에 존재했음을 시사한다면 실제 그럴 만한 종의 존재를 시사하는 어떠한 종류의 물리적 증거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공통 조상은 존재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음.
나도 역사언어학에서 동원어를 뭘로 잡든 어떻게 잡든 일본어가 있었든 말든 그건 아무 관심이 없음. 문제는 그런 자기들끼리 상상 속의 썰 푼답시고 고고학적 근거나 유전학적 근거와 전혀 상반되는 자기들만의 상상을 늘여놓고 그거 끼워맞추려고 별의 별 짓을 다한다는 거지. 당연히 보빈이나 이런 사람들이 입론한 반도 일본어적 증거가 있다는 것 자체는 타학문에서 뭐라할 일은 아니지. 근데 그것이 단순히 동원어라는 것을 넘어서 언제 어디에서 언어 교체가 됐고 대규모 주민교체가 됐다고 했을 때는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학제적 증거가 포함되는 것이 자명함. 그런데 청동기시대 이후에는 유전자 풀에 영향을 줄 정도의 대규모 변동은 관찰되지 않고, 고고자료의 변화 역시 비교적 계기적으로 변함. 이런 내용을 무시하고
단순히 어디에 동원어가 있다 = 이주, 교체의 증거다라고 말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음. 특히 한 때는 송국리문화가 일본어족이네 뭐네 이런 소리나 하고, 또 향문천 같은 애들은 보니까 전방후원분이 반도 일본어족의 증거네 뭐네 이러고 있는 것 같은데 애당초 고고학적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소리를 사방팔방 하고 다니니 비판을 안할 수가 없지
고고학의 잘못은 뭐냐 ㅋㅋㅋ 고고자료는 그냥 물리적으로 딱 존재하는 거고, 그 연대는 상대연대와 방사성 탄소연대측정법이라고 하는 과학적 방법을 가지고 검증을 받는 건데. 물론 그 해석은 일부 자의적인 측면이 나올 수 있지만, 그래봐야 청동기시대 말기 내지 초기철기시대에 수석리유형과 같은 이주민의 흔적이 매우 국소하게 나타난다는 사실, 이러한 변화양상이 매우 점진적으로 일어났다는 사실은 딱히 해석의 문제가 아님
그런 얘기를 나한테 해서 뭐함? 애초에 Vovin이나 Bentley 같은 학자들이 삼한 = 반도 일본어라고 주장하고 그게 역사언어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그나마 고조선부터 마한 남쪽 끝까지 명백한 언어적 동일성이 관찰된다는 이야기라도 하고 다니는 사람은 나밖에 없음.
'잘못'은 말 그대로 입증 책임에 대한 얘기임. 한국어 '잘못'이나 영어 fault나 그게 너네 탓이지 우리 탓이냐는 뜻으로 흔히 쓰이는데 못 알아들었다면 미안함.
애당초 그 보빈이 내가 본문에서 말한대로 부여어족(기마민족) 남하설 같은 사이비 학설에 근간해서 그런 소리 한다니까 뭘 어쩌란 거임. 만약 보빈이 기마민족 남하설과 같은 고정관념에 빠져 있지 않았으면 단순히 동원어를 가지고 그런 비약을 했을까 싶은데
애당초 자기들이 단순히 동원어만 가지고 이런 이주-교체설을 입론하기 어려우니까 자꾸 고고학적 근거를 가져다 쓰는데, 그 고고학적 근거들이 대개는 잘못돼 있다니까 왜 이 책임을 여기로 돌리냐고 ㅋㅋㅋㅋ
각 학문 분야는 다루는 자료의 특징이 전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학문이 서로 다른 account를 제공할 때는 어느 쪽을 우선할 수밖에 없는 그런 암묵적인 규칙이 있잖음. 역사 기록 (예를 들면 "A 지역에 B라는 건물이 있었다")을 통해서 고고학적 발굴 결과 ("A 지역을 다 파봤는데 그런 흔적 안 나온다")를 반박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고학적 증거의 부재는 역사언어학적인 연구 결과를 반박하는 자료로 사용될 수 없다는 얘기임. 근본적으로 유전적 > 언어적 > 고고학적 > 역사적 증거.
그냥 보빈이 느낌적인 느낌으로 아 이건 여기서 온 것 같다고 찍으면 그게 고고학적 근거보다도 우월한 언어학적 근거가 되는 건가? ㅋㅋㅋㅋㅋ
보빈 논문 아무리 읽어봐도 명확하게 그 전모를 확인하기 어려운 고대 진한어에 대한 피상적인 동원 어휘 몇 개 가지고 이주-교체설을 입론한 것인데 거기다가 뜬금없이 기마민족 남하 타령 덧붙인 거에 불과하고, 휘트먼도 아예 초장부터 고고학적 근거를 왜곡인용해서 이런 언어교체가 된다는 소리 밖에 안 하던데?
기마민족 남하설 같은 거야 물론 엉터리지만, 적어도 "기록에 나타나는 일본 열도의 어떤 일본·류큐어족 언어보다도 더 이른 시기의 형태를 보존하는 일본·류큐어족 언어가 한반도에 존재한 적이 있다" 같은 몇몇 명제들은 순전히 언어학적 기록만을 가지고도 도출할 수 있고, 그에 해당하는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그건 그냥 운이 좋지 않아서 (또는 연구자들이 자료의 해석을 뭔가 잘못 했기 때문에) 아직 발견되지 못했을 뿐이지 그런 사실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결론으로 연결되어서는 안 됨. 그런 의미로 '잘못', '책임'이라는 말을 쓴 것임.
역사언어학이 고고학을 다루는 수준이 처참한 것 같은데 도대체 뭘 근거로 물리적으로 떡하니 남은 고고자료보다 피상적이고 그 전모를 밝히기도 어려운 수준의 고대 언어 자료가 훨씬 더 권위가 높다고 생각하는진 모르겠지만, 그리 대단한 학문이면 고고학적 근거 좀 그만 팔아먹기 바람
//기록에 나타나는 일본 열도의 어떤 일본·류큐어족 언어보다도 더 이른 시기의 형태를 보존하는 일본·류큐어족 언어가 한반도에 존재한 적이 있다// 물론 이건 고고학적으로 동의함. 왜냐면 울산 지역에는 기원전 1세기에 이미 야요이식 토기의 흔적이 나오거든. 근데 과연 이게 역사언어학, 반도 일본어썰에서 말하는대로 전면적으로 고대 일본어족이 집단 거주했던 증거일까? 이 야요이식 토기가 재지의 와질토기와 형태, 계통상 명확하게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Vovin 2007 같은 "연구"는 아무 의미가 없는 완전히 엉터리인 것들이기 때문에 무시하면 됨 (자세한 비판은 내 과거 트윗
https://x.com/cppig1995/status/1777018871427576291
참조). 다만 Vovin이나 Bentley 같은 일부 연구자들이 고대 한국어에 대한 잘못된 연구를 내놓았다고 해서 역사언어학의 근본적인 틀을 부정할 수는 없음.
내가 지적하는 건 한반도에 존재하고 있다/한반도와 관련이 있다라는 걸 자꾸 전면적인 언어교체의 증거로 비약한다는 것임
re: "근데 과연 이게 [...] 전면적으로 고대 일본어족이 집단 거주했던 증거일까?" → 어족은 언어들의 집단인데 거주를 어떻게 함?
그래 사람없이 일본어만 갑자기 한반도를 경유해서 공기를 타고 날라갔다고 하면 인정함. 물론 그 역시 자연스럽게 해석될 수 있는 언어교체의 결과인지는 모르겠다만
예를 들면 일본인에 대한 최근의 유전학적 연구 결과는 고분 시대에 상당한 규모의 외래 인구 유입이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는데, 문제는 고고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그런 인구 유입에 대응하는 뚜렷한 표지가 없음. (언어학적으로도 없음.) 이런 일들이 있기 때문에 신뢰도 순위에서 하위에 있는 학문들은 그냥 하위라는 걸 인정하고 납득할 수밖에 없음. 그 대신 역사언어학이나 고고학, 역사학은 각각 다른 강점들이 있으니까 연구할 필요가 있는 거고.
아마 니가 제시한 게
https://www.science.org/doi/epdf/10.1126/sciadv.adi8419
이 논문을 말하는 거 같은데 읽어보니 흥미롭긴 하네. (
https://www.iflscience.com/dna-study-finds-unknown-group-of-ancestors-of-modern-japanese-people-73862)
조몬계,
야요이 말고 제 3의 미지의 그룹이 하나 더 있고, 이들이 북동아시아에서 발원해서 일본 고훈시대 전환기 즈음에 내려왔고, 이들이 기록 상 에미시 그룹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는 건데 재밌는 논문 같음
물론 이 연구에서는 조몬계가 그대로 야요이 문화를 이룩했다던가, 북동아시아 그룹이 농경을 가져왔다던가, 한반도 고대인이 가장 늦게 왔다던가 시기의 차이는 있는데 이런 건 아마 해석의 문제인 듯 하고, 또 한국인 그룹은 계속해서 역사시대 내내 일본으로 이주한 게 고고학적으로도, 문헌상으로도 확인되기 때문에 굳이 고훈시대 이후에 한국인이 왔다고 본 것 자체는 큰 무리는 없는 듯함.
북동아시아에서 온 거면 사할린 이 쪽에서 내려온 집단이라 할 수 있지 않나? 아이누가 이쪽 북아시아 그룹하고 어느정도 교섭이 있었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고. 신석기시대만 해도 원래 문물 전파루트는 한반도에서 서일본방향, 혹은 사할린 쪽에서 동일본 방향으로 두 가지 루트가 있기 때문에 이들 북동아시아 그룹이 일본 유전적 혈통에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건 아님. 그래서 딱히 고고학이나 문헌사학에서는 그다지 통설을 뒤엎을만한 엄청난 발견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듯함. 역사언어학에서는 제한적인 증거로 서로 짜맞춰서 과도한 결론을 내리려고 하는 경향이 많아서 이런 것 하나하나 일희일비할지 모르겠다만.
애당초 일본서기에서조차도 게이타이-긴메이 덴노 이후 시기에 에미시의 침략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문헌사에서도 전혀 놀랍거나 새로운 이야기는 없음. 오로지 역사언어학에서만 놀랄만한 발견이 아닌가함. 개인적으로는 아이누=에미시=조몬인을 등치하는 공식이 좀 짜증났는데 이 발견이 오히려 내가 생각하던 일본의 인구구성 양상과 비슷해보이는 듯함.
너는 역사언어학이 고고학보다 신뢰성이 높닥도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일단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 물론 언어학자들이 지극히 제한된 자료를 어떻게든 찾아서 재구를 하고자 시도한다는 점 자체는 높이 평가할만하지만, 기초 데이터부터 논란의 여지가 없는 불변의 자료도 아닌 데다가, 그 해석의 방법론 역시 니가 스스로 인정했듯이 보빈과 같은 사람들이 뻘소리 하고 고고자료를 이상하게 왜곡 인용하는 경우를 많이 봐서리 그냥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너무 작은 데이터를 가지고 과도한 정보를 추출하고자 시도하다보니 계속해서 비약이 많이 나오는 듯하는 것 같다는 느낌임.
고고학 등 다른 학문에서는 경쟁하는 가설이라고 해도 서로 동의하는 부분도 많고 유사한 측면도 많은데, 역사 언어학의 가설은 그런 측면에서 너무 서로 극단적으로 상반되고, 그래서 인터넷 상에서만인지 모르겠다만 지나치게 경쟁 가설에 대한 감정적 비난도 많은 듯함. 참고로 고고학의 경우에는 고고학 연구에서 언어학적 연구가 전혀 필요하지 않고, 언어학적 연구를 통해 뒷받침될 이유조차 전혀 없음. 이미 물질자료 그 자체만으로도 다루어야 할 데이터가 많고, 그런 물질문화 간의 관계를 해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정보를 추출할 수 있음. 그래서 고고학자들이 대개 언어학에 무관심한 것이고, 니 생각과 달리 딱히 고고학적 증거를 언어학적 추측에 끼워맞추려는 시도 같은 것도 하지 않는 것임.
물론 이는 고고학과 언어학의 연구 대상 자체가 전혀 다르기 때문인데, 고고학에서는 기본적으로 물질문화의 변동 과정을 해석하고, 이를 통해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에 한해서만 인간 사회의 변화에 대해 다룸. 물론 그 해석이 약간 과도할 수는 있어도 고고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있는 자료를 가지고 해석하고, 대답할 수 없는 부분에까지 과도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음. 역사언어학은 언어 변화를 통해 인간의 역사를 이해하는 거지만, 내가 보기엔 언어를 통해서 역사적 변화를 과도하게 추론하려는 환원주의적 경향이 보이는 듯함. 물론 고대 한국어와 일본어 사이에 동원어가 있고, 이것이 제한적인 인적, 물적 교류의 산물일 수 있지만, 과연 이걸 가지고 역사언어학이 상정하는대로 대규모 인구이동을 입증할 수 있을까는 개인적으로 회의적임
지난글보니까 박사과정생인 것 같은데, 부디 타학문에 대한 좀 더 관용적이고 열린 태도를 가지고 좋은 연구를 해주기 바람 물론 나도 역사 언어학에 대해서 과도한 비난만 한 것 같다만..
아니 잠깐 내가 보다보니 논문을 두 개 섞어서 읽은 거 같은데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10426068/
이것도
북동아시아 그룹을 가정한 삼분구조 논문이긴 한데 이건 류큐제도에 보다 더 집중된 연구긴 함. 근데 이걸 두개를 섞어서 얘기한 듯한데 그래도 내용이 크게 서로 다른 건 아닌 듯. 대충 훑어봐서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만...
저자들이 일부 겹치는 거 보니 일본 연구자들이 주로 저런 일본 인구 삼분구조에 대한 연구를 주도하는 것 같은데, 내가 유전학 연구결과를 어떻게 해석할지 몰라서 대충 훑기만 한 거지만 이것도 되게 흥미롭긴 한게, 동아시아혈통(여기서는 주로 중국 한족을 예시로 들지만)이 주로 고훈시대 전후로 대규모로 이주했다면, 사실상 현재 일본인의 혈통 중 한국인적인 부분은 주로 역사시대 이후의 인구 이동의 결과로 해석하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긴함. 조몬시대도 당연히 고고학적으로 한반도에서의 이주가 상정되겠지만, 사실 고고학적으로도 야요이문화는 조몬계 문화와 한반도계 문화의 습합이거든. 다소 간에 한반도계 문화가 좀 더 지배적으로 나타나기는 했어도 결국 야요이시대 자체는 한반도계 문화를 흡수한 조몬계가 주도했다고 할수있으려나
팩트) 나는 고고학 연구에서 언어학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다만 Vovin 같은 학자들이 무리하게 고고학이랑 엮는 이야기를 하는 건 인도·유럽어족의 경우에 고고학적으로 확인되는 특정한 문화와 특정 단계의 조어를 연결짓는 게 잘 확립돼 있기 때문에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긴 함
물론 잘은 모르겠다만 보빈이 이거 가지고 기마민족 남하설은 근거 없다고 공격을 좀 당했는지 광개토왕 남방원정 타령도 했던 것 같은데 광개토왕의 남방 원정에서도 딱히 고구려인의 대규모 이주나 기층 사회의 해체 같은 일은 나타나지 않았음. 흔히 기마민족 남하설 추종자들이 북방민족과의 연관의 근거로 드는 신라의 적석목관묘도 재래의 목관묘-목곽묘가 계기적으로 발전한 것에 불과하고,(강봉원, 신라 적석목곽분 출현과 기마민족 이동의 상관관계에 대한 재검토, 2013) 대성동 고분군 등에 기마유구가 나온다고 해도 실제로는 거기에 토착 양식의 유물들이 훨씬 더 우세하게 출토됨. 흔히 삼국사기 지리지를 들어서 고구려가 신라 영토 깊숙이 상당히 남진했다고 주장하지만, 이에 부합하는 고고학적 근거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지리지 말고 본기 상에서도 고구려가 그렇게 깊숙이 진출한 정황은 나타나지 않음. 문헌상 고구려가 신라 영토에 진입한 것은 481년 미질부 전투 직전에 일시적으로 진출한 게 거의 전부이며 오히려 고구려고지라 통칭되는 지역은 오래전부터 신라의 영역이나 문화권에 포함돼 있었음. 그래서 대개 삼국사기 지리지의 언급은 그저 신라가 통일 후에 북삼주를 일괄적으로 고구려영역으로 인식하여 뭉뚱그려 기술한 정황이 강해, 실제의 정확한 역사적 사실에는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보임.(정창은,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고지’의 이해방향, 2010)
임기환 역시 삼국사기 고구려고지로 지목된 많은 지역이 실상 신라의 영향이 더 뚜렷하게 관찰된다면서, 고구려가 일시적으로 점령한 지역이나 단순히 교통로상만 점령한 간접 지배 영역까지 포괄한 것으로 보기도 함.(임기환, 5~6세기 고구려의 남진과 영역 범위, 2007)
대개 고구려의 유적은 내륙 깊숙이 나오는 게 아니라 주로 신라-백제와의 국경 부근인 한강유역, 강원도, 충청도 등지에서 나타나는데, 이 역시 대개 관방유적 등이 중심이 됨. 설령 실제로 고구려가 해당 지역을 경영했다고 하더라도 관련한 생활유적, 유물, 묘제 등은 상당히 부실하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고구려인이 대규모로 이주했다기보다는 간접지배나 완충지대로 삼았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여겨짐(정호섭, 남한지역 고구려 유적·유물의 현황과 과제, 2005)
특히 앞서 인용한 정창은은, 광개토왕시기 원정으로 말미암아 해당 지역에 영역지배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봄.(정창은, 4~5世紀 高句麗의 南方進出과 對新羅 關係, 2012) 설령 삼국사기 고구려고지에 나온 지역에 고구려의 영향이 있었더라도 이는 신라에 파병한 고구려의 주둔지의 성격 정도일 뿐이지 실질적인 행정지배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리라는 것.
이처럼 고구려의 남방 진출이라고 해서 주민교체나 행정적 성격의 강력한 지배가 이루어졌다고 볼 근거는 어디에도 나타나 있지 않음. 보빈은 한반도 동남부 지역에 언어 교체의 계기로 기마민족 남하설이나 광개토왕의 남방원정과 같은 것을 제시하고 있는데 문제는 기마민족 남하설은 아무 근거가 없고, 기마민족 남하의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하는 광개토왕의 남방원정 같은 경우에도 이를 계기로 한반도 동남부 지역에서 재지 사회가 해체, 대체되거나 엄청난 급변이 일어났다고 볼만한 근거는 나타나지 않고 있음.
글쓴이는 아는 거 많은 거 보니 기본적으로 똑똑한 거 같긴 한데 고고학 하나만 파느라 시야가 좁아진 느낌이라 이참에 똑똑한 머리로 시야도 넓힐 겸 언어학 공부도 해보는 게 어때?
이런건 네이버카페에서 심도있게 논의해라 보니까 부흥에 둘다 가입한거 같은데 거기서 제대로 검증받아라. 기마민족 남하설은 유목민들이 이동하면서 요리해먹는 동복이라는것이 발견됐기 때문에 그런거지
한국에서 고고학 자체가 주요 선진국에 비하면 제대로 연구된지 얼마 안됐고 국토 절반이 반갈죽 당해서 표본도 한계가 있으니 현재 연구된 자료만 가지고 너무 맹신하지 마라
일본 고고학은 한국보다 이런 이주-전파의 요소에 더 보수적인데
환빠적 마인드 유목민중심주의 때문에 조져진거 맞음 ㄹ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