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생각하던 거 대충 정리하는 노트


동아시아 인구집단 이동의 세 갈래



1. 기원전 15000년 경 동남아에서 일본 열도로의 조몬인의 이주.


- 주로 한반도를 경유해서 옮겨간 것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사실 한반도에는 이들 초창기 조몬계 관련 고고학적 흔적이 거의 없다. 조몬인은 빙하기 아직 해수면이 매우 낮아 일본열도 및 한반도와 중국이 육로로 연결되었을 무렵 일본 열도로 이주하였고, 이 당시 생겨난 육로 교량을 통해 일본 열도로 유입되었을 가능성도 존재. 이후 해수면이 상승하며 일본열도는 고립되었고, 여기에 고립된 집단이 이후 조몬인으로 이어짐. 일본 열도 바깥에 남아있던 조몬계 집단은 후속하는 인구 이동의 과정에서 동화, 흡수되어 사라진 것으로 보임.



2. 동남아 혹은 유라시아 초원에서부터의 북아시아 신석기인의 이주


- 기원전 1만년-6000년 경 사이에 동남아 혹은 유라시아 초원에서부터 북아시아 신석기인이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됨. UNIST 연구진은 동남아에서 기원했다고도 하지만, 막스플랑크 연구소 등에서는 기원전 3만년 경의 유라시아 수렵채집민, 고시베리아인, 신시베리아인들이 기원전 1만년 경까지 순차적으로 동아시아에 유입되었다고 봄. 한반도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6천년 경부터 시작되는데, 토기문화 등 신석기문화는 이 무렵 북아시아 신석기인의 이주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음.



3. 동아시아 농경민 집단의 이주


- 기원전 3-2000년 경 남중국의 도작농경 및 정주농경의 발명으로 말미암아 농경민 집단 인구가 동남아 및 요서-요동-한반도에 이르기까지 급속하게 확산되기 시작함. 대체로 이들 농경민들은 토착 수렵채집민보다 숫적인 측면에서 우세하여 이들보다 우위의 입장에서 결합, 각지에 다양한 혈통집단을 만들어냄. 이들은 기원전 13세기-10세기 경 도작농경에 유리한 한반도 중서부 일대에까지 확산, 토착 북아시아 신석기인과 혼합하여 한국인의 유전형질을 형성했으며, 이후 재지의 북아시아 신석기인 집단을 압박하거나 그들을 흡수함으로써 한반도 전역을 빠르게 농경문화로 전환시킴. 특히 한반도 도작농경 문화 확산의 중심지인 금강유역의 송국리문화가 이들이 이룩한 문화였으리라 여겨짐.


이들 농경민은 비단 도작이 아니더라도 각지에 보리와 잡곡 등을 중심으로한 정주농경문화를 하가점 하층문화로부터 가장 동쪽으로는 서단산 문화에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였음.


+) 그리고 끝으로 한반도에서의 일본으로의 인구집단 이동이 있었음. 첫째는 기원전 9-8세기 경부터의 북아시아 신석기인 집단의 이동으로 일본 야요이문화가 형성되었고, 둘째로 3-5세기 이후 고훈시대의 역사시대 한반도 주민들의 이주로 이로인하여 일본인의 유전적 혈통 비중은 동아시아인 혈통이 압도적인 다수로 자리잡게 됨. 다만 이들은 주로 정치적 격변을 피해 달아난 난민들이었으므로 사회의 주도권을 차지하지 못해 언어적 영향은 상당수의 한국어족 어휘를 일본에 남기는 것 이외에는 제한적. 또 그 이후 한국어의 어휘가 상당수 한자어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한일 간 어휘의 관련성 역시 좀 더 퇴조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음



이러한 유전학적 증거만 두고 살펴보았을 때 소위 알타이 제어의 공통성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은 이들 북아시아 신석기인집단이라 할 수 있음. 이들 북아시아 신석기인들은 현재의 퉁구스계통 북아시아인들이라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중심으로 한국어, 일본어의 계통관계를 추측해볼 수도 있음.



한국어 = 동아시아 농경민 언어(주류) + 퉁구스어(기층어)

일본어 = 조몬어(주류) + 퉁구스어(비주류어)


그 이외에 만주어, 에벤키어 등의 퉁구스어는 북아시아 신석기인의 언어의 직계 후손이라 할 수 있으며

이들 북아시아 신석기인 집단의 유전적 영향을 상당수 받은 한국어와 일본어에 퉁구스어의 영향이 나타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음.


이러한 가설을 가지고서 한국어와 일본어, 퉁구스어족이 왜 동일 어족이 아닌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들 언어 사이에 광범위한 공통점이 관찰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음.


한국어족 집단은 동아시아 농경민 집단이 요서 이동지역에서 확산된 것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즉, 모든 동아시아 농경민이 한국어족과 관계된 것은 아니고, 요서 및 그 이동의 어느 지역에서 한국어족이 발원하여 확산된 것)

이 때문에 역사시대 초창기 한국사의 범주가 요서-요동 및 만주일대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돼 있었던 것이라 볼 수 있음.


그러나 이후 통일중국의 지속적인 동진, 그리고 거란 및 만주족 등의 유목민-수렵채집민의 역량 강화로 말미암아 한반도 이북에서 한국어족 집단은 소멸하게 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음.


휘트먼이나 트랜스유라시아어족 가설에서 가정하는 2차례 이상에 걸친 농경민의 한반도의 대규모 확산은 별다른 고고학적 근거가 없고(송국리문화 성립 이후 한반도 중남부의 문화는 단절성이 약함) 한국어족의 확산은 단지 청동기시대 전기 농경민 및 정주농경문화의 확산과 더불어 한 차례 대규모로 이루어짐으로써 나타난 게 아닌가 함.


점토대토기문화가 한반도 선주 송국리문화 주민들을 대체했을 가능성도 빈약하지만 설령 대체했다고 할지라도 한반도 청동기시대의 개시 연대와 후속하는 점토대토기의 유입 및 확산 연대 사이에는 격차가 너무 적기 때문에 그 사이에 어족의 분화가 이미 이루어졌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