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생각하던 거 대충 정리하는 노트
동아시아 인구집단 이동의 세 갈래
1. 기원전 15000년 경 동남아에서 일본 열도로의 조몬인의 이주.
- 주로 한반도를 경유해서 옮겨간 것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사실 한반도에는 이들 초창기 조몬계 관련 고고학적 흔적이 거의 없다. 조몬인은 빙하기 아직 해수면이 매우 낮아 일본열도 및 한반도와 중국이 육로로 연결되었을 무렵 일본 열도로 이주하였고, 이 당시 생겨난 육로 교량을 통해 일본 열도로 유입되었을 가능성도 존재. 이후 해수면이 상승하며 일본열도는 고립되었고, 여기에 고립된 집단이 이후 조몬인으로 이어짐. 일본 열도 바깥에 남아있던 조몬계 집단은 후속하는 인구 이동의 과정에서 동화, 흡수되어 사라진 것으로 보임.
2. 동남아 혹은 유라시아 초원에서부터의 북아시아 신석기인의 이주
- 기원전 1만년-6000년 경 사이에 동남아 혹은 유라시아 초원에서부터 북아시아 신석기인이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됨. UNIST 연구진은 동남아에서 기원했다고도 하지만, 막스플랑크 연구소 등에서는 기원전 3만년 경의 유라시아 수렵채집민, 고시베리아인, 신시베리아인들이 기원전 1만년 경까지 순차적으로 동아시아에 유입되었다고 봄. 한반도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6천년 경부터 시작되는데, 토기문화 등 신석기문화는 이 무렵 북아시아 신석기인의 이주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음.
3. 동아시아 농경민 집단의 이주
- 기원전 3-2000년 경 남중국의 도작농경 및 정주농경의 발명으로 말미암아 농경민 집단 인구가 동남아 및 요서-요동-한반도에 이르기까지 급속하게 확산되기 시작함. 대체로 이들 농경민들은 토착 수렵채집민보다 숫적인 측면에서 우세하여 이들보다 우위의 입장에서 결합, 각지에 다양한 혈통집단을 만들어냄. 이들은 기원전 13세기-10세기 경 도작농경에 유리한 한반도 중서부 일대에까지 확산, 토착 북아시아 신석기인과 혼합하여 한국인의 유전형질을 형성했으며, 이후 재지의 북아시아 신석기인 집단을 압박하거나 그들을 흡수함으로써 한반도 전역을 빠르게 농경문화로 전환시킴. 특히 한반도 도작농경 문화 확산의 중심지인 금강유역의 송국리문화가 이들이 이룩한 문화였으리라 여겨짐.
이들 농경민은 비단 도작이 아니더라도 각지에 보리와 잡곡 등을 중심으로한 정주농경문화를 하가점 하층문화로부터 가장 동쪽으로는 서단산 문화에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였음.
+) 그리고 끝으로 한반도에서의 일본으로의 인구집단 이동이 있었음. 첫째는 기원전 9-8세기 경부터의 북아시아 신석기인 집단의 이동으로 일본 야요이문화가 형성되었고, 둘째로 3-5세기 이후 고훈시대의 역사시대 한반도 주민들의 이주로 이로인하여 일본인의 유전적 혈통 비중은 동아시아인 혈통이 압도적인 다수로 자리잡게 됨. 다만 이들은 주로 정치적 격변을 피해 달아난 난민들이었으므로 사회의 주도권을 차지하지 못해 언어적 영향은 상당수의 한국어족 어휘를 일본에 남기는 것 이외에는 제한적. 또 그 이후 한국어의 어휘가 상당수 한자어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한일 간 어휘의 관련성 역시 좀 더 퇴조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음
이러한 유전학적 증거만 두고 살펴보았을 때 소위 알타이 제어의 공통성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은 이들 북아시아 신석기인집단이라 할 수 있음. 이들 북아시아 신석기인들은 현재의 퉁구스계통 북아시아인들이라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중심으로 한국어, 일본어의 계통관계를 추측해볼 수도 있음.
한국어 = 동아시아 농경민 언어(주류) + 퉁구스어(기층어)
일본어 = 조몬어(주류) + 퉁구스어(비주류어)
그 이외에 만주어, 에벤키어 등의 퉁구스어는 북아시아 신석기인의 언어의 직계 후손이라 할 수 있으며
이들 북아시아 신석기인 집단의 유전적 영향을 상당수 받은 한국어와 일본어에 퉁구스어의 영향이 나타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음.
이러한 가설을 가지고서 한국어와 일본어, 퉁구스어족이 왜 동일 어족이 아닌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들 언어 사이에 광범위한 공통점이 관찰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음.
한국어족 집단은 동아시아 농경민 집단이 요서 이동지역에서 확산된 것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즉, 모든 동아시아 농경민이 한국어족과 관계된 것은 아니고, 요서 및 그 이동의 어느 지역에서 한국어족이 발원하여 확산된 것)
이 때문에 역사시대 초창기 한국사의 범주가 요서-요동 및 만주일대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돼 있었던 것이라 볼 수 있음.
그러나 이후 통일중국의 지속적인 동진, 그리고 거란 및 만주족 등의 유목민-수렵채집민의 역량 강화로 말미암아 한반도 이북에서 한국어족 집단은 소멸하게 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음.
휘트먼이나 트랜스유라시아어족 가설에서 가정하는 2차례 이상에 걸친 농경민의 한반도의 대규모 확산은 별다른 고고학적 근거가 없고(송국리문화 성립 이후 한반도 중남부의 문화는 단절성이 약함) 한국어족의 확산은 단지 청동기시대 전기 농경민 및 정주농경문화의 확산과 더불어 한 차례 대규모로 이루어짐으로써 나타난 게 아닌가 함.
점토대토기문화가 한반도 선주 송국리문화 주민들을 대체했을 가능성도 빈약하지만 설령 대체했다고 할지라도 한반도 청동기시대의 개시 연대와 후속하는 점토대토기의 유입 및 확산 연대 사이에는 격차가 너무 적기 때문에 그 사이에 어족의 분화가 이미 이루어졌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
퉁구스어는 무슨 근거로 북아시아 신석기인의 언어의 직계 후손이라고 할 수 있나?
1. 한국인 기원 연구에서 한국인은 동시베리아 인구집단 및 동아시아 인구집단의 혼합으로 설명하는데, 동시베리아 인구집단은 해당 연구에서 울치, 에벤인과 같은 퉁구스족 및 여타 북동아시아에 현재 거주하는 인구집단을 표본으로 삼은 지표이기 때문에 비교적 인접한 퉁구스어를 해당 신석기인집단의 언어로 가정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함. 해당연구의 한국인 유전비율 분석에 사용된 악마문 동굴 인골은 실제로 울치족 등과 가장 유전형질이 비슷하게 나타난다고 함.
2. 또한 고구려의 홀계 지명 42개에서 추출한 54개 단어를 분석한 결과, 이 중 33개 단어가 퉁구스어, 특히 에벤키어와 유사성이 있다고 하는 연구가 있음.(엄순천, 고구려어 홀(忽)계 지명과 퉁구스계 에벤키어, 우데게어, 나나이어 비교 분석, 2019) 해당 언어학적 분석의 타당성은 내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겠지만, 여하간 이렇듯 퉁구스 및 고대 한반도 언어 간의 유사성을 다룬 연구가 존재하기 때문에 고대 한국어에 퉁구스어의 영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여 본문에서는 한국어의 기층어로 퉁구스어를 가정하였음.
물론 북아시아 신석기인 집단이 동아시아 확산 이후 꽤 많은 시간이 지났을 것이기 때문에 이들의 언어가 현존하는 퉁구스어와 직접적인 계승관계에 있다고 단언할 수 없다고 할 수는 있겠음. 어쩌면 요서 혹은 요동지역의 초기 한국어의 형성 과정에서 농경민과 결합한 퉁구스어족 집단과,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북아시아 집단의 언어가 오랜 시간이 흘러 퉁구스어족에서 분화하였을 가능성, 그래서 한반도 남부 신석기집단의 언어가 별도로 일본어족의 모태가 되는 언어였을 가능성도 부인할 수는 없음. 문제는 원시 조몬어로 추정할만한 자료 자체가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점. 조몬시대는 1만년이 훨씬 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기원전시기 규슈지역에서 통용된 조몬어가 정반대쪽 사할린 쪽의 아이누어와 직접적으로 유사한 언어로서, 현재의
아이누어를 조몬어를 대표하는 자료로 지목하기는 부적합하므로 관련한 정밀한 언어 분석이 난망하여 이러한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생각함.
아무르강 유역과 러시아의 태평양 연안에는 이른바 고아시아족이라 불리는 퉁구스와 관련 없는 여러 민족이 존재하기도 함. 시간이 없어 짧게 쓴다만, 애초에 퉁구스제어와 한국어, 일본어의 유사성이 과대평가되어 왔음. 한국어와 유사한 어휘가 상당히 많은데, 문제는 보빈이 잘 지적한 것처럼 남퉁구스제어에는 있으나 그 외 퉁구스제어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임. 이는 한국어족 언어로부터의 차용어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고(고구려-발해).
보빈의 고대한국어 관련 재구나 연구에 각론적으로 여러 문제들이 지적되어 오기는 했지만, 내 생각에 보빈의 가장 큰 공헌은 남퉁구스 제어에 한국어족 언어로부터의 차용어일 가능성이 높은 어휘들이 많으나 일본어족 언어로부터의 차용어로 보이는 것은 사실상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지적한 것임. 중국이나 일본, 과거 한국의 학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고구려어가 일본어족이거나 일본어족에 가까운 무언가였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점은 자명하니까.
한편 과거 니브크어 계통의 언어가 훨씬 넓은 영역에 존재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음. 한국어와 니브크어의 유사점에 관한 연구들도 과거에 있었고. 그런데 일본어에는 이런 유사성이 잘 안보인다는 견해가 있었고, 그래서 한국어족과 일본어족이 발원했을 때 기층이 달랐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이 당시 악마문 동굴인으로 대표되는 북아시아 신석기인들 자체가 자체가 유전적으로 울치족 등 퉁구스제어 계통 집단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는 사실 자체는 딱히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임.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adv.1601877
그리고 현재 지명어에 남은 자료만으로는 일본어족이 한국에서 건너간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음. 한국어와 일본어가 퉁구스와 관련 있는 제3의 언어의 영향을 공통적으로 받았고 이에 따라 유사성이 나타나는 것이며 일본어족은 일본열도에서 생성된 것이라면, 삼국사기 등에 남아있는 한반도 중부지역의 지명어들에 일부 포함된 일본어 계통으로 보이는 많은 요소들을 설명할 수가 없음. 그 요소들이 퉁구스계통이나 다른 제3의 언어에 나타나는 것 같지 않기 때문임.
악마문 동굴인의 요소는 퉁구스계 뿐만 아니라 니브크인 등 근처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매우 강하게 나타남. 퉁구스어 자체도 외부에서 이식된 것일 가능성이 있음.
어떤 언어가 어떤 지역에서 지배적인 언어가 될 때에는 정치적 헤게모니를 잡는다거나 쪽수를 급격히 늘렸다거나 그런 과정이 필요함. 야요이 중기 이후 수도작의 확산과 함께 일본어도 일본열도에서 급격히 확산된 것으로 볼 수 있음. 한반도 남부에서 출발한 집단은 수도작과 일본어를 같이 들고 간 것으로 추측됨. 그렇다면 한반도 남부, 아마도 동남부에서, 송국리유형의 전파로 수도작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으나 아직 언어적으로는 일본어족을 유지하였던 어떤 집단이 그 모체일 것임.
최근 3원설 논문에서 고훈시대 이후 대량 이주를 가정하는데 고고학적으로는 근거가 부족한 느낌이 있음. 어느정도 규모있는 이주는 야요이 중기 이후 지리적으로 송국리유형의 주변부에 위치한 경남지역의 어떤 집단이 1차, 그리고 마한 지역, 아마도 분구묘를 조영했던 전남지역의 어떤 집단이 2차였을 것 같음. 즉 이런 웨이브들이 일본 열도 이주 이후 다시 확산되면서 고훈시대에 대륙계 비율이 올라간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지 고훈시대의 대량이주에 의한 것은 아니라는 것임.
실제로 점토대토기문화가 기원전 시기 야요이시대 전기 말에 일본열도에 전파된 흔적은 분명히 존재함. 이는 이미 한반도 중서부지역에서 형성, 완성된 문화이므로 해당 문화가 동남부를 경유하여 일본으로 전파될 때는 실제로 마한권 분구묘 등의 묘제나 세형동검, 점토대토기 등이 이 시기에 전파되었을 것임. 그러나 해당 점토대토기문화는 대체로 야요이문화와 별다른 갈등관계가 없었던 데다가 머지않아 토착 야요이사회에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고 함. 그런 까닭으로 이 당시 이주 규모 역시 비교적 상당한 수준이기는 했을 것이나, 오래지 않아 토착사회에 동화되는 것으로 나타나므로 이들이 사회적 주도권을 확보하지는 못했을 것임. 초기 야요이문화는 주로 조몬계 문화가 좀 더 우세하여 조몬인이 주체가 되었을 가능성이 비교적 높으므로,
조몬인들이 지속적으로 스스로 주체가 되어 도래인을 수용하고 있는 상황으로도 해석할 수 있음.
또한 고훈시대 전후에도 한반도계, 특히 백제계 횡혈식 석실분이 기나이와 규슈에서 대규모로 나타나는 현상, 그리고 이와 관련해 일부 묘제는 도래인의 직접적인 이주가 상정되는 것과 이외에 수많은 한반도계 물질문화 자료가 일본에서 나타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고훈시대 전후에도 상당한 수의 도래인의 이주가 있었다고 보아도 크게 무리는 없음. 다만 이들 도래인들은 신라, 백제, 가야 그리고 고구려까지 그 출신이 다양했고, 이들 각 국가가 비교적 중앙집권을 이루어 토기의 기형과 같이 문화적인 차별성이 어느정도 존재했기 때문에 한반도계 이주민이 딱히 통일된 물질문화 자료로서 나타나지 않고 비교적 재래 토착민들에 의한 주체적이고 선별적인 수용이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함.
내 얘기는, 야요이 조기의 이주는 소규모의 이주가 맞음. 유전적으로 조몬 비율이 상당히 높게 나타남. 야요이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의 확산은 내가 위에서 쓴 상당한 규모 있는 웨이브들 중 1차 웨이브 이후의 사건임. 김장석 등 논문을 보면 정리되어 있는데, 송국리유형이 한반도 남부에서 쇠퇴하고 그 뒤 일본열도에서 인구 증가가 시작됨. 큐슈에 송국리 유형의 집자리가 다량 보이는 것도 이 이후임. 해서 일본어족의 확산은 최초 이들에 의한 것이었고, 야요이 조기의 소규모 이주는 일본어족 확산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임. 마한지역에서의 이주는 또 몇백년 뒤임. 이들은 이미 1차 웨이브로 상당히 인구가 늘어난 일본열도에 후발대로 들어간 것이므로 동화되는게 자연스러움.
고훈시대에 이르러 가야 등 한반도 남부지역의 묘제나 이후 백제계 횡혈식 석실분이 상당수 나타나기는 하지만, 일본열도에서 분구묘에서 출발하여 자체적으로 발전한 토착 묘제인 전방후원분이 수적으로 한반도계 분묘를 압도함.
애당초 분구묘 자체가 송국리문화의 영향이 상당히 강한 묘제고, 점토대토기문화-세형동검 역시 송국리문화와 단절적인 문화가 아님. 아마 송국리문화가 쇠퇴하면서 일본 열도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일본어족이 확산됐다고 말하고 싶은 모양인데 송국리문화는 야요이문화 그 자체가 아니고, 오히려 조기건 그 이후건 야요이문화라는 문화 형식 자체가 조몬계의 영향이 상당히 강하게 나타남
애당초 고훈시대 경관 요소 자체가 한반도계 이주민이 일본인에 동화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임. 그리고 당연히 시간이 지나면 해당 묘제가 토착화되는 것 역시 미찬가지임. 고훈시대 인골 연구는 주로 이러한 묘제에 묻히지 않은 피지배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당연히 그러한 피지배층이 완성된 전방후원분 묘제를 구축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임. 그 이외에 실생활용기 등이나 식생활 등 많은 측면에서 한반도계 문화의 요소가 일본에서 검출되는데, 이는 그만큼 상당한 수의 이주민이 고훈시대에 이르러 나타났음을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임
그리고 내가 말한 점토대토기문화의 이주 자체가 야요이시대 최초 전래 이후 가장 뚜렷하고 분명한 수준의 대규모 이주임. 왜냐하면 저 당시의 이주를 기점으로 해서 야요시대는 전기에서 중기로 넘어가고 사회발전 정도가 격절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임. 그 이전에는 대체로 이전의 양식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사회복합화의 징후도 그다지 나타나지 않음. 물론 그 이전에도 여러차례의 이주 자체가 있었던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로는 큰 규모의 이주를 상정할 수준은 아님. 야요이시대의 개막에 이주민의 기여를 중시하는 것은 단순히 그 과정에서 물질문화 및 사회양상이 크게 달라지는 계기였기 때문이지 실제 외래계 유물의 수량 자체는 이전 조몬시대에 비해 압도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움.
결국 야요이문화 자체는 이러한 조몬계 문화 및 새로운 한반도계 문화의 융합의 과정에서 생겨났고, 그렇게 성립한 문화가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임. 후기 야요이유적에서 발굴된 조몬계 인골이 나타나는 정황이 이미 명확하고 사실은 고고학적으로도 이러한 조몬계 문화의 잔존 양상이 뚜렷하기 때문에 고고학적으로 근거가 없다는 것은 잘못된 이야기임.
내 얘기는 송국리유형이 일본으로 그대로 건너가 토착 문화를 압도하고 야요이 시대를 열었다 이런 취지가 아님. 다만 그 이전과 달리 규모 있는 이주가 그 무렵 시작된 것은 분명해 보임. 그리고 이들이 당연히 빈 땅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니, 농경을 시작하여 인구가 큐슈에서 어느 정도 늘어난 토착인들(유전적으로 아직 조몬 비율이 매우 높은)과 유전적, 문화적으로 섞였을 것은 자명함. 야요이 중기 이후의 고고학적 양상도 실제로 그러하고. 다만 언어적으로는 그 섞인 결과물의 확산이 곧 일본어족의 확산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임.
조몬 비율이 높은 것처럼 보이는 인골이 후대에까지 일부 나타나는 상황은 충분히 설명될 수 있음. 한국어족이 일본어족을 한반도에서 대체하는 과정이 일순간에 끝난 것이 아니었듯이. 후대까지도 토착 계통의 요소가 높은 섬들이 여러 군데 존재했을 것이고, 그중 일부는 혈연적 교류는 적었으나 문화적으로 야요이인의 생활양식을 받아들인 경우도 있었을 것임이 당연함. 그런데 야요이 후기의 조몬 인골이라 함은 어느 지역에서 나온 어느 추정연대의 자료를 의미함?
조금 오해가 있게 썼는데, '섞인 결과물의 확산'이 아니라 이주민과 토착민들이 섞이는 과정에서 이주민들이 한반도에서 가져온 언어가 그 섞인 결과물 집단이 쓰는 언어가 되었고 이 언어가 다시 급격히 확산되었다는 취지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adv.abh2419
이
논문의 figure 1 규슈 최서단 끄트머리에 야요이라고 적힌 데가 해당 야요이 인골이 출토된 곳이고 16번 각주와 그 앞에 후기 야요이 인골로 분석한 자료라고 나와 있음. 조몬계 비중이 많은 인골이라는 거
애당초 이 당시의 이주-문화변동 양상은 점진적이기 때문에 구태여 그런 이중 삼중에 걸친 가정을 할 필요는 없을 듯함. 다시 말하지만 그나마 점토대토기문화의 확산이 이 당시 야요이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였고 이들은 결국 재지 야요이사회에 별다른 갈등 없이 동화되었음. 이전의 발전송국리유형 주거지의 확산-전파도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이미 이전에 형성된 야요이인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음.
그리고 애당초 야요이시대에 이주한 인구집단과 고훈시대에 이주한 인구집단의 유전적 특성 자체가 전혀 다른 상황에서 고훈시대의 인구 변동이 야요이시대에 이미 일어났다고 가정하는 것도 그다지 자연스럽지 못함. 해당 연구는 고훈시대 인구집단에서도 어느정도 야요이시대 인골에서 나타나는 유전적 특징들이 그대로 잔존한 상태에서 한반도 이주민의 흔적이 강화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건 야요이시대에 조몬계 비중이 상당한 형태의 인구가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움.
내 취지는, 야요이 조기에 이주한 집단, 야요이 중기 이후에 이주한 집단이 유전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것임. 야요이 중기 이후에 이주한 집단은 그 이후 고훈시대에 이주한 집단과 유전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을 것 같고.
고훈시대와 야요이시대의 이주집단의 혈통적 특징이 서로 다르다면, 이를 연속적으로 외래계 혈통이 점차 늘어난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함. 사실 이미 재지사회에 동화되고 토착화된 선행 이주민과 후행 이주민 사이에 문화적 양상이 동일하다고 볼 수도 없고, 이미 야요이문화는 조기 이후로 상당히 정착하고 확산된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한반도계 문화를 흡수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러한 여러차례의 전파 중 특정한 전파 때만 한반도계 인구집단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고 보는 건 부자연스러움. 또 고훈시대는 야요이시대 이주민과 전혀 다른 이주민 집단이 이주한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이를 야요이시대 인구전파와 동일한 양상으로 이해하기 어려움
그럼 더 이상해지지. 야요이시대 전기에 이주한 집단은 송국리-검단리 병존지대에 있던 집단이고 유전적으로도 북아시아 신석기인에 가까웠는데 그 이후에 이주한 집단은 송국리문화-마한계 문화가 뚜렷하게 나타나서 오히려 현대 한국인과 훨씬 유전적으로 더 유사한 집단인데
아 야요이 인골 figure1 밑에 연대가 있구나. 대략 기원전 1세기 경의 인골인듯함.
일본어족의 기원과 확산의 문제를 더 논하려면 검단리유형과 경남지역의 송국리유형 그리고 야요이 중기 이후의 집자리 구조와 토기 등을 더 세밀하게 들여다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임
그렇지만 나도 일본어족 언어가 신석기 시대에 이미 한반도에서 사용되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함
나는 한반도에서 일본어족이 신석기시대에 형성되었을 가능성, 혹은 한반도 신석기시대에 존재하던 퉁구스어의 영향으로 일본에서 일본어족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모두 가능하다고는 생각함. 전자의 경우 고구려나 신라 등의 고대 한반도 지명에서 일본어와 유사성이 발견되는 것을 잘 설명하고, 후자의 경우 한국어, 일본어, 퉁구스어 사이의 언어 계통 문제를 잘 해명하기 때문에 이들 가설 모두 장점이 있다고 생각함. 다만 한반도 남단의 신석기인 집단과 요하 일대의 신석기인 집단의 언어적 차이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없고, 또 이를 비교할만한 조몬어의 표본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해당 문제는 명확히 결론 내릴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함.
다만 개인적으로는 한일 동원어 자체는 다른 경로로도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한-일-퉁구스 사이의 언어계통 문제를 보다 더 잘 해명하는 후자의 개연성이 좀 더 높다고 생각함.
참고로, 과거 집단이 섞였을 때 언어가 변하는 양상 등에 대한 관찰에서 알 수 있듯이, 어느 정도 규모 있는 두 집단이 만났을 때 각각의 언어를 A, B라 하면, A+B가 A'나 B'가 아닌 C가 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묾. 이게 문화의 접촉과는 모습이 많이 다름. 한편 정치적으로 한 집단이 우위에 있었을 경우 아예 언어가 지배집단의 언어로 대체되는 경우, 지배집단의 수가 매우 적거나 문화적으로 열위에 있어 피지배집단의 언어가 거의 그대로 남은 경우 등이 대부분이고, 섞였다고 하면 문법적으로는 피지배집단 언어의 영향이, 어휘적으로는 지배집단 언어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일반화할 수는 없음.
그런 한반도에서 온 언어가 열세였던 것으로 나타난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지.
그럼
아니 그러면 한반도에 일본어족 언어의 흔적이 설명이 안된다니까;;;
그 흔적이 남부지방에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황해도 동부 경기도 북서부 강원도 북부 이런 식인데 어떻게 설명함?
1. 한반도에 신석기인 집단이 일본어족이었거나 2. 역사시대 전후로 일본에서 한반도로 들어온 집단이거나 3. 신석기시대부터 지속적으로 한반도에 흔적을 남기던 조몬계(한반도에서는 외래계) 토기의 흔적이거나
다시 말하지만 나도 신석기인 집단이 일본어족일 개연성 자체는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음. 개인적으로 여러 지명어에서 일본어 계통이 나타난다고 추정하는 것 자체가, 내가 보기에는 좀 주먹구구식으로 보여서 그다지 높이 신뢰가 가지는 않지만 만약 그게 언어학적으로는 정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 신석기인 집단이 일본어족일 가능성이 가장 들어맞긴 함.
언어학은 완전히 문외한 같은데
ㅇㅇ 그래서 이 갤에 글 올린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