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계에서 주로 일본어족의 기원이 한반도로 보는 유력한 근거 중 하나가

한반도 고대 지명에서 일본어족의 흔적이 추출된다는 것이 가장 결정적이고 거의 유일한 논거인 것 같은데




일단 이러한 논거를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해당 일본어족 계통의 지명들이 주로 경기 안성천 이북과 영남 동부, 동해안, 강원도 등지에서 나타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쨌거나 송국리문화를 위시한 한반도의 도작농경민 문화를 일본어족 집단이라고 규정한 현재의 휘트먼-보빈류의 반도 일본어설이나 미야모토 카즈오가 재정립한 트랜스유라시아어족 가설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함.


왜냐하면 청동기시대 송국리문화의 분포지는 경기 안성천 이남, 전북, 그리고 영남서부 일대에 한정돼 있었기 때문이지.

그 이외의 지역은 이들이 반도 일본어설에서 일본어족으로 상정하는 도작농경이 그다지 주요한 정주문화 및 핵심 생계경제 방식으로 유행한 지역이 아니고

애당초 송국리문화가 확산되지도 않은 지역에서 발견된 일본어족의 흔적을 가지고서, 송국리문화가 일본어족이었다고 하는 증거로 쓰는 것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


송국리문화를 영유한 일부 지역의 집단들이 일본어족이었을 수는 있을지라도 송국리문화의 전체를 일본어족으로 가정하는 논리는 성립하기 어렵고, 송국리문화를 위시한 한반도 도작농경문화 자체를 일본어족과 연루시키는 것은 거의 망상에 가까운 이야기일 뿐임. 언어학계에서 제시하는 한반도 지명의 일본어 어휘는 이러한 도작농경이 확산하지 않은 지역에도 많이 나타나기 때문.


또 한반도 청동기문화는 원래 초창기부터 요하지역 청동기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잉러한 한반도 청동기의 기원 문화가 현지에서 계승, 발전하면서 고조선 문화로 통합된 것임. 이때 이들 반도 일본어설에서는 주로 고조선계통 집단의 언어를 '한국어족'이라고 가정함. 하지만 거의 동일한 계통의 문화집단을 두고서 선행 이주민을 일본어족으로, 후행 이주민을 한국어족으로 서로 언어적인 차이가 매우 큰 집단으로 가정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하는 문제도 남아있음. 그 사이 고조선의 기층문화가 갑작스럽게 어떤 주민교체가 일어났다고 볼만한 근거도 일단 내가 알기로는 없음.




그럼 남은 가능성은 두 가지인데,


첫째로 청동기시대 주민집단이 이주해오기 이전 한반도의 신석기집단의 언어가 일본어족이었다거나

둘째로 보빈 등이 제시한 일본어계통 지명 자체가 실제로는 일본어가 아니거나




첫째 가설의 경우에는 신석기시대 문화계통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신석기시대 일본어족 집단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해명할 필요가 있는데, 일단 내가 알기로는 동북아시아 신석기시대 문화 자체가 상당히 동질적인 부분이 많아서 원시 일본어족 집단을 어떻게 구획하고 분류해야 할지 일단 감이 잘 오지 않음.


그나마 한반도 남해안 일대의 신석기문화가 비교적 중부와 그 이북의 문화에 비해서 지역성이 강한 편이긴 하지만 보빈 등이 제시하는 고대 한반도의 일본어계 지명은 그보다 더 훨씬 광대한 범위에 학산돼 있는 것이 문제점.


한반도 신석기문화 전체의 핵심적 표지 유물인 빗살무늬토기 자체를 일본어족 분포의 지표로 삼는다면 일본어족의 분포지가 너무나 광대해진다는 문제점이 있음. 차라리 '반도 일본어족'이 아닌 '대륙 일본어족'이라고 해야할판인데 뭐 이 역시 영 말이 안 되는 주장은 아니긴 하지만, 보다 더 정밀한 문화계통 분류에 대한 연구를 참고해서 그 분포범위를 한정할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함.


또 이들 신석기문화 집단은 주로 퉁구스계통 집단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퉁구스어, 고시베리아어와 이 가설 속 '대륙 일본어족' 사이의 관계는 또 어떻게 되는지, 왜 현재는 대륙 전체에 일본어족이 사라졌는지에 대해서도 충분한 해명이 필요할 것임.




둘째 가능의 경우에는 이러한 '반도 일본어족' 논의 자체가 사실 한일 고대어를 재구할 수 있는 자료가 지극히 제한적이다보니 이러한 언어계통, 동원어 추정에 있어 다소 간에 비약이 필연적으로 개입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인한 집단사고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


특히 언어학계에서는 주로 고대한국어가 부여어-한어라는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었다는 식의, 에가미 나미오의 기마민족 남하설과 같은 고정관념에 지나치게 경도된 상태에서 언어계통 연구를 진행했었고 그로 인해서 고구려어-일본어 사이의 연관관계에 지나치게 주목하거나 고구려어와 한반도 남부 언어 사이의 차이를 지나치게 과장하고자 하는 연구가 꽤 많이 진행됐었음. (특히 일본인 학자들 사이에서는 조몬인에 대해 인종차별적인 멸시적 태도가 남아있는 것도 일본어족의 기원을 한반도 등 대륙에서 찾는 풍토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함.)


이러한 연구 중 일부는 보빈이 나서서 고구려어와 일본어 사이의 관계가 비교적 약하다는 것을 검증하는 식으로 후대에 와서 뒤집어진 연구들도 많지.

보빈이 고대 한반도 지명 중 일본어계통 어휘로 제시한 것 중 일부는 잘못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고 말이지.


또 삼국시대-고훈시대 한반도 남부 주민들이 대규모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많은 한반도계 어휘가 일본에 정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 이에 반해 한반도는 역으로 중국의 한자어가 대규모로 유입, 순수 고대어를 대체하는 과정에서 고대 한국어의 어휘가 상당수 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우리가 충분히 고려해보아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함.


그러니까 원래는 고대 한국어 어휘였는데 한반도계 도래인을 통해 일본에만 남았으나 반대로 한반도에서는 한자어의 영향에 밀려 사라진 어휘들이 보빈 등이 발견한 고대 한반도 지명의 일본어계통 어휘의 정체일 수도 있다는 것.


애당초 조몬어, 야요이어, 그리고 고대 한국어의 전모를 확인할만한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일부 공통어휘를 가지고 무리하게 논의를 진행하다보니

위와 같은 방식으로 한반도에서 일본어로 전파된 어휘들이 나중에는 어쩌다 '반도 일본어족'의 증거로 알려졌을 가능성도 있으리라 생각함.


특히 이 당시 고대 한반도 및 일본어 어휘로서 우리가 현재 포착하고 것이 고작 기백개 수준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도 이러한 논의의 비약이 나타났을 개연성, 즉 이러한 지명분석 연구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근거 중 하나.



이 가설에 따르면 일본어는 조몬어기반, 한국어는 청동기시대 농경민 언어를 기반으로 했을 개연성이 가장 높을 것이고, 사실 이대로라면 이 역시도 한일 언어의 관계에 대한 해명으로 가장 깔끔하고 군더더기는 없다고 생각함.



일단 난 언어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어느 쪽이 옳다고 확신하지는 못하겠음. 다만 한국어-일본어 계통 관계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때는 본문에서 다룬 내용을 어떤 식으로든 다루고 검토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