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의 서사 변천
孤藍居士(221.146)
2004-12-15 21:41
추천 0
사진은 최고(最古)의 만요가나 기록인 <이나리야마고분 출토 철검명(稻荷山古墳 出土 鐵劍銘)>
여기 계신 많은 햏들께서는 일본어를 서사하는 문자인 가나(假名)가 한자에서 기원한 것을 알고 계실 것이오. 더불어 일본의 가나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이른 음성적 '정규문자'로서, 고대의 가나기록은 일본어의 옛 모습은 물론이요, 중국어와 한국어의 옛 모습을 엿보는 데에도 매우 유용하다오. 밑에서 가나의 기원에 대하여 잠시 나왔기에, 오늘은 가나를 중심으로 한 일본어의 서사가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 간단히 설명하려 하오.
1) 만요(萬葉)가나의 시대(~헤이안시대)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일본어의 기록은 한자의 음을 취하여 적은 표기이오. <삼국지 / 위지 동이전>에는 몇 가지의 일본어 어휘를 볼 수가 있는데, 邪馬臺(야마토), 對馬(쓰시마), 卑狗(히코)와 같은 것들이오. 이러한 기록은 중국인에 의한 것이며, 나중에는 열도인들도 본격적으로 한자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스스로의 말을 적으려고 노력하였소. 이 때의 일본어 표기는 한자의 음을 취하여 그 한자의 음과 같은 일본어의 음절을 적는 형식이었소. 이것을 이러한 서사방식으로 적힌 대표적인 문헌인 <만요슈(萬葉集)>의 이름을 따서 '만요가나'라 하오.(현재까지 밝혀진 가장 오래된 만요가나는 5세기경의 이나리야마 고분에서 출토된 철검명에 적힌 인명표기이오)
보통 초기의 만요가나는 네 가지의 표기 방식이 있었다고 하오. 첫째는 미자음이 없는 한자로 1음절을 표기하는 전음가나(全音假名: 예-加(ka)), 둘째는 한자음에서 미자음을 생략하고 표기하는 약음가나(略音假名: 예-良(ra)), 셋째는 한자의 미자음을 다음에 오는 한자의 두자음으로 해소하는 연합가나(連合假名: 예-[獲]加多支鹵([wak]atakiru)),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자의 미자음에 모음을 부여하여 2음절로 만드는 이합가나(二合假名: 예-阿[直岐](a[diki]))가 있소. 이 중 약음가나가 가장 발전한 형태라 볼 수 있소이다.
그리고 시대가 좀 더 지나서 한자가 널리 사용되게 되면, 그 한자에 대한 고정적인 '훈(訓)'이 형성되게 되오. 이에 그 한자의 훈(訓)을 빌려 사용하는 '훈독'이 생성되는데, 이러한 훈독의 발상 자체는 일본 고유의 것이 아니라 북위에서 시작되어 한반도를 거쳐 열도로 넘어갔음이 밝혀지고 있소. 처음에 훈독은 그 훈의 음과 뜻이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으나, 만엽집의 시대(대략 7세기 전후)에 이르면 훈으로 읽기는 하지만, 뜻과는 무관한 만요가나가 대량으로 등장하기에 이르오.(가령 江[je], 世[jo] 같은)
이러한 만요가나는 훗날 히라가나와 가타카나의 전신이 되오.
2) 히라가나의 성립
헤이안 시대(8세기~12세기)는 여러모로 일본의 전통문화가 성립된 시기라고 일컬어지는데, 문자에 있어서도 점점 일본어 서사만의 특색을 나타내기 시작한 시기라 할 수 있소. 헤이안시대에는 사실상 만요가나로 모든 일본어의 음절을 표기하게 되었는데, 문자의 사용이 광범위해지면서, 사적인 일본어의 서사에서는 만요가나를 흘려쓴 초가나(草假名)가 발전하기 시작하오. 그리고 무라사키 시키부(紫 式部)의 시대에 이르면 사실상 오늘날과 거의 유사한 히라가나가 성립되게 되오이다. 초기에 히라가나는 마나(眞名)인 한문에 비해 천대받았으며, 여성 문인들에게 널리 사용되었기에 온나데(女手)란 별명까지 붙었소.(그러나 실제로는 남성들도 사신에서 히라가나를 사용하였소이다. 온나데에 비하여 한문은 오토코데(男手)라 불리웠소)
3) 가타카나의 성립
흔히 히라가는 흘려쓴 필체이고 가타카나는 정서된 필체이기에, 가타카나가 먼저이고 히라가나가 나중인 줄로 아시는 햏들이 있는 줄로 아오. 그러나 실상은 히라가나가 먼저 성립되고, 가타카나는 나중에 생겼다오. 가타카나는 역시 헤이안 시대 이전의 만요가나에 그 기원을 두지만, 음가나가 주축인 히라가나와는 달리, 훈가나가 더 추가되어 있소.(이는 가타카나의 연대가 히라가나보다 늦을 수 밖에 없는 이유이오)
가타카나는 그 기원을 한문 훈독에 두오. 가타카나가 생기기 전, 일본에서는 한문 문장에 점을 찍어 그 훈을 표시하는 오코토 훈점(乎己止 訓點)이 있었소이다. 이러한 훈점 방식은 유파에 따라 달랐는데, 편하긴 하지만, 통일되지 않아서 해독에 애로가 많았소. 그것을 대체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바로 가타카나이오.
일본에는 오코토 훈점 이전부터 한자에 붙는 조사를 작은 글씨의 만요가나로 적는 경우도 있어왔는데, 한문 훈독자들이 이것을 개량하여 그 획을 줄여서 표시하니, 이것이 가타카나의 기원이오. 최근까지는 오코토 훈점과 가타카나 공히 일본의 독자적인 것으로 생각되어 왔으나, 80년대 말부터 <구역인왕경> 등의 고려시대 구결자료가 발견되면서, 점을 찍어 훈을 하거나 한자의 획을 줄여 조사를 표시하는 발상이 한반도로부터 넘어왔음을 확인하게 되었소이다.
가타카나는 오랫동안 공적인 조칙, 한문 훈독과 같은 매우 제한적인 용도로만 사용되다가, 메이지 유신 이후에 히라가나가 너무 여성적이고 유약함을 들어 대대적으로 인쇄물과 공문서에 사용되게 되었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히라가나가 부활하여, 가타카나는 외래어 표기와 일본어의 발음 표기와 같은 지극히 제한적인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소.
------------------------------------------------------------------------------------------
몇달 전에 썼던 글이오.
호오~좋은 글이오
탄복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