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일본에서 발견된 원본 <옥편>의 사본 잔권, '平'자조. 하: 송대에 진팽년 등에 의해 개수된 <대광익회옥편> '平'자조. 한국에서는 한자 자전을 '옥편(玉篇)'이라 부르오. 중국의 '자전(字典)'이나, 근대 일본의 '한화사전(漢和辭典)'과는 너무나도 차이가 나는 한국만의 독특한 명칭이외다. 그러면 한국만이 유달리 왜 이렇게 한자 사전을 특이하게 부르는 것이겠소? 여기에는 이유가 있소이다. 본래 <옥편>이란, 남조 양나라의 고야왕(顧野王)이 만든 자전이었던 것이오. 동진 이후 남조에 세 번째로 들어선 왕조인 양나라의 개국군주 무제(武帝) 때는 학문과 문화가 대단히 번성한 시기이오. 그 유명한 주흥사의 <천자문>이 만들어진 것도 바로 이 무제 치하에서였고, 또한 무제는 독실한 불교신자로서 인도에서 막 도착한 보리달마와 대화를 했다고도 하오. 그리고 심약(沈約)과 같은 대문인들도 이 시기에 활동하였소. 이러한 시기적 상황하에서 또 하나의 대 학자가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고야왕이오. 고야왕은 특히 문자에 능통하여서 여러 권의 저서를 남겼는데, 그의 저서로서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30권으로 이루어진 자서, <옥편(玉篇)>이었소. <옥편>은 <설문해자>의 부수체계를 따라 540개의 부수로 이루어졌으며, 글자 밑에 주음과 함께 방대한 용례와 주석을 병기한 것이 특징이었소. 오늘날로 치면 모로하시 데쓰지(諸橋轍次)의 <대한화사전>에 필적할만한 대작이었소이다. <옥편>은 얼마 안 가서 중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자전이 되었으며, 중국 뿐만 아니라 한국, 그리고 일본에까지 널리 퍼져 그 유명세를 떨쳤소. 현재 한국에서 자전을 <옥편>이라 칭하는 것은 당시의 이 책이 가졌던 네임밸류를 증명한다고 볼 수 있소이다. 그러나, <옥편>의 그 방대한 주석은 이것이 실용적인 자전으로 계속 사용되기에 걸림돌이 되었소. 그래서 당대 말부터는 <옥편>을 고쳐서 쓰는 사람이 등장하였으며, 송대에 이르러서는 진팽년(陳彭年) 등이 칙명을 받아 <옥편>의 수록 자수를 늘리고 주석을 축소하여 대대적으로 뜯어고쳤소이다. 이것은 소위 <대광익회옥편(大廣益會玉篇)>이라 하며,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옥편은 이것이오. 그러나 이 일은 정말이지 개악(改惡)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었소. 진팽년 등은 <옥편>을 개정하면서 그 풍부한 주석을 깡그리 없애버렸소. 바로 이 글의 짤방이 그러한 것을 잘 나타내 준다고 할 수 있소이다. 위에 있는 것은 견당사로 갔던 일본사람들이 <옥편>의 일부를 필사하여 일본에 들여온 것이오. 반면 아래에 있는 것은 진팽년이 손을 댄 후의 <옥편>이외다. 대단히 풍부했던 주석이 거의 대부분 사라졌음을 알 수 있소. 그 뿐만이 아니라, 송대의 발음에 맞지 않는 고야왕의 발음 표기를 송대 발음에 맞도록 마구 개정하여 오늘날의 <대광익회옥편>에서는 옛날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소. 다만 20세기 초에 중국 학자 뤄전위(羅振玉)가 일본에서 옛 원본 <옥편>의 사본 일부를 발견하여 그 때의 모습을 일부나마 볼 수 있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