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남도 북청군 북청읍에 북한 보물 47호 여진문자비가 있다하오. 검색에 따르면 고려 말기인 1338년 7월 12일에 세워진 것으로 비문에 새겨져 있고. 이 비에는 여진문자 중 소문자로 5행, 47자를 새겨져 있는데 그 뜻을 알 수 없다 하오. 함경북도 새별군에 있던 여진문자비는 1918년에 일제가 약탈했다고 하오. 여기서 잠깐...... 여진문자는 대문과 소문이 있는데 소문이 후에 나온 것이오. 저 비석이 여진소문으로 쓰여져 있다는 것도 오로지 추측인 듯 하오. 여기서 혹시 해석 불가인가 싶어 다시 검색 쌔워 보았소. ......여진어 자료에는 문서자료·금석문(金石文)·필적자료가 있다. 문서자료로 ① 명(明)나라 사이관(四夷館)이 편찬한 을종본(乙種本) 《화이역어(華夷譯語)》 가운데 <여진관역어(女眞館譯語)>와 <여진관내문(女眞館來文)> ② 명나라의 회동관(會同館)이 편찬한 병종본(丙種本) 《화이역어》 가운데 <여진역어>가 있다. ① 에는 여진문자와 한자음을 대비시켜 한자 역어를 달아 놓았는데, ② 에는 여진문자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금석문에는 <대금득승타송비(大金得勝陀頌碑)> <여진진사제명비(女眞進士題名碑)> <영녕사비(永寧寺碑)> <오둔량필시비(奧屯良弼詩碑)> <경원군여진국서비(慶源郡女眞國書碑)> 등이 있다. 필적자료로는 <백탑여진문제자(白塔女眞文題字)> <섬서석대효경정부발현여진자문서(陝西石臺孝經頂部發現女眞字文書)> 등이 있다. 여진어와 만주어의 어휘는 완전히 일치하는 것도 있지만, 다른 것도 많다. 그러나 퉁구스어 중에서는 두 언어가 가장 가깝고 계보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므로, 여진어는 만주어의 조어(祖語)라고 생각된다. . 그렇다면 완전 해석불능은 아닐테고 위 사료를 구하지 못했거나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고 추정할 수 있소. 과연 함경도에 있는 여진문자비에 무엇이라 적혀 있다 여기시오? 추리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