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해례본의 공공연한 비밀(?)2
햏..(218.36)
2004-12-2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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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보셨듯이 便於日用耳가 便於日用矣로 잘못 적혔다는 것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비밀의 시발점인데......
이 해례본이 없었다면 한글에 대해 구구한 억설이 지금까지 넘쳐났을 것이오.(뭐 아직도 가림토니 신대문자를 보라니 하는 말이 있지만...... 신대문자는 말할 필요도 없는 엉터리고 가림토에 대해서는 좀 더 열린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생각되오.)
1940년에 안동에서 이모씨가 소장한 해례본은 어찌된 셈인지 앞부분 두장이 찢겨 있었소. 어떤 이는 연산군때 투서가 한글로 여기저기 붙자 어명으로 인한 한글 박해로 앞뒤를 찢어 숨긴 거라고 얘기하지만 별 타당성은 없는 듯 하오. 오히려 연산군때 한글로 역서나 대비의 전교를 번역하라는 어명까지 있었으니 말이오.
하여간 이를 찾아낸 전형필씨는 두장의 낙장을 안타깝게 여기다가 앞장을 만들어 붙이자는 생각을 하게 되오. 당시 이름난 서예가인 이용준을 불러 원본과 똑같은 필체로 글을 쓰게 한후(뒤 언해본을 한역하면 되는 것이기에)종이를 솥에 넣어 누렇게 탈색되도록 약품을 넣어 쪘다오. 만족할 만한 색이 나오자 붙인후 일제가 노릴 것을 염려해 이를 6년간 봉인하오.
그리고 공개된 후...... 저 한 글자로 인해 앞장을 보완한게 드러나게 되었지만 워낙 엄청난 발견이라 그런 사소한 일은 묻혀졌다 하오.
이상,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잡설이었소~
햏겨레 햏 대단히 유익한 내용 감사하오. 이런 숨은 사연이 있어구려 그렇다면 혹시 전국 어딘가에 또 다른 책이 존재할지도 모르겠구랴
한 가지 궁금하게 있는데 그럼 세종 때 발간한 훈민정음의 원본은 아직 없는거요?
이것이 세종때 발간한 훈민정음의 원본이라오. 또 존재할 가능성은 있지만 글쎄요~
앞부분 두장이 찢긴 이유는 화장지가 부족해서...-_-;;(실제로 뒷간에서 고서가 발견되는 일도 흔하다 하오.)
그럼 저 페이지는 개인의 창작이란 말이오? 혹 서문이 다른 내용일 수도 있단 말이오?
글자때문이 아니더라도, 형태서지학적 관점으로 접근해서 분석해보면 들통났을 것이오. 몇백년지난 종이와 묵이 몇백년전과 같을 수는 없으니. 그리고 세종때 발간했는지는 모르겠소, 세종어제 훈민정음이라 되어있소만 세종은 살아서는 세종으로 불리지 않았으니.
세종어제 훈민정음은 월인석보 첫머리에 있는 것으로서 세조 5년에 발간된 것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과는 틀리지요.
서문이 다른 내용일 가능성은 없습니다.
이거 충격적인데요? 뒤통수 한 대 맞은 기분입니다
소햏은 오히려 해례본 앞의 두 장이 떨어져 나갔다는 것만 알았지, 저렇게 가짜로 붙인 줄은 모르고 있었소.
이용준은 해례본을 소장하고 있었던 집안의 셋째 아들이라오...한지를 저리 오래된 것처럼 누렇게 만들기 위해서 쓰는 것중에 대표적인 것이.....떵......이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