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권력...
중간Ȣ..(221.154)
2004-12-29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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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시나요들
.....이성에 바탕을 둔 토론이나 설득도 기득권 세력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토론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보일 때조차 그것은 부자유스럽고 불평등하다. 토론과 설득을 구성하는 말 자체가 반대를 억압하기 때문이다. 공정한 조건을 바로잡겠다는 생각 자체도 이미 길든 것일 수 있다. 마르쿠제는 《일차원적 인간》에서 시인을 예로 들며 언어 자체의 불평등을 지적한다. 시인이 기존 사회의 규칙(작품의 조재나 서술 방식, 문법)을 따라야 한다면 그는 자신은 자유를 찾을 수 없다. 하지만 규칙을 깨고 자유를 찾으려는 시인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들은 법의 처벌을 받거나 정신병원에 수감되거나 사회적으로 매장될 것이다. 이미 한국 사회도 마광수, 장정일, 이현세 같은 작가들을 재판정에 세운 바 있고, 토론과 설득 이전에 기성 사회의 규칙을 개입시켜 검열과 억압으로 대응하곤 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은 그 자신의 언어가 아니라 지배자의, 아버지의, 광고주의 언어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도 그런 문제를 지적했다. 말을 하는 사람은 특정한 방식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언어의 장 속에서 움직인다. 그 장의 ‘구조’는 사회적 차이의 체계와 관련되어 있고, 행위자는 구조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런 구조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행위자는 전략을 고려하고 성찰하지만 구조화된 언어의 장에서 자유롭지 않다. 부르디외는 “모든 언어 실천은 정당한 실천, 곧 지배자의 실천을 척도로 해서 측정된다”고 주장하며 이것을 ‘상징 권력’이리고 불렀다. 상징 권력은 긴 시간과 느린 습득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작동한다.
체제의 규칙은 우리 속에 내면화되어 있다. 그런 규칙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저항은 항상 실패할 수밖에 없다. 숨겨진 규칙을 드러내고 극복할 때 사회를 바꿀 수 있다. 변화의 길은 정해져 있지 않다. 김수영 시인의 말처럼 혁명에는 육법전서가 없다.
출처
<<희망의 사회 윤리 똘레랑스>> - 하승우 (P. 87.)
아마 푸코도 비슷한 말을 하지 않았나 싶소만... 솔직히 너무 어려워서 현대 프랑스 철학은 좋아하면서도 이해는 공중에 떠있소.
음미해볼만...
권력이 언어를 통제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언어의 담당자들이 양산해낸 언어들도 어둡기만 했지 따사로운 햇빛이 되지 못한 경우도 많았지 않나 싶소...언어 생산자들의 각고의 노력이있어야 겠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