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당 말, 송 초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는 <운경(韻鏡)> 1999년 한글날 특집 <역사스페셜> 덕분에 많은 햏들이 훈민정음이 세종 개인의 작품임을 아시게 되셨을 것이오. 현재로서는 세종 개인이 주도적으로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것이 사실상 정설화되어 있소.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세종 스스로가 당시의 음운 분석이론, 즉 성운학에 매우 정통해 있었기 때문이오. 이러한 것은 <세종장헌대왕실록>의 최만리의 상소에 대한 세종의 질책에서 드러나오.(세종 26년 2월) "너희들이 설총은 옳다하면서 임금이 하는 일은 그르다 하는 것은 무엇이냐? 또 네가 운서를 아느냐? 四聲七音에 字母가 몇이나 있느냐?" 사성칠음이란, 성운학의 음절 분석/분류 방식인 평상거입(平上去入)의 사성과 순, 설, 아, 치, 후, 반설, 반치의 일곱 가지 자음의 종류를 의미하오. 자모란 개별 자음을 의미하는 것이외다. 최만리는 저 질문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하였소. 이를 통하여 세종이 당시의 성운학에 정통해 있었으며, 거기에 대하여 자부심이 대단하였음을 알 수 있소. 그렇다면, 세종이 꿰고 있었던 그 '성운학(聲韻學)'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훈민정음 창제 이론에 영향을 주었는가? 오늘 알아보려는 것은 이것이오. 우리는 이것을 위해 먼저 인도로까지 갈 필요가 있소이다. 1) 인도의 언어학과 <등운학(等韻學)> 인도는 매우 오래 전 부터 언어 연구가 활발한 곳으로 유명하오. 현대 언어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 파니니 문법은 기원전 4세기 경에 성립되었고, 인명(因明), 성명(聲明)이라고 하는 언어 관련 학문은 중국에도 큰 영향을 주었소이다. 특히 중국 성운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것으로는 고대 산스크리트어를 서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싯딤문자(Siddhim: 한자로는 실담(悉曇)문자라 하며, 오늘날 현대 힌디어를 적는 데바나그리 문자의 원형이오. 절에서 쓰는 범어는 이 싯딤문자로 적소)의 배열이 유명하오. 싯딤문자는 자음의 배치를 연구개음-경구개음-반전음-치경음-양순음-이동음-마찰음의 순서대로 하였으며, 그 안에서도 다시 무성무기-무성유기-유성무기-유성유기-비음의 순서대로 배열하였소. 이러한 배열 순서는 가나 오십음도에 그대로 적용되기도 하였으며, 중국에서는 약간의 변형을 거쳤소. 중국에서는 고대 티베트어 자모를 매개로 하여 싯딤문자의 자음 배열 순서를 참고하여 중국의 자음을 귀납하였소. 이것을 수행한 사람은 당 말기의 승려 수온(守溫)이라 하오. 그는 당 말기의 자음을 30개로 귀납하고(이는 고대 티베트어의 자음수와 완벽히 일치하오), 자음을 발음되는 위치에 따라 밖으로부터 순-설-아-치-후의 순서로 배열하였소. 이것이 좀 더 정밀해지는 것은 수온보다 약간 후대에 만들어진 <운경>이오. 운경은 인도 싯딤의 자음 배열 순서인 '무성무기-무성유기-유성무기-유성유기-비음'을 참고하여 '전청-차청-전탁-차탁'의 네 분류로 자음을 세분화하였소. 이리하여 성립된 것이 중국의 전통 음절분석이론인 <등운학>이외다. 등운학은 사실상 성운학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것이었소. 송대에 만들어진 <사성등자>는 수온으로부터 내려왔던 '순-설-아-치-후'의 순서를 싯딤 자모의 배열 순서에 따라 '아-설-순-치-후'에 바꾸었는데, 그 이후로부터는 모든 성운학의 자음 배열 순서가 아-설-순-치-후가 되었소. 훈민정음 창제에는 이러한 위의 이론이 도입되었소. 훈민정음 해례본의 자음 배열순서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아-설-순-치-후'(오늘날의 사전 배열 순서를 생각하시면 곤란하오)로 되어 있었으며, 예삿소리-거센소리-된소리의 삼중체계 또한 바로 중국의 '전청-차청-전탁'에서 그대로 따 온 것이오. 삼중체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비교하면 이해가 더 잘 되시리이다. 싯딤문자의 자음배열 : k-kh-g-gh-ń 성운학의 자음 배열 : k(전청)-kh(차청)-g(전탁)-ng(차탁 혹은 반탁) 훈민정음의 자음 배열 : ㄱ[k](전청=예삿소리)-ㅋ[kh](차청=거센소리)-ㄲ[k', 한자음 표기에는 g](전탁=된소리)-ㆁ[ng](반탁) 이러한 것 때문에, 한글 자모의 배열 순서와 산스크리트어를 서사하는 데 사용되는 싯딤 자모의 배열 순서가 유사하거나 심하게는 같소만, 이는 일부의 주장처럼 한글이 산스크리트어 문자인 싯딤문자(혹은 오늘날 사용되는 데바나그리문자와 같은 인도 제 문자)로부터 왔다거나, 심하게는 '가림토 문자'의 증거라 할 수는 없는 성질의 것이오. 다음 번에는 송대에 완성된 '성리학적 음운분석이론'에 대하여 알아보겠소. 이 또한 한글 창제 방식에 큰 영향을 주었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