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사님 잘들었어.
근데 정신분석학이랑 언어학을 연계해서 얘기하려다 보니까 무의식 영역에서 상징이 의식의 영역으로 흡수되지 못하는 점 때문에 무의식에서의 상징을 완전한 언어라고 할 수 없을 듯도해.
사실 무의식을 의식의 프리즘으로 바라보려는 시도 자체가 터무니 없는 거일수도 있겠지.
잘 알려진 그 빙산의 이미지로 생각해 본다면 말이야.
근데 현대 언어학에서 옐름슬레우같은 사람이 상징을 시각화된 기호로써 언어의 범주 안으로 끌여들이지 않았나?
에코같은 사람이 기호학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옐름슬레우같은 언어학자들의 그런 작업이 선행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
아니엇나?
질문이 이상하네;;
긍까
음.
아까 차사님이 (차사맞나?) 무의식에서의 경험이. 언어의 체계안으로 완전히 흡수되어지지 못한 채 잊혀져 버린다고 햇는데.
거기까진 알겟는데 말이야.
그럼 그 의식의 영역 위로 떠오르지 못한 무의식에서의 상징으로 구조화된 경험들은 언어라고 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하게 되는건가?
물론 언어가. 그 언어를 생각하는 주체가. 의식에서의 주체라고 보았을때 그렇다는 말이겟지.
근데 \'무의식의 존재론\' 같은 건 없나?
궁금하네.
이건 언어학갤에 물을 내용은 아닌듯.
몰라 그냥 무시해.
차사 말고 똥차.
정신분석학의 대상이 될 놈한테 그걸 묻는게 부적절 ㅇㅇ
차사자는 언갤퇴갤하여야 됩니다.
ㄴㄴㄴ To those of you with nothing relevant to add except for an expletive but several syllables long, only befitting the inarticulate, uncultured, primitive, savage cave man, let me tell you this: \"If you are done with the only contribution your prickly little pea-sized brains are capable of, you have now only to fade away into the dark, cold, eternal abyss of silent obscurity.\"
내가 보기엔 질문자의 질문하는 지능이 매우 뛰어난 감각을 소유한 사람으로 보인다. 루이스 옐름슬레우 이론이 흥미롭기는 한데, 움베르또 에꼬의 경우는 그다지 쓸모 있는 독자적 이론은 없는 듯. 그러나 옐름슬레우의 이론이 어떻게 언어와 심리학을 연결짓는지는 내가 과문하여 잘 알지 못하므로 유익한 답변 줄 능력이 없다. 그보다는 질문자의 시각을 바로 프로이트와 소쉬르를 결합하여 독자적으로 제시하여도 충분히 이들 두 서양 학자들보다 더욱 잘 탐구해 볼 능력이 있어 보인다. 혹 지금껏 질문자의 두 편 글 중에 나왔던 내용에는 없는, 내가 모르는 부분을 알면 제시해서 토론을 계속 진행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무례한 헥클러 세 분들이 끼어들어서 더 이상 존칭같은 것은 무의미해졌고, 간단하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이미 본글에서 어느 정도 질문자의 시각을 제시하였으니까, 더 내 놓으라고 요구한 내가 무리한 요구를 한 듯 하다. 이미 나온 내용만 해도 충분히 토론할 수 있을 정도라고 본다. 위의 글은 옐름슬레우나 에꼬를 제쳐 두고 우리끼리 이야기하여도 충분함을 지적한 글이라고 치자. 내가 보기에는 이 주제를 다룸에 있어, 질문자의 질문 과정을 하나의 사례로 다루어도 매우 좋은 연습 문제라고 본다. 꿈과는 다르지만, 질문자는 질문을 언어화하기 전에, 어느 기간 동안 머리 속으로 꿈틀대는 어떤 꼬투리, 의문, 의혹, 문제의식, 묵직한 덩어리, 어떤 정신의 움직임 -- 그러나 처음에는 뚜렷하게 언어화하기에는 불충분한 불완전한 명제를 느꼈을 것이다.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아직은 명제라고 부르기에는 미흡한 것이었을 것이다.
이것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아직 이름 붙이기 힘들겠지. 그러나 이 덩어리가 내 뿜는 어떤 추진력, 나침반, 어둠 속의 불빛, 등대의 방향, 어둠 속에서 길 잃은 여행자에게 멀리 보이는 외딴 집의 창으로 흘러 나오는 아슬아슬한 빛. 이것과 비슷한 어떤 힘의 줄기를 따라 더듬듯이 한 문장 한 문장 생각과 부합하는 문장을 엮어서 본글을 두 번 썼다. 나는 이 언어화 과정이 바로 질문자가 질문한 무의식과 의식, 기호 이전의 상징과 기호, 비언어와 언어 라는 두 개의 대립하는 쌍을 이룬다고 본다. 이로써 볼 때 상징이란 형태를 갖추기 이전의 살아 움직이는 활력을 스스로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하여 언어화된 기호는 말해질 수 있고 타인에 의하여 감지되고 해독됨으로써 소통될 수 있지만, 종이나 녹음기에 기록된 물질같은 존재
로서는 생명력의 흔적일 뿐이지 그 자체는 생명력이 없다. 다만 독해자가 독해한 결과, 충분히 기호화된 부분이 다시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이로써 본다면 상징은 활기를 기본 특성으로 하고 있고, 실체가 있지만, 언어 형식에 가서는 미흡하기 그지 없다. 이를 기호화한 언어 발화체는 기호화되어 있기는 한데, 껍데기만 보면 해독되기 이전의 구조물에 불과하다. 앞의 상징은 활기라는 실체의 존재성이 강하고, 뒤의 발화체인 언어기호는 언어형식이라는 구조물의 존재성이 보다 강하다. 이 둘은 각자 특성을 가지고 다른 하나를 열망한다. 다만 홀로 있을 경우에는 다른 하나는 단지 잠재성으로 존재할 뿐이다. 이렇게 말해 볼 수 있다.
먼가 님이 하고싶은 말들을 하신 거 같은데 잘들엇슴ㅋ
먼가 님이 하고싶은 말들을 하신 거 같은데 잘들엇슴ㅋ
한편 상징체계의 질서를 과연 \'구조화된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라는 점에 가서는 의문이 남는다. 그것이 언어화된 이후에 과연 언어화 이전의 동일한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비유를 들자면, 개구리 신체기관 조직을 광학 현미경으로 관찰하려 할 때, 이를 고정처리해야 하는데, 고정한 이후에도 본래의 조직 구조를 유지한다는 전제가 성립한다는 믿음 하에서만 의미가 있다. 마찬가지로, 언어화된 상징 역시 언어화의 과정에서 본래의 조직 질서가 불변으로 보존되었다는 가정 하에서만 언어화 이후의 결과물을 가지고 그 특성을 언어화 이전의 상징체계에까지 소급하는 논리가 의미를 가진다. 이 정도로 말해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