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도: 조지 리이드 경의 <<새뮤얼 스마일스>> 초상화; 출처는 아래에 밝힘>
진실한 언어: 자기계발에 힘썼다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자랑하고 다니는 자가 불공정한 편법을 썼음을 스스로 폭로하는 경우를 본다.
이상하지 않은가? 일종의 광기인가? 극단적 쾌감,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억압, 혹은 과도한 스트레스의 증세일까?
신라 경덕왕 대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를 대숲에 가서 외쳤단 사나이의 심리와 비슷한 것일까?
인생의 결정적 시기에 시간과 기회를 낭비하고 나서 안타까워 하며 후회하는 상황은 누구나 조금씩 가질 수 있다.
뼈아픈 기억을 자산지석으로 삼아 와신상담하며 미래의 자기를 가꾸는 밑거름으로 삼으면 된다.
만약 안 그러면 어쩔 거란 말인가? 하하하
그런데 안타깝다 하여 허위의 성공을 억지로 만들어버리면 결국 절망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만다.
요행히 \"나는 검증의 예봉을 피할 수 있을 거야!\" 라는 망상은 대개 허황된 꿈으로 끝나고 만다.
그 사이에 벌어지는 추하다면 추하고 부끄럽다면 부끄러울 상황을 일일이 거론하는 것은 이 자리에서는 피하자!
자기계발의 사상은 산업혁명으로 일어난 영국에서 먼저 시작되었는데,
1859년 나온 새뮤얼 스마일즈의 <<자조론(Self-Help)>>이 많이 읽혔다.
http://en.wikipedia.org/wiki/Samuel_Smiles (장년기의 초상화)
http://ko.wikipedia.org/wiki/%EC%83%88%EB%AC%B4%EC%96%BC_%EC%8A%A4%EB%A7%88%EC%9D%BC%EC%A6%88 (노년기 사진)
일본인들은 이 책을 메이지기에 번역하여 베스트셀러로 읽었고,
한국인들은 1910 년대 이래 일본어본으로부터 중역한 최남선 번역본을 읽었다.
여러분들의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까지도 널리 읽혔던 책이다. 다시 요즘에는 새 번역본이 나온 모양이다.
미국에서는 국부 벤자민 프랭클린의 자서전 (영어가 상당히 무겁다!)이
영어권 젊은 독자들로 하여금 청소년기에 자기 계발, 자기 발전을 위해 분발하도록 다그쳤다.
여러 사람들은 아래의 경구를 들어 보았을 것이다.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lselves.\"
\"하느님은 스스로 도우는 사람을 도우신다.\"
지난 1 세기가 조금 넘게 불우한 역사적 홍역을 치룬 한국인들에게 이 말은 심금을 울린다.
자기향상을 위하여 땀 흘려 수고하는 젊은이는 아름답지 않은가?
그러나 이 아름다움이란 거짓 없는 아름다움이어야 한다.
독립된 인격체로서 자기의 명예를 소중하고 두렵게 알아야 한다.
만약 편입학 서류를 실제보다 좋게 꾸민다든가,
일부 몰지각한 학생들이 하듯 paper mill 에 가서 돈 몇 푼 내고 논술문을 사서
자기의 것처럼 허위로 제출했다가 남의 결과물을 자기의 것으로 제출하였다는 사실이 발견되는 경우
한 순간에 징계 내지 제명 처분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요즘은 전자적 수단으로 범죄 수사하듯 다 잡아낸다고 하더군!
어익후- FBI 테크닉까지 쓰시는 첨단 수사력의 교수님들이여!
첨단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데 정직같은 낡은 도덕관이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하지 말 일이다.
가능한 세계를 탐험하는 어드벤처 문학이나 가상적 상상 공간에서 박사를 사칭하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이 상상놀이를 현실과 혼동하여 실행에 옮겼다가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선진국 대열에 뒤늦게 편입한 비서구권 나라들은 기독교적 윤리관이 생소하고 이질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거짓은 결국 드러나고, 현실은 예전보다 악화된다.
건전한 가치관을 고전적 독서를 통하여 함양하는 도덕적 교양을 쌓는 것이 아쉬운 시대라고 본다.
독서! 그것은 옵션이 아니고, 자기발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는 목숨처럼 소중한 가장 기본적 의무 사항이다.
놀랍게도 매우 똑똑한 오랜 친구와 대화하다가도, 독서 범위가 달라지는 지점에 가서, 대화 역시 벽에 부딛치고 말더군!
놀랍지 않은가? 우주의 구석구석을 모두 실지답사하지 못할 바에는, 독서는 두뇌의 이해력을 넓히는 가장 빠르고 저렴하고 일반적인 방법이다.
독서와 진실, 이것만이 살 길이다. 나머지는 전문분야와 취미에 따라 마음대로 할지라도, 이를 실천 안 하면, 남는 게 없음을 늙어서 발견할 것이다.
남들의 허풍스러운 성공이건 혹은 진실한 성공이건 간에 그것의 참 속 사정을 타인으로서 누가 제대로 알겠는가?
그 속에 들어 있을 각고의 세월과 눈물 젖은 노력은, 혹은 허위는,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절대로 자기 입으로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정당히 평가할 이는 하느님밖에 없다. 함부로 부러워하는 것도 논리의 세계에서는 불법이다.
학습자는 어떤 현혹스러운 외부의 소식에도 흔들리지 않을 튼튼한 가치관, 즉 실력과 도덕성을 함양하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남의 눈치에 지극히 민감해지라고 강요하는 한국 대중 문화의 특징은 우리를 발목잡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여기에는 노력이 들고, 어려운 도덕적 선택을 당연해질 때까지 몸에 익힌다는 고된 수양의 세월이 요구되는 것이다.
또 경쟁은 옆에 있는 동급생들과 하는 게 아니다. 경쟁은 자기가 해 낼 수 있는 이론적 한계치와 현실 속의 자신이 하는 것이 옳다.
\"도토리 키재기는 저열한 정신의 소유자와 실패자, 그리고 못난이들이나 하는 배냇짓!\"
화려한 결과만을 탐하지 말고, 거기까지 가는 과정의 건강함이 중요한 것이다.
옛 속담에 \"스님이 제사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신경 쓰시네\" 라는 풍자적 말이 있는데 (불교를 디스하려는 것은 아니고)
학생이 진실한 배움에 관심이 적고, 화려한 열매만을 탐하는 못습은 아름답지 못할 뿐 아니라,
결국 거짓된 학사 행위, 그리고 비참한 결과로 이어짐을 지적하고자 한다.
도덕적 삶의 방식은 수단이 아니고, 그 자체가 목적이다.
마치도 과학의 성과물보다도, 건전한 과학적 방법론이 더욱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말이 한국 문화 속에서 설득력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님은 폰갤러도 아니면서 하루종일 디시를 할 수 있는 이유가 뭔지 너무너무 궁금해요~ [핡]
내가 모종의 상해를 입어서 지금 회복 중이라 시간이 많아요. 됐나요?
솔직히 말해서 님 만큼 성심성의껏 언갤에 글 쓰는 사람도 없어요
무슨 추방해야한다느니 하며 당신 욕 하는 사람 많지만 그 욕하는 사람중에 어디
언어 갤러리의 목적에 부합할만한 양질의 글을 대량으로 쓰기나 했나? 그건 아니라는 말이죠
한 마디로 갤질은 개뿔도 안하면서 남 욕하는거나 좋아하는 텃세 돋는 찌랭이들 뿐이니까 무시하십시오
우호적인 말씀 감사드립니다. 조만간 저질 포럼 활동이 천시되고 진지한 질의문답과 새로움과 소통의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정상적 토론이 자리잡는 선진국 형 갤러리가 될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믿습니다. 알찬 내용으로 채워도 아쉬울 판인데, 정신이 어두우신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이 한국의 문화 창달을 시기하고 있다고 봅니다. 현실과는 무관하게, 자기를 제외한 다른 한국인들이 모두 앞서가고 있고, 자기만 뒤쳐졌다는 일종의 상대적 열등감 내지 피해망상이겠지요. 그럴수록 더욱 현실은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것이지만, 처음부터 현명했다면, 그런 쪽으로 마음을 어둠의 세력에게 내 주지도 않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