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이 과일 열매라면, 보편적 논리와 독특한 개성은 나무, 거름이다.

하루는 내가 노벨문학상 수상자하고 서점에서 마주쳐 그와 잠깐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체스와프 미워슈라는 작가였다.
번역작을 읽었다고 말했더니, 자기 작품이 잘 됐다기 보다는 번역이 잘 됐을 거라고 하더군.

(주의: 이 말은 작가의 겸사, 즉 겸손한 말이다. 이 말을 읽고 누군가가 직설적으로 믿어버린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대단히 순진하여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일 것이라고 상상한다.
실제로 아래에 이 주제로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영어 번역이 안 중요한 것이 아닌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도 있다.
노벨상은 테크니컬한 번역 상의 기교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는 1960년 집단주의 국가였던 폴란드를 탈출하여 미국으로 망명했다.
UC 버클리 대학 슬라브 언어문학과에 적을 두고 폴란드 문학을 가르치며 글을 썼다.
1970년에 정교수가 되고, 1978년 노이슈타트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벨 문학상은 1980년에 수상했으나 폴란드에서 그의 책은 금서로 분류됐다.
참고: http://en.wikipedia.org/wiki/Czes%C5%82aw_Mi%C5%82osz

집단주의의 극단을 걷는 북한에서 노벨 문학상이 나올 수 있을까?
보편적인 논리도, 개인의 생각과 이를 표현할 자유도 없는데?
남한은 북한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집단주의가 강하고, 개성이 무엇인지, 보편적 논리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 하고 존중하지 않는다.
여기 디시인사이드 언어갤러리의 주류 목소리들이 그래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공개 포럼에서 무식한 자들이 큰 목소리 내는 사회에서 노벨 문학 수상자가 나오는 것이 힘들 것은 당연지사다.
겨우 한글 알파벳이나 깨우치고, 문단 수준의 정밀한 해독능력도 갖추지 못한 사회 속에서 어찌 노벨문학상이 나오겠는가?
개인주의를 나쁘게 보던 데서 누구나가 당연시하게 되고,
과학적 정직함이 특이하거나 이상한 것이 아니라, 존숭하여야 하는 것임을 한국 사회 대부분이 믿고 실천하기 전까지는
노벨 문학상은 힘들다고 본다.
체스와프 미워슈의 문학성이 폴란드에서는 억압되다가 서구라는 좋은 환경 속에서 비로소 인정받고 꽃피웠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한국과 노벨 문학상의 문제에 대하여 어떤 이는 개가 풀을 뜯어먹었다던 농담처럼 실속 없고 허망한 거짓말을 한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시대의 낡은 한국이 아니라, 21세기 민주화한 OECD 가입 선진 한국에서 말이다.

단지 하얗다 허옇다 허여멀겋다.
노랗다. 누렇다. 뉘리끼리하다.
나풀나풀 너울너울 나빌나빌 나빌레라.

같은 특이한 한국어의 형용사 부사가 번역이 제대로 안 되어서 노벨 문학상이 안 나온다는 것은 웃기는 농담에 불과한 말이다.
무지막지한 자들이 이런 변명을 들으면 그날 밤은 편하게 자겠지.
그러나 엄격하게는 그저 편리한 핑게거리에 불과한 것이다.

번역 문제만 해도 그렇다.
정통 영어도, 회화체 영어도 안 되는 영어의 하수들이
영어의 고수를 집단적으로 까내리면서도 부끄러움이 전혀 없다.
어떻게 노벨 문학상 급 영어 번역이 가능하겠는가?
오로지 시기심으로 좋은 문장을 까 내리기에 혈안이 된 남한인이나, 김씨 가문 찬양에 몸바치는 북한이나 오십보백보로 그 놈이 그 놈이다.
적어도 노벨문학상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
하~하하하하하~! 차사(嗟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