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략된 주어를 복구할 때 님은 그것이 \'할머니\'라 보아 \'\'[할머니께서 너랑] 같이 계셔?\'가 맞다고 봤고, 친구분은 그것이 \'너\'라고 보아 \'[네가 할머님이랑] 같이 있어?\'가 옳다고 본 것입니다. 문제는 주어를 생략하는 상황에서는 유일한 답이 없다는 거죠. 굳이 따진다면 게으른 언어습관을 탓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사회의 책임인가 개인의 책임인가? 이 문제도 골치 아프지요. 역시 유일한 답이 없다고 봐야겠죠. 논리력의 훈련을 위해서 토론을 진행해 보시되, 결말을 보실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봅니다.
Bundeskriminalamt(lexico)2011-10-15 22:56
누가 같이 있는지, 같이있는게 너면 같이있는거고 같이있는게 할매면 같이계시는거고. 그리고 똥차는 무슨 게으른 언어습관 타령이니. 영어 사용자는 언어습관이 엄청 부지런해서 주성분을 생략 안 하냐. 언어습관이 게으르다는 말도 특이하네.
Primetime(astate)2011-10-16 17:16
소통 상황에서 혼동의 가능성이 있을 경우, 주어를 명확히 선언함으로써 이 가능한 혼란을 예방하지 못 하고 현실로 만든 것은 전적으로 발화자의 게으름에 다름이 아니다. 이는 선진 문명세계의 표준이다. 아울러 이 사실도차 모르면서 너는 지적 게으름의 소유자라는 지적과 비난을 받아 마땅한 것이다. 추가적으로 욕설을 입에 붙이고 사는 너는 야만인이라는 증거가 누적되고 있음을 주지할 일이다.
Bundeskriminalamt(lexico)2011-10-16 18:50
주어를 생략해서 발화하는 것이 어찌 개인의 게으름 탓인가. 국어의 큰 특징이 주성분이 자주 생략된다는 것인데 그건 국어를 탓할 것이지 개인을 탓할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한정된 상황에서야 주어가 없는 것이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보통은 주어 없이 발화하는 경우가 훨씬 다양하고 또 자연스럽다. 단지 그런 보편적인 환경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국어 생활을 함은 한국인으로서 당연한 결과이고 그에 따라 이렇게 특수한 예가 생길 수도 있는 노릇이다. 이걸 저 사람이 게으르다는 식으로 곡해해서 판단하는 것은 똥차 니 식견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언어 습관이 게으르다는 건 주어와 술어가 호응하지 않는 듯. 습관이 게으르고 부지런하진 않잖아. 좀 생각을 하고 댓글을 달길.
Primetime(astate)2011-10-16 22:50
국어는 대체로 장 의존적이라고들 하는데 이 말은 상황 맥락에 따라서 각 발화 장면에서의 담화가 좌지된다는 것이다. 위 장면에서는 질문자(친구)와 답변자(글쓴이)가 서로 다른 정보를 토대로 담화를 개시한 것이 문제였다. 친구의 질문이 있기 전에 두 사람간에 어느만큼 정보가 공유되었는지, 또 어떤 발화에 이어 질문이 나오게 되었는지가 중요하며 어쨌든 글쓴이가 친구의 질문에 있는 내포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은 확실한 진실이므로 위 질문만 떼어 놓고 본다면 글쓴이가 틀렸다고 본다.
생략된 주어를 복구할 때 님은 그것이 \'할머니\'라 보아 \'\'[할머니께서 너랑] 같이 계셔?\'가 맞다고 봤고, 친구분은 그것이 \'너\'라고 보아 \'[네가 할머님이랑] 같이 있어?\'가 옳다고 본 것입니다. 문제는 주어를 생략하는 상황에서는 유일한 답이 없다는 거죠. 굳이 따진다면 게으른 언어습관을 탓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사회의 책임인가 개인의 책임인가? 이 문제도 골치 아프지요. 역시 유일한 답이 없다고 봐야겠죠. 논리력의 훈련을 위해서 토론을 진행해 보시되, 결말을 보실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봅니다.
누가 같이 있는지, 같이있는게 너면 같이있는거고 같이있는게 할매면 같이계시는거고. 그리고 똥차는 무슨 게으른 언어습관 타령이니. 영어 사용자는 언어습관이 엄청 부지런해서 주성분을 생략 안 하냐. 언어습관이 게으르다는 말도 특이하네.
소통 상황에서 혼동의 가능성이 있을 경우, 주어를 명확히 선언함으로써 이 가능한 혼란을 예방하지 못 하고 현실로 만든 것은 전적으로 발화자의 게으름에 다름이 아니다. 이는 선진 문명세계의 표준이다. 아울러 이 사실도차 모르면서 너는 지적 게으름의 소유자라는 지적과 비난을 받아 마땅한 것이다. 추가적으로 욕설을 입에 붙이고 사는 너는 야만인이라는 증거가 누적되고 있음을 주지할 일이다.
주어를 생략해서 발화하는 것이 어찌 개인의 게으름 탓인가. 국어의 큰 특징이 주성분이 자주 생략된다는 것인데 그건 국어를 탓할 것이지 개인을 탓할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한정된 상황에서야 주어가 없는 것이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보통은 주어 없이 발화하는 경우가 훨씬 다양하고 또 자연스럽다. 단지 그런 보편적인 환경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국어 생활을 함은 한국인으로서 당연한 결과이고 그에 따라 이렇게 특수한 예가 생길 수도 있는 노릇이다. 이걸 저 사람이 게으르다는 식으로 곡해해서 판단하는 것은 똥차 니 식견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언어 습관이 게으르다는 건 주어와 술어가 호응하지 않는 듯. 습관이 게으르고 부지런하진 않잖아. 좀 생각을 하고 댓글을 달길.
국어는 대체로 장 의존적이라고들 하는데 이 말은 상황 맥락에 따라서 각 발화 장면에서의 담화가 좌지된다는 것이다. 위 장면에서는 질문자(친구)와 답변자(글쓴이)가 서로 다른 정보를 토대로 담화를 개시한 것이 문제였다. 친구의 질문이 있기 전에 두 사람간에 어느만큼 정보가 공유되었는지, 또 어떤 발화에 이어 질문이 나오게 되었는지가 중요하며 어쨌든 글쓴이가 친구의 질문에 있는 내포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은 확실한 진실이므로 위 질문만 떼어 놓고 본다면 글쓴이가 틀렸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