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도: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넉 자의 문자 군자불기(君子不器)>
패망론 관견= 군자불기와 아시아적 숙명론 요절하다
관견은 대롱을 통해 관찰한 것이므로 핵심을 짚어보는 시도로서 헛짚었을 수도 있다는 겸사일 뿐이고,
군자불기와 아시아적 숙명론을 연결된 일체로 보았다. 그런데 웬 요절일까?
제목이 얼핏 보기에는 모순된 이중 부정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아니다. 한 글자 한 단어 모두 계산 정확히 마친 훈민정문(訓民正文)이다.
구글 검색에 나오는 순위 1에서 10까지 해석
1. “군자는 기(器)가 아니다.”
2. “군자(君子)는 기(器)와 같지 아니하다.”
3. “군자는 그릇처럼 국한되지 않는다.”
4. “군자는 그릇처럼 자기를 고정하지 않는다.”
5. “군자란 그 크기가 물건을 담는 데 불과한 그런 그릇이 아니라.”
6. “......”
7. “군자(君子)는 그릇(器)이 아니다.”
8. “군자는 일정한 용도로 쓰이는 그릇과 같은 것이 아니라=군자는 한 가지 재능에만 얽매이지 않고 두루 살피고 원만하다”
9. “군자는 하나의 그릇만 되어서는 안 된다.”
10. “군자는 다른 사람들을 리드하는 지도자이므로 밥그릇, 국그릇, 반찬 그릇 처럼 특정 영역을 담당하는 그릇과 같이 그 기능이 좁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육예(六藝)에 모두 능하여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를 넘나드는 넓이와 깊이를 겸비한 자를 군자라 말할 수 있겠다.”
이 중 \"군자는 ~ 이 아니다\" 구문은 우선적으로 배제한다. \"~이 아니다\" 처럼 명사 보어를 부정할 때에는 부정의 형용사 비(非)를 쓰는 것이 표준 고한어이기 때문이다.
주어/주제어 (君子) + 부사어 불(不) + 보어/동사적명사 기(器).
일반적으로 명사 앞에 나오는 부정 형용사 비(非)를 쓰지 않고 부정 부사 불(不)을 쓴 것을 보면 그릇 기(器)가 명사로 쓰이지 않고, 동사적으로 쓰였다는 뜻이다.
동사 기(器)의 뜻은?
두 개의 가능성
A. 그릇을 만들다
B. 그릇으로 간주되다
고한어에서 가능한 두 해석 모두 문의가 정당하다.
A. 군자는 그릇을 만들지 않는다: 이 해석에 따르면, 군자는 관리자로서 공장인의 기예에 손수 참여하거나 간섭하면 안 된다는 뜻일 수 있다.
B. 군자는 그릇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이 해석에 따른다면, 군자는 객체로서의 용도나 수단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와는 반대로 군자는 주체로서 다른 것을 자기의 뜻에 알맞게 용도나 수단으로 끌어다 쓰는 주체인 것이다.
길어지기 전에 빨리 끝마치고자 서둘겠다.
우선 군자불기로 말문을 연 이유만 밝히자.
모든 사람이 임금을 섬기는 예악사어서수의 국가 대신이 되어 주군을 섬기는 주나라 이래의 입신양명을 위해 주력한다는 것은 건강한 것일까? 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모든 사람이 머리가 되려 하는 사회는 건전한 사회일까?
나 자라날 때 어른들이 아이에게 \"너 커서 뭐 할래?\" 하면 \"대통령이요! 장군이요!\"
대통령이며 장군이 뭐 하는 사람인지 알고 하는 소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남의 화려한 열매만 시기하고 탐을 내는 부모의 가치관을 그대로 반영한 어린 아이의 솔직한 반사였겠지 뭐.
이보다도 공허한 정신의 황폐가 있을까? 사회 성원 모두가 대가리가 되지 못해 안달복달이다.
이것이 미친 게 아니라면 무엇인가?
내가 보기엔 건전한 숙명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황된 개꿈을 꾸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고귀하신 머리 님으로 신분 상승하신 사회는 역 피라미드 구조로서 불안정하여 쉽게 허물어진다.
각자 꿈 꾸는 것은 자유로되, 사회적으로는 실현 가능성 희박하다는 얘기.
나만은 예외 정도 되려면 비상한 노력해야지, 비전의 테크트리(?) 타서 개구멍으로 입신양명? 웃기는 얘기 담담소소 하하.
중세 서구 전통적 기독교 사상에 따르면, 인간 세계는 천상의 천체들처럼 고정된 위계 질서 하에 불변의 숙명을 타고 태어났고, 고정불변의 신분과 기능을 지키며 살다가 죽는 존재다. 위로는 교황과 황제, 아래로는 농노까지 자기 직분을 지키는 사명이 있다.
현재 탈 기독교 추세에 있는 서구인들 조차 소명 의식이 있다. 현대 기계문명 속에서 더 이상 종교의 지배를 받는 삶의 방식을 따르지 않더라도,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자기가 태어난 고유의 목적, 천성이 있고, 이에 따라 자기 길을 찾아서 살고자 한다.
역으로 200-300 년 사이에 급격한 사회 격동을 겪은 결과 탈 전통 중인 아시아인들은 숙명이고 나부랭이고 모든 것이 가능할 듯 생각한다.
과거의 신분제와 천명의 기미를 벗어던진 아시아인들은 마치도 신데렐라처럼 신분이 급상승하거나, 피터팬 처럼 하늘을 날 수 있다 믿고 사나보다.
\"무소불위(無所不爲): 못 할 게 없다!\"
하늘을 오를 듯 과도한 망상의 달콤한 꿈과, 여기에서 깨는 순간 사이의 격차는, 격차의 정도에 비례하여 고통을 낳는다.
이 고통이 사람으로 하여금 분노하고 격분타 못해 발광하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기독교의 숙명관이 르네상스-과학혁명-계몽주의 교육으로 극단적 성격을 잃고 평이한 생활 윤리로 정착했다면,
아무런 제약도 없는 듯 무소불위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은 위태롭다.
차분히 유교적 숙명론으로 돌아가면서, 이를 점차적으로 현대과학과 계몽교육으로 완화하는 것이 정신적 안정을 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서구인의 사상 경로를 본받아, 기독교적 우주관을 새로 깔고, 역시 과학과 계몽으로써 기독교 숙명론을 완화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다.
천성적 능력이든, 어린시절의 지능 계발과 독서의 부족이든 간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자기 능력에 알맞은 직분을 찾아 가는 것이 개인이든 사회든 안정을 발견하는 첩경이다.
독일 초등생들이 기능공에 적합한 수학능력 평가를 받았다 하여, 여기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한국에서라면 이런 제도를 입에 담는 입법 국회의원은 차기선거에서 낙선은 물론, 칼침도 맞을 각오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하
허황된 거짓 삶을 살면 좋은가? 자기 본분을 지키며 알맞게 살다가 가면 행복한 것 아닌가?
해외원정 유흥여행, 놀지 못해 원이 한이 원수가 맺혀 귀신이라도 되고 지고 하는 된장 처녀들의 개꿈 --
성공치 못해 한이 안 풀리다 못해 미친 듯이 거짓을 일삼는 된장 총각들의 개꿈이여~!
이 모두가 아시아적 숙명론이 점진적으로 깨지지 않고, 아편전쟁, 러일전쟁,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한국전쟁 등의 불행한 사건 속에서 과격하게 깨져버렸기 때문에 생긴 부작용이다.
모두 속히 악몽으로부터 깨는 것이 안정된 경제생활은 물론, 심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아시아적 숙명론이 급살(急殺) 맞은 것은 우리의 불행의 시작이었을 뿐이다. 이를 되살리기 힘든 것도 우리의 저주다.
우리는 철학적으로,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매우 어두운 흑암의 카오스 먹구름 속을 통과하고 있다.
건전한 숙명론이라는 나침반도 없이 어둠 속을 계기비행하다, 언제 산허리에 꽝 충돌할지 모르는 위태로운 야간 비행 중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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