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gall.dcinside.com/language/39932
1910년대에서 1930년대 사이 한국의 비식자율 (보수적 문맹률) 추산 보정 1
전 게시물에서 1920년대 조선일보 기사가 주장하는 비식자율 근거로 조선말, 일제 하 조선의 비식자율을 99%로 제시하였었다.
여기에서는 1911년 인구조사와 학령 아동의 취학률을 추산하여 이의 보정을 시도해 본다.
1911년 인구조사
전국 인구 약 1,400 만.
0세~10 세 약 320 만.
11세~20 세 약 290 만.
학령 아동 추산: 0세~20세 중 유영아가 210 만 정도라고 추정하여 학령 아동 및 청소년 인구를 400 만으로 보자.
취학 아동 추산: 다음 자료에서 취학 학생 수를 약 23 만으로 본다.
제1차「조선교육령」 발포 시기인 1911년도에는
보통학교 32,384명,
서당 141,604명,
사립각종학교 57,532명
[근거: 제1차「조선교육령」은 오성철,《식민지 초등교육의 형성》교육과학사, 2000. 초등교육(1895-1945)을 거쳐 재재인용
http://contents.archives.go.kr/next/content/listSubjectDeion.do?id=008031 ]
위로부터 학령기 인구의 취학률을 약 6%로 보고, 다음을 가정할 때 이론적 비식자율 추정치는 94% 다.
1. 식자 능력의 습득이 보통학교, 서당 및 사립학교에서만 이루어지고,
2. 그 밖의 경로로 식자 능력을 습득하는 경우는 없으며
3. 이 상태가 장기간 지속됐다고 가정할 때
1933년 조선 전국 소작농가 인구 중 언문 이상 해득자의 비율: 28.3%
1938년 조선 전국 소작농가 인구 중 언문 이상 해득자의 비율: 33.2 %
[근거: 조선총독부 농림국 농촌진흥과『농가경제개황조사: 소작농가 (農家經濟槪況照査: 小作農家), 1933년~1938년』, 1940, 6, 36.
1997년 차남희. 저항 과 순응 의 역사 정치학: 미 군정 의 농업 정책 과 농민에서 재인용]
소작농가 인구의 식자률이 전체 인구의 그것에 비하여 낮았다고 가정한다면, 다음이 추론된다.
1933년 조선 인구의 문맹률은 71.6% 미만이었다.
1938년 조선 인구의 문맹률은 66.8% 미만이었다.
이상의 수치로서 이전 자료의 문맹률 추산치를 보정하면 아래와 같다. 정확한 수치를 모를 경우, 최소 내지 최대치의 경계 수치로 대신한다.
한국인 비 리터러시 비율 (비식자율; illiteracy rate < 문맹률의 완곡한 표현) 통계 (대략적 수치; 큰 숫자에서 작은 숫자로 배열)
1910년대 초 94% 미만
1920 년대 초 99 % > 오류; 취학 인구가 1911년 약 23 만에서 1922년 약 59 만으로 증가하였으므로 비식자율이 급격히 감소하였을 것으로 추론함.
1920 년대 말 80 %
1930 년대 1930년 77.7 %
[자료 출처: <일제시대의 문맹률 이야기>
http://webcache.googleusercontent.com/search?q=cache:ThxCkxkJxuUJ:gall.dcinside.com/list.php%3Fid%3Dhistory%26no%3D490525+%ED%95%9C%EA%B5%AD+%EB%AC%B8%EB%A7%B9%EC%9C%A8+%ED%86%B5%EA%B3%84+%EC%9D%BC%EC%A0%9C%EC%8B%9C%EB%8C%80&cd=4&hl=en&ct=clnk&gl=us]
1930 년대 1933년 71.6 % 미만
1930 년대 1938년 66.8 % 미만
1940 년대 모름
1950 년대 모름
1960 년대 1960 년 29%
[자료출처: 1994. Dani Rodrik. Getting interventions right: how South Korea and Taiwan grew rich. p. 75-76]
1960 년대 1966 년의 8.9 % >허위
1970 년대 1970 년의 7.0 % >허위 (이후 5% 미만일 것으로 추정하여 무의미하다고 보아 통계청 집계 중단했다 함)
1980 년대 없음
1990 년대 없음 (공식 집계 아닌 가공의 숫자 2 % 내외로 유네스코에 보고 >허위)
2000 년대 2001-2002 년 중앙대 이희수 조사에서 비문해율 24.8 % (24.6%?): 한국인의 비식자율 실태가 비로소 드러남
2008 년 국립국어원 비식자율 조사 재개, 이하는 2008년 12월 발표 결과:
비문해 수준에 따른 통계
문자 식별 못 함: 1.7 % (비문해: 보수적 문맹)
짧은 문장도 해독 못 함: 5.3 % (비문해: 보수적 준 문맹)
다소 긴 문장 해독 못 함: 21.1 % (문해 2 수준: 기능성 비문해)
법령문 등 복잡한 문장 해독 못 함: 36.8 % (문해 3 수준: 기능성 비문해)
길고 복잡한 글 읽고 추론도 가능함: 35.1 % (문해 4 수준: 기능성 문해)
[출처: HWP] 기초 문해력 조사 주요 결과 www.mct.go.kr/.../UplDownloadFile?...기초문해력조사주요결과(붙... File Format: HWP/Hancom Hanword - View as HTML 2008년 12월 22일 / 국립국어원. 조사 목적. 국민의 국어능력 실태 파악. -국어기본법 제9조에 의거, 국어정책 수립을 위한 국어능력 실태 조사. -국어능력 향상 정책 ... ]
[다운로드 없이 웹으로 읽기 출처: 2008 국민의 기초 문해력 조사 개요. 김순임·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http://mirror.puzzlet.org/korean.go.kr/nkview/nklife/2009_2/19_2.html]
1960년 이후 이른바 보수적 문맹 정의와 국제적 문해능력 정의 사이에 벌어져 온 논란의 상황적 원인은 다음과 같다고 본다. 세계적 러터러시의 (literacy) 기준은 지식의 확산과 함께 점점 광범위하게 규정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문맹률의 표면적 수치를 낮추는 데 주안점을 두고, 단순 식자능력으로 규정하여 오히려 문맹의 범위가 정의 수준에서 축소되고 있다는 상반된 추세가 중대 요인이었다고 본다. 리터러시는 본래 전통 한자 문화권의 관념이 아니고 서구에서 수입된 것으로, 일본어에서는 음차하여 리터러시 (リテラシー) 혹은 변역하여 識字(率) 非識字(率)으로 활용해 쓴다. 1920년대 일제 하 조선일보 기자가 비분강해하여 성급하게 높은 문맹률 언급한 것과 대조적으로, 현대 한국의 지도부는 민족의식을 고취하려.
는 데 급급하여 한글 자모만 알아보고 짧은 문장도 이해 못하는 준문맹자를 문맹에서 제외하는 기현상을 보였던 것이라고 해석된다.
아무래도 문맹이라는 낱말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독자가 있는 듯 한데, 감정이 글 삭제라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충동반응은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차라리 일본처럼 음차하여 리터러시라고 고쳐 써 드리면 충동반응을 그칠까?
위의 제안에 의거, 문맹(율) > 비식자(율); 비문맹(율) > 식자(율)로 고쳐 써 드려 본다. 그저 칭찬만 듣기 좋아하는 젊은이들이여, 각성들 하시오~! 하하
조삼모사(朝三暮四)가 따로 없네. 하하
\"조삼모사라도 좋아!\" \"칭찬은 듣기 좋아!\" \"칭찬만 듣길 원해!\" \"칭찬만 해 주셔요!\" Da Capo. \"조삼모사라도 좋아!\" \"칭찬은 듣기 좋아!\" \"칭찬만 듣길 원해!\" \"칭찬만 해 주셔요!\" Da Capo. \"조삼모사라도 좋아!\" \"칭찬은 듣기 좋아!\" \"칭찬만 듣길 원해!\" \"칭찬만 해 주셔요!\" Da Capo. ... ad infinitum~, yay~! 차사다 차사(嗟辭)~! 하하하
디시인사이드는의 D.C. 는 아무래도 디지랄 캐무라가 아닌 Da Capo 동어반복 토톨로지 터틀 거북이 토끼와 거북이의 아에소포스 우화의 교훈을 잊지 맙시다 하하하하 재미나네 하하~!
하나의 주제를 놓고 나 홀로 토론하며 자빠져 있다. 다른 참여자들의 참여 중 두드러진 참여는 기껏 글 삭제 신고일 뿐인가? 통계수치가 역사 현실에 보다 가까이 가도록 자료를 뒤져 내는 것도 즐거운 발견의 대탐험인데, 그저 달콤한 열매만 좋아? 좋은 소리만 듣고 싶어? 중학생들이 가장 머리가 활발할 때인데 (문해실태 조사에서 언급되었음), 학업에 너무 열중들 하시느라 적극적 참여는 불가능한가? 똑똑하신 중학생들을 제쳐 놓고, 이 재미난 작업을 나 홀로 독차지한다는 것이 조금 미안하네 그려. 나는 조선 시대의 높은 문맹률이 아직 납득하기 어렵다. 일본은 에도 말~메이지 초에 벌써 50% 내외의 식자율을 달성하였다는 주장들이 있는데, 조선은 무엇이 아쉬워서 10%에도 못 미쳤을까? 같이 좀 알아 보면 안 될까?
정정 : 일본은 에도 말~메이지 초에 벌써 50% 내외의 식자율을 달성하였다는 > 50%는 40%로 정정한다.
http://www.asianinfo.org/asianinfo/japan/education_literacy.htm
추가적 정보 : \"오해가 없도록\" 같은 오만 방자한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일본의 위 수치는 남자 기준이므로, 남녀 모두 포함했을 경우에는 에도 말~메이지 초 일본의 식자율은 위의 수치를 반감하여 20%로 정정하여야 함.
이 수치마저도 칸지/한문에 능통한 수준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며, 음절문자 카나와 약간의 칸지를 알아 이름자 쓰고 게시물과 장부 읽을 정도의 기초 수준에 머물렀을 것이지만 원사료를 접해보지 않아 이마저도 확실성은 없다. 과장일 수도 있는 것이고. 후고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