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도:  위의 화상은 최초의 금속 활자본 1234년 상정고금예문은 아니고, 1377 년 직지심체요절>

금속활자 인쇄술 발명했다면 무삼 소용 이시리오! 문맹율 90% 언저리면 무용지물 아닌가?

그래서 고려조~조선조 문맹율 90% 이상이라는 지적을 극복할 자료를 제출하여 주시오.
그러지 못한다면 1234 년 <<고금상정예문>>, 또 1377 년 <<직지심체요절>> 등을 금속활자로 찍어 낸 사실을 축하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한일합방 같은 대가리 걷어차이는 치욕도 당연한 결과라는 점이지.
문맹율 높았다면 금속활자건 그 할애비건 간에
조선은 빠른 자력 근대화에 실패하여 쭈나미처럼 덮치는 외세의 무너미에 익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독서를 위한 인쇄술 말고, 불경 등을 미신적으로 신봉하여 극락왕생의 면죄부처럼 남용했다면 이는 금속활자 인쇄술로 독일인들이 이룩한 종교개혁과는 반대 현상으로 고려~조선의 정체성을 입증하고 있나는 해석이 가능하다.
읽지는 못하지만, 소위 그것만 한 질 소유하고 있으면 극락에 간다니까 하는 부적 정도로 생각했단 말인가!!
그랬다면 문명국인이 아니라 야만국인이네? 차사다 차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