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의 숙명애는 기독교적 우주관을 반영하고 있다.
시간은 일직선으로 진행하며, 삶의 끝에 도달하면 돌이킬 수 없는 최종점에 이른다는 우주관이다.
그러니 어찌 기독교 세계의 종말론과 최후 심판을 전제하는 독자와
이를 믿지 않는 이들이 이해하는 것이 같을 것인가?
한 번 뿐인 삶에 거두어들이는 최종점이 있기에 한 없이 작아지는 유한자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순간은 소중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 믿는 인간이라면. 

\" 가을날


릴케 (Rilke, Reiner Maria, 1875-1926)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命)하소서

이틀만 더 남국(南國)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독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맬 것입니다. \"

오늘은 잉태의 겨울을 지나 새 생명의 봄날을 통과하여 여름의 수고로움과 가을의 성숙기를 성실하게 보낸 것에 비례하여
열매를 수확하는 날이다. 수고한 자가 수고한 만큼, 놀아버린 자가, 놀아버린 만큼 각자 자기의 몫을 수확하는 정직한 하루가 될 것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시험에 임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정직한 한국인이 될 수 있을까 검증하는 날이기도 하다.
무에서 유는 나오지 않으며, 오로지 들어간 만큼만 나온다는 우주의 대법칙을 체험으로써 재확인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