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지방 생활 - 순천
선비(211.190)
2005-01-19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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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짤방은 축제중인 순천시의 야경이라오.
본 햏 마산에서 그 다음으로 이주한 지역이 바로 순천이라오.
순천은 잠시 살다 대구, 진주를 거쳐 다시 살게 된 본햏에게 있어 매우 특별한 곳이오.
정겹던 마산에서 순천으로 이사가는 순간부터 본햏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는 것 같은 느낌이었소.
경상남도 쪽의 남해고속도로를 벗어나 섬진강 너머의 전라남도는 갑자기 도로가 2차선으로 바뀌었소.
순천에서는 이사를 비교적 많이 다녔는데 경상도의 마산,진주,대구에 비해 군부대자체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도 작고 복지시설이 미약했소.
처음에 살게 되었던 동네는 가곡동이라는 곳인데 밤에 박쥐가 집주변에 날라 다녔소.
본 햏 박쥐는 그때까지 동굴에만 살고, 동물의 왕국에나 등장하는 동물인지 알았소.
순천이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밤에 별이 그렇게 반짝거리고 있었소.
좋은 말로 공기가 오염이 안되고 환경이 쾌적하다고 볼 수 있지만, 나쁘게 보면 한 마디로 낙후. 정체의
이미지 그 자체였소.
물론 가곡동이 시내에서 벗어난 시경계 외곽지대였지만 그 때는 지금의 시,군 통합이 아니라 별도의 독립된
행정구역이었는데. 그런 상태에서 도시에서 밤에 박쥐를 본다. 참 뭐라 말하기 그렇소.
본 햏이 살았던 근처의 윗동네는 주변산에서 토끼도 잡았소.
본 햏이 친구집에 놀러가 근처산에 갔을때 둥글둥글한 검은색 모양의 한약덩어리 비슷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토끼똥이라는 것이었소.
친구왈 토끼는 잡을 때 같은 보금자리로 다시 오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기다리면 잡기 쉽다고 했소.
더 충격적인 말은 호랑이도 나온다는 것이었소.
물론 본햏이 타지역에서 전학와서 놀릴려고 벼를 쌀나무라고 장난쳤듯이 농담했다고 보지만, 전혀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닌 것 같았소.
거기에다 문화적인 단절은 TV 가 KBS 1 방송뿐이 안 나오는 것이었소.
본 햏이 용인에 살때부터 TBS 가 KBS2 TV 로 바뀌었소.
MBC 도 안나오고 AFKN 은 말 할 것도 없소.
순천에 사는 친구들은 AFKN 이 뭔지도 몰랐소.
본 햏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그 당시 재미있게 보고있었던 전설의 고향을 얘기하자 아무도 반응이 없었소.
그 때 시내에서 본 가장 큰 건물은 전신전화국이었소. 그정도로 도시규모가 열악했소.
해방후 광주와 함께 시로 승격되었을 정도로 전라남도에서는 규모가 큰 도시였지만 너무 열악했소.
그 전까지 본햏이 살았던 지역은 한참 개발되고 있었거나 부근에 공단 등 시설도 많고 도시도 규모가 컸지만,
철원이후 이런 곳은 처음이었소. 철원은 그나마 시는 아니었소.
또 전방이라는 특수성도 있었지만 순천은 너무 비교가 되었소.
교통은 비교적 발달된 곳이었소. 하지만 광주까지의 고속도로란 도로가 2차선이었소.
남해고속도로도 마찬가지였소. 철도의 교차지라 순천역은 꽤 컸소.
그러나 대구나 부산 등 경부선에 비해서 열악했소. 새마을호도 한참 지난후에야 비로소 투입되었소.
그래도 주변엔 여수와 경계사이에 공항은 있었소. 서울에 놀러갈땐 이용하곤 했소.
다른 지역에 살때 주변 오지도 많이 놀러다녔지만 그건 하루나 몇일 놀러간 개념이지 살지는 않았소
당연히 모든 점이 불편했소.
학교에서도 주변에 떡볶이나 핫도그, 햄버거도 안팔고 참 군것질거리가 마땅치 않았소,
나중에 다시 순천에 왔을 때 알았소.
이 지역은 쌀이 주산이라 밀가루 음식의 활용이 거의 없다는 점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소.
본 햏 그 시절 처음으로 지역의 격차가 큰지 비로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소,
말역시 마산에 살아서 그에 비하면 조금 약하지만 어릴때 들었던 전라북도 사투리와는 다른 별개의 독특한
전라도 사투리였소.
나가 ~ 그렁께 로 시작되는 압박, 사투리의 피부강도는 본 햏 적응이 조금 힘들었소.
마산이야 현지어는 외국어로 생각할 정도였지만, 그래도 타지인도 많았고, 본 햏과 같은 타지역집단이
존재해서 순천에 비하면 그렇게 피부에 와닿지는 않았소.
순천에서 학교다닐땐 전학온 학생도 많지 않았고, 또 표준어 하는 학생은 본 햏이 거의 전부였소.
전학온 첫날 선생님에게 인사할 때 본 햏은 자연스럽게 안녕하세요 라고 했소.
그런데 다른 학생은 다 안녕하십니까 라고 하는 것이었소.
일시에 본 햏에게 쏠리는 시선, 참 난처했소.
얘들이 ~ 십니까? 라고 표현한다는 점에 심한 저항감과 거부감이 생겼소.
그래서 본 햏은 다음부턴 아예 인사할 땐 입만 뻥긋했소.
본 햏 처음에는 얘들이 어른스러워서 그렇게 말하는거라고 생각했소.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지금도 인상깊게 남았던 점이 선배나 윗사람에게 말하는 방식이 완전한 높이말이
아니였소.
참 독특하게 높임말 사용이 다른 지역과는 달랐소.
~ 한가 란 표현을 썼소.
이 말은 다른 지역에선 반말투이오. 그런데 여기선 높임말처럼 사용되고 있었소.
또 학교선생님이나 주변애들이 롯데를 싫어하는 것이었소.
몇몇 얘들은 과자도 롯데는 안 먹는다는 것이었소.
본 햏 처음엔 웃겼소. 맛있으면 먹는거지 뭐 메이커를 어린애들이 따지냐 하고 생각했소.
간혹 경상도를 싫어한다는 말을 하곤했소.
또한 정부와 중앙권력, 군인에 대한 이미지가 대단히 안 좋게 보는 것 같았소.
본 햏 약간 뜨끔했소. 본 햏 마산에서 전학왔는데, 아버지께서 군인이신데, 그런데 선생님께서 서울에서
전학왔다고 해 본햏의 말투를 듣고 학생들 모두다 그렇게 알고 있는 것 같았소.
그 때 담임선생님 지급도 대단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소.
순천은 처음에는 한학기만 잠시 있었고 대구로 곧 이사가게 됐소.
이상이 처음으로 접해 본 순천의 인상이었소.
나중에 대구와 진주를 거쳐 다시 오게 되었던 내용은 다시 다루어 보겠소.
전라도 사투리는 경상도 사투리 처럼 여러 주제로 별도로 다루어 볼 작정이오.
전라남도 햏들은 너무 안 좋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라오.
본 햏이 어려서 느낀 처음 인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내용이니 오해하시지 마시기 바라오.
또 살았던 시대에 따라 당연히 환경이 달라졌을 수 있소.
순천이나 다른 전라도 지방에서 사셨던 햏들의 적극적인 참여 부탁드리오.
해태와 롯데......일종의 미묘한 관계......맞소...:::
순천에산건 아니서만도::::그냥 아르신들께들은 말이 생각이나서..... 끄적거려본것이라오...(좀커서 어른들께 과자에도 미묘한 관계가 있음을 들었엇다오.....그래도 소햏 친구들이나 소햏이 해태,롯데로 과자가리는것을 본적도,한적도없다오....) 소햏은 에이스,홈럼볼,버터링,오예스.틴틴.계란과자 등등 자주 먹었고 지금도 자주 먹는다오.....
돈이 없어서 과자를 못사먹는게 문제지......:::::
인사가 독특하구려...
'~한가'라는 표현도 있지만 더 많이 쓰이는건 '~는가'라는 표현입니다. 표준어로 하자면 '형, xx했어요?'라는 문장이 '형, xx했는가?'라는 식이죠. 막상 듣기에는 반말처럼 들리지만 선비햏이 써놓으셨듯이 실제로는 높임법의 일종입니다.
경상도와..전라도의 대립이랄지 반골기질이 없을 수가 없는게 저만 해도 중,고등학교때 선생님 중의 90%이상이 5.18을 직접 겪었던 분들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고3때..겪기도했고, 어떤분 은 대학교때, 어떤 분은 중학교때 직접 사람이 죽어나가는걸 보셨죠. 심지어 어떤 분은 그 당시 계엄군한테 험한 일까지 당할뻔 하셨습니다.(험한일이 뭔지는 알아서..) 제가 이사해갔던 당시-제가 중3 2학기때-에도 많이 사라졌던 지역감정이지만 없어질 수는 없죠.. 그 충격은 많이 가셨지만 적어도 전라남도에서 5.18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본 햏 지역감정이라기 보다는 지역차이라는 관점으로 많은 부분을 계속 언급해 보겠소.
윗 햏들이 말씀하신 부분들도 언급되어질 기회가 있을 것이오.
누구는 케이티엑스도 깔아주고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