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한글에 대한 잘못된 주장이 있고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다. 한글을 사용하는 우리 자신들도 잘 모르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토론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1. 먼저 시작하기에 앞서 한글에 초기 전개 과정에 대해서 조사해 보자. 훈민정음 반포 세종 대왕은 훈민정음을 만들고 나서 세 해 동안 계속해서 한글 다듬기와 문서와 작품을 쓰는 실용 시험을 거쳐 드디어 1446년 9월 상순에 훈민정음을 반포하였다. 한글 최초의 문학 작품 훈민정음 반포에 앞서 1445년 한글로 된 최초의 문학 작품인 <용비어천가>가 완성되었다. 태조 이성계의 역성혁명과 조선 건국의 과정을 그린 125장의 악장체 영웅 서사시이다. 한 글 문학의 꽃핌 16세기에 들어오면서부터 다양한 시가와 가사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특히 정철의 <관동별곡>을 비롯한 가사들은 일찍부터 좌해진문장(左海眞文章)이라는 극찬을 들을 만큼 국문학의 진수를 드러냈다. 또한 윤선도의 시가 문학은 순수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활용하여 본격적인 문학어로서의 한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초기 한글 소설은 한문을 번역하는 역어체로 문학어로서 미흡한 단계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한글 소설은 광해군 때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에서부터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 후로 김만중의 <구운몽>과 작자미상의 <춘향전>, <심청전>같은 작품이 속속 나타났다. 이렇듯 한글이 창제된 조선초,조선중기,조선후기,까지 순수 한글문학이 작성되고 여성,서민들의 대화수단으로 한글이 사용되었음을 알수 있다. 한글은 창제이후에 객관적 사실에서 소수의 양반층, 상류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서민층에서 한자와 병행해서 사용되었음이 나타난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한글의 조선초,중기,후기에 일반국민 사이에 사용이 안되었는지 알고 있으나 객관적 사실에서 오류가 나타난다. 2. 조선말기에 와서 한글에 전개 과정을 알아보자. 한글이 나라글로 자리잡음 1894년, (고종 31년) 당시 대한제국 칙령 제1호로 "법률 명령은 다 국문으로 본을 삼고 한문 번역을 붙이며, 혹 국한문을 혼용한다."는 한글 전용 대원칙에 관한 법령이 공포된 뒤부터 한글이 명실공히 대한제국, 한국의 국문으로 인정된다. 그밖에 순한글 신문의 탄생 1896년 4월 7일, 민간단체인 독립협회에 의해서 순한글로만 쓰는 <독립신문>이 발간되었으며 당시 한국내의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은 순한글쓰기와 띄어쓰기를 시행하여 한글맞춤법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였으며, 국민들의 한글 사용에 큰 영향을 끼친 부분이 있다. 이러한 독립신문의 창간일이 오늘날 '신문의 날'이 되었다. 일제지배 시기 이전인 고종황제의 칙령 제1호에는 한글을 국가에 국어로서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객관적 사실에서 일반대중의 한글사용에 폭이 나타나며 일부 일본인의 주장하는 것과는 상반되는 객관적 사실이다. 3.1910년~1945년 사이에 근대 한글에 전개 과정을 객관적 사실에서 알아보자 한글이라는 이름자체, 또한 한글의 보급 또한 일본 총독부내에 정책이  아닌 조선내에 있었던 민족학자,민족기관에서 근대 한글의 틀이 발전되고 뼈대가 완성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의 중간 시조 '한글'이란 이름은 주시경(1876-1914)선생이 만든것으로 '언문, 암클, 반절'이란 이름이던 것들을 한글이란 이름으로 통일하여 반포하였다. 한글학회의 성립 주시경 선생 아래 모였던 <국어연구학회>는 1921년 <조선어 연구회>로 다시 모였고, 1931년 <조선어학회>로 명칭을 바꾸어 활동하다 광복 후인 1949년 비로소 <한글학회>로 다시 서게 된다. 또한 한글날의 제정은 일제시대인 1926년 총독부에 발표가 아닌 민족기관인 조선어 연구회에서 음력 9월 29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10월 28일을 훈민정음 반포 기념일로 정하고 그 이름을 '가갸날'이라 명했다. 그러나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원본에 음력 9월 상순으로 되어있음을 알고 이를 양력으로 환산해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하게 되었다. 한글학회는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 1936년 <표준어 사정>, 1940년 <외래어 표기법> 제정, 1942년 <조선말 큰사전> 출판에 착수했다. 1932년 조선어학회 기관지인 <한글>이 창간되고 1934년에 조선어학연구회 기관지인 <정음>창간, 1931년-1934년 민간신문의 브나로드 운동과 강습회 등은 일제치하의 대표적인 국어운동이었으며 이것은 총독부와는 매우 상관이 없는 민간운동이다. 이시기에 있었던 대표적인 시인 3·1운동 민족대표자 중 한 사람인 한용운의 <님의 침묵>, 신경향파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심훈의 <그날이 오면>, 1940년을 고비로 우리말과 글이 금지된 상황에서 우리말로 시를 써 끝까지 저항한 이육사, 윤동주의 항일 문학에 흐르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이들의 한글에 대한 인식, 일반대중의 인식의 대변하여 나타낸다고 할수있다. 객관적 사실에서 일제시기에 총독부가 아닌 조선어학회와 각각의 민족기관에서 한국어의 표준안, 통일안을 발표하였으며 한글날을 제정하고 일반 국민에게 공포한 것도 총독부가 아닌 민족기관이다. 근거에서, 역사적 자료에서 일제의 한글보급과는 거리가 있다. 4.  총독부에 한국어 정책을 객관적 사실에서 알아보자. 1938년 4월 일제의 교육령에 의해 일제는 각급 학교의 조선어과 폐지를 선포한다. 이어 조선어 금지, 일본어 상용을 하도록 교육령에 선포하고 있다. 이러한 일제의 법의 선포는 일부 일본인이 말하는 것과는 매우 상반된 역사적 사실이다. 또한 1942년에는 치안 유지법으로 조선어학회 회원과 그 관련자 29명을 구속하고 조선어학회 자체를 멸살한 객관적 사실이 존재한다.참고로 이 과정에서 국어학자 한징, 이윤재가 옥사했으며, <조선말 큰사전> 간행은 물거품이 되었다. 물론 근대 한글보급의 상징인 기관에 대한 이러한 정책은 근대 한글보급 과정에서 매우 고마운 사실이다. ㄱ. 헌병경찰제도 채택  집합, 결사, 언론, 출판 등의 활동 금지 ㄴ. 사립학교교칙 제정 교사, 교과서, 교과과정 등을 규제 또는 학교폐쇄 1. 조선총독부가 학무국를 支桂로 한 교육행정기관이 설치되고 일본인 관리가 그 직무를 한다.   -> 한국인 관리가 없는 교육행정기관에서 민족교육을 실시하고 한글을 보급할수 있을까?라는 매우 상식적인 의문이 발생한다. 2. 일본인에 의해 편찬된 교과서를 통해 일본사상이 한국인 청소년에게 주입시킨다. -> 즉 한국인 교사에 의한 교육이 아니며 일본인에 의해서 편찬된 교과서를  일본인 교사가 가르치게 하였다.라는 것은 객관적 상식에서 한글 교육이 제대로 될수 있었나?라는 의문이 생긴다. 여러가지 객관적 사실에서 국가적으로 교육령을 발표해서 한글 교육과정을 아예없애고 있는 상황에서 한글 보급에 도움을 주었다고 하기에는 기초적인 상식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즉 이러한 행위가 자행되는 가운데 한글발전과 보급에 도움을 주었다고 하기에는 오류라고 생각된다. 5. 한글 보급율과 문맹에 대한 자료현황 문맹 퇴치 사업(1950년) 본격적으로 실시되었다. 광복을 맞을 때 미군정청의 조사결과에서 인구의 78%가 문맹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지배가 문맹퇴치과 한글 보급에 영향을 크게 주었다고 생각하기에는 객관적 자료에서 오류가 나타난다. 미 군정청은 내부에 문맹퇴치를 관장할 부서를 두어 ‘성인교육위원회’를 조직하고, 성인 교육사를 양성하였다. 또한 ‘국문 강습소’를 설치 운영하고, ‘공민학교’를 설치 운영하는 등의 정책을 통하여 3년 동안 약 250만 명의 문맹자를 교육하여 78%의 문맹률을 1948년 정부 수립시 약 41.3%로 낮추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후 일반 사회의 문맹 퇴치 5개년 계획이 끝난 1958년에는 문맹률이 약 4.1%로 낮아지는 성과를 거두었다. 한글의 대중성, 한글은 훈민정음 발문에 쓰인 대로 닭 울음소리며, 개 짖는 소리까지 다 적을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인 음성기호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뛰어난 표현력을 가지고 있는데다, 너무나 배우기 쉬워 한 때는 하루 아침에 배운다 해서 '아침 글'이라고 칭한다. 참고로 한글 보급의 일반화 되어있는 오늘날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높게 문자를 해독하는 나라가 된것도 한글의 대중성이라는 이유가 존재한다. 강제적인 침략수단의 하나로 한글을 쓰지 못하게 한 시대와는 매우 다른 현상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결론** 결론적으로 역사적 사건과 자료에서 조선초,중,후기와 근대, 한글에 전개과정을 생각하면 일부 주장은 객관적 오류가 나타나며 상대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미친개가 짓으면 ㄸㅒ리거나 무시하면 되는 것이고 굳이 핏대를 올리고 대응할 가치가 없다.라는 결론에 이른다. 긴글의 내용을 정리하고 싶다. 현재 한글날은 공휴일이 아니며 세계적으로 그나라의 언어 탄생일을 공휴일로 하는 나라는 없다. 물론 한글날을 공휴일 까지는 아니더라도 점점 퇴색되어 가고 일반 대중의 국가의 언어인 한글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부분이 있고 외국인에 대한 한글교육도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한글날은 10월9일이다.당신은 알고 있었는가? 분명 한글의 의미를 재정립하고 한글에 우수성,대중성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또한 통일후 상당히 다른 길을 걸은 남북한의 차이, 즉 8000천만 민족의 언어를 지금부터라도 남북정부, 혹은 공동연구하는 기관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글에 표준법, 즉 올바른 사용법으로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