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은 안동의 진성이씨 주촌(두루) 대종택에서 소유하고 있던 것을 간송 전형필씨가 두루 종택의 작은집 아들인 이용준으로부터 구입하였으며,
일부 긍구당 지인들이 긍구당이 원 소유주라고 하는 주장은 근거도 증거도 없으며 추측 및 왜곡일 뿐입니다.
우선 해례본은 긍구당에서 소유한 기록과 입수한 근거가 전혀 없고 이에 대한 설명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해명도 없습니다.
또한 결정적으로 긍구당의 역사는 세종까지 올라가지 않고 세종임금 사후 100여년 지나서 시작됩니다.
돌아가시고 없는 사위가 훔쳐갔다고 하는 것은 안동의 양반가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진실은 교과서에 있은 사항으로 확실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940년까지 경상북도 안동군 와룡면(臥龍面) 주하동(周下洞) 이한걸 가(李漢杰 家)에 소장되었던 해례본은 (국보70호) 그의 선조 李 禎 公이 약산성을 쌓고 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동국정운(국보71호)과 함께 세종으로부터 직접 하사 받은 서책 중 하나로 가보로 보관 하다가 우연하게 간송 전형필에게 입수가 되어 비싼 가격으로 매입해 세상에 나오게 되었지요!
1943년 6월. 한남서림에 앉아있던 간송이 고서 중개인 [이순황]으로부터 경상북도 안동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나타났는데, 책 주인이 1000원을 부르기에 돈을 구하러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간송은 거간인 이순황을 통해 책 주인에게 사례비와 구입비용을 주겠다 약속하고서 일련의 모든 상황이 정리된 후 경북 안동을 내려가게 된다.
안동으로 내려가 이용준으로부터 세종임금 시절에 이용준 집안조상이 여진토벌의 공로로 훈민정음 해례본을 하사 받은 책으로 가보로 내려와 종택인 경류정에서 보관하고 있었고 종가의 작은집 아들 이용준이라는 분이 갖고 있음을 확인하고, 확인해보니 귀중한 책인 '훈민정음 원본'이었습니다. 즉, 여태껏 이용준이라는 분의 선대 집안에서 대대로 가보로 보관을 해온 것이지요.
발견 당시 예의본의 앞부분 두 장이 낙장되어 있었던 것을 영남의 대유학자 이한걸 (李漢杰)의 셋째 아들 용준(容準)의 글씨로 보완하였다. 이용준은 학자로서 안평대군체(安平大君體)에 조예가 깊었으며, 선전(鮮展)에 입선한 서예가였다.
참고로 이한걸가는 고려말에 시작된 600년 전통의 진성이씨 안동 주촌 (두루) 대종가의 작은집으로 그의 백부가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으로 주촌 대종가 종손인 李兢淵입니다. (사후 독립유공자로 인정되어 건국포장을 추서 받음) 당시에 이한걸 가는 종가의 작은집입니다. 따라서 작은집과 큰집 이였기에 서고의 책은 물론 재산의 개념도 분리되지 않았고 두루 종가집 서고는 지손 에게는 언제나 열려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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