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진의 훈민정음에 대한 반박글


참고로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은 안동의 진성이씨 주촌(두루) 대 종택에서 소장하고 있던 것을 간송 전형필씨가 두루 종택의 작은집 아들인 이용준으로부터 구입하였으며,

일부 긍구당 지인들이 긍구당이 원 소유주라고 하는 주장은 근거도 증거도 없으며 추측 및 왜곡일 뿐이고 주장한 내용도 추측으로 일관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해례본을 긍구당에서 소장한 기록과 입수한 근거가 전혀 없고 이에 대한 설명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해명도 없습니다. 즉 허구이지요.

또한 결정적으로 긍구당의 역사는 유일재 김언기 (金彦璣 1520~1588)로부터 시작되며 世宗임금(1397~1450) 사후 70여년 지나서 태어나신 분입니다.

돌아가시고 없는 사위가 훔쳐갔다고 하는 것은 안동의 양반 가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진실은 기존에 알려진 바와 같이 교과서에 있은 사항으로 확실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940년까지 경상북도 안동군 와룡면(臥龍面) 주하동(周下洞) 이한걸 가(李漢杰 家)에 소장되었던 해례본은 (국보70) 그의 선조 이 약산성을 쌓고 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동국정운(국보71)과 함께 세종으로부터 직접 하사 받은 서책 중 하나로 가보로 보관 하다가 우연하게 간송 전형필에게 입수가 되어 비싼 가격으로 매입해 세상에 나오게 되었지요!


1943 6. 한남서림에 앉아있던 간송이 고서 중개인 [이순황]으로부터 경상북도 안동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나타났는데, 책 주인이 1000원을 부르기에 돈을 구하러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간송은 거간인 이순황을 통해 책 주인에게 사례비와 구입비용을 주겠다 약속하고서 일련의 모든 상황이 정리된 후 경북 안동을 내려가게 된다.


안동으로 내려가 이용준으로부터 세종임금 시절에 이용준 집안조상이 여진토벌의 공로로 훈민정음 해례본을 하사 받은 책으로 가보로 보관하고 있었고 진성이씨 주촌 대종택에서 보관하고 있었고 종가의 작은집 李漢杰의 아들 이용준이라는 분이 갖고 있음을 확인하고, 확인해보니 귀중한 책인 '훈민정음 원본'이었습니다. , 여태껏 이용준이라는 분의 선대에서 대대로 가보로 보관을 해온 것이지요.


발견 당시 예의본의 앞부분 두 장이 낙장되어 있었던 것을 영남의 대유학자 이한걸 (李漢杰)의 셋째 아들 용준(容準)의 글씨로 보완하였다. 이용준은 학자로서 안평대군체(安平大君體)에 조예가 깊었으며, 선전(鮮展)에 입선한 서예가였다.


참고로 이한걸 가(李漢杰 家)는 고려 말에 시작된 600년 전통의 진성이씨 안동 주촌 (두루) 대종가의 작은집으로 그의 백부는 이긍연(李兢淵)으로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으로 주촌 대종가 종손인 李兢淵입니다. (사후 독립유공자로 인정되어 건국포장을 추서 받음) 발견 당시에 이한걸 가는 종가의 작은집입니다. 따라서 당시에 작은집과 큰집 이였기에 서고의 책은 물론 재산의 개념도 분리되지 않았고 주촌 종가 집 서고는 진성이씨 지손들 에게는 언제나 열려있었습니다.


* 유일재 김언기(金彦璣): 김언기는 (1520~1588) ()가 중온(仲溫), 호는 유일재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67(명종 22)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벼슬하지 않고 평생 후진양성에만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