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인 역사 - 관동 대지진과 일본어
선비(211.190)
2005-03-02 02:24
추천 12
윗 짤방은 관동 대지진때의 모습이라오.
본 햏이 요즘 바빠 언어갤에 많이 못 와봤소.
그런데 이제는 질문갤로 바뀌어 버린 것 같소
흐름자체에 가치판단을 하기는 좀 뭐하지만 느낌이 조금 생소하오.
이번 글은 3.1 절이 지나서 때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일제시대 이야기를 해볼까 하오.
본 햏이 진주와 순천에 살때 학교 선생님들한테 관동대지진에 대해서 들었소.
선생님들 중 일부는 어렸을 때 일본에서 사신 분도 계셨소.
그래서 선명하게 그 때의 일들을 소상하게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소.
일제시대때 일본의 관동지방(동경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수도권)에 큰 지진이 나서 동경이 거의 황폐화
되다시피 하였소.
그 때 일본의 정부는 위기사항을 돌파하기위해 항상 써왔던 얍쌉한 방식의 대중선동술을 펼쳤다고 하오.
일본에 살고 있는 조선인들이 무장봉기를 준비중이었고 이 때문에 지진이 발생했다고 선전 했소.
또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고 죽은 동물사체를 집어 넣어 전염병 창궐을 획책했다고 선동했소.
지진후에는 조선인들이 약탈과 방화를 저지르고 다닌다는 흉흉한 소문이 횡횡했소.
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내부갈등을 돌리기 위해 일본 특유의 약자집단을 괴롭히는 현상이 발생했소.
이른바 자경단이라는 폭력조직이 형성되어 조선인들을 보는 대로 죽창과 몽둥이로 무참하게 학살했다고
하오.
조선인들의 집단 거주지를 중심으로 광기를 부렸다고 하오.
조선인들은 주로 하천주변이나 매립지 같은 곳에서 비참하게 생활하고 있었다하오.
그 때 자경단들은 왜인과 조선인들을 구별하기 위해 얼굴의 광대뼈 돌출여부와 일본어 발음중 주로 -쓰-
발음을 시켰다하오.
우리나라 사림들이 얼굴윤곽이 더 굵직하고 하악골인 턱부분이 발달되어 있어 왜인들과 구분이 쉽게
되었던 모양이오.
또 현지에서 태어나서 일본어를 배운 사람이 아니면 좀처럼 우리나라사람들은 현지의 -쓰- 발음을 잘
하지 못 한다하오.
이 때 수많은 우리나라사람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다고 하오.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고 하오.
그런데 그 곳에는 우리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본의 하층민들인 부락쿠민들과 불가촉천민층과 지방에서
유입된 부랑아 층도 많았다 하오.
그 집단역시 동경말과는 다른 방언이나 은어등 다른 패턴의 말들을 하여서 우리나라 사람들과 더불어 많이
희생되었다고하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했는지는 모르나 지난번 고베 대지진때도 이와 유사한 소문이 돌기도 했소.
재일동포들이 지진이 난 지역에서 돈과 물건을 약탈한다는 근거없는 소문이 유포되기도 했소.
본 햏 글의 내용은 들은 내용이라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소.
그러나 3.1 절을 되새기며 아픈 과거를 잊지는 말아야 겠소.
아마 조선인을 분별해내기 위해 十을 발음해 보라고 하였다던가... 十(ジュウ)는 보통 한국어를 제 1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발음하면 일본 사람들에게는 チュウ라고 들릴 뿐이오.
'10원 50전'을 발음을 시켜서 '쥬'와 '고'의 유성음 여부로 판별했다고 들었소. 그놈의 10원50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을 분별해 내기 위해서 いちえんごじゅっせん(一圓五十錢)을 발음해보라 하여 구분했다 하오. 이 단어는 한국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탁음의 연속이며 단어의 마지막에 위치하는 ん발음은 한국인의 발음기준으로 보면 ㄴ도 아니고 ㅇ도 아니고 ㅁ도 아닌것이 아주 모호하여 발음하기 무척 어려운 것이라오. 덕분에 발음 습관이 한국인의 그것과 비슷한 동북지방 사람들 중에 조선인으로 오인받은 사람들도 많았다 하더구려
쥬엔고즛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