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계신 햏들 중에서 중고등학교 때 한문을 배우신 분들이 있다면, 아마도 육서란 개념을 아시리라 믿소. 육서란 서한 말기부터 논의된 한자의 여섯가지 조자방식인데, ‘상형, 지사, 회의, 형성, 전주, 가차’를 말하오. 이 중 전주와 가차는 문자를 구성하는 방식이라기 보단 문자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보이며, 나머지 ‘상형, 지사, 회의, 형성’을 진정한 조자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소이다. 이것을 四體二用이라 하오. 그런데, 상형, 지사, 회의, 형성이라고 하는 네 조자방식으로 구성된 한자의 비율을 조사하면, 오늘날에 있어서는 형성의 비율이 압도적(80~90%)임을 알 수가 있소. 이러한 현상은 동한대의 고문자 자전인 <설문해자>에서도 거의 같으며, 그보다도 앞선 시기인 전국시대의 전국문자, 서주~동주대의 금문에서도 비율이 이후 시대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적긴 하지만 역시 대다수를 점하는 것을 알 수가 있소.(다만, 상대 중만기의 갑골문에서는 형성자의 비율이 상당히 낮아서, 약 20%정도라 하오) 이것은 한자의 발전과정에서, 고대 중국인들이 세계 문자사용 방식의 보편규율이랄 수 있는 레부스(rebus: 수수께끼 문자. 이것은 특정 단어를 서사함에 있어, 그 단어의 의미와는 관계가 없어도, 발음의 유사성만으로 서사할 문자를 선택해 사용하는 것을 말하오. 가차를 상상하시면 될 듯)의 원리를 염두에 두었음을 알 수가 있소이다. 다만, 형성자는 단순히 발음을 빌려 글자를 적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의미부호(義符. 즉 오늘날의 부수와 유사)’라는 것으로 그 의미를 한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표의성을 강화했다는 데 의의가 있소(물론, 이러한 현상은 한자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히에로글리프, 슈메르문자에서도 나타나오). 이러한 형성자들의 발음부분은, 위에서도 말한 ‘레부스’의 원리에 의해 사용된 것이므로, 원칙상 당연히 글자의 의미와는 무관하오. 그러나, 한자를 ‘뜻’으로 풀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은 형성자들의 발음부분마저 뜻과 연결시키려고 무던히 애를 써왔소이다. 殘, 賤 등과 그들의 발음부분인 戔을 의미상으로 연결시키려는 시도가 이미 송대에 있었으며(이것을 우문설이라 하오), 오늘날에도 서점에 가면 이런 식의 한자 해설이 널리고 널렸소. 뻔히 형성자인 글자에 있어서도 저러한데, 만약 오늘날의 발음만 갖고 형성자임을 알기 어려운 글자라면? 이 때에는 문제가 심각하게 되오.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형성자들은 대부분 선진시대~한대(특히 한대에 거의 대부분이 완성되오)에 만들어진 것이외다. 따라서, 형성자에 반영된 발음의 유사관계는 현대 중국어나, 한국한자음, 혹은 일본한자음에 의한 것이 아니오. 바로 ‘상고 중국어시대(기원전 11세기~한대)’의 발음이 반영된 것이오. 이렇게 발음이 심하게 변한 글자들에 있어서는 현대의 발음으로 동음관계를 추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종종 이것들이 형성자임을 모르고 회의로 처리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소. 우리가 한자를 볼 때에는 이러한 점에 대하여 매우 주의하여야 할 것이오. 소햏이 밑에서 발음이 너무 변하여 오늘날 보기에 형성자로 판단하기 어려운 글자들의 몇 가지 예를 제시하겠소이다. 代: <설문해자>에 의하면 人을 의미요소로 하며 弋(익)을 발음요소로 하는 형성자이오. 弋이 代의 발음요소라면 너부 발음에 차이가 나지 않느냐는 의문을 가지실 수도 있으나, 실제 상고음을 재구해 보면 代는 *dəg이고, 弋은 *rək가 되어, 그 발음이 상당히 유사하게 되오. 실제로 전국시대에 서사된 <상해박물관장초나라죽간>의 <중궁>편에서는 ‘三代之明王’을 ‘三弋之明王’이라 적고 있소. 說: <설문해자>에 따르면 言을 의미요소로 하며 兌(태)를 발음요소로 하는 형성자. 역시 ‘설’이란 독음과 너무 차이가 나지 않느냐란 의문이 들겠지만, 상고의 발음에서 說은 *hrjat, 兌는 *dad로, 역시 발음이 유사해지오. 義: 형체는 갑골문부터 등장하며, <설문해자>에 의하면 羊과 我로 이루어진 회의자라 하오. 그러나 이 글자는 사실, 我를 발음부분으로 하는 형성자이며, 이것은 義자의 머리자음이 我와 같은 것, 그리고 義가 <초사>와 같은 상고음 시대의 시가에서 我와 같은 핵모음을 가진 波, 禍, 羅 등의 글자와 압운되고 있음을 들어 실증 가능하오. 더불어 선진시대에 있어 義와 가차 관계에 있었던 宜가 일본의 스이코시대 고층(古層) 한자음에서는 蘇我(soga)란 성의 ga를 표기하는 데 사용되었음(이렇게 되면 我의 일본한자음 ga와 같음)을 들어 방증할 수 있소. 義의 상고음은 *ngjar, 我의 상고음은 *ngar로, 극히 미세한 차이밖에 없소. 移: 이 글자에는 복잡한 사연이 깃들여 있소. 移라는 글자의 본래 의미는‘벼가 서로 위축됨’혹은 ‘벼의 이름’이었소. 그러다가 ‘옮기다’라는 뜻을 가진 迻자와 발음이 완전히 같은 고로 迻의 뜻으로 자주 가차되다가, 결국은 迻의 뜻을 빼앗아 오늘날에는 移를 오직 ‘옮기다’의 뜻으로만 사용하오. 移/迻은 둘 다 多를 발음부분으로 하는 형성자이며, 상고음은 둘 다 *rar, 多는 *tar이오. 역시 매우 근사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