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변화라는 것은 규칙적인 변화가 불규칙성을 만들고 불규칙적인 변화가 규칙성을 만드는 과정의 연속이다
이건 그냥 일반적인 maxim으로서 잘 기억해두도록 하고

뭐 어쨌든 예를 들면 "죽다"라는 단어가 있으면 "죽다 (현재)"라든가 "죽다 (과거)"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겠지
"죽다 (현재)"에 해당하는 형태가 A고 "죽다 (과거)"에 해당하는 형태가 B라고 하면
하향식 분석에서는 ["죽다": 현재 A, 과거 B] 이런 식으로 나오게 되는데 이런 구조가 굴절이고

상향식 분석에서는 A와 B에 공통되는 부분을 따로 찾아내서 X라고 한 다음 차이가 있는 부분을 a, b를 분리해서
["죽다": X, 현재: a, 과거: b] 이런 식으로 보는 거지

그런데 상향식 분석은 불가능할 때가 있거든
예를 들면 영어 foot "발 (단수)", feet "발 (복수)"에서 ["발": ft, 단수: oo, 복수: ee] 이런 식으로 떼면 이상하잖아

역사적으로는 이런 것도 상향식 분석이 가능했던 것인데 발음 변화에 의해서 불가능하게 됨
상향식 분석이 불가능해지는 이유로는 발음 변화 외에도 보충(suppletion)이라는 것이 있음
(이건 아예 다른 단어의 형태가 섞이는 것. 예를 들면 영어 go의 과거 went라든가)

이렇게 상향식 분석이 불가능하면 우리는 하향식 분석을 하도록 강제되게 되고 이렇게 분석해야만 하는 언어를 굴절어라고 함
사실 굴절어의 굴절이라는 것도 충분히 오래 전으로 돌아가면 상당수가 상향식으로 분석이 가능함
(PIE의 ablaut처럼 아직 그 유래가 알려지지 않은 언어현상들도 있지만 뭐 학자들이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그리고 상향식 분석이 하향식 분석보다 훨씬 효율적이니까 상향식 분석이 가능하면 우리는 상향식 분석을 쓸 거고
상향식으로 분석해도 무리가 없는 언어를 교착어라고 한다

위에서 "언어변화라는 것은 규칙적인 변화가 불규칙성을 만들고 불규칙적인 변화가 규칙성을 만드는 과정의 연속이다"라고 했는데
규칙적인 변화에 의해 불규칙성이 늘어나다 보면 교착어가 굴절어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불규칙적인 (analogical, 유추에 의한) 변화에 의해 규칙성이 늘어나다 보면 굴절어가 교착어가 될 수도 있지

영어나 중국어처럼 더 복잡한 구조가 있었는데 그게 전부 발음변화로 구분이 안 되게 돼버리는 바람에 고립시키는 언어처럼 될 수도 있고 말이야


별 상관 없는 얘기지만 '고립어'는 language isolate (알려진 친족이 없는 언어)와 isolating language (단어 내 형태소의 결합이 극히 한정된 언어)라는
전혀 상관 없는 두 용어의 한국어 번역으로 모두 쓰이니까 사용에 주의하기 바람. 나는 각각 '언어독립체'와 '고립형 언어'로 번역할 것을 주장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