孔丘, 자는 仲尼. 공구가 태어난 곳 자체가 尼丘란 이름의 산...;
顔回, 자는 子淵. 출토문헌에선 이름을 '廻'로도 나타내는 것을 보면, 연못(淵)에서는 물이 돌기 때문.
端木賜, 자는 子貢. 賜는 윗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행위, 貢은 아랫사람이 윗 사람에게 바치는 행위.
曾參, 자는 子輿. 보통 '曾參'에 대해서는 『경전석문』 이래 參을 '人參'의 參처럼 읽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논어언해』 및 『효경언해』에서는 '증ㅅ.ㅁ'으로 읽었음. 단, 자의 '輿'(수레)를 감안한다면, 이름인 '參'은 사실 '驂'의 variant(...)로 여겨지기도. 그래서 청대의 고증학자들은 과감히 '曾參'을 '증참'으로 읽자고 주장.
仲由, 자는 子路. 글자만 보면 이해하기 어렵다. 고증학 이래 이름의 '由'는 사실 '迪'의 variant로 여겨져옴. 그러면 路와 같이 '길'이란 의미를 지니게 되니깐.
卜商, 자는 子夏. 그냥 周 앞의 왕조 명칭들.
宰予, 자는 子我. 予(혹은 余)는 상대~서주대 상고중국어의 1인칭 대명사 단수, 我는 1인칭 대명사 복수. 단, 춘추시대에 이르게 되면, 사실상 현실언어에서 予(余)는 사라져가고 吾가 등장하는데, 재여의 경우는 서주대 이전부터의 관례적 용법을 감안하였을 듯.
冉耕, 자는 伯牛. 당연하게도 밭 가는 것은 소를 통해 하는 행위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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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렇게 보면 名과 字 간엔 의미상 관계가 있어보이긴 해도, 구체적으로 보면 관계를 어떻게 지니고 있는가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기는 약간 어려운 문제.
머리가 아파서 논문은 안 쓰고, 뇌를 정돈하기 위해 그냥 끄끄적 -ㅅ-
흥미롭습니다. 후대에 尊者의 1인칭 대명사로 '予(또는 余)'가 쓰이게 되는 것은 복고적(?) 용법이라고 할 수 있나요?
더 심한 경우도 있지. '朕'은 원래 용법이 단순한 '1인칭대명사의 소유격' 한정이었는데, 춘추전국 이래 실제 언어에서 사용되지 않으니, 영정(嬴政)이 황제의 1인칭 대명사로 용법을 굳혀버리기도...; 요는 그냥 복고라기 보단, '왜곡'한 복고.
춘추시대까지만 해도 朕邦, 朕國은 '우리나라'란 뜻.
영정이라면 영구정지...가 아니라 진시황... 역시 문자의 사용이 극히 한정되었던 시기라서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ㄴ朕 건은 문자하곤 무관한 거 아님?
안회가 廻로도 기록되는 건 논어에 나오는 거? 아님 더 뒤에 나오는 거?
그리고 춘추시대 이름에 予를 쓴 게 그 때도 유별난 거였음? 어쩌면 다솜처럼 현실 언어에서 바뀌고도 그냥 이름용 단어로 남아서 내려온 거일 수도 있으니까 이거 대봐야 할텐데.
'廻'란 variant는 잘못된 기억인 듯. '回' 자체가 돌다란 뜻이 본래 의미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
http://www.zdic.net/z/17/sw/56DE.htm
를 봐도, 回의 뜻은 '轉也'(돌다이다)이며, 단옥재의 주를 봐도, '淵、回水也。故顏回字子淵'(淵는 도는 물이다. 그러므로 안회의 자가 자연이다)이라 일컬어짐.
머리가 아프니 원... 자야지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