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2000년에 한국의 공식 로마자 표기법(변형된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는 이런 규정이 있었음
(제3장 제4항) 인명은 성과 이름의 순서로 쓰되 띄어 쓰고, 이름 사이에는 '-'(짧은 줄표, 붙임표)를 넣는다. 다만, 한자식의 이름이 아닌 경우에는 '-'를 생략할 수 있다.
김정호: Kim Chŏng-ho
남궁동자: Namgung Tong-cha
손미희자: Son Mi-hŭi-cha
정마리아: Chŏng Maria
한하나: Han Hana
그리고 이 규정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음
(출처: http://www.korean.go.kr/nkview/nklife/1984_1/1_6.html)
인명은 성과 이름의 순서로 띄어 쓰고, 이름 사이에는 '-'를 넣지만 한자식 이름이 아닌 경우에는 '-'를 생략할 수 있게 한 것은 과거 인명 표기에 원칙이 없어 혼란이 많았던 것을 통일시킨 것이다. 한자는 한 글자가 하나의 뜻을 가졌기 때문에 그 원형을 밝혀 적어야 될 것이요, 마리아(Maria), 하나(Hana)와 같은 외래어 또는 고유어의 이름은 그것이 하나의 뜻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무위키에서는 이 규정에 대해 상당히 일리 있는 분석(실제로는 비판)을 하고 있음
(나는 '한자가 있는 이름인지 없는 이름인지는 어떻게 아는데?'(아래에서 3번)만 생각했는데, 그것 말고도 다른 허점들이 있음)
한자식인지 고유어인지에 따라서 붙임표 삽입 유무를 나눈 이유를 요약하자면 '한자식 이름은 각 음절에 뜻이 있고 고유어 이름이나 외래어 이름은 그렇지 않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변수가 많기 때문에 이렇게 이분적으로 나눌 수 없으며, 실제로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1. 한자식 이름을 음절 구분 없이 쭉 이어 쓴다고 해서 각 음절의 뜻이 파괴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예를 들어 영어 classroom은 class와 room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classroom이라고 쭉 이어 쓴다고 해서 class와 room 각각의 뜻이 파괴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게다가 독일어는 영어보다도 더 많이 붙여 쓴다. 즉 한자식 이름의 각 음절에 뜻이 있다고 해도 각 음절을 나눠 써야 할 이유가 생기지 않는다.
2. 한자식 이름이라고 해서 언제나 각 음절에 뜻이 있는 건 아니다. 한자식 이름에 李世乭(이세돌)의 乭(돌)처럼 뜻은 없고 음만 나타내는 글자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이름은 분명히 한자식 이름이지만, 각 음절에 뜻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3. 한글로 적힌 이름만 보고서는 한자가 있는 이름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하나'의 경우 한자식 이름일 수도 있고(예: 荷娜(아름다운 연꽃)) 고유어 이름일 수도 있으며, 한자식 이름이면 Ha-na가 되고 고유어 이름이면 Hana가 되므로 이름에 한자가 있는지 없는지 반드시 확인을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과 불편함이 존재한다. 물론 표기법 제정 당시인 1984년에는 한자 혼용을 꽤 했고 한자가 있는 이름은 대부분 한자로 썼을 테니 한자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게 큰 문제가 없었겠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한글 전용이 보편화되면서 한자 존재 여부를 파악하기 힘들어졌다.
(그러나 바로 아래에서 언급할 '이름을 중의적으로 짓는 경우' 때문에 단순히 한자의 존재 여부만으로 Ha-na가 될지 Hana가 될지 판단하는 데에도 무리가 있다.)
4. 이름을 중의적으로 짓는 경우(고유어 이름과 한자식 이름을 동시에 의도해서 짓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이름을 지을 때 고유어 '사랑'과 한자 思朗(밝게 생각하다)을 동시에 의도해서 지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Sarang인가 Sa-rang인가?
4.1. 그리고 외래어 이름도 이런 식으로 중의적으로 지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마리아'에 한자 瑪悧娥를 붙여서 외래어 이름와 한자식 이름을 동시에 의도해서 지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Maria인가 Ma-ri-a인가?
5. 또한 '은빛'(銀빛)과 같이 한자 + 고유어 이름인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Ŭnpit인가 Ŭn-pit인가?
6. 무엇보다도 고유어 이름 중에도 각 음절에 뜻이 있는 게 있다. 고유어 이름 '새봄'은 분명히 '새'와 '봄' 각각에 뜻이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Saebom인가 Sae-pom인가?
(만약 Saebom이라고 한다면, '각 음절에 뜻이 있으면 하이픈을 넣어야 한다며?'라고 반박당할 수 있다. 만약 Sae-pom이라고 한다면, '고유어 이름에는 하이픈을 안 넣는다며?'라고 반박당할 수 있다. 참고로 국립국어원도 현행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2000년~)에서 각 음절에 뜻이 있는 고유어 이름 '빛나'를 예로 들고 있다.)
7. 원래 한자가 있는 이름이었으나 개명 절차를 거쳐서 한자만 없앤 이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이름은 한자식 이름인가, 고유어 이름인가?
사례 1: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19131
사례 2: http://www.korean.go.kr/nkview/nklife/2009_3/2009_0309.pdf#page=2
(만약 이런 이름들이 고유어 이름이라고 한다면, 그 어원은 분명히 한자에 있지 않냐고 반박당할 수 있다. 만약 이런 이름들이 한자식 이름이라고 한다면, 현재는 한자가 없는데 어떻게 한자식 이름이냐고 반박당할 수 있다.)
위 비판에 대한 결론을 말하자면,
1) '하늘'과 같이 음절별로 나눠질 수 없는 고유어 이름이 있고
2) 한자식 이름을 음절별로 나눠 쓰지 않더라도 각 음절의 의미가 파괴되는 것은 전혀 아니므로,
(위쪽에서 지적한 문제점 일곱 가지와 바로 앞의 두 가지를 고려해 보면) 오히려 한자식 이름인지 고유어/외래어 이름인지 따지지 말고 언제나 붙임표 없이 쭉 이어 쓰는 게 훨씬 더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한자식 이름인지 고유어/외래어 이름인지에 따라 표기 방식을 다르게 하는 규정은 도리어 상당히 합리적이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말 나오고 글 나왔지 글 나오고 말 나온 게 아니기 때문에[각주](그렇기 때문에 고유어 이름 중에도 각 음절에 뜻이 있는 게 존재하는 것이다), '한자로 표기될 수 있는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표기를 다르게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것이며, '고유어 이름은 한자로 적히지 않으므로 각 음절에 뜻이 있지 않다' 같은 전제가 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각주]: 애당초 형태소가 먼저 있고 그것이 문자라는 시각적인 형태로 표현되는 것이지, 문자가 먼저 있고 문자(개별 글자 또는 문자 체계)에 의해 형태소가 정의되는 게 아니다. 문자가 없는 언어에도 형태소가 존재한다는 점을 떠올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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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지 않냐? '한자식 인명'과 '한자식이 아닌 인명'으로 이분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꽤 잘 설명하고 있고, '한자식 인명은 각 음절에 뜻이 있고 한자식이 아닌 인명은 그렇지 않다'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도 꽤 잘 설명하고 있음
현행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2000년~)에서 저런 식의 규정이 사라진 건 다행인 듯
난 그런 의미에서 '한자어 이름-고유어 이름'과 '한자 이름-한글 이름'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생각.
다시 말해 '순우리말 이름≠순한글 이름'이라는 말.